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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행...

고달사지 1> 겨울의 끝자락에서 찾은...100326

 

 

 

 

차갑지 않은 바람.

그러나 볕없는 봄날의 바람을 애써 차갑지 않다고 변명해도

흩날리는 눈발에 섞인 쌀쌀함까지 막지는 못한 모양이다.

너무 채워졌거나, 너무 좁아진 마음이 모든 걸 정지시켜버린 가벼움이

애써 발걸음을 붙잡는다.

<스산한 바람에 찾은 고달사지... 내게 고달사지는 하루의 일정보다는 여전히, 지나가는 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머무는 공간으로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지리적인 근접성 때문이라기 보다, 고달사가 위치한 곳의 느낌이 그렇다는 생각이 많다...>

 

 

운동이 끝나고 모두가 웃음으로 떠나도,

일의 성패와 이해득실이 우선인 관계는 편할 수만은 없는 법.

무뎌진 자극도 좁아진 시야도 도대체 방향을 잡지 못하는데

이대로 떠나지 못한다면 이렇게 먼거리까지 나선 보상을 못 받을 거라는 객기가

들로 산으로 향기를 찾으라~ 찾으라! 충동한다.

 

<찾으라~ 찾으리라? ^^ 무기력과 게으름을 오가는 요즘의 내 정서에 자극과 활력을 충동하는 것들의 그리움에 빠져있다... 체력도 정력도(?) 의욕도 나사가 하나쯤은 빠진 기분이 요즘의 내 정신의 현주소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찾은 고달사지...

최고로 통달한 곳?

도의 최고의 경지에 다달았는지,

석조예술의 정점을 이루었다는 말인지,

득도의 경지에서 부처의 화신으로 해탈의 경지에 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단순해서 고귀하고 소중하게 들리는 이름을 가진 곳이 高達사지다.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달사의 모든 석물들이 바라보는 곳은 띄여있는 동쪽이 아니라, 답답하게 막힌 남서향이다... 오래 오래 머물며 마음을 채우고 담금질하기에 좁은 가슴의 나는 답답함을 느낀곤 한다...>

 

 

참 많이 변했지?

처음엔 무성한 잡초에 녹쓴 철제난간에 갇혀 있던 유물들에

복원과 발굴의 이름으로 갑바로 하나 둘씩 포장되더니,

이제는 갈색의 잡초도, 녹색의 난간도, 파란색 갑바도 모두 걷히고,

이젠 제법 너른 절터의 윤곽과 볼륨을 드러냈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십수년간의 변화를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10년전쯤일까? 부도를 보기위해서는 이런 돌계단을 오르내렸는데, 지금은 모두 파헤져졌다... 호불호의 문제보다는 스산한 바람에 더 낯설어진 느낌...>

<불과 2년전만해도 이렇게 갑바가 여기저기 지천에 깔려있었다... 언제나 저놈의 파란색(왕궁리는 녹색) 갑바와 녹색의 철제난간이 없어지나 기다렸더니, 오늘서야, 드디어 제 윤곽을 드러냈다... 원형의 모습? 속살을 드러낸 지금의 모습은 너무 위계질서에 연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처음에는 국보1점과 보물3점이 한 곳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놓칠 수 없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말한 부도예술의 이정표를 눈으로 느끼고 싶었고,

폐사지에서 채울 수 있는 문화와 역사와 예술의 향기를 선망했었고,

그리고 지금은 작은 석조물에 담긴 정성스런 손길의 여운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나는 그런 이유로 고달사를 찾고, 고달사를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게 고달사지는 빼어난 석물들로 채워져있었을지 모른다... 오늘서야 나는 지형에 어우러진 고달사터의 빈공간을 상상으로 채워보고 있다...>

 

 

물론 폐사지중, 이만한 수준과 양을 갖춘 유적지도 그리 많지 않다.

문화유산의 양으로만 따진다면 선림원지, 성주사지, 보원사지 정도가 필적할뿐,

사실 어지간한 유명 사찰보다 많은, 그것도 충분한 수준을 갖춘 석조유물을 간직한 곳이며,

<성주사지... 평지여서인지, 그래도 이곳은 갑바가 일찍 벗겨진 곳 중 하나다... 한겨울의 햇살이었을까, 늦가을의 햇볕이었을까? 역시 햇빛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에 조응하고 마음은 햇살에 감응한다...>

<선림원지... 잘 생긴 탑과 잘 생긴 석등, 그리고 아름다운 부도의 부재가 남아있는 곳... 이곳에서 느꼈던 일렁이는 마음이 고달사터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위치의 차이일까? 마음의 문제일까?>

 

 

신라하대에서 고려초로 이어지는 불교사상의 변화와

인근의 문막, 원주를 포함한 지역적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곳이 고달사지다.

한가지, 선종의 영향으로 득세한 부도의 강조로 번듯한 탑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보원사지... 이만한 크기의 탑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고달사지는 부도와 석대좌와 귀부만으로도 충분한 유물을 가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탑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달사지에서는 하늘을 향하는 그 기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2년전쯤일까? 석가탄신일에 찾았던 고달사지에 핀~~~ 꽃...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