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사 원종대사 부도비 - 귀부와 이수...>
비로자나불이 있었을 석대좌와 상반된 미감의 불교조각이 바로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다.
당당하며 굵은 윤곽을 갖춘 이 부도비의 조각들은 힘이 넘쳐 거칠게 보일뿐,
유려하면서도 자신만만하고, 거친듯 험상궂으면서도 활달한 생동감은 절로 호탕함을 느끼게 만든다.
간결한 석대좌에 자유분방한 부도비, 부드러운 석대좌에 굵고 거친 부도비,
이 두 유물을 동시에 바라보며 느끼는 짜릿함이, 내가 고달사지에서 느끼는 최고의 미감이다.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허약하고 장난스럽지 않은 것은 치켜 올라간 눈매 때문이고,
험상궂은 굵은 윤곽들이 혐오스럽거나 낯설지 않는 것은 두툼한 입술에 숨겨진 작은 미소 때문이다.
성난 얼굴이 생뚱맞지 않은 것은 비석받침 주위의 굵은 운룡문과 어울리기 때문이고,
육중한 귀부가 둔중하지 않은 것은 생동적이고 굵은 윤곽을 갖춘 무늬들이 조화롭기 때문이다.
여기에 귀부만한 이수의 압도적인 무게와 역동적인 조각들은 우람한 힘을 느끼게 만든다.
<부도비를 만들었던 기단부를 자세히보면 층층히 쌓아올린 경계석 하나에도 정성이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소 이단 이상의 층급을 두고 토양을 북돋아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부도비가 조성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고달선원에서는 부도비가 절의 후미진 뒤켠 어디에 놓여있는 게 아니라, 사찰 가람의 중심 위치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대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생각한다면 원종대사에 대한 존양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게 만든다...>
<내가 고달사에서 가장 아쉬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시선(!)이다... 물론 남쪽이라는 채광이 우선 고려되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왜 답답하게 막힌 곳으로만 모든 시선을 향했을까 하는 점이 못내 아쉽다... 만약 고달사의 모든 유적과 유물들이 조금 더 넓게 뜨인 동쪽을 향했더라면 내가 느끼는 답답함 혹은 머물지 못함을 충분히 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은 자칫 유약하고 산만해질 수 있다.
크고 우람한 것들은 자칫 거칠고 조악해질 수도 있다.
이것저것 빈틈없이 채워 넣은 것들은 욕심의 과함과 생각의 많음에 조화를 잃을 수도 있다.
크고 무거운 소재는 작은 실수들에 관대하거나 혹여 비틀어지더라도 타인의 이해를 먼저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섰다.
자신만만하고 활달한 필치는 당당하고 우람한 맛을 마음껏 살려냈고,
굵고 깊은 조각들은 꼼꼼한 정성과 타협없는 정진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비석과 이수를 받쳤을 육중한 거북등은 단조롭고 간결하게 안정감을 살렸고,
거북등 만큼이나 크고 높은 이수는 그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화려하고 유려하게 다듬었다.
모든 걸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일관되고 강직한 솜씨는 듬직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민다.
원종대사의 인품이었을까? 부도비를 기획한 이의 심성이었을까?
아니면 이 귀부와 이수를 조각하고 다듬은 석공의 내공 때문이었을까?
이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를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군가의(?!) 자신감을 엿보게 된다.
근심과 시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자신감과 당당한 마음...
그 마음처럼, 심성처럼, 내공처럼 거북이의 눈과 얼굴과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그렇게 살아있다.
<원종대사 부도비 위쪽에 자리잡은 작은(?) 부도비의 귀부...>
<그러나 이 귀부가 작고 초라한 것은 아니다... 정성스런 솜씨에 아기자기한 문양들은 결코 허튼 손놀림이 아니다...>
<비슷한 느낌에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 경주 황복사지(구황사) 삼층석탑 인근의 귀부다... 문양은 전혀 다르다...>
조금 위쪽, 방향으로는 서쪽으로 향한 곳에는 작고 아담한 크기의 귀부가 한 마리 더 있다.
경주 구황사터, 황복사지에 목을 잃어버리고 놓여있는 귀부처럼 얌전하게 놓여있는 귀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크기에 정성스럽기는 하지만, 형태에 치중하고 문양에 치중한 귀부다.
그것과 원종대사 귀부와 이수를 비교한다면, 이 부도비의 자랑스럽고 화려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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