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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행...

헛생각> 봉은사 판전을 보면서...08111*

 

1.


당신은 혹시 <판전>이라는 글씨를 아시나요?

음~

그렇다면 추사 김정희는?


혹자는 이 글씨를 추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기도 하는데

글쎄~~~

나는 아무리 눈 씻고 봐도 (심지어 마음을 다스리고 속아보자, 속아보자 주문을 외워도)

이게 대표작일지, 또는 잘 썼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단지,

추사가 죽기 3일전(?) 썼다는 마지막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점만 인정하지.


아셈 인터 호텔 다녀오는 길에,

그냥은 사무실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마음에(늘 그렇지?)

(게다가 이런 일탈과 땡땡이는 항상 절박한 듯, 어쩔 수없는 듯하지만,

생각해보면 맨날, 틈만나면, 시도 때도 없이 진행되어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봉은사의 <판전>이라는 글씨를 보러 갔다.

마음을 다스리려고...ㅎㅎㅎ

(혹, 이것도 습관 아닐까? - 고민 중...ㅋㅋ)

 

<봉은사/판전...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 나를 찍어주신 분이 보낸 사진을 올렸다...> 

 


작지 않은 절임에도 불구하고,

봉은사가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지 못함은 무슨 이유지?

모르겠다.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우리나라에서 땅값으로 가장 비싼 절집임은 분명히 알겠고...)


한바퀴 비잉 돌아서 판전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 글씨가 왜 유명할까?

참 못 썼다.

촌스러움의 극치?

추사가 쓴 글씨가 아니라면 누가 이 글씨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겠는가???!!!!!


하긴 내가 온 이유도 글씨를 보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잠시,

잠시라도 쉬려고 왔으니 글짜 가지고 가타부타 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론은 못 썼음...!





 

2.


시간이 꽤 흐르고,

오늘은 글짜를 한번 뜯어보기로 했다.

목(木)자의 가운데 획이 꼿꼿이 내려갔으니 힘이 들었겠고,

반(反)자는 왜 작게 썼을까?

균형에 맞지도 않고 어딘지 덜 떨어진 모습...


판(板)자로 들어가 볼까?

시(尸)자의 왼쪽 획 역시 목(木)자의 가운데 획처럼 꼿꼿한데 꽤 길고 크다.

마음이었을까?

공(共)자는 시(尸)자에 그대로 파묻힐 정도로 태를 내지 않게 작다.

하긴, 시(尸)의 왼쪽 획이 벌어져 있어야 공(共)자도 모양을 갖추었을텐데...

근데, 너무 크고 곧게 쓰는 바람에 글짜가 곧 넘어질 것 같이 불안하게 보인다.


궤(几)자는 오른쪽 획이 오른쪽으로 벌어진 게 아니라 이번에 안으로 삐쳐 들어갔다.

조금 이상하지?

아래쪽 문(文)자의 마지막 획은 길게 오른쪽으로 뻗쳐 있고..,


가만 보면 판(板)자는 쓰다가 딴 생각한 것 같고,

전(殿)자는 전반적으로 가분수인데다 크고,

게다가 두 글씨는 서로 어울린다는 느낌도 없다...


수첩에 글짜를 한참 그려봤다.

칠십일과병중작 (七十一果病中作)

일흔 한 살, 병중에 果(추사의 70대 호중 하나)가 쓰다...

흠~~~


 

<내가 생각해도 참 할일없다 싶게 앉아 있다... 폼이라도 제대로 잡을 것이지...^^ 근데, 여기 올리지 않은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 ; 나는 나의 뒷모습을 본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 남들은 대부분 나의 그런 모습을 보겠구나 하는 생각... 음~~~ 나도 가끔 타인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만, 한번쯤 생각할만 하군... 낯선지, 부자연스러운지,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지네??? ~~~> 



3.


옆에서 사진 찍던 분이 말을 걸어오신다.

<판전> 보러 오셨어요?

오십은 넘으신 것 같고, 카메라 들고 여러 각도를 잡으시는 걸 보니

글씨에 관심 있는 분 같다는 느낌에 몇 마디 인사를 나눈다.


봉은사 다도 강회차 경북에서 올라오신 교수님(명함으로 인사를 나누었으니)

당신도 강의가 있을 때마다 이 글씨를 생각하며 언제든 볼 수 있다 생각했는데

막상 이 자리에 다시 온 게 십년이 다 되어간다고 말씀하신다.


가만~ 나도 생각해보니 8년만인듯 싶다.

사무실에서 얼마 안 되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올수 있다고 생각했던 가까운 곳인데,

오히려 너무 가깝다는 생각이 그 긴 시차를 두게 만들었을까?

(하긴, 우리의 생이라는 게 하나의 공간에 두 번 발 디딛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


<명선> <세한도>와 더불어 추사의 삼대 명작으로 꼽는 사람이 많다는 말씀과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음이 명필로 꼽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라는 말씀...

곱씹어볼만 한 이야기다 ; 두고두고 봐도 질리지 않음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을테니...


나를 모델로 사진을 몇장 찍으셨다는 말에 한참 웃었다...^^

글씨 그린 수첩도 찍어도 되느냐는 말씀에 괜찮다고 또 한 장...

졸지에 <판전>을 배경으로 모델이 되었다.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 내려가시면 사진, 메일로라도 꼭 보내주세요...


바쁘다는 핑계로 메일을 며칠 전에야 확인을 했다.

생각보다 내가 많이 찍히기는 했는데,

그림은 아니군...^^

(물론 사진을 찍는 분의 문제가 아닌, 모델인 나의 문제임은 분명하다)


상주지역 이야기, 다도(茶道) 이야기, 추사와 글씨에 대한 이야기...

이런 곳에서 이런 만남과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이런 곳에서 보고픈 사람과 함께 있다면 좋을텐데...

아무튼 그분에게 고맙다...^^

 

 

<내 글씨 못 쓰는 거야, 나 빼놓고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이렇게 공개가 되는군... 이렇게 메모해놓고, 일주일 지나면 뭐라고 썼는지 나도 못알아 먹을 때가 많다... 그래서 헛생각이 많아지는지도...ㅎㅎㅎ 글씨... 참 못 썼다...^^> 




4.


이제 일어서야 할 시간이지?

한가지...

오늘에야 처음으로 나는 이 글씨는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판전(版殿).

판전은 경판(팔만대장경 같은)들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물론 가끔씩 板殿 이라고도 쓴다.

근데, 그런데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추사처럼 전자를 쓴 사람은 없다.


殿자의 맨 오른쪽 아래, 또우(又)자를 글월문(文)자로 바꿔 쓴 사람...

나는 지금까지, 글씨를 그리는 그 와중에도 殿자가 달라졌음을 몰랐고,

지금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엄청난 것은 아니겠지만,

왜 틀린 글씨를 우리는 옳게 읽으려고 애를 쓰지?

왜 글짜가 잘못됐다고 지적을 안 하지?

추사 정도의 명망은 있어야 글씨의 잘잘못이 아닌 의미와

그럴 것이라는 이해의 선행이 그의 의도에 또 다른 해석을 들이대는 것일까?

 

 


아니, 이럴 수도 있겠다.

글씨와 글짜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

동서고금, 상하 삼천리에 가장 뛰어난 금석학자이며 명필이어서

그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자신의 인생 대신(又)

자신이 남긴 학문(文)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언덕 厂 밑에 또 다시 반복되는 又자를 두 번 쓰기 싫어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곧 죽어야만 할 사람이(주검 시(尸)를 가장 크고 굵게 썼지)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제 마음대로 쓴 이 글자를 흔히 동자(童子)체라고도 부르지?)

어딘가를 기대어야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닌듯(안식 궤(几)는 의자의 형상이다) 썼지만,

여전히 병든 흔적은 지워버리지 못한(삐딱하고 뒤틀리면서도 꼿꼿이 곧게 애쓰면서) 글씨...


그래서 板도 조각 片을 거부하고,

종이의 원료인 나무를 평생 자신이 잡은 붓처럼 곧고 굵직한 나무 을 먼저 쓰고

결국 뒤집지 못한 세상의 덧없음을 가볍고 작게 생각하면서

얼마남지 않은 삶을 긍정해야만 함을 암시하는 죽음 는 크게 그렸지만

결코 조화롭고 부드럽지 못했던 자신의 생을 반추하면서 거칠었던 모습은 작게 共 쓰고,

게다가 병중에 지치고 나약한 모습은 암시만 하듯이 几는 쓰다가 말고,

끝까지 학문을 탐하고 갈구했던 은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길고 길게 마감했다.




5.


힘겨워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고통스럽지만 온 힘을 다해,

평생의 공력을 다 쏟아,

한 획 한 획,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기억과 추억과 이상을 이 두 글짜에 그렸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런 의미로 그렇게 썼다면

여전히 그가 추사 김정희여서 모든 게 용서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 글씨를 쓰고 3일 후에 그가 눈을 감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평생을 해왔던 일,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어야 할 일을 길고 굵게 그렸다.


마지막 붓을 놓으면서 그는,

웃었을까?

울었을까?

만족했을까?

누구를 생각했을까?


목(木), 시(尸), 문(文)자 보다 유난히 작게 느껴지는

공(共)과 궤(几)자가 아프게 들어온다.

그는 그의 독특하게 세상에 유일무이한 추사체를 남기면

여전히 세상을 반(反)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잠시 휴식 시간이었음을... 숨이라도 쉬었으니까...ㅎㅎ> 



잠시, 마음이 다스려졌나?

어딘가에 집중하며, 무엇을 잊고 있었다는 게

마음이 편하거나 다스려지는 건 아닐텐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틀린 그림 하나 찾으면서, 엉뚱한 생각하나 늘렸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