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라북도 - 돌을 다듬고, 돌로 만들어진 문화
2. 청동기 시대 - 전북지역의 고인돌 / 고인돌이라는 거석문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3. 백제시대 - 전북지역의 탑 / 돌로 만든 최초의 국가적 사회적 상징물
4. 신라시대 - 전북지역의 석등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 완성된 지역
5. 고려시대 - 후백제 지역과 보관 입불상 / 고려시대의 불상들은 왜 그렇게 무섭게 보일까?
6. 고려시대에 대한 몇가지 첨언
6-1) 백제의 DNA - 중국 동해연안의 신라방에는 어떤 역사적 토양이 있었을까?
6-2) 장보고와 선종 -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태동을 만든 장본인
6-3) 고려의 불교문화 - 인쇄술, 도자기, 고려불화 보다 탑이 더 좋은 이유...
7. 조선시대 - 전북지역의 석장승 / 돌로 만든 민초들의 꿈
8. 조선후기 - 전북지역의 민간신앙 / 보국안민, 구제창생, 후천개벽을 위한 몸부림
9. 마무리 하면서...
1. 전라북도 - 돌을 다듬고, 돌로 만들어진 문화
전라북도 지방에 대해 한마디 해보겠다고 말 꺼낸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 시작도 못했지?
뭔 일을 시작해도 뜸 들이고, 조립(?)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내 단점이다....^^
말도 많고, 뒤적거리는 것도 많고, 오지랖도 넓은데다 온갖 거 다 참견하고...하하하
전북지방의 눈과 몇 기의 탑, 그리고 문화인류학을 바라보며 파생된 반성까지,
그 모든 걸 담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몇 가지 메모를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남원 광한루... 전북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사랑의 노래? ^^>
먼저, 시대를 바라보는 내 편린의 잣대가 탑으로 고정되어 있어 이렇게 시작하지,
가만 전북지방의 유물들을 통해 지방의 특성을 유추해내는 게 그리 만만치만은 않은듯 싶다.
전라도의 어원이 되는 전주와 나주를 생각하면 조선시대에 와서야 나름 대접받은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반도가 가장 왕성한 격동기였던 삼국시대를 벗어나면
역사의 중심에서 살짝 비켜 간듯한 느낌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감상일 뿐일까?
<완주 위봉산성... 조선시대 4대서고중 하나였던 위봉사가 있는 곳... 어디든 그렇겠지만, 찾아보면 골속 골속 숨어있는 유산들이 많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과 유물들은 어떤 게 있지?
전주 풍남문, 조선 태조 어진, 강증산, 원불교 성지, 내소사, 내장사, 위봉사, 선운사...?
조금 더 비중 있는 유적들을 고르라면 백제 말기의 미륵사터와 왕궁사터,
그리고 신라대 진표율사에서 시작하여 견훤의 후백제와 고려초기로 이어지는 금산사와
고부관아에서 황토재, 우금치마루로 이어지는 동학농민전쟁의 흔적들이 우리의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먼저 전북지방을 지리적으로 살펴보면 금강의 남쪽,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북쪽에서부터 금남정맥(부소산-계룡산-대둔산-운장산-주화산-내장산)을 경계로 이루어졌고,
그 중간에 만경강, 동진강이 흐르는 너른 들판과 평야로 이루어져 한반도의 곡창지대임이 분명하다.
이런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도 역사의 중심지로 부각되지 못했다면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아무튼 금강 이남과 영산강 이북 중심에 위치한 이지역은 후백제의 영역과 비슷한 동질성을 갖고 있다.
<대간정맥지도... Daum이미지에서 스크랩... 행정적 구획이 아닌 문화적인 인문지리는 강과 산을 경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리산의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있지만, 금강 이남에서 내장산 서쪽, 예전에 소백산맥으로 배웠던 백두대간의 지리산까지가 전북의 영역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전라북도 지역이 전주부와 남원부, 동서로 나뉘어 있었다... "전주부"는 금강이남에서 부터 시작하여 현재 전라남도 영광과 함평을 포함한 평야 지역을, "남원부"는 남원을 중심으로 오늘날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산악지역을 관장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지역적으로 조금 더 포괄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
전북지역의 지리적 여건에 인문의 옷을 입히면, 역사적 흐름을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지역이 가장 시끄럽게, 사람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살았던 최초의 시기는 언제였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들인 <고인돌>과 <죽막동>, <미륵사탑, 왕궁리탑>
그리고 <진표율사의 금산사>와 <석장승>,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통해 시작해 본다.
행정적 영역은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두지만, 지리적 영역은 금강이남과 지리산 일대를 포괄하고,
그 시작과 끝은 <돌로 만든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좌사우도(左史右圖)? 역사와 지도를 보면서 한번 날아볼까? ^^... 보문도 넘어갈때...^^>
2. 청동기 시대 - 전북지역의 고인돌 / 고인돌이라는 거석문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존재하는 <고인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인돌 문화는 부족국가시대 족장들의 무덤(지석묘)이다.
흔히 거석문화의 일환으로도 해석되는 고인돌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을 비롯해
지중해 일대의 서유럽과 북아프리카, 영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대에 분포하지만,
전 세계 고인돌 5만여기중 대략 3만여기가 한반도에 분포하고, 화순에 2만여기가 존재한다.
<한반도의 고인돌과 선돌 분포도... Daum이미지 스크랩...>
<탁자식(북방식) 고인돌 분포지역도... 평양조선중앙력사박물관/예맥/2008년에서 촬영... 카메라가 맛이 갔다...^^ 북한에서의 연구는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에 국한이 되어있다... 물론 분단의 한계는 있지만, 남방식 고인돌 분포는 표기된 게 없다(책 편집의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평양 관련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도 있는 듯... 아무튼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그런쪽이다...>
물론 나의 관심은 북방식이냐, 남방식이냐, 선돌이냐, 열석이냐, 돌무지냐에 있지는 않다.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건 한반도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시베리아를 통해서만 이동한 게 아니라,
인도, 필리핀쪽에서 이어지는 동남아의 해류를 타고 이동해왔을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한반도 남쪽은 북방전래의 끝인지, 남방전래의 시작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중국의 신석기 문화 분포도...Daum이미지 스크랩... 홍산문화를 제외하면 앙소문화 등이 훨씬 세분화 되어가는 추세인듯 싶다...>
게다가 하나 더, 최근 홍산문화(요하주변)에 대한 중국측의 부인할 수없는 고고학적 성과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인류는 북방전래, 남방전래의 결과가 아니라 자생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구석기 유적에 대해 남한은 50만년을 이야기하지만, 북한 100만년전 인골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견된 곳은 한반도의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도리로 1만4천년전이다
벼농사의 기원이 한반도일 수도 있으며, 남방/북방전래라는 외부유입설만이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점)
<신석기, 청동기 문화권 분포도... Daum이미지 스크랩... 한눈에 본다는 건 편하다... 지어낼 말꺼리도 많아지고...^^>
물론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
거석문화(megalith culture)는 분명 바다를 통하거나, 강을 접해서만 발달했고,
그들에게 <돌을 세우는 것>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가장 신성한 행위의 상징이었으니까.
그리고 인간이 건축적 구조물을 통해 종교적으로 사회 통합을 도모한 첫 매개는 돌이었다.
(조각과 그림, 장신구를 만든 흙, 조개, 나무, 금과 옥을 뿌리치고 <입석>은 권력의 첫 구조물이다)
그 정점에 있는 피라미드나 원주 등 입석과 관련된 유명한 유적들도 장구한 세월을 관통한다.
피라미드만 살펴봐도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BC27세기부터 BC7세기까지 번성했지만,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의 형식은 중국에서 발견된 것으로 BC40세기쯤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발견은 중국 황화 중상류의 앙소문화와 다른 홍산문화의 아류로 밝혀져 논란이 있고,
시대를 뛰어넘어 AD4세기부터 AD14세기까지의 마야-아스텍-잉카문명도 피라미드를 남겼다.
우리의 경우에도 피라미드 양식의 보편성은 확인되는데 서울 송파의 백제초기 적석총과
중국 집안처럼 20여기가 넘는 고구려의 피라미드식 적석총이 한곳에 조성된 곳도 있다.
<서울 송파 백제초기 적석총... 고구려나 중국 몽고 동남쪽의 피라미드와는 비교될 수 없을만큼 작은 규모이지만, 원형을 추측할만한 양식이 아닐지...>
<뭐 이정도면 스크랩했음을 표기하지 않더라도 확실하지? 중국의 피라미드에 대한 사진들을 몇장 첨부한다... 중국에서 피라미드 유적들이 발견된 것은 조금 되었지만, 홍산문화/동이족문화/그리고 고구려나 백제의 유적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거의 공개하지 않아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최근 국내의 방송사들이 이 문화에 관한 취재가 있을 경우에는 아예 취재를 거부하거나 필름을 뺐기까지 한다... 그들로서는 역사적 추론과 근거를 명확히 하여 소유권을 분명히 설정해 놓고 이들 유적을 중국식으로 해석하는데 집중하는 듯 하다... 소위 서북공정을 비롯해 동북공정 등은, 최근의 몽고와 관련된 유적을 포함하여 모두 중국중심의 주변문화로 관계설정을 확실히 한 이후에 공표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아무튼 기존의 황하문명과는 전혀 이질적인 피라미드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비슷한 시기에 융성하기 시작한 홍산문화 등으로 그들에게는 많은 고민이 생긴 게 분명한듯...>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이런 유형의 피라미드가 중국 서안에 대규모로 발견된다는 점과 중국측에서는 고구려 유적으로 추정되는 이 대피라미드의 발굴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믿거나 말거나가 되나?^^- 아마 연개소문에 항복하는 당태종의 전설이 중국의 "경극"에 그대로 남아있고, 서안까지는 아니지만 요서지방에는 그런 설화들이 많이 남아있는 걸로보면 틀리지 않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전방후원묘가 발견되더라도 백제 유적과의 연관성 때문에 발굴을 미루거나 비밀리에 진행하고, 중국에서는 이런 유형의 피라미드가 발견되면 고구려 유적과의 연관성 때문에 발굴을 미루거나, 위 사진처럼 아예 나무를 심어 산처럼 위장(?)한다는 첩보(?)도 있다...ㅎㅎ 아무튼 장군총보다는 규모와 크기에서도 놀랍게 다르지만, 주인없는 무주공산처럼 자꾸 지워지는 건 좋은 일은 아닌듯...^^>
<중국의 피라미드... Daum이미지 스크랩... 그 규모가 고구려 시대 장군총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피라미드와 행성의 배열... Daum이미지 스크랩...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와 중국의 피라미드는 동서남북의 방위만 다를뿐, 그 당시 측정할 수 있는 행성의 배열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구려 무덤떼 전경(?)... 평양조선중앙력사박물관/예맥/2008...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감수하고 국내에서 출간된 아름다운 우리문화재 책자를 촬영한 것인데, "무덤떼"라는 말이 재밌다...^^ 중국에 남아있는 장군총 형식의 무덤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듯 싶다... 언듯 눈으로 세어봐도 2~30기는 훨씬 넘는듯...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는 전통이 바로 매장 풍습이고, 또 그런 이유로 문화재에 대한 고고학적 판단의 출발점은 무덤의 양식과 매장의 풍습이다... 이런 피라미드 모형의 무덤은 그 크기와 수량에서, 현재 중국땅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입석으로는 BC15세기 전후의 영국 스톤헨지에서부터
AD11세기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모아이 유적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우리나라 전라도 일대의 석장승과 제주도 돌하루방 등 그 존재양태는 다양하다.
(입석문화에서 제주도 돌하루방은 모아이나 중국 동남아 일대 유적과 가장 유사하게 비교된다)
여기서 내가 거론하고 싶은 방점은, 주체의 문제보다 지역적 양식의 문제를 돌아보자는 점이다.
<세중박물관의 돌하루방... 크흐~~~ 이제야 찾았다... 아무리 사진을 안 찍었다기로서니 제주도 하루방 사진 한장 없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장롱속에서 한장 찾았다...ㅎㅎㅎ 아무튼, 외국사람들은 동남아 거석과 모아이 유적들을 제주도 하루방과 비교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원주박물관... 근데 그 모아이 거석은 이런 느낌 아닌가? 이것보다 머리가 크고, 코가 오똑하니 크고, 배는 불뚝 뛰어나오고...^^>
즉 어느 시기인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화순과 고창일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고,
그것은 신석기와 청동기 연간에 이곳이 인간들이 살만한 최적지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이고,
그 지역에 정착한 인간들은 어느 순간 고인돌, 혹은 거석, 입석문화를 잊어버렸지만,
내가 보기에 돌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과 문화와 권력을 표현했던 그들의 원형은 변하지 않았다.
<영월 법흥사 가는 길에... 아주 오래된 사진이다... 이 돌을 누가 시켜서 쌓았을까? 우리는 돌이 있으면 탑이라 이름하지 않아도 쌓는다... 남들은 차고 다니겠지만...ㅋㅋ>
왜냐하면, 당간지주 편에서도 말했지만, 소도와 솟대의 무불습합으로 만들어진 석당간지주도
(중국에도 당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요/금대에 조성된 상화엄사에는 목당간이 남아 있을뿐)
장엄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탑파가 석탑으로 변형된 최초의 예(정림사탑)도 이곳에서 시작됐고,
현재 남은 장승만 해도 유독 돌로 만든 것들은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돌이라는 소재의 선택여부보다, 돌을 다루고자하는 기질의 문제가 아닐까?
하하
이 지역이 언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살았을까의 이야기가 석조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
이 사람들이 북방전래의 결과인가 남방전래의 시작인가, 혹은 자생적인 독자적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원형이라는 게 있다는 점이고,
지석묘(일본), 석붕/대석개묘(중국), 돌멘(dolmen,영국)으로 불리는 고인돌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는 점.
결국 고인돌은 현재 한반도에 남아있는 돌과 관련된 모든 문화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된다.
<강화도 고인돌... 이런 유형을 북방식이라 부른다... 북한에서는 탁자식이라 부르고...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을 당기는 게 없어, 고인돌을 찍어 놓은 사진이 거의 없다... 화순, 고창... 나는 지금까지 고인돌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제야 아쉽지만...^^>
굳이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인돌문화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인류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만의 특성과 강점, 단점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이어지는 시기, 이 지역에 정착한 고인돌 문화는
그것으로 단절되거나 잊혀진 게 아니라, 수천년을 지나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양식으로 변화 계승되었다.
<영월 선돌... 물론 영월 선돌 전망대에서 보는 건 이쪽이 아니라 반대편이다... 하도 좋아보여 먼길을 돌아서 사진찍으러 갔지...^^ 꼭 인위적으로 세워놓은 입석만 선돌이라 부른게 아니라, 이처럼 자연 암반까지도 우리는 이름을 붙였고, 또 그냥 선돌이라 불렀다...>
때로는 서낭당의 돌무지에서부터, 산 정상의 돌무지, 막돌로 쌓은 제단(강화도, 태백산 등)으로,
때로는 선돌/ 입석으로 이름 붙여진 민간신앙에(전국 어디를 가도 선돌 등은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석탑/ 석등/ 석당간지주 등 불교유적까지(돌로 탑과 등과 당간을 장엄한 불교문화는 우리가 유일하다)
그리고 마지막 조선시대 이 지역에만 유행했던 다양한 석장승과 입석/ 석당 등을 생각하면,
끊임없이 모양과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시대에 맞게, 조류에 맞게 기질이라는 원형을 유지했고,
그 중심 중 일부에 전북지역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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