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살아, 일어나야지~
부족한 잠은 기차에서 자자~
눈도 뜨지 못한 똘똘이는 둘쳐메고 용산역으로 떠나는 시간...
늦었나?
짧은 거리 택시 타면서 7분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택시 기사에게 7분 동안 야단맞았다...^^
그래도 어찌 어찌해서 기차표를 구입했다.
늘 인수분해가 되어서 출발, 광주 집에서 집결했던 예전에 비해 한결 한가롭다.
마음도 몸도...
색시가 접어놓은 왕궁리탑 관련 자료도 잠깐 보고,
짬짬이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펼쳐든 <꽃의 유혹>에도 넘어가며 안개 자욱한 차창을 본다.
(이거 볼수록 맘에 드는 책이네? 관점도 좋고, 번역도 잘했고... 추천할만 하다...^^)
말이 추석이고 가을이지, 한여름 불볕더위와 별반 다를바 없다.
장거리 운전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편할 수가...
(그래~ 우리나라 SOC 투자는 도로가 아닌 철도가 돼야 돼!)
아침 8시경에 집에 도착하니 한밤중에 차로 출발했더라도 아직까지 자고 있었을 시간이다.
비행기로 도착한 동생 내외도 오전에 도착,
부모님만 계시는 집에 간만에 온기가 채워지는 듯하다.
<비엔날레 전시관... 똘똘이 재운다고 같이 누웠다가 늦게 움직인 죄로 들어가보지도 못했다...ㅠ>
차가 없으니 이런 불편도 생기네?
음식장만 하는 손길이 끝날 때쯤, 동생이 비엔날레에 잠깐이라도 둘러보자는데
부모님을 모실 수가 없다.
내일 성묘 갈 때도 함께 갈 수가 없는데 차라도 한 대 렌트할까?
기껏 내려와서는 우리끼리만 움직이니 죄송할 따름...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공연이... 음을 충분히 주워 담지는 못했다...>
이 길로 10여분 올라가시면 전시장을 보실 것 같은데요?
10분씩이나???
얼마나 된다고, 전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을 위해 전시장을 한바퀴 비잉 돌았다.
음~~~ 역시 편하군...^^
내리자마자 국악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작고 아담한 얼굴에서 어찌 그리 굵고 걸쭉한 목소리가 나오는지...^^ 색시 옆에 두고서 한마디 했다 ; 포즈 좀 취해주실래요? ^^>
초등학생과 가냘픈 아가씨의 판소리는 중저음의 애절한 기교로 이어진다.
낭랑하고 밝은 목소리는 역시 파바로티만한 볼륨이 필요한가 보다...^^
글쎄~~~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비엔날레가 되려면
동편제가 어울리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 우물 정(井)자다...^^>
광주 민속박물관도 제법 규모가 있네?
광주의 골속 골속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지금까지 몰랐음에 의아해하나? ^^
야외에 전시된 우물(井)들과 몇몇 재밌는 석상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어차피 늦은 시간, 내부는 일찍 포기하고 가을볕에 시간을 맡긴다.
<민속박물관의 광주십신사지 석불, 유형문화재다... 4.5m의 작지 않은 길고 홀쭉한... 고려의 미감이었을까?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 그들의 미감이었겠지...>
밖에 나오면 역시 아이들이 신난다.
숙녀분들이 풀어지면 쇼핑(보고, 먹고)을 하고, 아이들이 풀어지면 무작정 뛰고 웃지?
내가 풀어져 있을 때는 의자를 찾는다(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불면 더없이 좋지...)^^
간만에 널뛰기 흉내도 내보고, 참새가 방앗간 기웃거리듯 벼룩시장에 머문다.
<그 눈빛과 몰입한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관악기로 이루어진 라틴아메리카의 음률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다.
멀고 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윽함에 약간의 애절함이 뒤섞이니 맘이 차분해진다.
이 CD를 사면 지금의 감상을 간직할 수 있을까?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은 곧바로 가격 흥정으로 들어가고...
결국 아이들 팬플룻 하나씩 사주고, 케냐에서 공수되었다는 아기자기한 사자도 두 마리 샀다.
<케냐에서 공방을 같이 운영한다는 예쁘장한 아줌마 말에 넘어갔지? ^^ 기념품을 사는게 추억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작은 꿈 하나를 담아봤다...>
2.
에너지 덩어리...
땀에 범벅된 똘똘이 샤워 시키는데 익숙치 않은 손놀림에 쟁쟁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머리한번 감겨주면 또 몇 년 가겠네용~~~ ^^
색시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진지무재는 열심히 똘똘이와 협상과 타협을 번갈아가며 머리 감기고,
상이 차려지면서 온 가족이 함께 차례를 올린다...
<지리산 성삼재의 쌀쌀한 바람과 주머니에 손을 넣은 똘똘이...^^ 머리 감길 때 실갱이하는 것은 비슷한데 나는 큰소리를 못낸다...ㅎㅎ>
그래~~~
본래 제사상 차리고 배례하는 것을 차례(茶禮)라고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차례상에서 차(茶)를 본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설록차를 올릴까, 작설차를 올릴까?
녹차를? 백차를? 홍차를? 황차를? 흑차를? 혹은 용정차, 보이차 등등을 고민해본 바 없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 어동육서, 떡은 우측, 술은 좌측...
여기에 할머니 좋아하셨던 바나나도 올리고, 할아버지 좋아하시던 파인애플도 올리고...
아마도 내 제사상에는 쵸코파이가 올라갈지도 모르지?
아무튼 조부모님부터 3대와 내가 원해서 같이 모시는 할아버지 형제 내외분의 제사상에서,
나는 좌우 동서 선후는 구별하면서, 차를 올려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를 드시며, 다도(茶道)를 설파하신 기억도 없다...
햇살이 할아버지(신랑~ 햇살이에게는 증조할아버지야) 기억해?
네~~~
지가 태어나기 오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할리 만무하지만
광주집에 걸린 증조부모님의 영정을 봤던 기억이 오버랩 되는 모양이다.
사진은 그렇게 세월을 이어주고, 기억을 조장하기도 한다.
<성삼재에서의 햇살이... 턱을 괸 모습은 저를 닮았다네요? 나도 그런가? ^^>
집에 내려오면 혼자서도(일년에 몇 번 되지 않지만) 가끔 들르는 담양의 공원묘지...
수년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천주교 공원묘지에 합장해 드렸다.
할머니 돌아가신 게 30년이 조금 넘었고, 할아버지는 15년이 됐지?
할아버지, 할머니 한번씩 불러보고 간소한 음식과 담배를 올려 드린다.
지신도 불러내고, 망자도 불러내고...
할아버지가 1905년생이시고, 똘똘이가 2006년에 태어났으니 100년의 시차네?
음복의 자리는 산자와 망자가 함께 다과를 즐기며 잠시나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치.
비석에 사진이 없음을 항상 아쉬워하며,
기억하는 것과 기억되는 것의 허허로움에 대해 살짝 하늘을 바라본다.
바로 밑 이모부 묘에도 인사드리는 것은 내 맘의 짐을 내려놓는 자기 위안일지도 모른다.
<담양의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그래도 양지바른 곳이라 기분이 좋다...>
기어 다니는 개미도 무서버~ 무서워하며 한발짝도 움찔 못하는 똘똘이와
방아개비, 여치, 메뚜기 잡으려고 뛰노는 아이들을 데리고 묘지를 벗어난다.
그래도 예까지 왔는데...
나의 <하면서 주의>는 곧장 집으로 향하는 걸 허락하지 못한다...^^
담양 오층탑도 보고, 명옥헌에도 들르자.
오후에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동생에게 핸들을 맡기지 못하고 가이드로 나섰다.
본디 부모님 모시고 탑도 보고 경치 좋다는 곳도 보여 드리겠다 맘먹었는데
동생내외 아이들과 결국 우리들만 담양을 쏘다니게 되었다...
탑 좋지?
한참 공부하던 때 역사와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듯 보였던 동생은 탑을 모른단다.
아이들이 잔다며, 색시와 제수씨는 차에서 탑을 바라보고,
배터리 떨어져 가는지도 모르고 카메라만 둘러메고 나온 나는 열심히 탑을 음미한다.
<담양 오층탑... 아이들은 시간만 되면 뛰쳐 나온다...>
보면 볼수록 좋아...
모든 게 좋아 보인다면 내 맘이 허전하거나 몸이 피곤하지 않거나
혹은 전반적인 컨디션이 여유로운 때문인지 모른다.
오늘은 담양 오층탑이 준수하다기보다, 늘씬하고 정성스러운 자태로 보인다.
<담양 오층탑... 유달리 늘씬해 보였다... 한장의 지붕돌을 저렇게 다듬었다... 우동이라 불리는 목조건축의 내림마루가 분명하고, 귀솟음도 분명하다... 준수한 모습...>
정림사탑을 닮았네?
기회만 되면 담배를 꼬나문 동생의 한마디...
그래~~~ 훨씬 가늘어지고 좁아진 용태이지만 그 미감이란 숨겨지지 않나 보다.
두툼해졌지만, 지붕돌 끝(전각)의 귀(모서리)솟음은 영락없는 정림사탑의 전승이다.
미륵사탑, 왕궁리탑에서 다보탑으로 이어지는 이 고유의 미감은 흐트러짐 없이 이어졌다.
짧은 만남의 해우를 아쉬워하며 명옥헌으로 향한다.
10여년 전의 맑고 투명했던 담양하늘은 아마 관방림이었나 보지?
이미 다 지고 없어졌을거라 예상했던 명옥헌의 배롱나무에
미처 떨구지 못한 진분홍 꽃들이 남아있다.
<명옥헌에서... 아무래도 만개했을 때 카메라 들고 다시 가야할 듯...(언제일지 모르지만...^^) 물속의 수풀들까지 투명해 보인다...>
야~ 너무 좋다~~~
어쩌면 이곳은 숙녀분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일까?
그리 넓지 않은 아래쪽 연못과 아담한 위쪽 못하나, 그리고 덩그러이 놓인 전각 한 채...
그 작은 공간이 마음에 꽉 차게 들어온다.
<명옥헌... 조금 더 투명하고 깊은 하늘이었다면...>
오길 정말 잘했네~~~
환해진 얼굴의 가족들과 아이들의 맑은 웃음이 명옥헌을 채운다.
8월 정도... 배롱나무꽃이 만발했다면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꼬옥 보리라 마음먹었던 명옥헌이 정말 탐스럽고 화사하게 마음에 내려앉았다.
이만한 공간이었으니 좋았을거야...
벅차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고 짓눌리지도 않고...
<명옥헌... 그래도 너무나 맑고 깨끗했던 물... 참 인상적인 곳이다...>
그럴 수 없이 깨끗하고 투명한 물에, 하늘의 맑은 기운이 담겼다.
금붕어도 있고, 가물치도 있고, 소금쟁이도 있고...
배롱나무가 있고, 꽃잎도 떠 있고, 물속의 수초도 살랑거리고...
그리고 감취지지 않는 그림자와 그럴 수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작은 바람도 있고...
<명옥헌의 배롱나무... 100여년에서 훨씬 넘은 고목까지 정말 굵다... 작아서 너무나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
절정의 환희를 대하기란 쉽지 않나 보다.
그럼에도 상상으로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명옥헌의 예쁜 풍경은 충분히 탐스럽다.
아직 남아있는 수화(水花)...
맑은 못에 떠있는 꽃잎들 하나하나가 별처럼 반짝인다.
<얼마 남지 않은 水花를 담고 싶어 한참을 찾았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필요할까?
누군가의 발자취와 흔적을 찾는 건 정성이 필요한 모양이다.
400년 묵은 배롱나무와 이제 막 틀을 잡아가는 작은 또 다른 배롱나무들...
물 위의 진분홍빛 수화는 그렇게 마음을 채우고 바람을 채우고 하늘을 담았다.
<인상적인 그림은 늘 닮고 싶은 욕망을...^^>
명옥(떨어지는 물소리가 옥구슬이 구르는 소리 같다는)이 좋을까? 수화가 좋을까?
카메라도 색시거 빌려 쓰고 있으니, 어차피 한번 제철에 와야겠지?
음~~~ 아무튼 고민이 더 필요하다...^^
<명옥헌 사진 다 올리려다가 꾸욱 참았다? 그래도 엄청 많이 올린 것임...^^>
돌아가는 길은 무등산을 넘어가지 뭐...
내심 개선사지 석등을 보리라 마음먹은 의도가 그렇게 핑계꺼리를 만들어낸다.
이 깊은 곳으로 누가 개선했을까?
무엇 때문에?
<개선사지 석등과 똘똘이... 파묻혔던 아래쪽은 시멘트로 보수했다는데 조금 그렇다... 연화소반 모양의 간주석 중간은 조금 더 높지 않았을까? >
868년이 분명히 각인된 걸로 보면 신라가 혼란에 접어들고 후백제가 태동하기 직전...
장보고의 후원을 받은 선종이 전라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정치적 혼란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이 득세하면서 종교개혁(?)이 창궐한 시점이다.
장보고 세력이 해체되어 주력이 서산, 당진, 태안반도로 강제 이주된 이후
여전히 이곳은 선종에 미륵불 신앙이 결부되어 사회변혁의 중심지로 등장한다.
그래~ 이곳은 개선장군(凱旋將軍)의 승전 기념이 아니라 개선사(開仙寺) 석등이다.
<설혹 보수가 되었더라도 귀솟음의 형태가 완전해진다... 조금더 후대의 전라도쪽 석등들은 훨씬 정교해지고 화려해지지... 그래도 복련을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장식한 경우는 드물지? >
그렇게 보림사부터 시작한 선종과 후백제의 미감은 우리나라 석등사의 새로운 장을 연다.
하대석 복련과 지붕돌에 스페이드와 크로바(♠♣)를 적절히 섞어놓은 귀꽃이 생기고,
팔각형 기둥 모양의 간주석은 장구모양(혹은 연화소반 두 개)으로 화려하게 장식되고,
훨씬 두툼하고 볼륨 있게, 그리고 장중한 크기를 갖추며 등장했지.
<팔각형의 화사석 팔각면에 모두 화창을 낸 것은 모두 전라도쪽이다... 용암사지, 실상사지... 화엄사 빼고...^^>
이 개선사 석등이 있어 선림원터의 아담하면서 차분한 석등도,
용암사지의 굵고 장중한 석등도, 실상사의 화사하고 세련된 석등도,
청량사의 튼실하고 뻣뻣한 석등도 만들어졌지(역시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미감은 달라).
그리고 결국 견훤은 화엄사의 장중하고도 웅혼한 석등을 만들 수 있었겠지.
그 원형... 그 뿌리를 찾았다.
이쯤 되면 미안함이 도를 넘어 민폐가 되겠지?
동생 가족에게는 무등산 넘어가는 길에 늦은, 아주 늦은 점심을 대접(?)하고,
집에서 묵묵부답 기다리시는 부모님께는 게장을 한보따리 사들고 들어갔다.
아무도 토를 달지 않지만, 혼자 미안하고, 혼자서 즐겁다...
그래도 배롱나무에 아이들 뛰노는 모습... 모두들 즐기지 않았어?!!!
<조금 서둘렀다면 쟁반 같은 보름달을 담았을텐데... 그렇게 가끔 달님을 담는다...>
하루전날 보름달 보고 빌어야 돼? 아니면 당일 날 빌어야 돼?
되지도 않는 질문을 남발하며 요구르트 사러 나온 길에 보름달을 본다.
차고 기움...
수십억의 눈망울이 수십억년 동안 바라보았을 보름달을 자뭇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따뜻하지 못할지 몰라도 정성스럽다면 내 흔적도 달에 새겨지겠지...
<집에서 바라본 광주 시내... 중간에 희미하게 보이는 게 무등산이다... 광주비엔날레의 로고가 바로 무등산의 형상이지...>
동생이 떠나고 보니 하루종일 운전만 했네?
것도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ㅉㅉ
내일은 부모님 모시고 어디든 꼭 가리라...^^
화엄사를 갈까? 아니면 가장 아름다운 부도가 있는 쌍봉사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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