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라북도 - 돌을 다듬고, 돌로 만들어진 문화
2. 청동기 시대 - 전북지역의 고인돌 / 고인돌이라는 거석문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3. 백제시대 - 전북지역의 탑 / 돌로 만든 최초의 국가적 사회적 상징물
4. 신라시대 - 전북지역의 석등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 완성된 지역
5. 고려시대 - 후백제 지역과 보관 입불상 / 고려시대의 불상들은 왜 그렇게 무섭게 보일까?
6. 신라말, 고려시대에 대한 몇가지 첨언
6-1) 백제의 DNA - 중국 동해연안의 신라방에는 어떤 역사적 토양이 있었을까?
6-2) 장보고와 선종 -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태동을 만든 장본인
6-3) 고려의 불교문화 - 인쇄술, 도자기, 고려불화 보다 탑이 더 좋은 이유...
7. 조선시대 - 전북지역의 석장승 / 돌로 만든 민초들의 꿈
8. 조선후기 - 전북지역의 민간신앙 / 보국안민, 구제창생, 후천개벽을 위한 몸부림
9. 마무리 하면서...
7. 조선시대 - 전북지역의 석장승 / 돌로 만든 민초들의 꿈
이제 조선시대로 넘어가 볼까?
조선의 등장은 우리의 역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는 시점임이 분명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소위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로 이어져온 만주일대 고대사의
거의 완전한 기억포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불교의 배척과 유교의 숭상으로 마련된 국가통치체계는 내적으로 완성된 사상적 숙성의 토양이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교화하고 통치하는 정치 시스템을 고민하던 시기라는 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아무래도 사진이 중복되는 게 많을 것 같다... 전북답사와 중복이 아니라, 예전에 올렸던 사진들... 하나의 사진을 두세번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종합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부득이하게 그렇게 되었다...^^ 이 사진도 2~3년전 올렸던 사진...^^>
이성계의 군사적 배경은 만주의 여진족이다.
몽고의 원나라에 의해 몰락한 만주의 여진족(금)이 뿔뿔히 흩어졌다면, 고려는 국가를 유지했다.
그리고 여진족이 다시 재기하기까지 300년 동안 그들은 용병이 되고 오랑캐로 전락했다.
그 용병을 받아들여 군사적으로 재기한 이가 이성계의 아버지이고,
그 용병들을 다시 한민족에서 완전히 떨쳐버린 게 이성계의 아들이었다(함흥차사도 그런 과정이겠지)
(북벌을 단행하던 김종서를 제거한 세조대에 이르러, 조선은 한반도내 조선만을 위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뭐 이렇게 나가면 다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고, 그럼 불교는 어떻게 변해 갔을까?
인도와 중국,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에 정착한 불교의 양태는 분명히 다르다.
선민사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간 인도의 불교는 윤회와 수양이 강조가 되고,
불교의 정수를 이해하지 못한채 도교적으로 해석하고 왕권강화 목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은
북위시대(대략 300년대)부터 당나라까지 500여년 전성기를 이루지만 유교로 흡수 되어버리고,
(왕즉불, 묵가적 노동/유교적 수양/도교적 민중화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불교는 정주리학으로 흡수되는데
특히 화엄종과 선종의 영향으로 유교는 통치사상에서 완전한 의미의 철학적 체계를 갖춘다)
<광주박물관 민불... 고려후기에서 조선시대, 이제 입불상들은 보관도 벗어버리고, 신체적 비례도 포기하고, 때로는 장승처럼, 때로는 거북이처럼, 때로는 솟대나 당간지주처럼 그렇게 세워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을 미륵이라 부르게 되고...>
모든 것을 신의 존재와 의미로 해석하는 일본은 신앙으로서의 불교로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로마는 인간을 닮은 신을 창조해냈지만, 일본은 존재하는 모든 걸 신으로 만들었다.
인간의 神인 천황과 <센과 히치로><이누야사> 등 애니메이션, 그리고 다기에 까지 혼을 불어넣은 일본)
중국이 유학을 다방면에 걸쳐 실험하던 시대까지 고조선의 지배(BC108년)를 받았던 우리민족은
모든 종교와 사상에 무속적 영향이 짙어 <현세구복의 염원사상>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강하다.
<곡성 가곡리 돌장승... 거북이 모양의 돌에 얕은 새김으로 흉상만 그려낸다... 마을도 지켜주고, 건강도 기원하고, 나그네들의 안녕도 빌어주고...>
물론 어느 사회, 어느 민족에게 현세구복의 염원이 부족 하겠는가 마는 우리만큼 강하지는 않다.
왕권강화로 시작된 불교, 신문물의 상징 기독교도 한반도에 정착하는 순간 현세구복의 통로로 흡수된다.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되듯이, 어떤 믿음도 우리에게 들어오면 무속이 되고 만다?)
교리를 외우고, 종교역사를 공부하며, 생활의 습성으로 종교가 자리하는 게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해,
천국행 티켓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기독교 나라 중 가장 많은 11조를 내며, 지금을 위해 기도한다.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인 내세에 극락왕생하기 위해 믿는 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 복을 받기위해 믿는다.
<상하리 미륵불... 물론 그렇게 가늘고, 작은 것만 만든 건 아니다... 여유가 있으면 이렇게 서있는 자연석을 통채로 다듬어 미륵이라 부르기도 하고...>
우리는 죽은 자들과의 소통도 그들을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복받기 위해 성묘하고 살풀이 하며,
심지어 내가 편하기 위해, 복을 받기 위해 조상의 묘도 가차 없이(?) 옮기며 돌을 덧대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에게 불교는 자신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기위해 믿으며,
신내림을 받거나 보살이라 불리면서도 모시는 신이 따라 있어 당(깃발)을 꼽으면 점쟁이로 바뀌기도 하고...
기도할 때 어떤 이들은 머리와 가슴을 만지며 십자가를 그리는 이들도 있고,
무릎을 굽혀 머리를 낮추는 이들도 있고, 두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연신 숙이는 이들도 있지만,
이 모든 행위에 두손을 비비며 처절하게 기도하는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유일한 거 아닌가?
우리네 민족은 두손을 비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돌을 비비면서까지 간절하게 염원할게 많았을지도...
(그런 전통이 있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예민하고 정교한 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주 굴불사 사면석불... 이곳을 비롯해 남산 탑골에 가면 돌을 갈면서 기도하는 돌판과 작은 돌이 있다... 돌리고 돌리면서 갈다가 작은 돌이 돌판에 딱 붙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가지고... 나도 갈아봤다...^^>
에고~~~ 내가 특정 종교나 우리의 풍속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또 헛나갔다...☞☜
아무튼 문화적 토양이라는 것은 정치와 경제, 사상의 영향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고,
하루아침에 똑똑한 천재 수천명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바뀔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반도로 시야가 고정되고, 유교에 의해 시스템이 재편되고, 불교도 왕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조선시대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북지역에는 어떤 유물과 유적들이 만들어졌을까?
거석문화와 빗살무늬토기문화권이 대략 겹치는 몽고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문화가 있으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낭당, 성황당으로 불리는 지역에 쌓인 돌무지무덤 같은 제단이다.
몽고와 만주에서 <우보>라 불리는 이곳은 우리와 비슷한 목적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마을의 안녕과 기우제등을 지낸 것 외에 유목민들답게 나그네와 순례자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서낭당에 당산나무가 존재하고, 솟대와 작은 신전이 같이 존재한다는 점.
<용인 민속촌... 물론 이것이 원형은 아니지만, 내가 찍은 것중에 돌무지도 있고, 새끼줄도 쳐있고, 오색천이 휘날리는 게 이것뿐이어서...ㅉ 여기에 작은 서낭당이 함께 있고, 장승까지 있으면 완벽해지나?>
<문경 봉암사 들어가는 길... 이처럼 당산나무는 고대의 신목사상과 함께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서산 마애불 보러가는 길의 강댕이 미륵불... 이처럼 길 어귀에 서있는 미륵을 돌무지가 받치고 있다... 미륵불도 옮겨진 것이고, 돌무지도 그렇게 조성된 것이지만, 그 습성이 남아서 만들어진 게 아닐지...>
서낭당이 고려시대 몽고와 항전 중에 정착했다고 하여, 몽고문화의 변형이라고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경우 삼한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소도의 변형으로(이건 당간지주편에서 이미 말했다)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신단수, 즉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우주목/세계수 문화와 결합되었다고 본다.
(아담과 이브만 존재했던 기독교에도 선악과라는 나무가 있고,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것도 보리수 밑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정착한 고인돌 문화를 되새기기 위함이고,
고려 문종대에 전국적으로 활성화된 서낭제를 대표하는 것이 <전주서낭>임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귀신사... 우리에게 돌과 탑은 꼭 석가탑, 정림사탑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허전한 곳이라면, 비바람이 불어도 그대로 남으리라 생각하는 곳이라면 우리들은 작은 탑을 쌓는다... 아주 아주 작은 탑들을...>
<어딘지 기억이...ㅉㅉ 자세히보면 돌무지 속에도 작은 돌탑들이 있다... 우리는 어렸을 적 돌이보이면 찼고, 청소년이 되면 돌을 던졌고, 20대를 넘어가면 돌로 탑을 쌓는다... 누가 시켜서 그럴까?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하는 걸까? 남이 쌓아놓은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그렇게 나의 꿈하나를 더해가며 작게라도 돌을 쌓는다... 유럽인들은 동전을 던지지?^^>
<춘천 청평사... 돌을 쌓는 방법도 가지가지...>
<강화 전등사... 돌을 쌓는 곳도 가지가지... 우리들의 문화DNA는 그렇게 유전되고 그렇게 전승된 게 아닐까?>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조선전기와 후기를 나눈다면, 그 당시 민초들의 꿈을 함축한 유물은 두가지다.
고인돌에서 시작한 문화적 습성이 미륵신앙, 풍수지리, 유교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조선전기에는 보관을 벗어버리고, 거북형상이나 입석모양의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의 민불이 유행하고,
조선후기에는 서낭당에 세워진 다양한 형태의 장승이 아닐까 싶다.(1700년대라는 정확한 기록이 있다)
<용인 민속촌... 목장승들...>
<벽송사 목장승... 우리나라 목장승을 대표하는 장승중 하나다...>
입석모양의 민불은 초기 미륵불에서 후기에 할아버지 상원당장군, 할머니 하원주장군으로 불리게 되고,
돌로 만든 장승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보관을 벗어버린 민불은 안성 아양동에서 시작, 화순 벽나리까지
돌로 만든 장승은 충청남도에서 전라남북도와 제주도 즉, 고대의 백제지역에만 집중 분포한다는 점이다.
<안양의 할머니불... 여전히 예쁘지? ㅎㅎ 옆에 서 계신 할아버지가 더 작고 오동통하시다...ㅋㅋ>
<화순 벽나리 민불... 비석처럼, 장승처럼 그렇게 오롯이... 대략 안양에서부터 그 아래쪽으로만 이런 유형의 민불들이 유행했다...>
전국적으로, 마을마다 곳곳마다 장승을 만들었던 문화를 가졌으면서 왜 이지역만 돌로 만들었을까?
사실 이런 호기심이 있어 전라북도와 백제와 연관성을 추적했고,
고인돌 문화에서부터 시작된 돌을 상징하고 표현하는 문화를 억지로(?) 끌여들였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가면 경상도와 강원도에는 나무장승을 세운 흔적과 기록도 드물다.
또한 이 지역은 1773년 세워진 창녕 관룡사 돌장승과 1906년에 만들어진 통영 문화동이 유일하다.
<창녕 관룡사 들어가는 길의 돌장승...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쌍으로 서 계시는... 이 장승 밑에도 작은 돌탑들이 쌓여있다...^^>
<상주 남장사 올라가는 길의 장승... 기록에는 없지만, 이곳에도 한기의 돌장승이 있다...>
지금 서울 인사동에 세워진 할아버지 할머니 돌장승의 원본은 전남 나주 불회사 돌장승이다.
그리고 돌장승의 꽃으로 꼽히는 것들이 남원 실상사에 남은 대장군을 위시한 3기의 장승이다.
하나 더 견강부회의 억지를 첨언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돌로 이루어진 절집은 마이산 탑사다.
<마이산 탑사 전경... 아마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돌과 돌탑이 서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ㅎㅎ 이런 유형의 돌탑이 최근에는 용인의 와우정사와 상주 남장사에도 오밀조밀하게 조성되고 있다...>
나무로 만든 장승까지 포함하여
불교적 형상이든, 전형적인 민중의 자화상이든, 수려하고 상징적인 모습이든,
우리나라의 장승을 대표하는 유물들이 이 지역에 분포하고,
그것을 돌로 만든 것도 이 지역이 유일하다.
<인사동의 돌장승...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모르겠다...^^ 나주 불회사 장승을 모본으로 만든... 그만큼 유명하다는 이야기겠지...>
정말로 면면히, 은근과 끈기로 이 지역 사람들은 <돌로 만든 문화>를 지켜왔고 적응해왔다.
그것이 원형을 향한 회귀의 본능이든, 잃어버린 꿈을 향한 지난한 몸부림이든
그들에게 각인된 지역의 문화와 정서는 수천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왔고, 나는 그것을 묵도하고 있다.
왕권과 분리되고, 호족에서 벗어나고, 귀족들을 피하고, 양반들과 괴리된 이들은
무속의 이름으로, 불교의 장식으로, 풍수비보의 형식으로, 그리고 기복의 염원으로 돌을 다듬었다.
<남원 실상사 옹호금사축귀대장군...>
<남원 실상사 대장군...>
<남원 실상사 상원주장군... 본디 한기가 더 있었는데 지금은 3기만 남았다고... 아무튼 우리나라 석장승을 대표하는 분들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세운 돌에 중국의 주나라(유교의 꿈)와 당나라(중화의 꿈)를 새겼다는 것이고,
적벽대전의 영웅 제갈공명과 주유를 받들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나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할아버지 할머니로 부르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부르는 게 낫지,
왜 하필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에 중국의 옷을 입히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됐냐는 것이다.
<서천리 진서대장군... 이 얼굴도 이미 올렸었지?>
<북천리 동방축귀대장군... 물론 다른 자료를 다 올릴 수 없지만, 아무튼 많다...^^>
아쉽지만 어떡하겠는가!
그게 그 시대의 흐름이고, 정신이며, 민초들의 삶과 언어로 표현된 조선사회의 꿈이었는데...
더 이상 조선의 불교는 부처가 되기 위한 수양과 해탈, 자비와 평등의 교화사상이 아니었다.
이제 철저히 <현세구복적인 염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산신각도 만들고 칠성각을 받아들인다.
석가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이 아니라 관음보살과 약사여래만 만든다.
그나마 민초들이 공유할 꿈이라면 마을어귀에 서 있는 작고 소박한 입석을 <미륵>이라 부르는 것뿐.
<부여박물관... 못생기고 멀뚱 멀뚱 바라볼때 웃음이 나오는 불상은 미륵불이라 부르면 된다...ㅋㅋ 이름을 모를 때도...^^>
그러면 그렇게 돌을 좋아하고, 돌로 뭘 만들기를 좋아했던 한반도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었지?
전국의 화강석과 돌이 다 없어지지도 않았을텐데 그 많던 돌들은 어디에 썼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전부 다 무덤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 남은 돌들은 지방관료들의 선정비로 만들어져 고을의 어귀를 장식하게 된다.
<공주 산성 올라가는 길... 지방마다 이렇게 선정을 베푼 사람들을 꼬박 꼬박 기억하며 비석을 세웠다? 열녀비, 효자비까지...>
석등은 무덤의 장명등으로 바뀌고, 입석과 불상은 무덤 주위의 문인 무인 호석으로 바뀌었다.
솟대가 변형된 당간지주는 무덤의 경계를 표식 하는 망주석으로 바뀌고,
마을을 위해 장승을 만들던 습성은 자신의 조상을 위해 작은 돌맹이를 쪼아 만든 동자석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선종의 뿌리는 남아있어 고승을 기리는 부도는 석종형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조성된다.
<세중박물관... 하루방 뒤편의 망주석들... 이 박물관에는 다듬이돌만 만개가 넘는다고 기억하는데... 아무튼 돌이 엄청 많다...^^>
<여주 영릉... 내가 무덤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사진이 별로 없다...ㅉㅉ 장명등, 망주석, 문인/무인석, 그리고 석물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주거가 아닌 상징적 건축이 무덤이라는 말은 이미 앞서 한바있다.
이제 가장 원시적 건축인 무덤에 고려와 조선을 관통했던 풍수지리와 유교의 계통사상이 더해져
만들어낸 것이 조선의 돌문화이고, 그 돌문화로 장식된 것들이 음택인 무덤을 장엄하는 것이었다.
<용인 호암미술관과 세중 박물관에 각양각형의 동자석이 모여있다... 조선시대 민초들은 만들 것은 이것밖에 없었을 것 같다...>
<해남 대흥사 동자석... 무엇을 생각하며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제 조선의 문화는 살아있는 인간을 위한 <주거건축>과 이들을 지배하기 위한 <궁궐과 성곽>
그리고 이들에게 정신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기 위한 <사원건축>으로 철저히 현세화 된다.
그나마 유학자들이 자연을 벗삼고 노닐던 <정자와 원림>이 있지만 문화적 상징은 사라진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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