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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

전북답사 7> 9. 전북지역 돌문화를 마무리하면서...090321

 



1. 전라북도 - 돌을 다듬고, 돌로 만들어진 문화

2. 청동기 시대 - 전북지역의 고인돌 / 고인돌이라는 거석문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3. 백제시대 - 전북지역의 탑 / 돌로 만든 최초의 국가적 사회적 상징물

4. 신라시대 - 전북지역의 석등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 완성된 지역

5. 고려시대 - 후백제 지역과 보관 입불상 / 고려시대의 불상들은 왜 그렇게 무섭게 보일까?

6. 신라말, 고려시대에 대한 몇가지 첨언

   6-1) 백제의 DNA - 중국 동해연안의 신라방에는 어떤 역사적 토양이 있었을까?

   6-2) 장보고와 선종 -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태동을 만든 장본인

   6-3) 고려의 불교문화 - 인쇄술, 도자기, 고려불화 보다 탑이 더 좋은 이유...

7. 조선시대 - 전북지역의 석장승 / 돌로 만든 민초들의 꿈

8. 조선후기 - 전북지역의 민간신앙 / 보국안민, 구제창생, 후천개벽을 위한 몸부림

9. 마무리 하면서...

 

<지리산의 봄... 어느 봄처럼 화사한 노란색과 우아한 우유빛, 설레이는 분홍빛도 없는 차분한 봄이다... 말 그대로 하늘색 하늘과, 우리가 파랗다고 말하는 색감의 먼 산, 그리고 초록의 나무들과 집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그리고 돌이 있다... 결국 무엇을 보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9. 마무리 하면서...


돌을 벗어나, 하나의 공간(지역)에 시간(공간)과 사상의 옷을 입힌 인간상을 그려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들의 문화DNA를 찾는 건 어불성설...

그러나 내가 답사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 건 인간과 사람, 그리고 나를 알기 위해서지

세상과 동떨어진 가치와 탐미를 숭배하기 때문은 아니다.

 

<지리산의 계단식 논... 왼쪽 아래쪽 한 사람이 서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보면 저 계단식으로 쌓아놓은 돌들이 얼마나 큰지 추측할 수 있겠지... 내려오는 길이든, 올라가는 길이든, 아니면 돌아서서 자신의 논을 바라보는 눈길이든, 그런 돌들이 하나 하나씩 쌓여 그들의 터전이 만들졌고, 작은 돌들이 얹혀져서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

 


그간 보지 못하고 찾지 못했던 몇 기의 탑(귀신사, 은선리, 천곡사지)을 보면서 전북지역을 생각했다.

물론 충분히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정서들이 많겠지만 어지간히 채웠다고 생각하며 욕심을 냈고...

사실, 탑을 찾는 건 그 지역을 구경하는 것이며, 그 공간의 바람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역사도 찾아보고, 사람들의 삶도 재구성해보고, 그리고 자연과 친해지면서 심미안도 길러보고...^^

 

<은선리 삼층탑의 이층 몸체... 저 열리지 않는 문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을까?  묘하게 생긴 이 탑을 보면서 전라북도에 대해 한번은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날 바람이 너무 많았는지, 글이 너무 길어졌다... 꺼내 볼수는 없지만, 그렇게 구겨 넣기로 했다...ㅎㅎ>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막막했지? 후후

상황도 어려워지고, 제반의 조건들이 답답했지만, 이미 마음먹은 걸 짊어지고 있으려니 그게 더 무거웠다.

하루걸러 한번씩 이어지는 출장에 해이한 마음 때문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회사일도 지지부진 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닥을 잡지 못한 이 지역에 대한 생각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주면 끝내리라 생각했던 이 지역에 대한 메모가 3주일은 된듯 싶다.

물론, 충분하다거나 매끄럽다거나 들어낼 만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최소 큰 틀과 다음을 위한 문제제기에는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갑오농민운동, 동학과 민간신앙을 생각하면서 도대체 진도가 나가질 못했다.

 

<민속박물관... 장승과 솟대와 돌무더기와 나처럼 사진기를 든 외국인... 아마도 전국의 이름값하는 장승들을 모아 놓았을 것이고, 여기저기 나뒹구는 돌멩이들과 돌무더기 탑은 나름의 재현일지 모른다... 큐레이터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네 민속은 이렇게 재현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불교와 유교의 흐름을 건너뛸 수도 없고, 역사와 정치적 격변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적 순서로 메모할 수밖에 없었고, 가급적 곁가지를 치지 않은 다양한 관계를 설정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갑오농민운동은 충분하지 못했고, 민간신앙의 발원지란 개연성은 확실하지 못하다.

우연들의 조합이 역사의 필연이 될지, 필연적 법칙 속에 역사의 우연이 빛을 발하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깊게 바라볼 일관성은 갖춰보자는 의도 때문에 중언부언이 됐다.


그래도, 서학의 전파와 천주교의 영향에 대해 ;

마테오리치의 예수회가 유교의례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취하다가, 1742년 교황령으로 금지되면서

양반계급/계층이 천주교에서 이탈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조선왕조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거나,

서양철학이 존재론이라면 동양철학은 관계론이고,

(서양의 주체가 개인을 완성하기 위한 자기증식/과시가 강조된다면,

동양의 주체는 사회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축소/겸양이 강조된다)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역사부도에서... 한눈에 정리되지?^^ 서쪽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학과 천주교가 우리네 사상과 사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많이 궁금했다... 과연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1920년대 일본을 통해 들어온 헤겔이나 하이데거, 1920년대 후반 마르크스 사상이 들어오기 100여년전의 서학과 천주교는 당대의 지식이라 불리는 모든 유학자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이미 선교 100여년이 된 1860년대, 동학이나 민간신앙에는 충분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 이 시점에서 글 올리는 게 늦어지고, 마무리도 늦어졌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천주교가 전파되어 지역적 근거를 확실히 마련한 서울, 태안반도, 전주일대는 백제의 주요 근거지이기도 하다... 한성에서 공주로, 다시 부여로, 익산으로 내려온 백제의 정치중심 이동과 천주교의 주요 포교지역은 일치한다... 재밌지 않나? ㅎㅎ>

 

 


서양적 사고가 미래지향적 목적론이라면 동양적 사고는 과거복귀를 위해 경험을 중시한 현실적응론이고,
(서양은 이루기 위해 살아남아야 하고, 동양은 지키기 위해 죽어야 하는 아이러니도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분석으로 새로운 법칙을 만드는 서양과 고사성어부터 찾는 동양은 그렇게 다르다)

서양의 가치가 종교적 선이라면 동양의 가치는 인문적 선이다.

서양의 문명이 이원론이라면 동양의 문명은 일원론을 기본 골격으로 한다는 식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정말 끝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리고 역사와 철학, 혹은 사상에 대한 용어가 표준화 되지 못한채 중구난방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내가 참고하는 텍스트 선택 방식을 철학으로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우리나라 철학은 제도권과 재야 양쪽의 입장을 살펴보고,

중국이나 일본인 등 외국사람들이 바라본 우리나라 철학을 같이 봐야한다는 게 내 방법이다.

그게 조금 더 객관적이고 균형감이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모두 다 그렇다는 아니지만,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는 그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이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 편하다... 산에서 맞는 바람이 상큼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무리하면서 몇가지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생각보다 길어진 글...

게다가 전북지역의 돌문화에 접근하면서 나는 나의 관점과 사고체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예상하시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직접 표현한 것은 처음이 아닐지...

아무튼 내 사유방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유적과 유물, 역사에 접근하는 관점은 충분히 노출했고,

이제 길고 무거운(?) 이 글의 요약이 필요할 것 같다...^^

 

<로마 진실의 입? ^^ 저 입이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맨홀 뚜껑이다... 쉽게 말하면 하수도 뚜껑이라는 말...ㅋㅋ 지난번에는 녹색옷 입은 아가씨 사진을 올렸으니, 오늘은 빨간색(?)으로 바꿔봤다...ㅎㅎ 요즘은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못 던지지? 아무튼 영화를 통해 상품이 되든,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든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행위는 전통이 되고, 설화를 낳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전설이 된다...^^ 이제 짧게 전북지역의 돌문화에 대해 정리해 본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 가면 동전을 던진다. 자신의 소원을 빌며 포세이돈을 향해 동전을 던진다.

중국의 황산에 가면 열쇠를 채워놓는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영원함을 기원하며 열쇠를 채운다.

일본의 신사에 가면 종이를 묶어놓는다. 자신의 소원을 적어 신의 감응과 기억을 축원한다.

햇살이는 여느 돌무지를 바라보면 돌탑을 쌓는다. 흐트러진 돌을 모아 자신의 소원도 함께 쌓는다.

어느 시점,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가는 다양하지만, 그것이 지속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탑을 좋아하는 나는, 한지역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돌을 매개로 시작했고, 전북지역을 택했다.

 

<상해 졸정원의 괴석... 돌을 아끼고 탐하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전통은 아니다... 그들도 조금 허전한 곳이나 빛이 들지 않는 곳에는 돌을 놓아 장식했고, 우리네 경복궁이나 궁궐에도 이런 괴석장식은 똑 같이 남아있다... 그들에게는 도교의 영향이 컸을까? 아무튼 서로 다른 민족이 세운 명나라나 청나라나 이런 전통은 지속된다...> 

 

<아오모리 공항의 괴석... 물론 이 사진보다 은각사의 모래정원이 더 어울릴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도 돌을 아끼고 탐하는 것은 똑 같다... 모르겠다, 일본인들은 이 돌 하나 하나에도 신성이 있고, 귀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할지... 중국이나 일본이나 이처럼 돌로 공간을 채우고 정신을 자극했던 것은 사실이고, 지금까지 이어지지만, 분명한 것은 돌을 다듬어 탑을 쌓고, 석등을 만들고, 당간지주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ㅎㅎㅎ> 

 

<부모님 댁의 수석... 해안가에 반짝이는 돌이 이쁘면 햇살이는 들고 온다... 하도 돌멩이를 차고 다녀 어렸을 적 신발도 자주 닳아지고 발가락도 깨지고... 던지고, 쌓고... 그리고 돌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탐석도 다니시고, 수석으로 장식도 하시고, 묵석에는 콜드크림도 발라주신다...^^ 그렇게 출발은 돌이었다...^^> 

 


고인돌문화로 시작한 이 지역은, 백제시대 해양문명에 기반한 농업과 상업문물의 집산지가 되었고,

신라말 장보고 영향으로 선종이 뿌리를 내리고, 고려시대 미륵의 고향이 된 전라북도 지역은,

다시 조선후기에 천주교가 가장 왕성하게 정착했고, 그 말기에는 민간신앙이 득세하는 지역이 되었다.

해양문명이 조창과 수취의 방편으로 전락하면서 농업문화로 고착된 전북지역은 그렇게 고립되었지만,

미륵불이든 천주든, 혹은 후천개벽이든 난세와 혼란기에는 세상의 흐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익산 왕궁리탑... 모악산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유물이 아닐지...>

 


때로는 고인돌을 만들고, 중국과 일본을 잇는 주요한 해상통로로서 국가교류의 제사흔적을 남기고,

때로는 돌탑을 쌓고, 석등을 만들고, 미륵불을 새기고, 돌장승을 만들면서 오랜 세월을 이어왔다.

때로는 농민으로, 때로는 군인으로, 때로는 반역도로, 때로는 신앙인으로 자신들의 삶을 채워왔다.

안으로 침잠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선진문물에 적극적이고 외부로 진취적일때 그들은 아름다웠다.

이 세가지, 그 지역에 머물던 사람들을 바라보고 유적들을 통해 느끼는 그들의 향기다.

 

<화엄사 석등... 그들이 만든 가장 찬란했던 문화유산이 아닐지... 지금 저 할머니는???> 




한 2주일...

바쁘다는 핑계로 어디도 가지 않고, 보고 싶은 분들께도 가까이 가질 못했다.

내가 뭘 하려면 <마음을 조립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 때문이다.

내일부터 이틀간 입주자 사전점검이 끝나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카메라라도 들고 봄을 찾아봐야겠다.

미뤄놓은 게 너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봄이다... 여의도에서 상춘한게 벌써 2년이 지났나 보다... 사진을 꺼내보면 시간은 늘 정지되어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문화는 <위로>가 아니라 <영혼의 안정>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자연도 문화도 관계도 위로는 아닌 것 같다.

나의 영혼이 안정된다는 것...

자연도 문화도 예술도 관계도 사유도 나의 영혼을 안정시키는 것을, 나는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여전히 자극인 것 같고...^^


지금 이 순간,

편하다...^^*

 

 

 

* 사족> 

한동안 몸은 일에 메이고, 생각은 엉뚱한데 있다보니 소홀했던 게 많은 듯 싶다...ㅉㅉ

어제 똘똘이와 통화하는데, 아빠라 안 부르고, 아저씨 바꿔 달란다.

음~~~

아무래도 빨리 털어낸다고 헛생각만 하다보니,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을 것 같다.

편하다고 말한 순간... 불편함이 시작되는 순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