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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

담양에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때?^^...110212

 

 

 

 

명절때만 되면 담양엘 간다.

조부모님 산소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한적하고 느긋한 들판을 지나 멀리 추월산이 바라보이는 묘지에 갔다가,

늘 돌아오는 길이면 담양 읍내리 오층탑을 보려고 노력한다.

먼 길, 텅 빈 가슴에 뭐라도 채웠으면 하는 생각이 이끄는 조급한 산책이 되었다.

 

 

이번엔 면앙정 - 송강정을 지나 가끔 머무는 명옥헌을 들렀다가,

식영정 - 환벽당 - 취가정 - 소쇄원 - 독수정(조금 더가면 풍암정도 있다)으로 이어지는

담양의 정자와 원림 들을 보고 싶은 맘 적지 않았지만 시간도 맘의 여유도 넉넉지 않다.

가사문학과 조선시대 지식인이었던 선비들의 체취를 탐하며 무등산을 노래하기에

아직 맘은 혼란스럽고, 몸은 무겁고, 똘똘이 햇살이는 자유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담양 묘지에서 보이는 추월산...>

 

 

 

 

짧은 짬으로 바라보는 담양 읍내리 오층탑...

홀쭉하고 늘씬해진 볼륨에도 멀리서 바라보는 날렵함은 정림사 오층탑의 미감을 떠올리게 만들고

가까이서 몇 컷 남기려는 욕심에 낮아진 석양의 따스한 빛이 감싼 탑의 다감함을 느껴본다.

볕이 참 좋다.

근데~ 어어~~ 삼단의 층급받침 가운데가 곡선이었네???

 

 

<담양 읍내리 오층탑... 매층 지붕돌(옥개석)을 받치고 있는 삼단 층급받침, 가운데를 보면 유려하고 풍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선명히 보인다... 알면서도 놓치게 되고, 보았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묘한 장치... 만약 위아래 층급받침과 같은 두께, 같은 넓이로 층급받침을 직선으로 만들었다면, 이 탑의 전체적인 느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석양빛이 좋아서인지 유독 선명하게 그 곡선이 눈에 들어왔다...> 

 

 

 

 

90년대말, 2000년대 초반까지 아파트 건축에서 쓰였던 천장과 벽체 상부의 재료마감인 몰딩처럼

굵은 곡선이 오층탑, 담양 읍내리 오층탑 층급받침에 살아있다니...^^

부드럽다... 온화하고... 그럴 수 없이 풍만하고 평화롭다.

단순한 부재들의 결구인데도 무미건조하지 않고, 두툼한 부재들임에도 둔탁하지 않은 느낌은

이 풍만하고 부드러운 곡선들이 보완했기 때문일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이걸 못 봤지??

 

<안동 옥동 삼층석탑... 날렵한 상승감과 적절한 조화로 충분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멋진 삼층탑임이 분명한 자태를 갖추고 있다... 처음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날 다시 찾았을 때, 기단부 면석이 지붕돌처럼 만들어졌음을 보았다... 왜 처음에는 강하게 인지하지 못했을까? 나는 사물을 보면서 내가 알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보았다! 그것이 더 중요했는지도 모르고...>

<만약 옥동탑의 하부 기단이 일반 삼층탑처럼 넓게 만들어졌다면, 이 탑의 미감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삼층탑에서는 유일한 모습이 아닐까?>

<정혜사 십삼층 석탑... 안동 옥동탑은 정혜사탑을 차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기단부는 건축이 되고, 탑신(탑의 몸돌)은 공예적 장식에 불과했을지도...>

<정혜사 십삼층 석탑(↑) 기단부 판석에는 기와지붕의 내림마루 - 우동이 정확히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담양 읍내리 오층탑(↓) 탑신의 지붕돌에는 정혜사탑과 똑같은 내림마루가 선명히 모각(?)되어 있고...>

 

 

 

 

 

답사여행이랍시고 숱하게 바라보았던 탑들과 유적지가 있고,

이곳 담양 오층탑은 그 존재를 느낀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다른 탑에 비해 자주 많이 보았다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왜 모르고 있었을까?

돌아와 열심히 사진들을 찾아본다.

2007년에도 층급받침의 곡선을 찍었었고, 그 이후 사진을 봐도 분명 곡선은 살아 있었다.

이미 보았는데,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느끼지 못했을까?

 

 

자주 본다는 것이 모든 것을, 또는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자주 본다는 것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함을 강요하거나,

충분히 모르는 것에 대한 변명을 구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감추고 싶어 가린 것이 아님에도 보지 못했다면 관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보았음에도 알지 못하고, 설혹 알았다 하더라도 느끼지 못했다면 내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고달사 귀부와 이수... 박력과 웅혼한 기상을 갖춘 귀부와 이수의 대표작이다... 그 힘찬 기상은 어디에서 출발할까? 귀부가 가지고 있는 생동감과 굳건한 의지는, 저 강직한 좌우 앞발 발톱에서도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

<땅을 박힌, 아니 땅을 힘차게 짓누르며 막 일어설 것만 같은 꿈틀거리는 생동감과 당당한 의지는 그 발톱에도 살아있다...>

 

<고달사 전원감대사부도탑 부분... 고달사 부도탑의 묵직한 지붕돌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은 이렇게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의 복련이다... 너무 부드럽지 않은가? ^^>

 

 

 

 

 

 

잠깐, 2007년에 썼던 담양 읍내리 오층탑에 대한 감상을 찾아볼까?

 

작지 않아서 안심이 되고

밉지 않아서 다행이 되고

가늘지 않아서 불안하지 않고

제멋대로가 아니어서 볼품이 있다...고 말하면서,

 

 

<담양 읍내리 오층탑...>

 

 

부족하지 않지만 넘치지도 못하고

덩그러니 시공간을 점유하지만 영향력이 크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나름의 기품도 갖추고 있고

잡스러움과 고고함을 조금씩 떼어다가 (만든,)

어설픈 중간으로 취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지만, 넘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었지.

 

 

 

 

 

 

그러나 ;

우아함을 말하자니 풍만함이 부족하고

듬직함을 꺼내자니 날렵함이 앞장서고

고고함을 거론하기에는 수수한 맛이 편안하고

일견 자연스러우면서도 나름의 치장을 갖추었고

간결함과 단순함을 내세우기에는 세련된 변화가 적지 않지만,

 

 

준수한 청년처럼,

멋들어진 경쾌함과

세련된 자태를 갖춘 멋지고 즐거운 미감이었다고 말했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나의 느낌에 모든 시선과 관심은 모아질 수밖에 없었겠지... 층급받침의 곡선을 보았다고 나의 감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관찰로 인한 새로운 변화가 주는 즐거움은 대상과 나를 조금 더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 첫 느낌에 묶여 더 이상 나의 시선과 관점에 변화를 두지 않았던 듯 싶다.

주변 자연풍광과 어우러진, 역사와 사상/예술의 흐름에서, 석공의 깊은 성취를 읽고 싶어했던

그런 속에서 나는 담양 오층탑을 보았고, 또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겠지.

보았던 것이 틀리다거나, 지금 새로운 면을 보니 다르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부의 작은 부분 부분들이 모여야만 만들어지는 전체의 미감에서

부차적일지 모르지만, 세심한 관찰과 존재하는 그것(!)들의 충분한 의미를 해석해내지 못했다는 거다.

 

 

이번, 2011년 1월에 벌어진 현장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모든 건 다 준비되었고, 나는 다 알고 있으며, 내 계산대로만 움직여진다면 문제가 없을거라는 자만,

또 오만이 만든 부차적이고, 세부적이고, 부분적인 것들의 허실과 붕괴의 여파를 감지하지 못한 무능력.

현실에 굴복한 타협, 포용과 이해를 왜곡한 절충, 믿음과 책임을 확대해석한 회피와 방기,

이 모든 것들이 누적되고 습관화되면서 나타나는 부패와 단절과 동맥경화의 결말은 엄중한 것이었다.

 

 

<봉정사 극락전... 처음 이 건축을 보았을 때 나는 맛배지붕과 처마의 곡선에 필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에 썼던 답사기에서는, 이 건물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 말고 국보로서 무슨 미감을 가지고 있는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부족한 지식과 묘한 느낌에 6,70년대 유행했던 진한 아이보리 색감이 주는 온화함만 평했었지...>

<봉정사 극락전 측면... 이 건축물의 정면과 측면을 함께 상상할 수 있을까? 사실 극락전은 창고 건물에 불과하다... 해인사 장경각처럼 판전을 보관하는 그런 창고... 그래서 정면이 여느 대웅전이나 극락전처럼 문으로 개방된 것이 아니라, 바람만 통할 수 있는 창문 간살만 보이는 것이고... 실제 이 건물의 아름다움은 측면에 있지 않을까? 몇차례 볼수록 이렇게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을 가진 건축물은 수덕사 대웅전과 맞먹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세번째 가운데 기둥의 민흘림... 최상단을 저렇게 극적으로 마무리한 목공의 눈썰미는 가히 일품이 아닐지...>

<봉정사 고금당과 삼층석탑... 극락전을 사진찍으면서 이 삼층탑에 대해서도 꽤나 궁시렁거렸던 기억이 있다... 작고 초라하고, 정면 각도도 맞지 않아 거추장 스럽기만 하다고...^^ 그러나 대웅전에서 극락전으로 넘어가는 동선에서 바라본다면, 이렇게 시선을 돌려 고금당을 정면으로 응시하면, 이 삼층석탑은 적절한 크기와 규모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견강부회, 짜 맞추기식 해석이 될지 모르지만, 때로는 동선에 맞춰 시선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후후~~~ 또 무거워졌다.

이미 보았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 이미 보았지만 존재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거...

그런 것들에 대한 나의 관점과 자세와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실,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더 좋아야 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호불호/긍부정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과 관심이란 척도가 만든 깊이의 문제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역으로 생각하면, 몰랐기에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효율적이지 못하거나 깊이가 없다는 말이 된다.

아는 만큼 봐야한다는 구속과 강박과 목표지상주의가 만든 그림자를 위로하는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미리 알아야 하고, 알았으니 봐야하고, 봤으니 느껴야 하고...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아는 것과 보는 것도 <때가 있다>는 생각이 더 커진다.

 

 

<안동 이천동 석불... 제비원으로 기억하는 석불... 나는 지금까지 바쁘다는 핑게로 석불 위쪽의 작은 삼층석탑을 무시해왔다... 미감도 의미도 보잘 것 없다며 말이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석불을 잊어버리고 삼층석탑만 바라본다면, 그 남루한 행색과 초라한 모습도 이렇게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굵고 무질서하게 불쑥 불쑥 솟아오른 암반위에, 나서지 않고 주변과 어울리면서 조용히 공존하는 모습은 또다른 삶의 의미를 느끼게 만든다...>

<없으면 자연일뿐이지만, 있어서 사람이 만든 공간임을 가르키는 이정표 같은 기호... 그게 이 석탑의 존재의미가 아닐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정보를 취득하고 기회를 통해 습득하기위해 부단히 투자하고 인내하지만,

그것이 취향에 따른 관심과 설레이는 애정, 그리고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위한 성실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아는 만큼 볼 수 없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없으며, 함께한 만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무처럼 반복되는 고행도 필요하고, 호기심을 꺼뜨리지 않는 열정도 필요하며,

충분히 교감하기 위한 열림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도 중요한 것 같다.

 

 

넉넉해서 여유가 생기는지, 여유가 평화를 만드는 것인지는 몰라도

몰랐다는 것과 보지 못했음에 조급해 하는 마음은 알아야 함과 봐야함만을 강요하게 된다.

조급함에는 여유가 없고, 여유가 없으면 평화가 없고, 평화가 없으면 총족됨이 있을 수 없으니,

비우고 채움에 대한 욕심만 남고, 물욕은 마음을, 명예욕은 몸을 축내게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조급한 시선이 전체를 향했든 부분에 꽂혔든,

나는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다 보았고 말했고, 많이 보았다고 생각하면서 다 안다고 단정 지었다.

때를 알지 못하고, 여유를 갖지 못하고, 평화를 향유하지 못하면서...

 

 

<봉정사 대웅전... 얼마전 고려말 조선초기에 건축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대웅전이다... 그래서 다시 보고 싶었고...^^ 오래되었다는 것, 초기형태를 간직하고 있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변화하려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변화될 다른 건축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

<위(↑) 대웅전의 첨자, 소로, 살미, 운공 등으로 구성된 공포와 아래(↓) 통도사 대광명전의 공포구조는 이렇게 차이가 난다... 봉정사 대웅전 공포구조가 워낙 특이하기도 하지만, 최소 300여년이 흐른 다음, 지금 우리들이 바라보는 대부분 기와건축의 구조는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구조도 시간을 필요로하고, 우리들이 그것을 느끼는데에도 때라는 게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

<통도사 대광명전의 공포구조... 둥그렇게 말린 운공과 달리 여기에서는 봉황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무량사 극락전 공포구조... 많이 장식적이고 화려하게 구성되었지만 오히려 이 모습이 우리들이 아는 표준일지도...>

 

 

 

 

 

 

보고 싶은 것들이 적지 않지만, 정작 봐야할 기회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유한한 삶의 한계.

몇 번을 보았는가가 아니라 오랫동안 기억할 만큼 후회없이 나누었는가가 중요할 것 같다.

알았다고 구속되지 않고, 보았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할 많은 이유와 경험을 되새겨 본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나의 감상을 두텁게 만들 수도 있고, 편견의 속박을 깨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보는 것은 선후와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와 다양성, 그리고 연속성의 문제다.

그래야 더 넓은 안목을 위한 단초가 되고, 열정을 위한 자극이 되고, 자유로운 시선의 자양분이 된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나서, 두 손을 쫙 펴고 죽어간다.

흔히 공(空)으로 태어나 만(滿)으로 죽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채움이 완성이 아니고, 비움이 시작이 아니라면, 또한 그 반대도 현실이라면,

시작과 끝, 채움과 비움은 매 순간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안다는 것, 보았다는 것만으로 채움과 비움의 무한한 미학의 세계를

유한한 경험과 설익은 판단으로 규정해서도 안된다.

 

 

 

<금산사 금강문 금강역사상... 두손을 꽉 쥐고 펴고를 생각하는데 문득 이 곳이 생각났다...>

<일본 나라 동대사 남대문의 금강역사... 금산사 금강문 금강역사와 동대사 금강역사는 조성된 시기가 최소 500년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비교해보면 손의 모습과 전체적인 모습은 흡사하다... 손을 펴고 가르키고, 무기를 든 손의 위치만 다르지 허리를 비튼 각도까지 비슷하다^^...> 

 

 

 

 

 

 

 

 

때가 사람을 만드는지, 사람이 시기를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매 순간 다가오는 여유와 충만과 그래서 얻어지는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보는 것과 아는 것, 부분과 전체, 고착된 첫 느낌과 새롭게 변화하는 시선들,

그리고 시작되는 것과 완성되는 것,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유한한 경험과 무한한 해석...

늘 공존하면서도 분리되어 있고, 또 그래서 하나씩 깊어지고 넓어지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들...

 

 

몸으로 느끼는 감탄과 마음에 일렁이는 울림은 시간으로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향기일지 모르겠다.

담양 오층탑의 부드럽고 풍만한 곡선을 보면서, 보았지만 나중에 느껴진 것들을 모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천동 석불 뒤의 순박한 삼층탑, 고달사 귀부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도탑의 유려한 곡선,

봉정사 극락전의 작은 부재에서 느끼는 세련미와 대웅전의 몽땅한 실미, 그리고 옥동탑의 기단판석...

한번 한번의 누적되는 경험과 기회에서 찾아지는 새로움이 또 다른 평화와 여유를 선사한다.

 

 

<담양 관방제림... 가끔은 걸어야 한다... 빛도 느끼고, 바람도 맞고,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담양 오층탑, 층급받침의 곡선을 보면서 즐거운, 설레이는 반성을 하고 있다.

밑바닥까지 깨어진 그릇은 임시방편으로 붙일 게 아니라 아예 버리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더 넉넉하고 깊고, 그리고 단단하게 만들려면 말이다... 새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