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일주일이 지났군.
당신의 장례식으로 한나라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게.
이쯤해서 나도 당신에 대한 조의를 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듯 싶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의 전화를 받았지.
당신과 술을 한잔 했다는 사람,
함께 어깨동무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는 사람,
그리고 영원히 당신을 지지하고 추모하겠다는 후배까지...
물론 나와 당신이 일면식도 없는데다,
실제로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많지 않은 일부의 사람들뿐이었으니
결코 내가 당신을 잘 안다거나,
당신을 평가할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게나.
게다가 후보 시절부터 당신을 지켜본 5년 내내 당신을 비판했던 나로서는
정치적 경향이 비슷하다는 외에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였으니 조심스러운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야.
더구나 당신이 근무하던 파란지붕에 들어가 무슨 정책 운운하며 머리를 맞댄 선배와 말다툼도 했지만,
이제와서 시비와 공과를 저울로 달아보려는 게 아니라, 뭔가 한마디는 해야할 것 같아 펜을 들었어.
당신에게 뭐라 해주고 싶은 던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수선한 마음 좀 정리해보려고...
참, 나이도 어린 내가 전직 대통령 출신인 당신에게 반말 하는 건 이해해주게.
당신과 나는 20년 가까운 나이 차이가 있어.
그래도 당신은 영원히 63세에서 성장이 멈추었지만,
나는 앞으로도 얼마의 나이를 더 먹어야 성장이 멈출지 알지 못하니
당신이 조금 손해라고 생각하더라도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말게나.
모르겠네.
나도 그 나이를 넘길지 그에도 못 미칠지는 아무도 모를테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당신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릴만큼 나는 모질지 못하니
아무래도 내가 당신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클 것 같으니까,
너무 고깝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지금처럼 넉넉하게 웃어주게나.
2.
아직까지도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이 많다네.
한쪽에서는 철저히 무장해제 된채 백주대낮(? 새벽이지)에 피살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한편에서는 할만큼 해먹었으니 인과응보 아니겠냐고
겉으로 웃지는 못하지만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일부에서는 이유야 어찌됐든 끝까지 볼짱 다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몰아붙인 놈들이 나쁘다고 말하고,
일부에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분명한 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당신의 선택이었다는 점이야.
사실 천주교의 종교관이나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윤리관에 입각해
자살을 죄악으로 생각하며 선택자체의 공과에 조심스러워 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신의 말대로 자살도 선택이었고, 그것이 삶과 자연의 일부라는 당신의 표현처럼
어쩌면 죽음의 방식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시시비비를 걸 이유는 없을거라 생각되는군.
생각해보면 이런 방식도 참 당신다운 선택이었어.
기껏 사람들과 회의해서 중지를 모아놓으면 하루밤 자고나서 확 바꿔버리는 그 고집스러움에,
돈키호테도 아니라면서 타협과 후퇴보다 정면돌파에 몸을 앞세우는 낙천적인 낭만성,
그리고 실패마저도 고지점령을 위한 수단으로 끌어들이는 승부사다운 기질처럼,
역시 타고난 근성은 버리지 못했는지, 당신은 참 바보스러운 선택을 했지.
그래, 그렇게 선택하고 나니 속이 후련한가?
그렇게 저질러 놓고 떠나니 기분이 아직도 좋은가?
그렇게 확 죽어버리고 나니까 원하는 것은 다 얻었는가?
이제는 정말로 아무 걱정없이 두다리 뻗고 웃을만큼 맘이 편하던가?
내 생각에 당신은, 당신의 자존심은 지켰을지언정 당신이 원하던 가치는 이루지 못한 거 같아.
어쩌면 당신과 당신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한번쯤 이뤄보고자 했던 일들은 더 멀어진 기분이야.
지역 정서는 요상한 이념의 탈을 쓰고 아예 틈을 찾을 수 없을만큼 고착되어 버린 거 같고,
소위 계급과 계층이란 과학적인지 이론적인지 모를 개념들은 더더욱 격차가 심해진 거 같고,
이제는 종교에 문화와 교육까지도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으니 말일세.
당신의 선택이 무엇을 노렸던 간에 우리들이 영위해야할 삶은 평화와 자유와 평등이 아닌가?
그런데 이제는 서로를 용서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어져 버렸고,
실상 어떤 타협을 찾더라도 아무도 만족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나.
정말로 당신이 바보스럽다는 것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분열의 씨앗에 분노의 기름을 끼얹었으니
이제와서 누굴 탓하고 누굴 위로해야할지 정말 막막한 상황이 아닌가 싶어.
죄인을 영웅시한다고 가뜩이나 못마땅해 하는 쪽에서는 언제든 반격의 빌미를 만들려 애쓰고 있고,
죄인일 수도 있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단 방법찾기에 골머리 썩고,
그렇잖아도 어수선한 판국에 희망의 불씨에 찬물이 끼얹어진게 아닌가 전전긍긍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누가 어떤 명분을 내세워, 어떤 형태로 지금의 갈등을 봉합할지 참 안타깝다는 생각만 든다네.
내가 여전히 당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라네.
3.
죽은 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쫓아냈다는 삼국지의 일화가 있지.
이제 우리에게는 또 한번 죽음사람이 산사람의 발목을 잡는 형국에 처하게 된듯 싶네.
한번은 박정희란 이름으로, 또 한번은 노무현이란 이름으로...
정말 극단의 자석처럼 영원히 일체될 수없는 자양분으로 두 사람의 이름은 기억될 거 같아 답답해.
한사람은 경제라는 이름으로, 또 한사람은 민주라는 이름으로 세불양립의 구도를 만든 거 같아서.
사실 이 문제는 건들어야할 내용이 너무 광대하지?
경제와 민주정치라는 이름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치에서부터
흔한 말로 진보와 보수에 이르는 스펙트럼까지 넘나들어야 하니 애초 시작과 끝을 감당하기 어렵지.
분명한 건 이 땅의 진보라는 사람들이 박정희의 공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이 땅의 보수라는 사람들은 당신의 공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융합은 어려워질 거 같아.
공과 과, 어느쪽에 무게를 두느냐, 시와 비를 갈라 무엇을 위한 무기로 포장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진짜 불행은 선택의 결과를 우리는 공유한 바도 없었지만, 반성과 평가도 제각각이라는 점이야.
그러다보니 어줍잖게 경제를 강조하면 보수가 되고, 친자본 탈규제에, 친미가 되어야 하고,
반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횡행하게 되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요상한 자본론을 우리는 썼어.
게다가 진보와 민주라는 진영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괴이한 형태를 가지게 됐고.
이제는 당신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야만 하고,
경제라는 슬로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야하고, 친미반북의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야만 해.
사실 우리는 보수와 진보, 혹은 민주와 자유의 실체가 분명하지가 않잖아?
이번 현충일때 이명박대통령의 추모사를 읽어봐도 우리들의 국가영웅은 대부분 반북에 치우쳐있지,
결코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인류보편적 가치나 문화의 성숙, 역사의 존중을 위한 추모가 아니었지.
즉 정권과 정부와 국가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선열만이 순국의 지위에서 추모 받는 실정이지.
한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양 극단의 힘보다 그 권세가 충돌하는 중간지대가 넓어야 한다는 게 내생각이야.
시사토론을 진행하던 앵커의 말처럼 회색주의자가 많아야 비판과 재구축이 쉽다는 생각 때문이야.
게다가 역사의 중흥기를 돌이켜보면 극단주의자들이 설친 이후에 일정기간의 태평성대가 이루어지지.
그것은 극단의 힘이 충돌할 수 있는 영역과 룰이 서로에게 존중되고,
그를 심판할 충분한 여유와 균형과 견제가 정립된 사회 시스템이 살아 있기 때문일 거야.
그런데 지금은 중간에 존재해야할 여지가 너무 좁혀졌거나 없어져버린 느낌이야.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됐어.
당신은 강한 이름으로 상당 기간 존재할지 몰라도, 우리는 그에 버금가는 강압이 사라질때까지
당신이 정립하지 않은, 혹은 정립할 수 없던 어떤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
아직 박정희의 이름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에게 당신의 굴레를 너무 강하게 각인시켜 버린 점 -
내가 당신의 선택을 바보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두 번째 이유가 그것이야.
4.
당신의 이름과 존재는 이미 어느 누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가치가 돼버린 거 같아.
물론 이것은 좋다 싫다의 의미로 해독할 것도 아니고,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나는 당신을 진보, 혹은 민주나 자유진영의 지도자나 이론가로 보질 않았어.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지금은 좋던 싫던 무시할 수 없는 그림자로 당신의 존재감과 영역을 만들어 버렸지.
이래저래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150여년의 세계사를 돌아다보면 확실한 이름들이 있지.
천재적인 이론가 마르크스, 탁월한 정치가 레닌, 그리고 군사와 조직의 달인 마오쩌둥...
그런데 이의 반대진영이라 할 자본주의 진영에는 그만한 이름을 가진 이론가, 정치가, 전술가가 없어.
물론 내 정치적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밑천이 금방 드러난 이유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쪽(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은 조직을 지향했지만 사람의 이름만 남았고,
또 한쪽(자본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은 인간을 지향했지만 시스템만 남았다는 결론을 내렸지.
우습지?
정작 시스템과 체계를 원했던 쪽은 대표적인 인물, 즉 이름을 인류역사에 남겼는데,
거대한 흐름으로 지구를 일통한거나 다름없는 자본주의에는 그만한 이론가 등이 눈에 띄지 않으니.
이것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나, 이론의 체계와 과학적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자본주의는 그만큼 허실도 많고 경제적 본능에 입각 한만큼
끊임없는 개선과 재구축으로 자신의 시스템을 질긴 생명력으로 복원하고 있다는 반증일거야.
자다가 왠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사실 당신은 이론가도 아니고, 조직의 달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탁월한 전략적 정치가도 아니야.
그런데 당신은 한쪽을 대변하는 지도적 위치에 봉안되었고, 한동안 힘들게 수성해야할 입장이 되었지.
문제는 당신이 말하려는 <사람사는 세상>이 시스템과 체계가 되지 못하고
반성과 평가의 진중한 시간보다는 그냥 인간 노무현이란 이름으로만 남을게 우려돼서 그래.
물론 이것은 당신만의 책임이 아닌,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지성사의 흐름에서도 우려되는 점이야.
16세기쯤 세상이 요동을 칠 때, 지구의 양극단에서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
소위 유럽에서는 종교적 윤리에 지친 인간에서 과학이란 물리를 모든 지식의 우위에 두었지만,
한,중,일 동양삼국에서는 종교적 윤리를 유가 성리학이란 철학적 윤리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했어.
그 차이가 20세기 들어와 근대와 봉건, 서양적 과학과 동양적 심성이란 차이로 귀결 되었지.
사실 윤리와 물리는 경제와 정치만큼 민감하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영역이지만,
우리의 지성사는 그만큼 확고한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체 양자의 일통성을 갖지 못한 상황이야.
이번에 드러난 당신의 선택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성적 윤리와 합리적 물리에서 자유롭지 못해.
정책이 평가받지 못한체 개인의 성향과 방식이 평가의 우선순위로 놓여있고,
당신의 선택을 강요했거나 자초한 일에 대해서도 행정, 사법, 입법의 변화가 없어.
즉 당신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평가와 판단과 비판이
대통령중심제나 이념대립의 공과, 지역감정, 계층갈등 등에 대한 대안마련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지.
어쩌면 이번 일은 그런 모든 문제를 끄집어내어 최소한 정치영역에서의 반성과 개선으로 나타나야해.
5년단임 대통령중심제나 검,경찰,국정원,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정치적 중립, 국회와 대통령의 위상 등
우리가 말하고 싶고, 당신이 그렇게 조정하고 싶었던 권위주위 타파에 대한 대안 마련은 없어.
아직도 우리는 개인의 윤리적 선택과 국가운영의 합리적 시스템에 대한 절충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지.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이름으로 축소되고 당신이 지키고자 하는 청렴결백의 자존심으로 한정되지 않고,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사회와 국가의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하는데 그런 조짐이 없잖아.
내가 굳이 윤리와 물리란 지성사를 꺼내가며 이름과 시스템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유야.
게다가 여전히 당신은 혼자만의 선택으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준비해야할 어떤 여유도 안 줬어.
최소 그런 신분과 존재감을 가진 지도자가 되려면 조직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선택이 모두에게 어떻게 결실로 귀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했어.
그것을 준비하지 못한 잘못, 먼저 저질러 놓고 모두가 책임지게 하는 잘못,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잘못을 내가 당신이 바보스럽다고 말하려는 세 번째 이유야.
5.
당신에 대한 추모열기는 정말 뜨거웠어.
당신이 기거하던 봉하마을에만 백만, 그리고 전국각지의 영결식장에 500만에 가까운 인파들...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도, 당신이 추락하기를 염원했던 사람도, 정치에 무관심했던 나같은 사람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추모열기가 대한민국을 휩쓸었지.
사실 북한에서 핵실험만 안 했어도 모두가 두려워할만한 분란과 격변이 일어났을지도 몰라.
모두가 당신의 선택보다 더 경악하고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었지.
몰상식하고 편협한 권력에 대한 항거로 바라보는 이도 있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원통함의 반영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고,
역사의 현장에 서서 자신을 반추해보고 싶었던 교육적 차원도 없지 않았을 거고,
그리고 현실의 답답함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의 행위로 무거운 기다림을 감내한 이들도 있었을거야.
한마디 더한다면 당신이 저지른 죄보다 더 추악하고 비겁한 권력을 용서하기 싫은 사람도 있었겠지.
이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시점인 거 같아.
당신에 대한 추모열기를 현실의 힘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골머리를 싸고 있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들은 머리를 쥐어짜내며 고통스러워하겠지.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지금, 이순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당신도 몰랐으니, 나도 모른다는 말이 맞겠지...
왜 그럴까...
한참 생각해봤더니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나더군.
당신이 바보스러웠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당신은 대통령이란 권위만 가졌지 늘 혼자였고, 너무나 부족했고, 너무 바보스러웠지.
엄밀히 말해서 당신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주고 지켜줬던 힘은 바로 국민들에게 있었지.
당신의 스타일은 일관성이 있었지.
당신은 늘 혼자서 선택했고, 그 나머지의 영역을 채워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었지.
대통령 후보가 되던 시절, 탄핵을 받아 고심하던 시절, 그리고 이제 죽을 때까지 당신은 혼자였지.
결국 우리나라 국민들은 처음으로 한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야 했고, 지켜줘야만 했어.
그런 면에서 보면 당신은 이론으로 사람을 조직한 게 아니라 늘 그랬듯 바람으로 버텨온 사람이지.
사실 당신이 해왔던 일, 하고 싶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깨닫고 느낀 게 많아.
뿌리깊은 관료사회의 복지부동, 이유를 알 수 없는 보수의 질긴 뿌리, 그리고 진보세력의 내용 부재...
게다가 우리는 5년제 대통령에게 너무나 많은 걸 바랬고, 역으로 이를 다스릴 연륜과 경륜은 짧았지.
물론 깨달은 건 당신과 당신의 지지자들이었지만, 이것을 현실의 정치적 힘으로 만든 건 보수진영이지.
그들은 최소 집권 2년이 지나기 전에 욕을 먹더라도 정치적 코드가 다르면 가차없이 숙청을 단행하고,
못 먹어도 자신의 지지자들만 끝가지 챙긴다면 정치적 실패는 없다는 사실은 간파한 거야.
물론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당신의 스타일은 항상 양날의 칼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야.
하나는 모두가 주인이 되자는 슬로건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허한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거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 선택은 모두를 주인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지.
어쩌면 이것은 인간을 조직하고자 했던 모든 운동이 한번쯤 실현시키고 싶었던 위대한 힘일거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참여하고,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역사와 시대에 당당히 선다는 거...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지도자의 상은 바뀌어야 될지도 모르지.
완벽하고, 절제되며, 근엄하면서, 우아한 카리스마를 갖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
부족하고, 바보스럽고, 때로는 경박하게, 때로는 스타기질도 보이는 가벼운 진정성이 당신이었지.
그래서 국민들은 호들갑스럽게 당신을 지키고 응원하고 또 다른 미래의 희망을 찾고자 했는지도 몰라.
이렇다면 나는 당신의 바보스러운 행각을 처음으로 칭찬하는 꼴이 되는군.
물론 당신을 칭찬한다지만 여전히 나는 안타까운 심정을 부인할 수 없지.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을 지켰는지 모르지만, 당신을 지켰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야.
당신의 힘과 권위는 사실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지고 영위되고 있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비겁한 권위와 무자비한 권력에 의지한 어설픈 지도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고 나눌 수 있었던 지도자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국민들이 미안한 게 아니라, 당신이 그들에게 빚을 진 거야.
당신은 그런 국민들에게 빚을 졌어.
당신을 지켜주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통해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던 사람들에게,
당신을 통해 새롭게 만들고 이루고자 했던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빚을 졌지, 아주 커다랗게...
그게 당신을 바보라고 이야기 하는 마지막 이유야.
6.
음~~~
말은 많이 했는데, 역시 엉킨 게 많네?
사실 더 많은 말을 해봐야 듣는 당신이나, 말하는 나나 만족할 게 없겠지.
애초에 이런 말 자체가 서로를 채우기 위함은 아니었잖아?
나도 당신도 비우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일이니 즐거운 맘은 아니었고.
한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 깨지는 걸 두려워했고,
한 사람은 자신 이외의 또 다른 권력이 존재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번 일이 잊혀지는 걸, 또 한편에서는 기억되는 걸 두려워할 거고...
그 긴긴 거리, 그 긴긴 시간을 당신을 추모하기 위해 달려가고 그걸 바라보던 사람들 모두,
이제는 뭔가를 선택해야할 시점일 거 같아.
누구는 일상에서,
누구는 투표로,
누구는 말로, 누구는 행동으로...
나야 당신 붙잡고 푸념하는 거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는 서생이지만,
각자의 선택은 오늘부터, 혹은 몇 년후에, 또는 과거부터 맘 먹었던 것을 집행하겠지?
당신이 자신을 위해 선택했듯이, 그들도 그들 자신을 위해 선택하겠지.
그게 우리 모두에게 독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거고.
다만 한가지만은 서로 인정해야겠지.
무의미한 일로 지우지는 말자는 거.
모기에 물린 곤혹스런 한여름밤의 꿈처럼 가볍게 버리지는 말자는 거.
그게 서로간의 최대한, 혹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어.
외롭지는 않겠어.
남는 사람이 고통스럽지, 떠난 사람은 눈물을 보이지 못하잖아.
이젠 당신이 응원하라구.
당신의 가족과,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들, 당신의 선택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위해
당신이 빚진 거만큼 이제는 그들을 위해 뭔가 하기를 바래...
내가 당신 나이가 될 때쯤, 담배 하나 사들고 가 볼께.
그때도 담배가 필요하면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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