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1.
깐돌아, 지금 금융위기가 끝나는 지표는 뭐겠어?
결국은 미국의 회복과 중국의 안정 아니겠어?
우리나라 경제의 회복과 안정을 생각하면서
정작 오바마와 미국의 민주당, 그리고 원자바오와 중국 공산당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호불호와
친미와 반미, 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잣대로
정서적 공감이나 정책적 선택을 한다는 게 얼마나 영양가 없고 게으른 판단인지
중언부언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폐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70년대, 개발독재 과정에서 싹틔운 박현채류의 민족자본주의론,
80년대, 마르크스 사상 유입에 따른 세계체제론과 사회구성체 논쟁,
90년대, 구소련의 해체로 인한 사회주의사상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의 득세 등
소위 정치적 경향과 이념적 편향을 근거로 정책과 권력과 사회질서를 편협하게 해석했는지 모른다.
사회를 과학적으로 해석한 게 아니라, 이념의 틀에 사회 인식을 맞추는 우를 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념과 사상 혹은 정치적 경향이라는 것은
사실 일국적 관점 또는 선택 가능한 활동영역에서의 판단 잣대이며, 평가 기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이라는 현실>과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
그리고 <내가 만나는 이들과 우리의 후세가 머물러야 하는 미래>를 벗어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설사 힘을 갖더라도 지속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선택(옵션)사항이지
이념과 사상과 정치적 경향을 위해 사람들,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
노전대통령의 조문 과정에서 참으로 암담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시신을 북으로 보내라,
정치자금 수수를 은폐하기 위해 자살하였다,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경찰을 주둔시켰는데 아늑하게 좋았다,
봉하마을에 관람객들이 몰렸다 등등등...
노무현이라는 자연인이 선택한 건 분명 자살이며 이를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봉하마을로 몰려간 사람들을 관람객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실수라고 생각하고,
봉하마을에 논두렁에 던진 억대의 시계를 찾자는 말도 영면전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의 시신을 북으로 보내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참여정부를 구성했던 핵심인물들을 친북좌파로 규정하기 위한 이념공세임을 모르는바 아니나,
만약 조갑제나 전여옥이 죽으면 미국으로 일본으로 시신을 보낼 것인가 묻고 싶다.
서울역 광장에 모여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우리는 미국과 혈맹관계라 외쳤던 보수단체 회원들은
자신의 시신을 미국으로 보내서 안장하고 추모 받는 것이 <친미><자유민주주의>인지 묻고 싶다.
이명박, 박근혜, 이회창이 죽으면 그들의 시신은 미국에 보낼 것인가?
아마도 시신을 북으로 보내자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은 죽어서 미국에 묻히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며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땅에는 사람들이 죽어서 가야할 곳이 <북한>과 <미국>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노전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이런 유치한 언어폭력으로 점철되어야 하는지 우려스럽다.
3.
우리가 대통령이나 책임 있는 정치가, 유력 경제 인사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대표하고 우리들의 현실을 좌우하고, 미래를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그들이 감당해야 할 비난과 비판을 두려워해서 안 되고,
그들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어쩌면 우리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비례할지도 모른다.
그걸 부정한다면 그들에게 위임된 권력과 금력을 독점하려는 의도이거나
애초에 우리들의 지도자로 나설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 이외의 다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비난과 비판의 대상은 그들의 신분이 공적이고 신분과 지도자의 권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비판의 목적은 <우리가 잘 되기 위한 수단이며 방법>이라는 근본적인 전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노전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앞으로 잘해보자>가 아니라
<지금까지 너무 못했음>을 벗어나지 않고 그 이유는 그가 <친북 좌파였음>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나는 노전대통령이 당선되기 이전 후보 시절부터, 그리고 집권 5년 내내 그를 비판했던 사람이다.
또한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 그 천박함과 편협한 시각, 그리고 아마추어리즘도 비판한다.
비판하는 나의 의도와 비판당하는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분명 다르겠지만,
힘없고, 빽없고, 영향력 없는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진정성을 설파하는 노력은 내게 있으나, 취사선택의 판단은 그들의 몫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내가 친미이든 반미이든 미국경제가 잘 풀려야 한국경제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고,
우리의 외교정책이 중국을 향하든 견제하든 우리에게 중국경제는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가 돼버렸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이명박정부를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들은 성공해야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패는 개인의 오명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피폐와 질곡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4.
한나라의 국정을 운영했던 최고 책임자로서 노전대통령의 공과와 영욕은 존중되어야 한다.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을지언정 꼭 해야만 했던 일들이 일부의 불편부당함으로 부인될 이유는 없다.
또한 권력과 권위는 서로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죽은 권력이든 산 권력이든 존중받는다.
그러나 전임대통령의 권위를 자신의 이념과 정치적 경향성과 다르다는 이유로 매장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공과 사, 자연인과 정치 지도자로서 그의 삶을 구분할 필요는 있으나 시정잡배처럼 대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지했든 부인했든, 선택했든 무시했든 그는 국가와 국민을 대표했던 사람임이 분명하다.
작금에 진행되는 노전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행태는 너무 한심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권위를 좀먹는 것이고, 국가신인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현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도 자제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이념, 혹은 정치적 경향성을 강조하고 부각시키기 위해 판을 깨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한다.
이런 비난이 두려운 이유는 또다시 전체주의식 광풍이 수반될 편가르기가 고착될 것 같기 때문이다.
노전대통령이 재임시절 가장 크게 비난 받고 비판 받았던 이유는 <편가르기>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역풍, 시대를 역행하는 국방비의 증가 등보다
그의 가장 큰 실패는 지역 불균등발전 및 계층간 갈등해소, 관료사회의 권위 타파 의도와 정반대로
지역, 계층, 이념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될 단초를 적극적으로 제공해다는 점이 가장 큰 실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노전대통령의 서거로 일부에서 조장하는 편가르기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노전대통령의 실패는 친북좌파여서가 아니고, 이명박정부가 불안한 이유는 친미골통보수여서가 아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지 못한 편협한 시각,
협소한 인재풀과 관료사회를 통제하지 못한 꽉 막힌 독선,
그리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안정 모델을 만들지 못한 장기적이고 유연한 리더쉽의 부재 때문이다.
차이에 대한 배려부족과 소통의 일방적 해석, 그리고 이분법적 재단은 이미 충분히 공감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감정적이고 천박하게 친북좌파의 소영웅주의로 자살을 강조하고 있다.
5.
노전대통령의 자살은 바로 이념적 편가르기의 정점에서 벌어진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수습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려는 게 아니라 고착시키고 있다.
우리는 정책적 가치와 시스템의 운영과 합리성을 평가하고 반성하고 대안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한 개인의 성향과 판단과 의도와 진정성에 모든 평가와 판단의 기준을 맞추고 있다.
한 개인의 불행과 영욕을 이념적 가치와 정치적 성향 전체로 비약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분열과 차이가 좋고 나쁘다는 판단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느냐는 것이다.
비판과 비난이 필요하고 필요 없고가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위하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은 노전대통령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불행으로 각인될 것이고,
이명박정부의 실패는 우리 모두의 실패로 귀결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에 대한 호불호와 무관하게 우리가 지키고 존중할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평가와 현재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조장되는, 분열을 위한 비난은 거세되어야 한다.
한 자연인을 두 번 죽이지 말자는 동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미래를 함께 보기 위해서.
사상과 이념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재구축을 위해서.
개인의 신념과 사상의 정당성 보다 앞서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사회적 합의이며 수준이다.
그리고 과거의 평가와 현재의 진단은 미래의 잠재력과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공감대를 넓히고, 지향점을 맞추어나가는 수순과 일정은 희망과 행복의 필수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우려하고 지양해야 할 점은 계층간, 지역간, 이념집단간의 분열이며,
그렇게 고착된 분열과 갈등은, 우리 모두의 희망을 좀먹고 불행을 재촉할 뿐이다.
정치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도 아니고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줍잖은 이념과 경향으로 죽음을 왜곡해서도 안 되고,
반성하고 개선해야할 시스템을 바라보지 않고 한 사람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축소시키도 안 되며,
사회의 통합과 미래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분열시키고 대립을 첨예화 시키려는 의도는 막아야한다.
최소한, 통합의지와 민주적 가치, 그리고 시대를 반영했던 국민적인 선택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고 노전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그런 전제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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