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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인도영화> 조다 악바르 / 왕의여자 - 인도/인도인들...100724

 

 

 

1.  추락에는 날개도 없다...

 

 

우우~~~ 이주일여, 나는 꿀 같은 휴가가 생기는 줄 알았다.

아침엔 늦어도 되고, 인천에만 처박혀도 누가 찾지 않고, 골프도 맘대로 치고,

그리고 원주가는 길에 경상도쪽까지 휘익 다녀올 시간도 있으리라 굳게 믿고,

여유로운 시간은 두배로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나고, 바쁜 일들은 다 미뤄지리라...

주문 아닌 희망과 환상과 막연한 동경의 상상까지 정말 꿈 같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이주일이,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에도 없는 이주일이 아무 보람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화살처럼? 아니, 발사되자마자 추락했던 안타까운이 아니라 허탈했던 미사일처럼...

일은 반으로 준 것이 아니라 따따블로 많았고, 원주는 고사하고 모델한 번 못 가봤고,

골프는 딱 한번 연습장이었을뿐 모처럼 잡았던 일정들은 비로 꽝 되고...

 

 

인천 출발-신사동-논현동-다시 인천 와서 30분 단위로 4팀 미팅, 그리고 저녁약속...

어제 일정만 되새겨 봐도 내가 얼마나 투덜거리면서 돌아다녔을 건지 상상이 되시는지.

추락하는 것은 날개라도 있다지만, 나의 추락에는 고소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왜냐고? 혼자만의 상상이자, 혼자만의 계획인데다, 혼자만의 기대였기 때문이겠지...

 

꿀맛 같을거라 믿었던 휴식시간에 나는 그렇게 입안에 단내만 풀풀거리며 쏘 다녀야만했다.

 

우째 이런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여버렸을꼬??!!!

이제 오늘이 마지막 날, 이대로, 도저히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된다. 저녁약속은 잡혀있고, 도서관도 가야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다 묵살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정신없이 이주일이 지나갔는지 아쉬워라도 해야만 한다.

 

뭘 하지? 뭘 하면서 날아가 버린 이주일을 되돌리지?

 

맥아리 없이 처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이것도 간만이지?

쿡~~~이 있지??^^ 일단 영화 - 그리고 무료 영화...ㅋㅋ 뭘 볼까???

인도영화란다 - 인도?

<왕의 여자> - 여자들이나 실컷 볼까??

런닝타임이 205분이란다. 3시간이 넘네? -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

 

 

 

 

 

 

 

 

2. 신선하다 - 볼리우드 마살라 영화...

 

 

흐음~~~ 왕이라고 시작했으니 역사물일 거 같고, 타지마할 같은 궁도 나올 것이고,

인도의 자연과 사람들도 나올 것이고, 그리고 인도영화의 특색도 나올 것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나온다.

런닝타임 200분이 뻘로 3시간이겠는가.

 

 

3천3백만 신이 아니라, 3억3천만 신이 있는 만큼 인도사람들은 욕심이 많은 거 같다.

하나를 알면 열을 눈치 채야 한다는 나의 강박관념보다 그들은 정말 욕심이 많은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아니 봐야만 하는 나에게는 늘 미소가 살아있었지.

정말 좋았다. 영화가. 이 <왕의 여자>라는 인도영화가...

 

 

 

 

 

이제야 알았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Jodhaa Akbar(조다 악바르)>다.

무굴제국(1526~1857)의 토대를 닦고 영토를 확장시킨 악바르왕이 모델이다.

영화 첫 장면, 번역상의 실수인지 1511년이 1011년으로 읽혀져 혼동이 있었지만,

이슬람 왕조라는 점, 무갈이라 번역한 나라의 이름은 무굴과 같을 거라는 점 등등이

역사적 좌표를 바르게 잡아주었다(인도에 이슬람 세력이 진출한 건 13세기 이후다)

 

 

단지 영화제목이 <왕의 여자>였기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는데 상당한 공력이 소진됐지만(^^)

애초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인도영화, 인도의 자연과 역사였기에 그나마 용서는 된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왕의 남자>나 <왕의 여자>식으로 제목만 패러디한 것은,

영화를 상업적으로 가공한 수입자나 기획사, 번역가의 천박함에 기인함은 용서될 수 없다!!!)

 

 

아무튼 오늘서야 말로만 듣던 인도영화의 특색이 무엇인지 알 거 같다.

흔히 인도영화를 <볼리우드(bollywood) 마살라(인도 특유의 향신료)영화>라 하는데,

볼리우드란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뭄바이 지역의 영화를 지칭하는 말이고,

(남인도 영화를 대표하는 타밀의 콜리우드와 라호르의 롤리우드, 텔구루의 톨리우드도 있다)

마살라 영화란 스토리와 연기에 춤과 노래 등 뮤지컬 요소가 고루 배합되었다는 뜻이란다.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인도영화는 코끼리가 등장하는 <신상(1971년)>이란 마살라 영화였고,

어렸을적 곧잘 흥얼거리던 <chal chal mera shaathi>란 노래는 지금도 생생한데,

테이프로 녹음된 정성을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인도영화가 무척 인상적이셨던 거 같다.

일년에 700여편씩 만들어지고, 흥행이란 한계는 2억명(?) 정도가 관람해야 된다고 하며,

기본적인 런닝타임이 2~3시간은 기본, 그보다도 길어 점심을 먹으면서 관람한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의 지역적 특성처럼 화려한 색감에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편안한 이야기 전개는

자칫 진부하거나 식상할 정도로 뻔한(?) 결말이지만 느린 속도에도 지루하지 않고,

속도감과 긴장감에 스펙터클한 규모를 강조하는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카메라 앵글이나 화면구성이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그것마저 순박하게 느껴져 재밌단다.

그리고 팁, 애정표현이나 신체접촉에서 키스도 허용되지 않는 그들의 영화산업의 전통(?)은

여성을 존중하고 비하하지 않기 위한 배려 때문인데, 키스신으로 고소도 됐다고 한다(2007년)

 

 

 

 

 

3.  마살라는 이런 맛? - 조다 악바르/왕의 여자...

 

 

후후~~~ 역시 내 이야기는 사설이 많다. 그리고 기~~~~~일다...^^

중국의 영토가 청나라대 확장된 영역이듯이, 오늘날 인도의 영토는 무굴제국때 만들어진다.

영화는 무굴제국이 이슬람이란 한계를 넘어서면서 인도를 통합한 악바르 황제 이야기다.

펀잡지역의 무굴제국이 인더스강을 건너 델리에 자리를 잡고 다시 갠지스강을 건너면서

아마도(!) 힌두스탄 평원의 비하르, 바라나시의 라지푸트를 통합할 때 정략결혼이 추진되고,

힌두교 전통을 고수하는 조다황후와 이슬람왕국 악바르황제는 갈등속에서 영혼을 결합한다.

 

 

 

 

 

그 단순한 이야기에 이슬람 왕국의 통치형태, 힌두교의 문화적 종교적 전통이 나오고,

권력을 지향하는 형제의 대립과 정치적 종교적 이합집산, 어머니와 아들, 며느리의 대립,

게다가 코끼리와 화포가 동원된 전투와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결투 같은 일대일의 창검술,

여기에 제왕의 道(도)와, 힌두교도인의 결혼풍습, 그리고 계급구조와 갈등과 정서 등등이

인도의 자연과 타지마할 같은 인도의 궁궐건축, 의식과 음식까지 인도의 모든 게 등장한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어쩌면 3시간에 이 모든 걸 담아낸 감독과 제작진의 욕심이 경이롭게 보일 정도로...^^

 

 

살짝 주인공의 육체미를 보여줄 때는 7~80년대 이소룡 영화같은 소박하다 못해 간지럽고,

밤하늘, 악바르 황제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동방불패의 소호강호처럼 서정적이고,

수많은 부족들이 악바르 황제를 찬양할 때는 어지간한 뮤지컬의 집단군무처럼 화려하고,

조다와 악바르의 갈등과 애무는 살풀이춤보다 느긋하고, 서편제보다 더 간절하기도 하고,

종교와 권력의 시스템을 다룰 때는 지나가는 행인들 이야기처럼 단편적이고 관조적이다.

 

 

 

 

 

미국 서부영화의 권선징악은 살리되, 헐리우드 스타일의 속도감은 빼버리고,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고전물에서 음침한 배신과 음모는 빼고,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은 살리고,

인디언 영화처럼 순박하고 순수한 영혼에,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척박한 토양에 강렬한 태양,

조선왕조 여인들의 미묘한 갈등을, 중국영화의 과장된 색감을 가져와 무지개처럼 진하게 나열하고,

70년대 우리영화의 이성관과 가족애를 섞어 놓으면 <조다 악바르>란 영화가 만들어질까?

서사와 서정, 인간의 희노애락, 문화와 풍습 그리고 종교적 전통, 포용과 권위...

인도인들의 심성과 문화란 이런 것일까?

 

 

 

 

 

 

 

4. 인도/인도인 - 느림을 관통하는 단순함, 화려함을 상쇄하는 가벼움, 다양함에서 빛나는 순수함...

 

 

하하~~~ 인도란 개념에 꽉찬 마음만큼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머리도 덜 차 있고...

티무르의 후손을 자처하는 무굴제국와 힌두스탄을 지향하는 악바르 황제와 인도의 칸들...

칭기스칸의 시스템에 이슬람의 진취적인 개방성, 그리고 힌두교의 다양성과 자기완결성을

더하고 빼면 오늘날의 인도와 인도인이 그려질 수 있을까?

뜨거운 태양과 척박한 산하, 그리고 탁한 강물과 건조한 흙먼지를 통해 그들의 얼굴을 생각한다.

 

 

 

 

 

류시화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을 읽고서 인도여행을 쭈욱 뒤로 미룬 적이 있다.

물론 그것으로 인도인의 문화와 심성과 종교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울림은 있었다.

자신은 중요한 존재이지만, 현재와 현재의 처지, 그리고 지금의 시간을 용서한다는 그런...

비교와 경쟁이 아닌 통합과 차이의 인정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함과 진지한 자기성찰,

춤추는, 노래하는, 그리고 살아가는 그들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럴 수 없는 편안한 미소.

그 하나하나의 표정과 행동거지를 보면서 인도와 인도인들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본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자연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부드럽지만 열정적이고, 다양하면서도 온유한지 모른다.

비슷한 위도와 비슷한 환경의 이집트, 스페인, 태국, 라틴아메리카의 춤과 노래와 언어를 생각해보면,

뭔가 비슷한 동질감 같은 게 문득문득 떠오른다. 신 앞에서의 겸손과 완성이 없는 자기만족까지...

그들의 농업은 충분히 풍족하지 못하고, 그들의 상업은 처절히 전투적이지 않아서일까?

실패의 두려움에서 남을 탓하지 않았고, 배신의 무기력 앞에서 폭력을 강요하지 않았다.

운명의 순응과 현실만족은 그렇게 자기절제와 비폭력으로 승화됐고, <No problem>을 만들었을까?

 

 

 

 

어쩌면 그들은 완성될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과부족을 타산하고 저울질 하질 않는 듯싶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 수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잘 알고, 이미 충분히 경험한 건 아닐까?

물론 나는 인도와 인도인들을 무작정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게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이해하고자 한다.

시니컬한 조소와 쿨한 냉소, 그리고 우울한 침체가 그들에게는 없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뭔가 꾸며지지 않는 순수와 꾸밀 수 없는 순진함이 그들에게는 배어있고, 그렇게 미소짓는 듯한...

 

 

진리와 진실의 추구를 기준으로 인류의 역사를 구분하면 기원전 5~6세기는 최대의 변혁기였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철학자와 중국의 공자, 인도의 붓다와 유대교의 예언자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이 지구의 문명사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으니까.

그런데 인도인들에게는 붓다의 불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본성과 그 완성을 교육했다.

기원전 6~5세기에 태동한 자이나교와 불교는 이미 존재했던 후기 베다시대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흔히 요가에서 말하는 쾌락을 뜻하는 카마(Kama)와 부와 성공을 뜻하는 아르타(Artha)

그리고 도덕, 윤리적 법칙과 규칙을 배우는 다르마(Dharma)와 진리를 깨닫는 모크샤(Moksa)...

다르마를 미덕이라 이야기해도, 모크샤를 해탈 혹은 계몽이라 이야기해도 그 4단계 구분은 유효하다.

인간의 행복과 충만을 위한 자기정체성 확립에 현대 인도인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원시적일지 모른다.

이미 2500년 전에 완성된 그 4개의 틀에서 현대의 인도인들은 조금더 숙성되고 조금더 진지해졌을까?

그들의 춤과 노래와 의상과 음식과 사고에서 변하지 않은 틀의 순수함 혹은 옅지만 깊은 맛을 느낀다.

 

 

 

 

 

그래서 연기자들은, 미술/음악/조명/카메라/소품/각본 관계자나 감독은 그렇게 맑을 수 있을까?

노련하지 않지만 어리숙함은 전혀 없고, 세련되지 않지만 단아한 기품이 서려있고,

화려하지만 과장이 없고, 다양하지만 적당히 절제된, 척박함 속에서 풍부함까지...

발랄하고 자연스러우면서 우아한 동작 하나하나는 프로페셔널한 단련과 포장과 숨막히는 긴장보다

숙성되고 체득되고 부드럽게 제련된 아마추어의 극성을 보는 것 같아 정말 기분 좋았다.

 

 

긴장과 속도감에 찌든 할리우드 영화를 잊어버리고,

과장과 스케일에 목숨 건 중국영화도 잊어버리고,

관계와 감정에 벗어나지 않는 일본영화도 잊어버리고,

일관된 주제를 복잡하고 난해하게 포장한 유럽영화도 잊어버린다면 인도영화를 칭찬할만 하다.

 

화려하면서 밝고, 진부하지만 깊이가 있고, 단순하지만 지루하지 않는 그런 영화 한편을 보았다.

 

느림을 관통하는 단순함과, 화려함을 상쇄하는 가벼움, 다양함에서 빛나는 순수함...

인도영화를 보면서, 인도인들의 심성과 일상, 그리고 그들의 역사와 자연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아니, 그런 걸 보고 싶을 때 인도를 충족시켜주어서 이 영화가 더 오래 남는지도 모르겠다.

 

 

 

 

극적인 감동과 애절한 눈물, 통쾌한 반전에 킬링타임을 추구한다면 이 영화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공포와 연민, 비극적 교훈을 통해 마음이 정화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공식도 없다.

마살라 영화의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라는 단순한 구도에 우리는 몸과 맘을 맡기고 동화되면 된다.

 

나처럼 복잡하게 심성이 쪼그라들고 답답하리만치 피곤할 때,

3시간도 넘는 길고 긴, 그리고 가볍고 단순한 영화 한편이 정신을 느긋하게 흔들어줄지도 모르겠다.

흉내내기 힘든 묘한 발음과 너무나 느려서 웃기는 부드러운 춤, 맑은 미소가 청량제가 될 것이니...

 

그래서 추천하고 싶다.

<조다 악바르> - 왕의 여자라 제목이 붙은 인도영화다.

 

 

 

<예고편>

 

 

* 사진자료와 예고편 동영상은 네이버 블로그 <사르휘나's ALEC♡>에서 스크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