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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상보기...

시사> 자스민 혁명과 이슬람교...1104

 

* 이집트 사태를 보면서 광주가 떠 올랐는데 말이 많아졌다...

* 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 왕이나 대통령 총리 등 이슬람 집권자들은 초기에 그렇게 강경할까?

  어느 정부도 그렇겠지만, 이슬람의 통치자들의 소요진압은 생각보다 강경했다 -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 리비아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들을 통해 언론보다 훨씬 빨리 사태의 진행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부족간의 갈등과 부족장의 카리스마를 유목문화와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는 지인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슬람 문화와 연결시켜 생각해봤다 - 내가 보기에 지금의 대중적 자각과 분노는 그 문화를 뛰어넘고 있었다.

* 이슬람의 희사(자카트)와 기독교의 11조와 비슷한 봉헌이 이슬람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한계에 이르렀다.

  각국 정부의 무상보급이나 무상지급도 사회복지 체계를 갖추지 않고서는 역시 한계에 이른 듯 싶다.

  - 이런 이유들이 이번 자스민 혁명을 일회적, 일시적이 아닌 근본적 지속적 변혁으로 보는 이유들이다.

* 문제는 이후의 변화인데, 혁명사에 대한 지식을 가진 분들은 여러 흐름들에 대해 예상이 가능하겠지만

  실제 각국의 판단과 각국 대중들의 선택에는 많은 차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 이부분은 정리된 게 없다...^^

 

 

 

 

 

1. 자스민 혁명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이슬람교.

 

 

 

1>

튀니지에서 시작한 자스민 혁명의 바람이 중동 이슬람 제국을 거칠게 몰아 부치고 있다.

자스민은 이슬람 제국 혁명의 불씨를 일으킨 튀니지의 국화였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지만,

향긋한 대신 조금은 느끼하고 개운하지 않은 끝맛 때문에 좋은 꽃말에도 불구하고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 변혁의 기운이 이집트를 넘어 요르단, 예맨,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리비아에서 절정에 이렀다.

 

 

사실 나는 이슬람에 대해, 그리고 중동의 이슬람 제국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번 중동 사태에 혁명이란 개념을 인정하는 이유는, 몇몇 나라의 정치적 쿠데타를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대중적 각성과 그에 따른 총체적인 변혁 물결에 한동안 휩싸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변화는 정치제도의 측면에서의 서구적 민주주의나 기독교적 의미의 합리나 근대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입장에서의 경제적 시스템과는 또 다른 변화에 대한 실험이라 생각한다.

 

 

 

 

 

2>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걸친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

우리들은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이슬람교도만 국민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신정일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며,

(40여개국이 넘는 이슬람 국가 중 신정일치를 주장한 시아파가 집권한 곳은 이란 한나라뿐이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 알카에다도 이라크와 아프칸에 근거하지만 반미정서가 강하다고 보는 게 옳다)

 

국교가 이슬람교라고 해서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나라도 극히 드물고,

(힌두교 인도와 국경분쟁이나 유대교의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종교전쟁으로 단순화시키기엔 무리가 많다)

사회주의나 테러리즘을 이슬람과 동치시키려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훨씬 많은 나라들은 자본주의를 따르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항한 독립전쟁에서 득세한 사회주의 표방 국가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부분적이다.

사회당이 집권하고 있는 상당수 유럽제국을 사회주의국가로 단정할 수 없듯이 경제체제와 종교는 다른 문제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을 중심으로, 유목민들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와 부족연합적 성격이 강하고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여러부족 중 가장 강한 사우디 가문의 이름이 그대로 국가이름이 된 경우다)

독립과정에서 외부세력의 입김으로 전근대적이라 생각되는 왕조체제가 그대로 답습되는 나라들이 많지만,

이슬람 제국이 사막 등 척박한 환경에 위치해 있다 해서 모두가 석유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코란을 생활문화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반민주적, 혹은 전근대적 통치체제를 가지고있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단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을 성지로 받들고 있고, 그런만큼 유목민식 풍속에 기인한 코란을 절대시하며,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이슬람제국은 유목생활과 함께 비단길 등 동서양을 잇는 상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나라들이 2차대전 이후 제국주의 열강과 구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3>

단지 우리가 꼭 하나 체크할 내용이 있다면 이슬람교가 여타 종교에 비해 훨씬 생활에 밀착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똑 같은 유일신을 섬기며, 성지를 공유하고 있는 유대교나 기독교와 비교하면 그 정도가 심한데,

창세기, 구약과 신약, 코란이 구성된 역사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즉 최초의 선지자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정착했고, 애굽에서 탈출했지만 모세는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했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 3일만에 부활하지만, 입성한 즉시 배반 혹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마호메트는 메카에 입성했으나 메디나로 쫓겨나고, 다시 메카를 굴복시키고 메디나로 복귀하여 통치한다.

 

 

결국 모세의 구약(성서)은 애굽의 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성지까지 가는 계율을 중심으로 한다면,

예수의 신약(성서)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야 만다는 믿음과 그 과정에서의 간증과 절대적 믿음을 중시하고,

코란은 성지에 입성한 신도들이 지켜야할 모든 상황에 대한 자세와 그들을 이끄는 통치방법까지 포괄한다.

(이것은 출애굽과 같은 의미의 헤지라는 물론, 유일신에 대한 예배와 심판과 부활을 위한 계율을 포함한다)

게다가 창세기, 구약, 신약성서와 달리 코란은 마호메트 생존시부터 쓰여지기 시작했고,

(마호메트에게 신의 계시를 내린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바로 그 천사다)

여기에는 신의 계시, 최후의 심판과 부활뿐만 아니라 행정과 법률, 군사와 생활 모든 게 포괄되었다.

(이슬람교에서 마호메트는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 모세, 예수와 같은 선지자 혹은 예언자로 생각한다)

 

 

종교의 역사와 성서들의 내용을 이렇게 단순화 시키는 것은 복잡한 논쟁을 만들 수도 있지만, 하나 더,

마호메트의 선교는 메카라는 도시의 상업과 금융업적 타락에 대한 경고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메디나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농업문화를 기반으로 부흥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상업적 기질을 반대하고 유목문화에 기반한 유대교와 기독교리를 농업문화를 바탕으로 흡수한 게

바로 이슬람교이라는 말이 된다(성서의 예언자들은 항상 양치기였고, 나무 지팡이를 든 부족장이었다.

지금 이슬람 통치자들-왕,대통령,총리 등-은 나무 지팡이 대신 총을 들었고, 빈 권총지갑이라도 찬다.

또한 유목민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산 사람들이지 땅의 풍요-다양함,포용,평등-를 노래한 사람들이 아니다)

 

 

 

 

 

4>

아무튼 생활에 밀접하다는 말이 보다 고차원적이거나 진보적이라는 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종교는 개인의 믿음을 넘어서는 사회적 법률적 조직적 군사적 일체감과 체계를 갖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는데, 현대의 이슬람은 그들의 장점에 의해 질곡 되고 정체되었다고 생각된다.

마호메트의 마지막 유언이라는 무조건적 형제애는 체제 순응적으로, 여성의 권리신장은 과도한 보호로,

피의 복수와 이식의 폐지는 부족간 국가간 연합 또는 동맹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고,

무엇보다 상업적 이해타산 혹은 이기심과 개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억압은 그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스민 혁명을 프랑스 혁명에 비견되는 이슬람제국 전반의 궁극적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슬람교와 코란의 역사를 통해 가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타당성 있는 지적이고 정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즉 독재와 민주, 닫힌 사회주의와 열린 자본주의, 석유자본에 대한 친서방 세력의 지원, 여권신장,

장기집권과 변화의 열망, 왕권형태의 부와 권력의 세습 등은 자스민혁명에 대한 극히 일면적 지적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들은 659년 확정된 코란과 이별의 순례에서 제기된 마호메트의 마지막 유언을 재해석하는게 아닐까?

 

 

 

 

 

5>

그들이 그렇게 비판하던 남성중심적 사회, 타문화와 종교에 대한 전투적 배타성과 차별화가 그들의 모습이다.

게다가 그들은 피의 복수를 폐지하기 위해 단 한번도 이슬람의 깃발아래 통일되고 뭉친 적도 없다.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이슬람교도에게 이스라엘과 전투가 어쩌면 거의 유일한 연합동맹이었고,

또 그런 이유로 625 한국전쟁에 참여한 터키는 유일한 이슬람국가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을 형제국이라 부른다)

지역적으로 거의 무조건적인 희사와 나눔이 있지만, 복지체계는 사회적이며 국가적으로 조직되지 못했고,

그들에게 감시와 독재와 부와 권력의 세습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이를 통한 양극화는 부정할 수 없으며,

누구보다 평등과 여권신장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서구적 시각에서의 오해에서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자스민 혁명을 통해 이슬람 제국은 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변한다면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 변화의 결실은 프랑스 혁명처럼 인류의 발전에 또 다른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주체성의 회복 혹은 자각이란 측면에서보면 150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들의 장점과 전통에 기초한 주체성 회복은 무궁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집트의 변화를 보면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6> 사족 ;

다른 면에서 나는 이슬람 국가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싱가폴 포함)의 변화와 향로에 대해 관심이 많다.

 

토착민(말레이인)들과 중국계(25%), 인도계(7%), 그리고 네델란드, 포르투칼, 영국의 식민지 경험.

- 말레이시아에서 혼혈과 식민지 경험은 차별의 대상도 아니며, 수치심도 전혀 없다.

이슬람교(61%) 나라이며 타종교의 선교가 금지되어 있지만 불교(20%), 기독교(10%), 힌두교(7%).

- 어쩌면 인도보다 힌두교 전통이 잘 살아있고, 중국보다 더 중국적이며, 중세 기독교문화도 그대로다.

동남아시아 중앙에 위치하여, 동북아시아(한국/중국/일본), 인도, 중동의 문물이 집적된 교통요충지.

- 반도국가와 해양문화, 밀림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관광, 상업, 금융뿐만 아니라 제조업시설도 갖췄다.

 

어쩌면 풍요로운 자연환경에 다양한 문화가 집적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자리한 나라가 말레이시아다.

그리고 한동안 장기집권했던 마하티르 총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독자적 성향의 지도자로 가졌고.

- 사회주의 성향이지만, 시장경제와 관광, 제조업 및 교역중심의 열린 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이 나라의 미래를 통해 이슬람제국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분명 비약과 억지가 많을지 모르겠지만,

이슬람의 장점과 산업화의 결합에 독립적인 발전전략이 내게 강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