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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상보기...

일본 대지진>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자력과 방사능 공포...110403

 

 

 

 

 

1.

 

지진이 발생한 날, 11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TV를 켜놓았다.

피곤과 게으름 때문에 TV를 끄지 못했지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쓰나미의 파괴력을 눈으로 보고 싶었던 호기심이 더 컸던 거 같다.

 

처음엔 영화의 한 장면(그러나 나는 해운대나 일본 대지진 같은 영화를 보지 못했다)을

실제 상황으로 보고 싶었으나 그런 장면은 없었다.

조금 허탈하고 아쉬운 상황?

똑같은 영상의 반복이 이루어지며 일본 앵커의 멘트가 귀에 걸린다.

“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는 말...

 

눈물이 흘렀다.

TV속 참사를 보면서 눈물이 흐른 게 언제였지?

불행하게도 나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타가 붕괴될 때 경악의 소리를 질렀을 뿐,

참사를 당해야만 했던 이들과 그들의 지인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미국의 상징이 붕괴되고 있는 게 너무 극적이라는 생각밖에는...

 

남대문 화재로 지붕으로 화마로 무너져 내릴 때...

내 마음속의 무엇이 무너지는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나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문화재여서, 국보1호여서가 아니라, 역사를 지키지 못하는 우리들이 안타까워였겠지...

그리고 푸켓 쓰나미나 아이티/칠레의 지진에서는 너무나 멀게 느꼈었는데, 이번 일본 지진을 보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들리면서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질 못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2만일지 4만일지 모르겠지만)이 쓰나미에 생매장 되고,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별이 있었을 것이고,

우리들의 일상만큼 꽃다운, 덧없는, 절절한 사연들이 묻히고,

그리고 미래를 나눌 수 없는 더더욱 긴 시간의 감당하기 버거운 생이별은 정말 슬픈 일이다.

 

처음엔 쓰나미의 극적인 장면만을 찾았고,

그 다음엔 대처하지 못한 대자연의 재앙에 무기력했으며,

그리고 이제서야, 쓰나미가 휩쓸어 간 무수한 사연들을 느끼고 있다.

파괴된 일상과, 무너진 꿈,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숱한 인연들의 이별을...

 

 

 

2.

 

사람이 살아가는 주거문화는 다양하지만, 주택의 양식은 단순하다.

목재, 벽돌, 석재, 그리고 콘크리트...

여기에 철재와 유리가 얼마나 가미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초고층 콘크리트 구조물을 주택의 기본양식으로 삼는 곳은 한국과 홍콩 뿐일 것이다.

기후, 문화, 산업화 등등의 차이가 있지만 의외로 우리같은 주거양식을 갖춘 곳은 드물다.

 

쓰나미에 맥없이 휩쓸리고 지워져 가는 일본의 주택들...

지하층이 없고, 지붕은 무겁고, 벽과 기둥은 목재이기 때문이다.

지진의 휨모멘트와 횡력에 조적조나 석조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목재 구조물이고,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구조물인 법륭사 오중탑과 금당은 1,300년을 지진속에서 버텨왔다.

그러나 목재 구조물은 그 경량성 때문에 쓰나미의 위력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일본의 전통가옥은 태풍의 비바람에는 강하지만, 화재나 쓰나미 등 충격에는 가장 약한 구조인 셈이다.

 

내가 경험했던 2002년 태풍 루사의 기록적인 폭우에 수많은 가옥들이 물에 휩쓸렸지만,

소위 2층 양옥집이라는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떠내려가고 침수는 됐지만 이번 같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많았다고 쓰나미의 폐해가 적었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1분에 1m 이상씩 차오르는 상황에서 어떤 높고 두터운 방벽이 있었다고 그걸 막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인류의 삶이 평야와 해안을 버리고 산위로 위로만 오를 수는 애초에 상상하기 어렵고...

 

아무튼 이제부터 일본 대지진에 대한 복구가 시작될 것이다.

먼저 그들이 이번 참사에서 보여주었던 침착함과 근면성, 그리고 인내심은 파괴를 이겨낼만큼 강할 것이다.

또한 95년 6,400명이 매몰된 일본의 고베(오사카 동쪽)지진을 극복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세계 2~3위 경제대국으로서 가지고 있는 안정된 국가 시스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건설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일본 주거양식이 어떻게 변하는가도 궁금하지만, 내 주관심은 세가지다.

먼저 일본은 지진피해에 대해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베 여행시 현지 가이드를 통해 들은 내용이라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일본정부는 지진에 책임지지 않는다.

지진과 함께 방사능의 공포가 중첩되어 있지만, 일본총리의 피해현장 답사가 이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쓰나미 피해영역은 광범위하고,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다한 재정적자 상황에서 일본 정부의 행보가 궁금한 이유는 보상원칙과 재정지출의 규모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는 일본 대지진의 복구로 인한 국내 건설자재 및 물가의 변동이다.

공산품 및 건설자재의 대규모 수급차질을 우려하여, 국내 수요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아시안게임의 학습효과 때문이라 말하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다르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전세계의 원자재와 건설자재 수요를 촉발시켰지만, 일본의 복구양식은 분명 다를 것이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의 복구는 순차적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미리 공급차질을 예상하여 국내 건설자재와 공산품,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이웃 일본인들의 피해를 보면서 우리가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구조대 파견, 생수 공급, 성금 모금 등등 우리는 과거에 해왔던 정서적이고 물리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나 호주, 유럽 등에서는 음악회 등을 통한 문화적, 간접적 추모행사를 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 슬픔을 공유하고 추모하는 형식이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는 일본인들이 원했는지 알 수 없는 방식의 지원을 통해

그들-일본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는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나 언론은 이웃 일본의 쓰나미 피해를 통해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3.

 

이번 일본 대지진은 쓰나미라는 자연 재해와 방사능 공포라는 두가지 요소가 중첩되어 있다.

처음 자연재해가 부각되었을 때는 지구의 판구조론이나 불의 고리 등 지질학적 정보가 난무했고,

후쿠시마 원전 피폭이 발생했을 때에는 원자력과 방사선 폐해에 대해 무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이 두가지 요소를 종합하고 선별하여 가공할 정부와 언론의 대처가 너무 한심하다는 점이다.

 

언론이든 정부든, 우리 개인이든 사실을 접한 이후의 대응양식은 비슷하다.

속보형태의 정보전달과 습득이 있으면, 그 파급 영향력에 대한 전체적인 인지를 추구하게 되고,

그리고 이에 대한 단-중-장기적인 반성과 대응방향에 대한 기획과 대안을 마련하게 된다.

우리의 언론은 속보의 전달과 피해의 심각성에 몰입해, 정보의 종합과 총체적 인식에 실패했고,

우리의 정부는 자신들의 소망과 희망사항을 가지고, 정보를 재단했을 뿐 총체적 대응에 실패했다.

 

먼저 지질학적으로 보면, 지구상의 5대양 6대주는 크게는 6개, 작게는 12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태평양판, 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아메리카판, 인도오스트레일리아판, 아라비아판, 필리핀판, 남극판 등)

대평양판 가운데쯤 - 일본과 하와이와 호주의 중심지쯤에서 일어나는 대류(대륙의 이동흐름)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일본해구/마리아나해구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판에서는 일본해구를 향해 매년 10cm, 유라시아판 등등은 일본해구를 향해 매년 2cm씩...

 

 

이런 일련의 흐름속에서 푸켓 쓰나미(2004년), 중국 쓰찬성(2008년), 아이티, 칠레(2010년) 지진이 있었고,

지진으로 지구의 자전축까지 움직일 정도의 충격이 일어나고, 그것으로 <시간>의 질량까지 바뀌고,

비단 지진뿐만 아니라, 차후 응축된 힘에 의한 화산의 활성화와 취약구조를 노출시키는 역할도 한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내가 알고 있었느냐가 아니라 우리 실생활과 긴밀한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전공분야의 학자들과 정부 관련부처나 언론 담당자들의 대응속도나 방향은 또 다른 문제다.

 

아무튼 한반도의 지질구조로 보면 이런 대류현상에 의한 지진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지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가지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는 화산, 또 하나는 구조곡, 그리고 건축구조 문제다.

먼저 건축구조에서 이미 아파트나 오피스 건물 등에는 내진설계가 반영되어 있고, 지진규모 7까지 대응한다.

문제는 노후한 구조물이나 시설물들인데, 여기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도있는 대책은 정부의 계획이 필요하며,

두 번째 화산, 일본 큐슈지방과 백두산 화산활동에 대한 역시 정부와 언론의 지속적 관리와 인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상식적 인지 외에도 설득과정과 통일된 대처방안, 그리고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판구조론이나 대류의 흐름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판구조들이 접합된 곳 중 일부는 인류문명이 기원한 발생지이며(황하문명을 제외한 세 곳),

지금도 그곳은 특이한 광물자원과 풍부한 석유자원으로 인해 인류의 에너지원으로 자리한 곳들이다.

위험이 큰만큼, 그리고 이질적 요소의 복합과 다양성만큼 인류에 혜택을 많이 주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일랜드 화산폭발로 유럽지역 항공라인이 마비되듯이 오늘날에도 그 폐해는 무시할 수 없으며,

백두산 화산과 발해의 멸망에서 보듯이 화산은 하나의 문명을 잠식시킬 재앙임도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한국-북한-중국의 백두산 화산 공동대처를 향한 발걸음은 유의미하다.

그러나 지금은 화산이나 지진의 관리나, 건축구조물의 설계보다 원자력의 문제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4.

현재 우리들의 주 관심사는 지진활동과 관계된 원자력, 그리고 방사능의 문제다.

사실 일본 대지진은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의 폐해보다 이제는 방사능의 공포가 더 크게 확산되었고,

한반도에는 지질학적으로 불안정한 길명지구대(북한 청진), 추가령 구조곡, 형산강 구조곡이 존재하는데

이중 형산강 구조곡 인근에 경북-경남지방의 원자력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일본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시설에 문제점이 제기되었을 때 정부는 발전 방식의 차이를 들어

우리의 원자력은 일본의 원자력에 비해 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훨씬 안전하다고 강변해왔다.

문제는 원전 시설의 안정성이 아니라, 원전이 위치한 지반의 불안정성인데 그걸 정부는 회피하고 있다.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지금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안전성이다.

그리고 지반의 불안정 때문에 시공과정에서 위치까지 변경하였음에도 이를 은폐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이미 시설 되어 있고, 가동중인 원전을 중단하라는 말이 아니다.

전체 전력의 25%를 원전에 의존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전체 전력의 40%를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당장에 원자력 시설을 중단하라는 말은 일부 성급한 환경론자들의 철모르는 아우성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원전 사고로 인해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의 원전 안전성 문제는 훨씬 심각하며 중차대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출발해야 한다.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 대비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듣고 싶은 것이고 보고 싶은 것이지

일본과 발전 시설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나, 우리의 지진은 일본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시설 중단과 복구과정에서 발생된 계획정전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전력 예비율 18%에 달하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중단으로 실생활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피해를 보고 있다.

더군다나 도쿄 서쪽의 오사카 지방에는 전력이 남아돌지만, 그것을 후쿠시마 지방으로 송전할 수 없다.

왜 일까? 두가지 이유다. 하나는 일본전력 산업이 민영화 되어있고, 발전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력이라는 공공기업이 원자력, 수력, 화력 등을 통한 전력생산 일체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22,900V 고압전류에서 380V~220V 60Hz라는 형태로 각 공장과 가정에 송전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약 10개의 전력회사가 해당지방의 전력공급을 분담하고 있으며(우리의 도시가스처럼)

해당지역별로 50Hz와 60Hz나 나뉘어 공급받고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호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60Hz를 공급받는 지역의 전기가 아무리 남아돌아도, 50Hz를 사용하는 지역에는 송전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을 복구하거나 피해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연된 이유는

바닷물이 부족하거나 죽음을 각오한 해당분야 종사자들의 희생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열된 원자로를 당장 식힐 수 있는 전원공급이 늦었던데에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물론 쓰나미로 인한 예비 발전시설나 펌프설비의 파괴 등이 직접적인 이유임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지반의 안정성이나 쓰나미에 대한 구조겠지만,

그 이면에 전력 등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와 민간기업의 책임한계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한 지역의 파괴를 넘어, 한 국가 시스템이 붕괴하고, 전세계 인류에게 공포를 만들어낸 이번 사건에서

민간기업의 효율성이나 공공산업의 민영화가 줄지도 모를 폐해에 대해 우리는 심사숙고 해야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원자력 산업은 현 이명박 정부의 말대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아야할 대안인가?

이미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인류는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할 새로운 에너지 자원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풍력, 조력, 태양열 등 석유를 통한 화력발전을 감소시켜 이산화탄소 배출에도 대응하며,

1~200년 지나면 고갈될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지만, 원자력만큼 효율적 대안은 없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건 이후 유럽의 원자력 추가개발은 주춤해졌고 다시 원전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방사능의 공포는 그 피해를 감당해본 일본이나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더 크기 때문일 것이고,

어쩌면 일상적인 지진과 쓰나미보다, 보이지 않는 공포인 방사능에 더 민감한 게 일본인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형상 북서풍이 주류인 한반도는 안전하며,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의 문제점이 보완(?)된 안전한 한국형 원자력 수출길이 넓어졌으면 하는 희망사항과,

일본에 훨씬 가깝지만, 미국보다 안전한데도 국책사업을 물고 늘어지려는 정치적 행동에 대한 혐오 때문일 것이다.

 

그런 희망사항과 일부 철없는 좌파 환경론자들의 우려를 비난하며 우리의 안전을 떠들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구를 한바퀴 돌아온 바람에 한반도 전체는 그 양이 극히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안전지대가 아니었고,

한 지역의 방사능 피폭은 공간적,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 인류의 공포가 됐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방사능 안전을 책임질만큼 똑똑하지도 준비되어 있지도,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원자력으로 인해 누출되는 방사능 물질은 40여개가 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것을 측정할 장비가 없다.

너무나 많이 들어 익숙해진 요오드, 세슘, 제놈도 하나씩 알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이제 감 잡고 있다.

게다가 이 세가지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도 일주일에 한번씩만 가동하면서 우리는 안전하단다.

(하긴 후쿠시마 원전에 10기의 시설이 있음을 안 것도 최근의 일이지만 말이다)

안전했으면 하는 바램과 유언비어를 유포하면 국책사업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는바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당장에라도 측정장비부터 체크하고 전문가들도 영입하고, 안전 매뉴얼을 만들고 국민들을 교육하는 게 급했다.

 

또한 클린 에너지네, 장기적인 국책사업임네 하면서 국제시장에서 한국형 원자로 수출에 흥분하고 있지만,

현재 전력 생산에서 가장 낮은 비용(47원/Kwh로 태양력의 1/15)으로 큰 효율을 내는 것도 분명하지만,

(* 며칠전 신문을 기준으로 하면, Kwh당 단가는 원자력이 40, 유연탄 67, LNG 147, 벙커C유 185원씩이다)

사실 원자력을 통한 전력 생산은 향후 60년을 넘지 못한다.

즉 원자력은 석유를 대체하는 궁극적 대안이 아니라 석유사용을 연장하는 과도기 에너지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원자력을 가동시킬 우라늄이란 광물은 현재를 기준으로 60년후면 고갈될 자원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원자력 공포에서도 드러났지만, 과연 세계적으로 원자력 개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텐데

현정부의 바람대로 각국에서 원자력 발전설비에 대한 투자여력이나 여론이 호의적일지도 극히 의심스럽다.

 

 

물론 원자력 산업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성에 대해 이런 점들은 감안되어야 한다.

대대적으로 원자력을 준비하고 있는 중국에서 원전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은 우리의 서해뿐이다.

바람, 바람, 이야기했듯이 만약 중국의 원전 하나의 사고만 발생해도 우리나라는 직접 노출지역이 된다.

하물며 일본에서 발생한 방사능 물질이 지구 한바퀴를 돌아오는데 2주일도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원자력만큼은 국제공조가 절실하며, 한국-일본-중국의 원자력 개발은 공유되어야 한다.

(물론 일본의 자존심으로는 지원된 생수도 고르는데, 원자력 기술에 대한 공유를 용인할지 모르지만)

일본 이웃나라로서 어쩌면 우리들의 주권을 위해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요구해야할 일이 이게 아닐까?

 

구조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지역의 오래된 원전의 보수 재가동은 심각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노후된 설비의 재사용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발행할 폐해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건설비 2.5조원, 유지비 1.5조원, 폐쇄비 2조원... 그럼에도 경제적이라면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태양열, 풍력, 조력 등 재생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대체 에너지산업을 축소시켜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택과 몰입이라는 이유로 원자력에 집중하고, 노후 설비 재가동을 경제적이라고 선전한다.

이건 아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건 당장의 실책을 주워 담을 임기응변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다.

 

 

5.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이 일어난지 3주일이 넘었다.

무수히 많은 단상들이 스크랩되고 있지만,

경악과 두려움이 이제는 한편의 무기력에 아직 안개속인 느낌이다.

지금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집안에 있던 사람, 출근한 사람, 출장간 사람, 쇼핑간 사람, 그곳으로 여행간 사람...

그리고 나처럼 숙소에서 생활하는 사람까지...

단절, 이별, 파괴... 어쩌면 이런 고통을 다시 당할지 모르는 두려움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실감만큼 커다랗고 궁극적인 고통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영혼에 위안이 있기를...

 

 

한때 나도 북서풍의 신화(?!)를 믿었다.

한반도의 모든 바람은 겨울의 북서풍과 여름의 남서풍이 주류다.

(남동풍은 해수 기온의 변화나 태풍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구는 둥글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면 시계반대 방향으로 항상 바람은 불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또한 그래서 이것이 방사능 피폭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영원한 안전지대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이미 상당량(면적당, 인구당 최고로 많은)의 원전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그리고 동요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장비와 기술과 재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해당분야 전문가나 정부의 관료, 그리고 언론인들의 역할이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실태파악에 실패했고, 현실을 왜곡했으며, 대안도 없었으며, 장기적 대책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만 이야기했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만 말했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려고 안 했다.

그들의 수준이 바로 우리들의 수준임을 부정하지 않겠지만, 이것은 분명 그들보다 우리들의 불행이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지만, 일본으로부터의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피해를 공감한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한편으론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또 한편으론 측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성금도 모금하고, 여러 가지 물품도 지원하며, 마음속으로 추모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우리가 할 일이고, 정부나 언론이 해야할 일은 하나가 더 있어야만 한다.

그들은 우리의 안전을 감시해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하며,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부족하다.

아니 편협하다.

그리고 무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한계를 모르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언론은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정부는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주어진 정보를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것이 현재의 언론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자랑하기 바쁜 것이 현재의 정부다.

정치와 권력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용해야할 도구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권력은 한사람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라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아직은 봄안개처럼,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고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끼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