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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상보기...

서울시장선거> 결과 분석과 나의 반성...111029

 

 

 

 

 

1. 배운사람일수록, 젊은사람일수록...

 

 

어제 모처럼 서울시장 선거 득표수 계산을 해봤지?

그런데 엉망이었어.

무엇이 문제였지?

먼저는 강남3구와 용산, 양천, 강동, 영등포, 중구의 변화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지.

강남, 서초, 송파와 용산을 제외한 나머지 구에서 박원순 후보의 득표율이 더 높았다는 점이야.

 

 

어디서 차이가 났을까?

40대까지의 젊은층과 화이트칼라의 동향을 내가 읽지 못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강남3구의 투표수는 금천, 종로, 서대문, 강북, 도봉, 성동구 투표수와 비슷해.

(강남, 서초, 송파 강남3구는, 중구, 용산 등을 포함하면 서울시내 7개구 인구수와 맞먹지)

그러니까 지난번 무상급식관련 투표나, 이전 서울시장 선거 때 성향대로라면 역전이 될 수도 있었어.

그런데 서초, 송파구를 비롯해 보수성향이 강한 곳에서 나경원 후보는 충분히 득표를 못한 거야.

 

 

이유가 뭘까?

그들이 그들만의 주장을 펼치면서 외연을 확대, 부동층을 흡수하기에 걸림돌이 너무 많지 않았을까?

생각해봐. 똑같이 강남3구 등 잘산다는 지역에 산다지만, 모두가 집주인이고 대기업 종사자는 아니잖아.

어쩌면 그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최근의 전세값 폭등과 물가상승 등 경제적 압박이 가장 큰 이유였을거야.

그러니까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배운 사람들일수록, 젊은 사람들일수록 현정부에 강하게 반기를 든거지.

 

 

물론 이렇게 가장 직접적이고 몸으로 느낀 박탈감 외에도 실제 이건 아니다 싶은 일들이 많았잖아.

4대강 사업만 끝나면 우리나라에 홍수가 없어질 거라더니 엉뚱하게 강남이 침수되고 사람이 죽었지.

게다가 블랙아웃이라고 했나? 우리나라 전체가 암흑천지에 떨어질지 모를 무능력을 지켜봐야 했지.

내곡동 땅이나 1억원짜리 피부샾 회원권, 다이아 반지는 거부감의 매개였을뿐 본질이 아님을 안 거지.

여기에 안철수 신드룸은 그냥 바람이 아닌 부동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폭발력이 있었지.

그러니까 박근혜의 올인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후보는 부동층을 흡수할 수 있었지.

 

 

박근혜의 폐배는 무얼 의미할까?

박근혜 지지층은 어쩌면 전통적인 보수층이고, 박전대표의 장점은 집안단속에 강하다는 거야.

한마디로 그는 외부의 충격에 방어적으로 집토끼 단속은 잘하지만, 산토끼를 잡을 수는 없었던 거지.

그러니까 서울을 벗어난 지방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 했듯이 기존 지지층을 결속할 수 있었지만,

서울에서는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부동층들, 즉 산토끼를 잡을 수 없었어. 그의 한계고 보수의 한계지.

그 산토끼들은 보수와 진보가 아닌, 부자와 서민, 상식과 비상식 전선으로 냉정하게 이탈할 수 있었던 거지.

 

*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는, 그리 젊지도 않는 나는

전선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혼자서 낑낑거리며 득표수나 계산하고 있었지...ㅎㅎ 내가 불쌍해...ㅠㅠ 

 

 

 

 

 

2. 공정성의 기준까지 심판하는 시민들의 정의감...

 

 

이유가 뭘까?

하나는 공정사회를 주창하던 현정부... 그들의 행태는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확신이 너무 컸던 거 아닐까?

누가 살 때는 아방궁이 되고, 누가 살 때는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가 되고, 경호의 필수적 요소가 되고...

인사청문회를 하자는 건지, 서울시장을 뽑자는 건지, 자유민주를 이야기하면서 SNS는 철저히 봉쇄하고...

그건, 공정하지 않을 거 같다는 의심의 차원을 넘어선 거야.

과연 공정한 사회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 거고, 그건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가 돼버린 거지.

 

 

여기에 이번 선거의 발단인, 진보를 복지 포퓰리즘 재물로 삼으려했던 무상급식 투표... 너무 억지였지?

무리하게 청원 정족수를 맞추기 위한 기만과 관권이 깔려 있음을 짐작했던 사람들에게

투표 패배가 결정되자마자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처럼 기막히게 짜 맞춰진 교육감의 구속...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막무가내로 강요되는 절대선과 아전인수 가치는

공정성과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하게 됐고, 의심이 되고, 분노가 되고, 결국 밑바닥의 정의감을 불러냈어.

물론 그 정의감은 꼭 내곡동 땅과 SNS의 영향력, 무상급식관련 투표 때문만은 아닐 거야.

나도 문제가 많지만, 너는 더 안 된다는 네거티브에 대한 염증까지 덧대어졌으니까...

 

 

여기까지는 소위 정점에 이른 90년대 전후까지 대학교육을 받은 배운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고 봐.

이미 인텔리 계층이 폭증했고(다듬어졌던 그렇지 않든간에) 화이트칼라층은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했지.

그것이 80년 광주로부터 시작되어 87년 직선제를 만든 386, 486세대의 등장이었어.

그들의 성향이 진보든 보수든 그들은 나름의 사회참여의식이 있었고, 그 근간은 정의감이었다고 생각해.

게다가 98년 IMF와 08년 금융위기를 삶의 최전선에서 실직으로 감봉으로 감당했었던 세대들이지.

소위 경제성장의 의미와,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 두터운 층이 우리나라에는 존재하는 셈이지.

 

* 돈, 권력, 명예, 학력, 언로... 소위 보수가 말하고자하는 성공의 자격과 정의의 기준은 틀린거지?

시민들에게는 그들 몸으로 체득한 공정성의 기준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보다 근본적이며 장기적이고 모두가 함께할 수 있어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면에서 정의감이 되는걸까? 

 

 

 

 

 

3. 잘 된다는 우리에, 왜 나는 없는걸까?

 

 

비단 이것만 이었을까?

하나 더 있어. 이것이 진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소위 경제성장 -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기대감의 표출이었어.

노전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포용하지 못하는 정치와 편가르기에서 느꼈던 염증의 반감도 있었고.

근데 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4~50대들이 환상을 깨고 거부감을 느끼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이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거지.

 

 

늘어나는 청년실업과 점점 불확실해지는 미래는 40대와 50대초반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줬지.

왜냐하면 자신의 노후생활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자신의 자식들 미래는 더욱 암담하게만 느껴진 거야.

기업들은 수출이다 금융지원이다, 거기다 FTA까지 동원하여 국가적으로 지원을 해준 결과,

나라는 G20이다 뭐다 경쟁력이 높아진 거 같은데 국민들의 삶은 나아진 게 없고,

기업은 갈수록 부자가 되고 영향력은 커지는데 국민들은 점점 가난해져야 하는 현실을 체감한 거지.

결국 성장정책의 허실과 실패를 몸으로 느낀 그들이(나자신을 포함해서) 현정권에 호감을 가질 수 없었지.

 

 

지난 3년반 동안 이명박 정부는 떠들었지 ;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제일 빨리 벗어난 건 대한민국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헤매도 우리나라는 잘 되고 있다. 수출도 잘 되고 국가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만큼은 잘 된다는데, 그들은 묻기 시작한 거야. 도대체 잘 된다는 우리는 누구인가 하고 말이야.

결국 대기업 잘 되고, 수출기업 잘 되고, 금융권 잘 되고, 공무원들 잘 되고, 부자들은 더 잘 되고...

잘 되는 우리에 낄 수 없는, 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음을 그들은 느껴야만 했어.

여기에 불통은 둘째치고, 편가르기만 심해지고, 자꾸 니편이냐 내편이냐만 강요하는데 짜증까지 나고...

이건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과는 질이 다른 거지. 결집되지 않은 분노가 쌓인 거야.

 

 

경제가 잘 풀리려면 돈이 돌아야 하는데, 돈 있는 사람이 돈 쓰게 해야하니까 세금 팍팍 내려줘야 하고,

아래가 잘 되려면, 맨 윗잔이 꽉 차고 넘쳐야 아래에 있는 잔들도 찰 수 있으니 최우선 지원해 줘야하고,

보기 싫은 사람들 자를 때는 무조건 자르고 보지만, 내 식구만큼은 끝가지 챙겨서 오래 보장해주고,

하고 싶은 일은 온갖 미사여구 붙여다 저질러 놓고 보지만, 하기 싫은 일은 죽었다 깨나도 보기 싫고,

박아놓은 대못은 뽑으면 되지만, 콘크리트 쳐놓으면 영원히 깰 수 없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몰아붙여야 하고,

공약때문에 당선시켜 줬으면 반대를 위한 반대는 말라면서, 어떤 것은 구국의 결단으로 못지키겠다 말하고.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일 하기에도 짧은 시간, 없는 예산인데 애초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 신경쓸 여유도 없고,

그렇게 잘 된다, 잘 된다는데 정말 잘 되는 사람들은 더 잘되는데 내 삶은 변함이 없는데다 더 암담해지고,

문제는 자꾸 터지고 점점 어려워진다는데 이유는 외부에서 찾고, 책임지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일례로 4대강 사업만 하면 일자리가 34만개 생기고, 생산유발 효과는 40조원이나 된다는데

실제 일자리는 4천개 가량 만들었다가 지금은 없어졌고, 40조원은 언제 생겨 언제 없어진지 모르겠고,

게다가 G20회의 유치로 200조원이 넘는 생산유발 효과가 생겼다는데 그돈도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겠고...

수출호조로 사상 최대 이윤을 보고 있다는데, 젊은층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는 갈수록 극심해지고,

시중에는 돈이 없다는데 대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금고에 현금만 차곡차곡 쌓여간다 하고,

재정적자 위협이 부상하니까 부자들 기업들 세금 깎아주고 부족한 돈은 서민돈 주머니 털어야 하고,

수출 잘하라고 환율 올려주고 기업대출 해주니까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업까지 뛰어들어 털털 털어가고...

 

 

아무튼 잘 될 거라고 강압하면서 반대하는 사람은 철저히 묵사발을 냈는데, 숫자로 시작해 말로만 끝나니,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자화자찬으로 치장되는 현실.

상식을 거스리는 오만에 대한 짜증에, 공정성에 대한 의심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정의감에 분노까지...

그들은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이긴 자만이 진리요, 정의임을 몸으로 보여주려다 실패한 셈이지.

 

* 잘 되고 있다는 우리는, 내가 빠진 우리임이 분명해. 게다가 나만 빠진 게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빠진거지. 그런데도 선거 막판에 박빙 혹은 역전의 판세까지 같다면, 내가 잘 못 본거야? 그들이 정말 잘 한거야? 현재의 경제정책과 정치적 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4. 세대구분이 계층/계급 구분으로...

 

 

그런데 여기에 2~30대가 가세한 거야.

20대가 누구야?! 80년대 이후 생들이지. 지금의 40대와 50대의 자식들이기도 하고...

전세계 최고의 교육율에, 부모들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란 젊은이들이 그들이지.

학위와 외국어 능력은 부모가 따라갈 수 없을만큼 배우고, 해외물도 직간접적으로 먹을만큼 먹고,

좋은 것만 먹고, 충분히 교육받고, 귀하게 자란 그들은 잠재적 인텔리들이고 잠재적 화이트칼라층이지.

 

 

3D 업종을 교과서에서부터 배웠으니 그들에게 블루칼라에 대해서는 잠재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보고 들은 것은 많아 기대하는 삶의 수준은 부모보다 한차원 높으니 경제적 결핍을 참을 수 없고,

낭만과 정의에 물들기에 사회가 너무 견고하고 타이트해졌으니 충분히 보수화 될 수밖에 없지만,

취직해서 일을 해야만 자기실현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아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집단이기도 하지.

생각해봐. 5~70년대, 농민과 상인과 노동자들이 혼재되어 삶의 패턴이 일정치 않았던 조부모 세대와,

80~2000년대, 자영업과 상업과 직장인(즉 노동자)이 혼재되어 선택이 넓었던 부모세대와 달리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진정한 계급/계층적 구분이 생긴 때에 태어난 제3세대야.

 

 

문제는 그들이 취직을 못 한다는 점이야.

취직을 해도 만족할만한 직장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이야.

게다가 그 직장도 언제까지 갈지 너무 불안한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는 사실이야.

취업자든 실업자든 그들은 계급/계층으로서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어.

그 갈등의 시점에, 그들에게 존재하는 상식에, 인텔리로서의 정의감에 현실은 너무 가혹하기만 한 거지.

 

 

또 지금의 30대들이 누구야.

IMF 외환위기때 청천벽력 같은 감원과 감봉을 감내했던 부모들 품에 안겨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야.

이제는 취직도 하고, 창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교육도 시켜야할 나이들이지.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재테크 투자까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사회를 끌고 가는 권력을 느낀 이들이지.

금융관련 계통이나 공무원, 그리고 전통적인 사자 그룹(의사, 변호사 등)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도 많고.

그들에게 무슨 꿈이 있겠어. 교육과 집문제와 노후생활 준비가 유일한데 그게 점점 깨져가는 위기감 뿐이지.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 사상적 정당성, 국가적 정체감 이전에 자신들의 편함과 불편함만 있을지 몰라.

금융독점 자본주의 3세대에 태어나 그 속에서 성장한 이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현실적이지.

그런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자신들을 외면하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소통마저 거부한다면,

그들이 무얼 택하겠어? 불쏘시개만 있으면 언제든 폭발할 수밖에 없는 젊음이 정치적 선택으로 표출된 거지.

사회에 편입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앞으로 더 좋아질거라는 희망과 비전이 사라진 이들에게 남는 것은

사회질서에 대한 회의와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와 정치체제와 경제구조에 대한 변화의 열망 뿐이지.

 

* 관권의 개입과 지역적 배타성은 여전히 존재하는지 모르겠고, 모든 걸 이념적 정치적으로 환원시키려는 세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우리사회는 이제서야 소득수준이 잣대가 되는 자본주의적 계층과 계급이 이제야 완성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더 큰 문제는, 변화의 열망을 집권층이 거부한 게 아니라, 이미 변화했는데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정당이든, 기존 정당들은 이를 수렴할 구조와 준비가 애초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점이야.

 

 

 

 

 

 

5. 네거티브 논리를 깨뜨린 시민들의 힘...

 

 

사실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었으니 모든 문제는 잘 풀릴 수 있는가 하는 점.

민주당, 민노당 등 야권과 시민후보가 통합되었는데 실체는 있는가 하는 점.

서민 경제, 복지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서울시장 자리가 그런 걸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

시민운동, 민주화 운동한 사람들은 아예 인간취급도 안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

게다가 서울시라는 행정적 공간적 한계가 분명한데, 정치경제적 만족을 보장해 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선거는 끝났는데 풀려진 문제들은 하나도 없고, 앞으로 안아야할 숙제들만 늘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대통령이든 서울시장이든, 실제 자신이 내건 공약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7%를 넘지 못해.

국가 재정이든, 시 예산이든 일반회계가 50%고, 특별회계가 15%, 기금과 금융성 지출이 35% 가량이야.

이중에서 누가 되더라도 손 댈 수 없는 예산이 대부분이고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정부야.

(GDP 대비 재정규모가 2007년 기준 30.7%면, OECD 평균에 10% 작고, 미국에 비해서도 7%가 적어)

그러니 세입 세출에 대한 근본적 구조에 대한 고민없이 복지와 사회보장제도가 실현되기엔 한계가 있지.

 

 

또한 시민운동 출신들에게서 느끼는, 나무에 대한 진정성은 있는데 숲을 보지 못한 우를 경계해야만 해.

예전에 소위 시민운동가들과 논쟁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시장과 정치인은 민원해결사가 아니잖아?!

나무 하나, 풀뿌리 하나는 애정으로 살릴 수 있지만, 숲 전체를 관심과 행동만으론 살릴 수는 없지?

이런 문제들 말고도, 정당구조에서의 정치적 역학관계, 중앙정부와 관계된 서울시장의 한계도 많지.

게다가 야권통합 후보, 시민후보로서 정강이 없는 정책과 행정은 통일성과 지속성을 갖추기도 힘들거고.

아무튼 이런 문제들은 이 글과 또 다른 문제니 차치하고, 내 스스로 반성해야할 점에 대한 이야길 해야겠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쯤 강남에서는 그런 말이 나돌았지.

첫째, 시민운동이니 민주화 운동이니 하는 빨갱이들은 절대 안 된다.

둘째, 행정도 조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 얼마나 망가지는지 충분히 봤지 않느냐.

셋째, 이명박에게 충분히 실망했지만, 한나라당이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선거는 차선이다.

 

 

그래서 물어봤지. 박후보하고 빨갱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요? 아~거 천안함 이야기 하는 거 봐.

오세훈이는 행정경험이 풍부했나요? 판검사 오래하고 기업생활 오래한 거하고 정치경험은 같은가요?

아 그래도 노무현이 나라 망쳐놓은 거 봐. 다 그놈이 그놈이지.

이명박이 망쳐 놓은 것은요? 그래도 밖(해외)에서는 좋다잖아. 내부에서는 못해도 하나라도 잘하면 됐지.

아 그리고 선거라는 게 내가 좋다고 내 맘에 든 놈만 고를 수 있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고, 그도 아니면 차악을 택해야지?

 

 

의외로 견고했지. 야~ 한나라당 선거운동 잘 한다는 생각이 절로 났어.

딱 3줄로 박원순이 안 되어야할 가장 명쾌한 논리를 만들었으니까...

박원순쪽 선거운동은 뭐하는 거야? 바람이 바람으로 지나가버리면 그때의 패배감은 누가 책임지려고?

무상급식 투표도 다 잊혀지고, 곽노현 교육감 구속도 다 잊혀지고, 박원순이 안 되는 논리만 남았었지.

이제 생각하면 정말 내곡동 땅 문제하고, 막판 안철수씨 지원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

 

 

아무튼 내가 문제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박원순 후보와 야권 연합, 서울시장의 한계가 아니라

일부의 그런 견고한 논리를 깨뜨린 서울시민들의 힘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점이야.

그 힘들을 충분히 느끼고 감응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투표할지 말지나 고민하고 있었던 거 아니겠어?

내가 세상보기나 시사에 대해 쓰는 이유는 하나잖아. 얼마나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흐름을 읽는가?

무엇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세상돌아가는 리듬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가끔씩 이런 글을 쓰는데,

정작 투표하자는 선동은 못할 망정, 진짜 투표에 임하는 서울시민들의 마음과 본질을 읽지 못하다니...

물론 이제라도 그걸 느끼기에 이런 반성문도 쓰고 있는 거지만...

 

* 사실 복지문제는 논쟁의 완성이 아니라 출발일지도 모르겠어. 때문에 정치적 포퓰리즘이란 4대강 사업이나 기업도시, 보금자리, 디자인 서울 같은 게 포퓰리즘으로서 논쟁의 대상이고, 복지문제를 재정적자와 연결시키려는 의도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가격을 국가가 통제하려는 행위가 포퓰리즘이지 복지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포퓰리즘은 아니잖아? 문제는 선후(우선순위)와 강도와 집중의 문제지... 국민들에게 시민들에게 대중들에게 필요한 진정성은 정치인의 의도가 투명한가 또는 선의였는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 아니겠어?

 

 

 

 

 

6.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했는가?

 

 

반성할 점이 또 하나 있어.

이미 앞에서 다 이야기했지만,

먼저 세상을 가르는 잣대가 진보와 보수로 일원화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지.

어쩌면 서울시민들은 상식과 비상식의 잣대로 공정성과 정의감과 절차의 민주와 포용의 미학을 택했지.

이념이 있어 정파가 나누어진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사람이 있어 삶의 태도를 논하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면 안철수, 그 사람 참 멋쟁이야?!

시민들에게 승리와 패배가 어디 있겠냐고?

정말, 이 말을 보고는 깜짝 놀랬지.

그래~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서울시민이고,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서울시민인데...

진 사람은 나경원이고 한나라당이고 보수진영이고,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박원순이고... ...일뿐인데

투표와 선거가 살고 죽는 전쟁이 아닌, 우리는 권력자가 아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선택하는 것 뿐인데...

이겼다는 사람들이든,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든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나갈 사람을 뽑았을 뿐이데...

 

 

내가 경험한 운동은 무엇이었고, 내가 공부한 철학은 무엇이었고, 내가 다듬는 교양이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정말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던 ;

배울수록, 높을수록, 많을수록 약자편에 서야 한다는 가르침을 상식으로 풀고 있잖아.

그는 진짜 서울시민으로서, 정치적 활동을 해야만 하는 유권자로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지식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사실 선거는 유권자들에게 전쟁이 아니잖아?

인사청문회도 아니지만, 인기투표도 아니고, 옳고 그름을 심판하는 단두대도 아니고...

단지, 한 개인에 불과한 선장을, 지휘자를 잘 못 뽑았을 때 감당해야 되는 현실이 너무 엄중할 뿐이지.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잘 하기는 어렵지만, 한사람이 모두를 망쳐놓기에는 너무 충분한 권력이지.

3권 분립이든, 제4권력이라는 언론의 검증 등이 있다하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 무엇도 견제하기 힘들고.

 

 

어째든 서울시장 선거는 끝났고, 우리는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한 사람을 택했어. 그건 또 다른 현실이지.

더 나빠질 게 없다는 자괴감이든,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위기감이든 결과는 엄중하고 그건 현실이지.

한나라당은 최악의 조건에서 늘 그렇듯이 남들이 뭐라하든 자신들이 옳다는 것에 충실했고 선전했지.

민주당은 최대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창출할 능력도 동력도 잃어버렸음을 묵도해야만 했고.

분석을 어떻게 하든, 해석을 어떻게 내리든 서울시민들은 표로 말을 했고, 표로 답을 내렸어.

그리고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가 아닌, 부자와 서민, 상식과 비상식이란 또 다른 전선이 만들어졌고.

 

 

전제정치와 봉건왕조와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유들은 그들이 옳고 그름, 합리적 비합리적, 민주적 비민주적

도식 때문만은 아닐거야. 한마디로 1%와 99%의 대립을 감당할 수 없다는 엄연한 진실 때문이지.

그것이 경제적 편의든, 정치적 자유든, 행정적 정의든, 사회적 합의와 신뢰에 기초하지 않고선

결코 지지 받을 수도, 유지될 수도, 모두에게 안녕과 평화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거지.

그것은 이념과 문자화된 법률, 경제적 부의 집중과는 분명히 다른 사회적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는 거야.

거기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양심이 있어야 하고, 상식이 있어야 하고,

약자를 보호하면서 함께 공존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는 것이고...

 

 

한사람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어렵지만,

한사람이 살아온 삶이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감동시킬 수는 있는 거 같아.

이념과 정강과 조직보다 앞선, 욕망과 명예와 부보다 막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고 설득력을 가졌어.

그건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 열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중심이 되었어.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이야.

내가 진짜 반성하는 것은 그것을 의심하고, 그 힘을 알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점이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가 배우고, 느끼고, 반성해야 될 것이 그런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