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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세상보기...

시사短想段想> 20대 계층을 대표할 인재를 영입한다?... 1201

 

 

 

 

 

 

 

20대 정당대표와 20대 국회의원?

 

 

 

20대여서 20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20대를 이해하고, 20대를 대변하기 위해서, 20대 사람을 정당의 비례대표로 책정한다?

문제는 그렇게 전지전능한 20대를 찾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그들의 과거인 10대 때를 위로하고, 그들의 미래인 30대 때에 희망을 그리게 할 수 있는가다.

현재 20대인 그들이 10여년 전에 겪어야 했던 교육과 가정에 대한 시스템을 개선하고,

그들이 10년 후 꿈꾸고 계획할 수 있는 경제와 사회에 대한 비전과 정책이 필요한 게 아닐까?

 

 

 

30대도, 40대도 마찬가지다.

공감과 대변과 대표는 나이란, 수치가 같아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현재뿐만 아니라, 그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20대, 30대, 40대...

정당과 정치 구성원이 다양해지는 만큼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중층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치적 이슈와 흐름을 나이차이로 접근하다보면 사회의 연속성과 연대감은 더 깨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치란 세력간의 대립과 조화속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공존을 위한 부와 지혜는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나이를 기준으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비약은, 세대차이의 극복이 아니라 세대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게다가 우리 나이는 생각대로 T~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피터팬 중후군에 빠져 살 수도 없다.

 

 

 

20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임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다.

또한 그 가능성과 잠재력은 역사 속에서도 충분히 검증되었다.

중국역사상 3대 태평성대 중 하나인 정관의 치를 이룬 당태종도 20대에 집권했고,

동서양 교류에서 처음으로 서양의 존재를 동양에 각인시켰던 알렉산더도 20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인간이 만든 문자/언어 중 유일하게 창제시기와 원리가 밝혀진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 등극도 20대였으며,

하물며 로마의 파괴자였을지, 포퓰리즘의 대명사였을지 모를 네로가 로마를 불태운 때도 20대였고,

현대 물리학을 새로 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처음으로 발표한 때도 20대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20대란 나이가 충분한가 부족한가가 아니라 이를 체계화, 보편화시키려는 내용이 무엇인가다.

 

 

 

지역성에 매몰되었던 한국정치는 이제야 분야별 전문성과 융합되는 통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에 왔다.

복지가 최우선 아젠다가 되고,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방어하며, 안정을 위한 평화로운 주변여건의 복구요망은

한두사람의 정치적 실패와 세계적 금융위기,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 때문에 부각되는 이슈만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이를 20대의 감성과 30대의 불안, 40대의 불만과 좌절로만 이해해 세대별 대표성으로 봉합하겠다고?

SNS를 통제하면 선거에서 이기고, 라디오대담이면 국민과 소통이고, 비리폭로가 인사검증이란 말과 똑같다.

지금 20대, 30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2030 대통령 탄생을 통해 해결될 성질이 애초 아닌 것이다.

 

 

 

여든 야든, 현재 우리나라 정치판에,

나이를 불문하고 입문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가, 그들을 교육하고 밀어줄 다양한 시스템은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분야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강정책은 총체적이고 중층화 되어 있는가가 중요하다.

20대가 세력화되어 보이는 착시는 서른이 안 된 젊은 사람을 대표로 뽑아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인성교육과 붕괴된 공교육 재건에서부터 시작해, 그들의 부모인 50대인 경제적 안정을 전제로 하며,

취직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아이를 가질 30대에는 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인 실수는 개인이 책임지지만, 정치의 실패는 사회적 비용의 부담과 문제해결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정치권은 지금 20대가 분노하고 좌절하며,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이유부터 공감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