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표율 75.8%
2. 51.6% 과반수 득표율
3. 투표율 제고와 역대 선거 공식
4. 너무나 절박했던 18대 대선...
5. 민주-진보진영이 패배한 이유
6. 안철수 효과와 민주진영 후보 단일화
7. 18대 대선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위해...
8. 협동조합과 복지의 조합...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없을까?
9. 경제민주화와 독과점, 금융독점의 규제
10. 대외 여건의 변화와 한반도 역사속에서 찾아보는 리더십
11.
1. 투표율 75.8%
이정도 투표율이면 76%를 넘지 않겠어?
대통령 선거가 뭐에 그리 중요하겠느냐 싶을 정도로 내 주변에선 아무도 18대 대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보다 더 절박한 회사사정과 현장 여건 때문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빙의 승부답게 투표 전날과 선거 당일날만큼은 온갖 추측들이 내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간만에 현장 직원들과 수다를 떨면서 예상을 했지. 투표율 76%면 문재인이 이길 거 같다고...
신기하지? 통계청 사람도 아니고, 여론조사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내가, 언론에서 말하는 투표율 최고점의 마지노선인 70%를 넘어 76%까지 예상하고 있었다는 게? 아무튼 내가 들을 수 있는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77% 투표율이면 문재인이 이길 거 같고, 75%선이면 박근혜가 이길 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해서 생각한 게 76%선이면 0.5% 대략 15만표 차이로 문재인이 이기지 않을까가 나의 추측이었고, 결국 최종 마감 투표율은 75.8%... 나는 거의 확신을 했었다(물론 내기에서 져, 10만원을 잃었지만...).
개표가 시작되면서 벌어지는 표차... 늦게까지 투표했던 상황과 5시경 마감됐을 거라는 출구조사의 연관성, 서울 개표율이 낮은 시점에서 숨어 있는 표심(서울과 경기에서 5%의 득표 차이면?)이 역전이라는 기적이라도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믿으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9시가 넘자 여기저기서 박근혜 당선 유력을 발표하기 시작하고, 9시 11분께 매경속보와 아주경제에서는 KBS를 근거로 당선자 윤곽을 ‘확정적’이라고 통보하기 이른다.
3천백분의 1, 아니 5천만분의 1이 되어서라도 막고(!) 싶었던 결과는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내 생애 두 번째, 돌이켜보면 25년만의 선택이 산산이 부서지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답답하고 초조하게 만든 것일까?
2. 51.6% 과반수 득표율
오후 6시 땡소리가 나자마자 시작했던 나의 18대 대선평가는 며칠이 지난 지금,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던 시나리오 속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무기력하게 편입되어 가는 내자신이 낯설게 느껴질만큼, 충격은 희석되고, 무관심과 외면은 일상이 되어 가고, 활자들은 박제 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또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신문의 표제어들처럼 나의 진단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보수가 외연을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44%를 넘지 못할 거라는 나의 진단은 완전히 빗나가, 최초의 과반수이상 득표로 박근혜는 당선되었고, 어설프고 불안한 민주와 진보, 개혁과 자유주의 진영의 봉합은 48% 득표에서 멈춰 섰다.
지역감정이 정치성향으로 대체된 이후 지속되어 온 한반도의 동서갈등은 조금 더 공고하게 고착된 거 같고, 언제나처럼 연령효과라 이름 붙여진 50대 이상의 투표는 보수를 향했다. 노무현에 대한 동정과 복원을 민주와 진보로 등치시키려던 이들의 감성적 몸부림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론에서도 한계를 드러내면서 자가당착의 심판론에 빠져들었고, 박근혜를 떨어뜨리려던 이정희의 독설은 결국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더 불안하게 증폭시켰다. 불만을 분노로 조직하려던 민주와 진보진영은 한방의 추억에 매몰되어 네거티브의 진흙탕에 스스로 뛰어들었고, 불안을 불확실한 개혁과 준비된 수권능력으로 대체시킨 보수와 수구세력은 스스로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포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구와 보수진영에서는 중산층을 다시 살리겠다는데, 왜곡된 진보는 밑도 끝도 없이 엎어 놓고 보자고 말하고, 실패했다는 민주는 부자를 죽이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말했었지. 국회의원 정족수 줄이고, 세비 줄이고, 검찰개혁이 새정치의 전부인양 헤매고 있을 때, 안철수와의 단일화면 게임은 끝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때, 정의가 진실이 곧 정치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을 때, 민주와 진보로 포장된 뜨뜻미지근한 봉합은 불안감만 증폭 시킨체 역으로 심판받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51.6%란 우연의 득표율을 516 군사쿠테타를 정당화 시키려는 꼼수가 어처구니없는 숙명으로 포장되어도, 딴지 한번 잘못 걸었다가는 본전도 못찾을 정도의 역풍에 시달려야 할 걸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3. 투표율 제고와 역대 선거 공식
이제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나씩은 짚어 봐야할 거 같다. 먼저 투표율부터 이야기할까?
문재인과 통합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민주진영에서는 초기 투표율 확대를 위한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투표시간의 연장이고, 또 하나하는 투표연령의 확대였다. 이미 선거가 정치공학이고 표싸움인데 불리하다고 생각했던 보수진영에서 이를 찬성할리 만무하다. 그들은 이길 수 있는 선거가 중요한 거지,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확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집단이다. 또한 여기서 야기되는 반발과 유불리는 얼마든지 물타기 할 수 있는 노련한 선수들이다. 그들은 집권당이고 언론이 그들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투표율이 높아졌다고 과연 민주진영은 이길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선거가 이번 18대 대선이었다.
여동야서... 무슨 말이냐고? 경상도를 비롯한 동쪽은 여당, 전라도에 근거한 서쪽은 야당... 경상도 출신 대통령의 장기집권 여향이었겠지만 70년대부터 고착된 이런 표밭 관리에 덧붙여 예전부터 그런 공식이 유행했다.
야청여노(?^^)... 학생운동의 전통과 균열되는 전통사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지 모르지만, 70년대 전후부터 젊은층은 야권을 노년층은 여권을 찍는다는 그런... 군사독재정권의 강권통치로 제도권 밖의 재야단체가 반독재 민주화 운동세력의 상징으로 통하던 시절, 그들이 성장할 기반은 야권이었고, 그들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건 젊음의 통과의례며 청년들만의 특권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 들어서면 또 하나의 공식이 보편화된다. 야도여농...(?^^) 도시지역은 야권성향을, 농촌지역은 보수성향을 보인다는 그런 공식... 산업화와 함께 급격히 진행되는 도시화의 파열은 20%에 가까운 농어촌 인구와 맞물려 그렇게 고착된다.
90년대 넘어서면 또 하나의 공식이 나온다. 야고여저...(?^^) 고학력은 야권을 저학력은 보수성향을... 근대화 이후 급격한 교육기회 확대는 민주주의 확산과 직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2000년대 넘어서는 여기에 하나가 더 덧붙여져 소득이 안정된 층에서는 민주적인 진영을, 최상층과 하위계층은 보수적인 성향으로 갈라졌다.
물론 여기에는 IMF 외환위기와 DJ에 의한 정권교체가 큰 역할을 했고, 노무현 정권시절부터는 지역이나 지방, 나이와 세대, 학력과 소득분배에 따른 다양한 계층조합이 일어났지만 그 근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그렇게 역으로 따져보면 수입이 안정적인 중산층일수록, 많이 배운 고학력자일수록, 소통과 교류가 활발한 도시거주민일수록, 도전과 정의에 익숙한 젊은층일수록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 아이러니하지? 산업화와 근대화를 위한 성장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실이었던 계층들은 개혁과 개선을 요구하고, 그로부터 배제되거나 사회적 복지 시스템에서 멀어져 있는 대중들은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거부했다는 게...
그렇지만 그들은 늘 소수였다. 그래서 소수의 의견을 대변할 창구를 갈망했고, 이해득실을 떠난 정의감과 정보의 민주화를 통한 진실공방이 중요했으며, 역사의 정통성과 절차의 정당성에 목말라 했었다. 해방후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98년도까지, 2002년 월드컵과 SNS를 통한 촛불집회가 또 다른 문화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 욕구는 항상 투표율 제고로 직결됐고, 이번에 드디어 하락하던 투표율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보수진영에서는 절대 방어했어야 할 투표율 제고가 현실화 됐는데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은 패배했다.
4. 너무나 절박했던 18대 대선...
같이 투표장에 갔던 색시가 그런다. 이 아파트에서 몇 번의 투표를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게 처음이라고... 내가 살던 동네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투표사상 가장 추웠다는 날씨에 이렇게 긴 줄을 서며 한표 행사에 갈망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은, 10년 사이, 60% 대까지 떨어지던 투표율이 76% 가까이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단해졌거나, 무언가 절박함이 우리들을 투표장으로 내몰았다는 것이 올바른 진단일 것이다. 나같은 사람도 투표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 이유가 무엇이고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50대의 선거혁명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있다. 90%에 가까운 투표율... 내 경험으로 추측하자면, 거동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람과, 해외나 지방출장으로 투표 당일날 시간을 낼 수 없었던 사람을 빼면 100% 투표에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더우기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50대의 투표율은 전 세계적으로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한 몇몇 나라에 한정된 투표율이기도 하다.
그러면 그들이 누굴까? 70년대 대학생이었고, 80년대 넥타이 부대의 주력을 형성했던 고학력자며, 90년대 서울 수도권 등에 거주하는 중산층이 아닐까? 과거엔 권력의 반대편에서 서서 약자와 소수를 대변하거나 최소한 외면한 적이 없는 그들이 이번엔 저울추를 한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결정적 세대가 되어 가장 적극적으로 유신 군사독재자의 딸인 박근혜를 택했다.
과연 그 이유가 문재인이 집권하면 집값을 더 떨어지게 만들어 하우스푸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이번 대선 평가는 의미가 없는 거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4대강 사업의 장밋빛 미래와 747공약을 내걸며 당선된 경제 전문가 이명박정권의 실패 연속선상에서 이번 선거는 진행되었다는 점을 빼면 안 될 거 같다.
꼬여있는 교육문제와 일상이 돼버린 권력형 비리, 그리고 날로 각박해지고 위험해지는 생활치안과 원자력 등 사회적 안전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오르는 물가에, 갈수록 불안해지는 미래, 더군다나 외교와 안보는 더 엉망이고...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에, 점점 짧아지는 근무연수와 늘어나는 수명, 여기에 미비한 복지시스템으로 일자리 없는 3~40년간의 무소득 실업의 공포는 중장년층 모두를 공황상태로 내모든 거 같은데도 변화의 조짐이 하나 없는 정치판까지...
정말 이건 아니다는 소극적 불만을 넘어서 변화와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함은 대다수 유권자들의 공통분모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연장(내가 보기엔)을 택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변화가 담보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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