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11총선, 제19대 총선, 2012년 정치서막을 여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식물인간으로 전락해 100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여당과,
제1당은 물론이고 과반석까지 차지할지도 모를 거라던 야당의 한판 승부.
물론 결과는 미래를 내걸며 과반수 의석을 넘긴 박근혜의 독주와 새누리당의 압승,
그리고 MB정권 심판을 내걸며 반민주, 반보수 세력을 통합(?)한 야당의 참패였다.
이유가 무엇일까?
리더쉽의 부재, 2040 지지자들에 대한 오만, 도덕적이지 못한 진보의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와의 단절을 표방하며 외부 공천심사를 통한 넓은 스펙트럼으로
야권심판을 통해 혼란과 분열을 막자는 박근혜라는 선거여왕의 전략 때문일까?
물론 물리적으로 복구된 지역구도에서 강원과 충청에서의 민주진영 참패와
참신하지 못한 후보들과 친노위주의 공천 잡음, 그리고 막말파동에 이은 전술적 실패가 있었다지만,
이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아닌가?!
민생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고, 민주주의와 인권은 후퇴했고,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를 떨치지 못한
무능력한 정권 심판과, 바뀌어야만 살 수 있다는 변화욕구가 분출된 시점에서 치러진 국회의원선거 결과가
당이름 하나 바꿨다고 여당이 제1당이 되고, 그것도 과반수 의석까지 차지했다는 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일까?
물론 좀더 겸허하고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결과는 몇몇 악재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는,
그렇게 단 시일만에, 순간적인 감성과 한바탕 광풍에 깜빡 속아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왜냐하면 2천만명이 넘는 유권자의 선택이었으니까...
2.
현재 정치지형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짚어 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리더쉽의 부재는 단순히 리더의 부재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로 단일화된 여권과 한명숙, 문재인,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유시민, 안철수까지
도대체 누가 통합 민주세력의 대안이고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인가 불분명한 야권이
정치적 민의를 대변할 각 지역의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은
패인의 큰 이유임은 분명하다.
또한 반(反)MB가 친노가 아니고, 반(反)민주가 막말이나 이벤트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아닐뿐만 아니라
반(反)신자유주의가 반(反)FTA로 등치될 수 없고, 반(反)냉전이 해군기지 저지를 상징하는 게 아닐텐데
게다가 반(反)재벌이 친노동 복지정책이나 경제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텐데
이번 선거를 위한 야권의 통합은 유권자들에게 반대세력을 임시로 봉합한 꼼수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결국 얼마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연말 대선을 앞둔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애초부터
현정권과 현재의 정치지형, 현재의 경제구도를 반대하는 심판의 장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미 오래전부터 MB와 명백하게 선을 긋고 새로운 변신을 꾀하던 일단의 보수세력은
비대위와 외부 공천심사위를 통해 쇄신을 내걸며 환골탈퇴를 선언하고 전열을 정비해 이번 선거에 임했다.
(일사부재리의 법정신이 감성에도 통용되었을까? 한번 고해성사하고 간증한 신도에게 누가 돌을 던질까?)
또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에서 내건 복지국가는 야권의 복지정책을 단순 조합하고 수정/수렴한 결과가 아닌
2008년부터 무너진 신자유주의를 반성하면서 자본주의 4.0시대를 열기 위한 각고의 대안이었다.
때문에 정책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한 야권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기에는 조직적 한계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에 분노한 유권자가 통합만 되면 야당을 선택하리라는 것은 오만일 뿐이었고.
3.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직선제 지방자치가 우리나라에 정착한지 벌써 20년째다.
그런데 서울의 국회의원 되기는 구청장 되기보다 쉽다(? 하나의 구에서 국회의원이 두세명이니...^^)
그런데 구청장은 시장/군수와 맞먹지만, 국회의원은 대통령과 막(!)먹는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구성, 특히 지역구 선출과 비례대표의 구조적 한계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정족수는 줄여야 하고, 전문직능을 갖춘 비례대표는 국회의원의 30%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
즉 보편적이든 선택적이든 단계적이든 나라의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란 큰 틀을 선택하는 것과
후보 개개인의 능력과 경력, 도덕성 검증을 통해 지역의 대표를 뽑는 선거는 애초 카테고리가 다르다.
국회를 통해 정치지형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더라도, 지역대표를 선택하려는 유권자에게 접근하려면
전략, 전술부터 달랐어야 했는데 통합(봉합된) 야당은 그럴만큼 중층화 되고 정교한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두 번째는 아무리 전국적이며 정치적 대의와 명분을 갖추더라도 결국 정당은 공천을 통해 지역에서 한사람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개개인의 재조합을 통해 다시 정책과 정당의 정체성을 균질하게 포장하는 것이 정당의 조직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이 정치적 대의와 명분을 포괄하지 못하면 그 공천은 실패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통합된(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야권은 정책적 연대도 단일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형식에 매몰됐다.
SNS니, 청년대표니, 전략공천이니, 단일후보니... 잡음만 많고 검증되지 않은 방식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했다.
결국 정체성도 확보하지 못하고, 일관성도 표방하지 못하고, 정당의 정체성과 구심점도 마련하지 못했다.
외부에서 공천심사위원을 위촉한 것 자체가 빈약한 뿌리를 고백한 것인데 그나마 주도권도 뺏긴 상태였다.
세 번째는 그런 조직과 그런 전략전술이 대중들의 <분노>와 <과거의 심판>에 매몰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선거를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현실 정치를 심판하기 위해 대중들의 혐오와 분노에 기대는 것은 저급하다.
왜냐하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비판이 담보하고 있는 변화의 방향과 그것을 추동할 힘이 있는가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된, 봉합된, 절충된 야당이 보여준 것이라곤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비쳤다.
이런 약한 고리를 꼬집은 말이 바로 <야권 심판>이라는 말일 것이다. (세상에~ 야권도 심판 대상이었다니...)
정치혐오를 충동한 이 말 한마디는 도덕성을 갖춰야 할 진보에게, 공정성을 보여줘야 할 민주세력에게
심판과 분노의 방향과 대상을 희석화 시키기에 충분했고, 지도부는 철저히 무능력과 오만으로만 답했다.
(보수가 비난 받을 때는 한 개인으로 축소되지만, 진보와 민주가 욕먹을 때는 조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4.
이런 지역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실하게 통합된 야당은 오만한 지도력, 고갈된 전략, 전술적 무능력만 선보였다. 오히려 제1당은 막론하고 과반수를 뺏길지 모른다는 대야 견제심리에 대선을 염두에 둔 보수세력의 반격에 변변히 대항도 못해가며 실패한 MB의 추억(민간인 사찰, 권력형 비리, 복지실종 등)에만 목을 매달고 있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선거기간 동안 TV에 MB가 한번이라도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는가? 북한미사일 때 빼고는 없었다).
한마디로 정권 심판과 과거 단절에 묶인 야당을, 대권주자 만들기를 미래가치로 포장한 여당이 압도한 선거였고,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공정한 정치를 위한 대안으로 진보진영이 부상하지 못한 선거였다.
하나 더 보탠다면, 선거 결과를 보여주는 동서의 대립을 보라.
DJ정권까지 보여지던 영호남 갈등, 보수화된 강원과 충청, 그리고 진지화된 이념지도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결국 우리 정치는 선거를 통해 한발 한발 정치경제적 민주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갈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몇 번의 실패로 인해 진영론의 부상과 이념적 편가르기만 고착시키고 있다.
부실하고 정교하지 못한 정치적 전략과 전술은 선거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역사를 과거로 회귀시킨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과거를 단절하고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구호가 사회를 후퇴시키고, 자신들이 오히려 심판 당하고, 미래로부터 단절되고 있으니... 그들의 실패는 정치혐오와 무관심만 재촉하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
특히 야권(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의 득표율이 보수진영의 득표율보다 높았음에도 과반수는 물론이고,
의석수까지 역전되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선거 전략과 전술의 실패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이반된 민심에도 불구하고 야권 단일후보가 당선된 경우가 낙선된 수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야당 통합이 애초부터 선거의 근본적 지형을 주도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닐 수도 있었음을 지도부는 간과했다.
미래를 보여주는 대안, 어떤 비판과 비난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 그리고 반대세력까지 떠안을 수 있는 넓은 포용력...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과거세력에게 분풀이를 하고, 대중들은 선거를 통해 이념적인 편가르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갈 미래의 청사진을 보고 싶었는데 야권은 그걸 보여주지 못했다.
5.
그렇게 떠들던 정책선거를, 네거티브 선거로 먹칠한 것은 민주/진보 세력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정당정치의 복원을, 개개인의 입신양명으로 타락시킨 것은 민주/진보 세력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희망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통합을, 과거와 분열로 후퇴시킨 것도 민주/진보 세력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한마디로 민주/진보 세력의 자생력의 한계라 생각한다.
야권의 부상과 부분적 승리는, MB정권과 보수세력,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에 지나지 않았고,
안철수와 나꼼수 등 외부에서 만들어준 이벤트성 경고와 쓴웃음이 만들어준 허상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경제와 정치, 교육/주거/의료/취업/국방/경찰/사법/행정/복지...
이미 실패한 정권을 또다시 심판해서 뭘 하자는 말이었을까?
이미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도덕적이지 못한 정권을 또다시 확인사살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그렇지 못한 43%의 국민들을 편가르기하고, 집단적으로 의식화시켜 평화와 민주의 전도사로 교육할 건가?
지도할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지도하는 모양새에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 패인이다.
정책적 방향이 틀려서 외면당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정교하지 못한 공약의 폐해를 국민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4대강을 그렇게 비판한 이유는, 4대강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노무현 정권때 논란을 일으킨 한미FTA, 주택정책, 세금정책, 지역균등개발 등의 공과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와 신자유주의, 어설픈 이념을 비판하고 반대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미래를 열 수 있는 포용력과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 좁고, 나약하고, 부실한 민주와 진보진영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몰락하고, 보수가 느슨해지고 있는데 우리의 보수와 신자유주의는 갈수록 강고해지고 있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우리들의 삶을 핍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야권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뚫을 수 있는 자생력을 민주와 진보진영이 갖추지 못한다면 이번 선거 같은 허망함은 늘 재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선거를 분노의 살풀이쯤으로 생각했다면 진정한 민의를 외면한 심판이 무엇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선거는, 선거의 여왕-박근혜의 승리도 아니고, 미래가치에 대한 선택도 아니었다. 분열에 대한 경고였고, 오만에 대한 심판이었으며, 이미 한계를 드러낸 초라한 이념의 승리였을 뿐이다. 그 진부한 이념을 꺾지 못한다면, 민주와 진보진영의 자생력은 늘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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