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엉망이다.
언제부터 그랬지?
몇 개월, 아닌 일년여 됐을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오늘, 드디어 피부과에 갔다.
모공까지 드러나는 클로즈업된 화면을 보여준다.
피부가 거칠어졌는데, 여기~ 각질이 많이 깨졌지요?
비누 적게 쓰시고, 샴푸가 피부에 닿지 않게 하시고...
이거 발라 보세요.
좋아졌지요?
주사 맞고 약 드세요.
<사진은 똘똘이 걸로 대신합니다...이 기회에 간만에 제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중...^^*>
내가 아니라 누가 가더라도 똑 같았을 대화.
이게 싫다.
이런 게 싫어서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원인이 뭔가요?
나는 왜 그가 대답을 회피할 것이 분명함에도 되물었을까?
세균인가요? 아니면 장기의 문제가 외부로 표출된 건가요?
전문적인 대답, 혹은 한의학적 처방을 양방에 가서 요구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왜 의학의 지식도 없으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처방을 거부하는 것일까?
그가 그런다.
자기주장이 강한 분들이 있지요. 특히 종교계통의 분들...
저 목사 아닌데요? 종교와도 무관한데요?!!!
그분들은 처방을 믿질 않아요.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셔서 그렇지요.
그래서 나중에 그럽니다. 혼자 알아서 하세요~라고...
그는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을 내게 강요하는데, 나는 나의 선입견으로 방어하고 있다.
우리들은 첫 몇마디에서부터 이미 공동선을 추구할 궤도를 이탈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했던 것은 지금의 병(그것도 좋고 감염도 좋고, 열꽃도 좋고, 영양결핍도 좋다)이
어떻게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원인을 알아야 결과가 이해된다는 근대 모더니즘의 일원성이 이미 해체되는 세상이라지만,
현재의 결과를 그렇지 않은 상태로 돌린다는 게 원상회복이나 장기적 근본적 문제해결인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만큼은 진실이 아닐까?!
그의 처방에는 장기적이며 근본적인 문제해결 의지가 없다.
상태의 개선, 혹은 현재의 불편을 감추면 성공하는 것일 뿐이므로.
게다가 그는, 내가 치료를 위해 필요로 하는 시간의 양과 무관하게 자주 병원에 들르길 원할 것이다.
처방전 삼일보다, 삼일간 내원이 그에게는 최고의 경제적 이익과 효율을 보장해 줄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추천하고 싶은 연고류의 상품을 하나 더 판매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작사도 불분명하고, 광고를 통해 접해본 바도 없으며, 어떤 성분,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눈에 빤히 보이는 그런 상술이 싫었다.
내가 싫어함을 그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의사라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가 지닌 지식을 공유하자고 달라드는,
나 같이 유식을 가장한 무식한 사람을 수없이 접해 봤을테니까...
그렇지만 나도 그런 상업화된, 인간성이 배제된, 공유하지 못하는 전문성을 권위로 대체하려는 이가 싫다.
싫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각을 토설해야만 한다. 그게 후회가 적을 것이니까.
처음엔 운동 나갈 때 사용하는 썬블럭=썬크림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나 열이 많이 난다는 인삼, 홍삼, 지삼, 산삼 같은 걸 장기적으로 복용한 부작용이 아닐까,
신경성 스트레스로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과 과도한 업무로 인한 면역력의 약화도 생각해봤습니다.
원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한가지에서는 일치한다 ; 면역력의 약화 혹은 파괴...
이미 그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처방과 지시에 순응하지 않으며,
그것은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진단과 과정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그도 나도 환자와 의사의 경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적게 후회하기 위한 나의 발설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나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그는 내가 불성실한 환자임을 서로 확인하고만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개운치 못한 상태에서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받아 나온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 그것은 필연적인 절차이며 우리는 습관처럼 계산해야 한다.
불행히도 나는 스스로 처방을 내릴 수 없으며, 전문가가 아님을 내 스스로 알고 있기에...
역시나, 한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게시리 간호사는 연고류의 크림을 추천한다. 만8천원인데요...
그리고 뒤틀린 심사를 반영하듯 나는 제조회사와 제품명을 보면 말한다. 싫은데요?!!!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처방을 거부하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받는다. 타협인가?
건수로 사람을 대하는 이들이 싫다.
나도 그런 직위에 있는지 반문을 해보지만, 내가 그렇게 할지 모른다는 것과 내가 당하는 것은 다르다.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권위가 싫다.
나도 그런 직급에서 권위로 포장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렇다는 것과 내가 느낀다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내가 더 싫어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경제적 재화로 대체시키는 어떤 행위도 불쾌하다.
설혹 그와 내가 자격을 매개로 그의 전문성을 사고파는 상업적 관계가 우선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무엇을 원했을까?
관심?
전문적 지식?
신뢰?
어쩌면 나를 대하는 그의 관심에서부터 우리는 서로 어그러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격이라는 권위를 무기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내게 팔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처방이 있기 전에 나에게 신뢰를 주었어야 한다.
하나 더 바란다면, 내가 잘 못 생각하는 것을 그의 전문성이 깨뜨려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의 처방을 받아 나의 불편이 해소되었으면 최상의 인연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연이 그에게 약간의 경제적 지출행위를 넘을 수 없다는 게 관계의 한계겠지만,
그렇게 의사와 환자가 교감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좋고 편했을 것인데,
나는 연고를 바르면서 거부하기 시작했고, 그는 역시 눈치로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만 내게 허용했다.
연목구어?
나는 병원에 가서 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의사를 바랬을까?
나의 상태와 심리에 대해 안도와 믿음을 줄 수 있는 심리치료사를 원했을까?
나는 4천원을 내고 너무 많을 것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4천원짜리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고 미리서부터 경계를 확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행색을 보면서 두 번 다시 자신의 병원에 올 확률이 작다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불특정 다수와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연한 만남을 습관적으로 건수로 처리했고,
나는 나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특별 우대를 기대했겠지.
나는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 의사의 자세와 처방에 대해 전문가의 부족한 자질이라 질타하고 있고,
그는 지속될 가능성이 없는 관계에 대한 소모를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애초 불편할 수밖에 없던 관계, 나는 또 다시 불편한 처방을 거부하고 있다.
언제나 나는 나를 알아주는 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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