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정서 쓰자는데 시장조사는 해야되지 않겠어요?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있지만, 맞는 말이다.
비즈니스 제의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기도 하지만, 현장을 내 눈으로 보고 직접 시장조사를 하지 않고
사업을 감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 성패의 원인을 남에게 돌려서는 안 되니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지금 일이 2월 안에 끝내야 한데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있으면서도
오로지 기다리는 거 외엔 내 손으로 집행할 일이 없음에도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처지...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주말을 이용해 몰래 다녀오기로 나선 출장...
그나마 내가 운전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나쁘지 않은 시장여건...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는 항상 불확실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업이란 항상 기회와 위기란 양날의 칼인만큼 조심스러운데 백과장이 한마디 한다.
점심도 건너뛰고 있는데 육회라도 사주세요?!
그러지 말은 했지만, 한의사의 경고가 귀가에 맴맴 ... 고기도 회도 들지 마세요...
물론 눈치 볼 자리는 아니라고 메뉴를 내 기준으로 선택할 순 없고, 맨 아랫사람 눈치부터 봐야하니,
할 수 없이 육회 맛있게 먹는 백과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
맛있어 보여 몇 점 먹었더니 덕분에 아직도 얼굴은 화끈거리지만...ㅉㅉ
**님 날씨가 너무 좋지요?
하루 종일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백과장은 추위와 무관하게 햇볕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가 보다.
게다가 맨날 바다만 보다, 햇빛 쏟아지는 거리와 산과 들을 보니 더더욱 마음이 즐겁다고...
그냥은 안 가실거고, 어디라도 들르시겠지요?
내 스타일을 비교적 꿰차고 있는 이사장도 내가 그냥 올라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 눈치...
음~~~ 서산마애불을 보여주고 싶은데, 시간도 늦었으니 그냥 가까운 성주사지에나 들러보지 뭐...
<성주사지... 해철이 형과의 인연 때문인지, 한산 인근의 충남지역 답사여행은 1월달이 많았던 거 같다... 또 생각해보면 빛온도가 가장 좋은 오후 4시 전후에 왔던 거 같고... 정작 아침빛을 받은 성주사지를 본 적은 없는 듯...>
사실 약간 걱정이기는 하다.
백과장이라는 친구야 사학과 출신에 학원에서 국사과목 강사도 했으니 이렇게 저렇게 따라오겠지만,
단순무식을 자랑하며, 머리보다 몸 쓰는 것 좋아하고, 일이 시작되면 앞뒤 없이 몰입하는 이사장에겐
탑/불상 찾아보고, 건축을 생각하며 역사/예술까지 논할지 모를 답사여행이라는 게 생뚱맞을 거 같다.
그러나 하나라도 보고가야 잠시라도 일을 잊고, 이렇게 멀리 나선 거리에 시간도 아깝지 않다 생각하는
내 의도도 꺾이지 않을테니, 그 절충이 출장지에서 가장 가까운 성주사지...
2.
음~~~ 예전엔 정문쪽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이젠 여기서 내려야 해.
저기 계단만 올라가면 성주사지야.
역시 도착하자마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엥~~~ 이거 뭐여유~~~
ㅍㅎㅎㅎ~~~ 볼거리로 꽉 차있을 거라 예상했음직한 이사장 입에서 터진 일갈이다.
하긴 폐사지... 그것도 탑 4기와 부도비 하나 달랑 놓인 텅 빈 성주사지를 봤으니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황당함에 뭘 보자는 건지 어리둥절해 하는 그의 표정에서 오늘 동행은 판가름났다.
<현재의 주차장에서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성주사지 전경... 광각렌즈를 가져가지 않아 핸드폰으로 찍은... 앞만 보길 좋아하는 이사장에겐, 이처럼 막힘없이 트인 넓고 어수선한 모습이 아픈 머리를 더 어지럽게 했을지도...^^>
게다가 꽁꽁 얼었던 땅들이, 며칠 풀린 날씨 때문인지 약간 질퍽거린다.
조금 전 예정 사업지에서 미끄러지고 질척거리면서 명품 브랜드 신발에 묻은 흙을 원망했던 이사장인지라, 나를 따라나서야 한다는 예의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신발을 버려야 할 이유도,
자신에게는 무의미한(!) 시간을 참고 인내해야 할 최소한의 호기심도, 의무감도 사라졌다.
저는 머리가 너무 아프니 그냥 차에 있을래요...!!!
아, 머리 아프니까 바람 쐬자 그랬지, 머리 아프라고 보자 하겠어???
그깟 돌멩이 몇 개 얹어 놓은 거 봐서 뭐해요~
난 그냥 차에서 통화하고 있을께 어여 두분이나 갔다 오세요...!!!
돌멩이 몇 개라도 볼만하다니까, 얼른 따라와 바~~
아, 신발 버려요~~~ 찬바람 쐬면 머리만 더 아플거고...
^^~ 그래, 사실 탑이라는 게 돌멩이 몇 개 다듬어서 올려놓은 거 뿐인데,
게다가 볼거리 하나 없고 앉아 노닥거릴 데도 없는 폐사지에서 그가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의무감일지 호기심일지, 햇빛 좋고 날씨 좋다고만 되내이는 백과장만 따라 나선다.
고지가 바로, 저기도 아니고 여긴데, 이사장은 결국 계단을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성주사지 삼층석탑들... 그래, 석탑이란 돌멩이 몇 개 올려놓은 것일 뿐인데...^^>
3.
**님 설명 좀~~~
아하~~~ 대략난감이다.
역사의 숨결이니 예술의 향기니 어디서 시작할지도 난감한데 답사여행의 답자라도 알아야 설명할 게 있지...
게다가 가끔 저녁 먹으며 나눴던 역사강의(?)가 전부인 이 친구에게 폐사지에 대해 뭘 설명할까?
질퍽거리는 땅, 신발을 적시는 검은 흙을 밟으며 고심 또 고심한다.
이때 한마디가 더 날아온다. 여기서 뭘 봐야하나요??
허걱~ 기껏 폐사지 폐사지 했는데, 여기서 무엇을 봐야할지 모르는 백과장은 여전히 벙벙한 모양...
사찰건축의 가람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할까, 백제식 평지가람과 신라식 산지가람에 대해 비교해 볼까,
구산선문 중 성주산문의 발상지로, 구산선문이 우리 역사와 불교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설명할지
아니면 건축적 상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 곁들여 공간을 구성해보는 폐사지 답사의 맛에 대해 설명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여기서 뭘 봐야 하냐고 물으니 더더욱 난감할 수밖에...
응~ 저 앞쪽에 안내판이 있으니 그곳에 가보자고...
어~~~ 국보도 있네요?!!
그래~~~ 국사 강사도 했다니 국보가 중요한 것은 그나마 알고 있겠군...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탔네요?!
학원 강사하면서 우리나라 유적들 대부분을 일본 놈(?!)들이 파괴했고, 우리 기술자 강제로 데려다가
그들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믿는 백과장은 임진왜란 때 이곳이 불탔다는 사실 확인이 당연하다는 눈치다.
일본문화의 원류이라는 우월감과,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의 피해자라는 열등감... 이 도식은 언제 해소될까?
4.
일단 동선은 앞에 보이는 석등과 오층탑...
간결한 문양의 앙련과 복련을 갖춘 담백하면서 아담하지만 좋은 비례를 갖춘 석등...
한때 조선시대 만들어졌다 추정했었지만, 지금 안내판에는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성주사지 석등... 오층석탑에 눌려 존재감이 잊혀지곤 하지만, 볼수록 부담도 없고, 정겹기도 하고...>
<참 심플하면서도 세련됐지? 앙련과 복련이 잘 어울리고...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대좌 앙련이 생각난다... 이곳에도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었을까??>
<높이 2.2m... 탑과 비교해서 왜소해보일뿐, 석등만보면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높이에 어울리는 양감, 그리고 옥개석/화사석/연화상대석(앙련)/간주석/연화하대석(복련)/기대받침이 조화로운 비례를 갖추고 있어 볼수록 정감이 가고, 상대석과 하대석에도 정성스럽게 받침(괴임)을 빠뜨리지 않아 결코 서툰 솜씨로 대충 만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루하지 않고, 튀지도 않고, 있는듯 없는듯 제 역할에 충실한 그런...>
이건 신라말기 석탑으로 백제의 지역적 특성을 살려 만든 오층탑이야...
여기가 본래 백제 위덕왕때 만든 오합사란 절이 있었지...
그런데 신라말기에 와서 성주사로 불리게 되었고.
신라의 절이나 탑, 불상을 보려면 산으로 올라가야 되지만, 백제유적들은 이처럼 평지에 있어...
<성주사지 오층탑... 불상에 있던 곳에서 바라보면 이런 프레임이...>
이게 어떻게 오층이에요? 칠층 같아 보이는데...
^^~ 국보도 좋고 보물도 좋지만, 탑이 몇 층인지 세보는 거부터 시작해야 하는군...
응~ 여기까지는 기단부라 하고, 그 위로 목조건축 지붕처럼 생긴 돌 개수를 세면 층이 돼~
그러면 저것은 몇 층이에요?
내 말을 들었다는 것과,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역시 별개다...^^
<역시 성주사지는 이렇게 동선을 잡아야 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현재 주차장 측면에서 진입하는 동선은 시선도 어지럽고, 오층탑과 같은 수직성의 전봇대, 가로등, 전파송수신기 등등까지 있어 너무 산만해진다... 어느 공간과 마찬가지로 가람배치도 첫 시선을 유도하는 동선이 중요한 법인데(부석사를 생각해 볼 것 ; 일주문을 지나가지 않은체 무량수전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은 없다) 성주사지는 스스로 첫인상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이사장을 통한 깨우침(?)이다...^^>
응~ 그건 삼층... 유물들 앞에 간단한 설명들이 쓰여 있으니 읽어 봐...
어디서부터 무엇을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선 가장 대중적인 안내문이 최선의 정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의도와 내 생각을 말한다고 교감되지도 않을터... 공유한 사전지식도 없고, 공감하는 비교대상도 없다면 질문을 듣고 그만큼만 대답하는 게 지금 내가할 최선의 행동... 역시 무리였을까?
<각층 낙수면의 경사와 4단 층급받침, 그리고 일층 몸돌의 괴임돌(받침돌)을 보면, 성주사지 오층탑도 뒤편의 삼층탑들과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시대였을까? 아니면 시대차가 있었을까? 특히 일층 탑신의 괴임돌을 보면 한사람이 만들었다해도 틀리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 높이로 탑을 세우려면 흙으로 채워가면서 올라갔겠지요?
에끼 이사람아~ 그건 고인돌 세울 때 이야기고, 이땐 비계라는 게 이미 있었겠지?!
크흐~~~ 열심히 상상하면서 답사가이드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장단까지 맞추려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더 편하고 자유스러운 상상을 가로막는 경우가 더 많다.
하긴 천년 전이나 삼천년 전이나 옛날 옛적은 마찬가지고, 고인돌을 세우던 정성으로 탑을 쌓았을 수도 있으니까...
<가늘고 긴 오층탑이라해서 이젠 무조건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말하진 않는 거 같다... 화엄사 동오층탑과 광주박물관의 오층탑의 딱 중간 형태가 성주사 오층탑일듯...>
5.
이건 뭐에요? 음~~~ 연화대좌...
그럼 여기에 뭐가 있었나요?
불상이 있었겠지?
어떻게요?
음~~~ 생각해보니 석불좌상의 대좌일지, 석불입상의 기단부일지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본바가 없다.
신라말 구산선문 중 가장 중흥했던 성주산문이었다면 철조비로자나불이 있었을 거란 생각만 했는데...
<저기 삼층탑들이 호위하는 이 연화대좌에는 어떤 불상이 있었을까??>
예전엔 건성으로 넘어갔었는데, 가만 보니 이 금당 기단부는 장방(직사각)형이 아닌 정사각형에 가깝다.
그렇다면 혹시 목탑지 아니었을까?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절이니 목탑도 상상해 볼 수 있다.
만약 서있는 장륙상이 있었다면 그 높이는 4.8m... 오층탑(6.6m)보다는 낮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여기에 청주 용화사 같이 불상이 놓이기에 연화대좌가 조금은 작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미 일탑일금당 가람배치였다면 굳이 목탑을 또 만들었을까 의문도 들고... 뭔가 뒤죽박죽...
아무튼 고달사지 한가운데 있는 석조대좌를 연상케 하는 이 연화대좌에는 석조비로자나불이 있지 않았나가 내 최종 결론이다. 왜냐하면 철조불상이었다면 철원 도피안사처럼 대좌도 철조로 만들었을테니까...
<고달사지 연화대좌(↓)와 비교해보면 복련 마무리부분에 받침(괴임)이 있는 걸로 봐, 불상좌대의 하대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대석에 안상이 없고, 복련의 문양은 시대를 훨씬 앞서면 앞섰지, 결코 늦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
<연화대좌 주위의 주춧돌... 왜 볼수록 목탑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까? 백제시대의 절이어서 그럴까??^^>
'충청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주사지 3> 왕초보자와 함께 한 답사여행 - 삼층탑과 낭혜화상 부도...1202 (0) | 2012.02.16 |
---|---|
성주사지 2> 생초보자와 함께 한 답사여행 - 성주사지 가람배치에 대하여...1202 (0) | 2012.02.16 |
청주답사 2> 용두사지 철당간 - 철당간기 명문을 읽으면서...1111 (0) | 2011.11.28 |
청주답사 1> 노무현 전대통령을 닮은 불상이 있는 용화사...1111 (0) | 2011.11.26 |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 구인사> 나는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111017 (0) | 2011.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