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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답사여행-종(鐘)1> 종소리를 찾아서...1209

 

 

 

 

 

불편하거나 화나거나 혹은 답답하거나...

생각해보면 늘 그런 상황임에도 외부 탓을 한다.

내 맘이 나를 보지 못하고, 넓은 시선으로 밖을 찾지 않기 때문이겠지.

오늘도 늦은 일출과 숨겨진 석양을 두리번거리며 바다를 건넌다.

이럴 땐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몰두하는 것보단 가벼워지는 게, 진지함보단 경쾌함이 필요할까?

오히려 격렬한 땀내음과 쾌락에 대한 향응만큼, 역으로 깊고 그윽한 소리가 간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울림... 그것이다.

 

 

<왜 이럴 땐 지리산이 그리운 걸까?...>

 

 

 

고등학생 때였지?

지금같은 마음이 이끌었던 곳이 조계산 선암사였다.

꼴에 낭만이라고 선암사 적막을 물들이는 늦은 오후의 종소리를 찾기 위해서.

그때 내가 들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돌아오자마자 일기를 썼지?

나를 찾자고... 크크~~~ 지금도 똑같다.

다시 종소리를 찾으며 나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난 어딨는가...

 

 

<선암사 봉선루... 아마 선암사의 홍예교와 봉선루를 이처럼 멋없게 찍은 사람은 나 밖에 없을 듯...^^>

 

 

 

생각해보면 이곳저곳 꽤 많이 돌아다녔는데 종소리로 기억되는 사찰이 없다.

가람이 맞는지, 사찰이 맞는지, 승원이 맞는지, 아니면 절집이 맞는지...

문득 가람은 뜻도 모호한 인도어의 음역이고, 사찰은 한문인데다 濟度(제도)의 의미가 강한 거 같고,

승원은 승려가 기거한다는 기능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집은 틀리지 않지만 왠지 가벼운 거 같고...

그냥 절이라 부르면 되는데 글을 쓰거나 말을 하려면 왜 그리 무게부터 찾는지...

아무튼 오늘은 절에는 못가더라도 사진으로나마 <종소리>를 찾아봐야겠다.

 

 

<성덕대왕신종... 봉덕사종이라고도 하지?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에밀레종일테고...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 소리를 가진 종일거 같다... 녹음 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신라시대, 경덕왕대에 만들어진 한국종(Korean Bell)을 대료하는 최고의 명품이다...> 

 

 

 

 

 

 

 

절에 가면 우리들은 보고 듣고 느낀다.

자연을 보든, 건축을 보든, 공간을 보든, 혹은 유적이나 사람, 불상... 무엇이든 먼저 “본다(!)”.

그리고 느끼려 노력한다. 비우고 혹은 채우려고... 나를 혹은 관계를, 그리고 일을...

그렇지만 정작 듣는데는 인색한 게 사실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그 공간을 가로지른 수많은 사람들의 호흡을 들으면서도

정작 절의 주요한 행사 중 하나인 사물(법고, 목어, 운판, 범종)이 어우러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게으름이든 바쁨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새벽 예불과 독경 소리에 가슴을 열 기회가 많지 않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역시 지리산과 섬진강인가?! 가슴은 왜 안 열릴까?...>

 

<그럼 불교의 사물을 골라볼까?... 보광사 목어... 수채화 같은 섬진강 물고기들에게 이 목어가 어울릴지 모르겠군...^^ 나무로 나무를, 그것도 짧고 좁게 때리는 만큼 울림이 크거나 긴 여운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귀할지도 모르겠다.

운좋게,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땅거미를 붙잡고 범종각에서 울리는 사물소리를 들을 때 우린 고요해지고

미쳐 깨어나지 않는 눈두덩이를 비비며 새벽예불의 찬송을 들으면 또다른 행운에 감동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게으름이나 조급함과 무관하게 그들의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 속세의 일정 때문이겠지만,

정지된 시간을 채워주는 무언가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감동과 여운이 된다.

 

 

<동화사 범종각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부석사 운판... 같은 시간대라도 동화사의 여름과 부석사의 겨울은 이렇게 색감부터 달라진다... 색감이 달라지면 감흥도 달라질까?... 먼 산하의 새들에게 이 운판은 충분한 울림의 메아리를 전달할런지...>

 

 

 

귀해서 듣지 못하고, 기다리지 않아 만나지 못하면서 우리들은 그렇게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한양에 매일 울려퍼지던 타종소리를 대신해 일년에 한번씩 종소리를 듣는데 만족해야 하고,

성철스님이 몽둥이 들고 없애나갔던 천도제나 울릴 때쯤, 망치로 두드리는 탁한 범종소리에 깜짝 놀라고,

노래로만 남은 학교 종이 땡땡땡~ 차임벨도 종소리라 우기며 아예 징글벨 징글벨 노래 부른다.

그래서 우린 우연한 인연으로 다가오는 종소리에서 공명을 이야기하고, 맥놀이를 찾고, 진동에 몸을 맡긴다.

 

<이천 영월암 동종... 우리에게 주변산하의 공간과 어우러진 범종소리가 귀해진 건 이처럼 종이 실내로 들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후기 만들어진 대부분의 종은 1m 내외이기에 범종각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범종각도 없어지고, 범종각에 종도 사라졌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종소리>를 찾아 나서볼까?

현재의 우리들 혹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자극적인 종소리는 절에서 울리는 범종이 아닌,

크리스마스 이브 때나 울리는 흥겨운 징글벨을 기다리는 게 전부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조금 호사스럽다면 학예회에서나 보이는 핸드벨 연주의 깜찍함에 흥겨워 할 수도 있고,

이도저도 아니면 현관에서 울리는 차임벨(때로는 고상하게 초인종이라고 하지?)이나 듣겠지.

후후 결국 종소리가 벨소리로 바뀌고 미국 민요가 이벤트가 되고 우리의 정서로 들어왔다.

 

 

<이 종은 어디에서 사왔을까?... 연주용은 아니더라도 핸드벨이 이런 유형이지?...>

<학교종... 청암박물관에서... 햇살이에겐 존재하지 않는 학교종이 땡땡땡의 주인공... 나도 이 종소린 기억에 없고, 어느날 찌르릉 찌르릉 울리기 시작한 차임벨만 귀에 쟁쟁하다... 아무튼 어렸을 적부터 우리들은 이렇게 팔(八)자 혹은 나팔꽃 모양의 종만 바라보고 자랐으니, 역으로 우리 전통의 동종들이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묵언의 반감이었을까? 몇 년전인가 세간에 회자된 <워낭소리>는

언젠가의 <서편제>처럼 잃어버린 뿌리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은 열병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낭만도 아니고 과거도 아닌 묵묵히 묵묵히 가슴을 져며오던 워낭소리에 우리는 흐느꼈지.

그렇게 종소리는 우리 곁에 이벤트로 일상으로 향수로 남아있는데 우린 그것들에 민감하지 않다.

소리는 많은 것을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무감각하다.

 

 

<스위스에서 사온 방울... 아마 우리들 워낭과 비슷하지?... 사각형 동판을 잘라 타원형을 만들다보면 이렇게 밑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가장 손쉬운 제작공정을 가질 수 있어 동서고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유형의 종이다... 소리가 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밝다... 맑고 길고 그리고 깊고... 여기에 맥놀이까지 있으면 더 좋고... 내가 좋아하는 종소리의 기준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종쳤다”는 말은 “날샜다”는 말과 똑같지?

학교가기 싫어했던 어떤 천재(?)가 땡~쳤다고 말한 이후부터 그렇게 됐을까?

아니면 1468년 만들어져 1619년부터 한양의 사대문을 열고 닫던 보신각 종(성화4년명 동종)소리를

수백년간 들으면서 문닫기 전에 마무리 하자는 습성 때문에 고착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종 치고, 날이 새면 흥겹고 좋고 즐거워야 할텐데 언제부턴가 이 말들은 “김샜다, 끝났다”는 의미가 돼버렸다. 왜 우리에겐 “끝”을, 찬양되지는 못할지언정 즐겁게 맞이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의미로 각인 되었을까? 내 짧은 머리로는 그 정도만 메모하기로 하고 종소리를 찾기 위해 먼저 <鐘(종)>에 대해서 먼저 알아볼까?

 

 

 

 

 

 

<보신각 종... 1468년 만들어진 원각사종을 우리는 아예 보신각종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원각사에 걸렸던 건 150년 동안이었지만, 보신각에 걸렸던 건 400여년이 되기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재야를 울리고 새해를 열던 이 종도 자기소임을 다하고 지금은 중앙박물관 한켠에서 조용히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아무튼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한데... 원나라의 침공이후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기 시작해 임진왜란 이전까지 유행했던 동종의 대표적인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