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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답사여행-종(鐘) 2> 종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1209

 

 

 

 

 

 

2. 종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2-1. 생각해보면, 반지의 제왕 3편 <왕의 귀환>에서 귀환한 왕의 마지막 피날레는,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연설 혹은 헐리우드식 유머와 감사의 인사가 아니라 긴 여운의 노래(!)였음을 감안하고, 2차대전 때 독일이 후퇴한 모스크바의 첫 번째 공식행사가 음악회(!)였다는 것을 상기하면, 역시 음악소리는 우리들 정서에 가장 소중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잠재울 때도 노랠 부르잖아...) 그리고 그 많은 음악소리 중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악기 중 하나가 바로 “종”이다.

 

 

<악기란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불거나, 때리거나, 줄을 튕기거나 비벼서 소리내는 것의 통칭일 뿐... 종묘제례때.>

<그중 가장 다양한 소리를 내는 것이 현악기지?!... 중앙박물관에서...>

<기원전 1세기 마한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현악기... 거문고/가양금 등의 원형일까?... 어디 박물관인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ㅉㅉ>

<악기중 가장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때리는 것이었겠지?... 종묘제례악 때 편경...>

<물론 장구도 그런 악기 중 하나고... 타악기도 지방과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가죽으로 만든 북이나 장구는 남쪽지방에서 더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어느 박물관에서 찍었는지...>

 

 

 

또한 종은 악기의 하나로서 뿐만 아니라 종교의식에도, 때때로 군사적 행정적(시간을 알리는) 목적의 신호수단으로, 그리고 권력의 상징으로서도 가장 먼 곳까지 음파를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발전해 왔다.

 

 

<그리고 악기 중 가장 초보적인 형태가 이렇게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살린 것일 거다...>

<또한 가장 오래된 풍습의 하나인 장례에 그 악기들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장례도 하나의 의식이고 예식이니 자연 음악을 필요로 했겠지...>

<고려시대 반자... 우리가 흔히 징이라고 부르는... 중앙박물관... 그 용도는 ↓>

 

 

 

 

 

2-2. 그러면 종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우리가 흔히 절에서 보기 때문에 梵鐘(범종), 혹은 청동(구리와 주석의 합금-철로만 만들면 깨지잖아)으로 만들어졌기에 銅鐘(동종)으로 불리우는 종의 기원에는 종교적 연원 때문인지 인도와 중국 기원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인도에는 종이 없었다 !

 

 

<인도에 있었던 것은 종을 닮은 스투파였을 뿐이다?? 아니면 종이 인도 스투파를 차용했을까??>

 

 

물론 때려서 울리는 “종”, 내부에 달린 추에 의해 소리가 나는 “鐸(탁)” 또는 구슬이 들어가 있는 “방울”, 손으로 흔드는 “요령”을 모두 鐘(종)의 범주에 포함하여 부를 수 있지만, 인도에는 방울이 있었을지언정 불교행사를 치루기 위한 범종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의 기원을 중국문명, 그중에서도 홍산문화와 양사오문화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종은 방울에서 변천하고 발전했겠지?... 고조선의 마차/중앙박물관...>

<말갖춤 중 종방울... 종과 방울은 불교와 무관하게 이미 철기가 보편화되기 이전, 청동기 시대부터 여러형태로 사용되었다...>

<말갖춤의 방울과 종들...>

 

 

중국 양사오문화에 속한 서안에서는 5~6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도종(도기로 만들어진)까지 발견되었고, 일찍부터 청동기 문화가 발달해 이미 기원전 11세기부터 종이 만들어졌는데, 오늘날 학계에서는 손바닥만한 크기로 만들어진 걸 집종(執鍾, 손으로 잡고 흔든다는 의미), 기원전 8세기까지 만들어진 건 용종(甬, 50cm까지 커졌다), 기원전 7세기 이후부터 나팔꽃 모양(팔릉파형八菱波形)에 용뉴(종의 고리)가 장식성을 띤 것은 박종으로 구별하고, 집종과 용종의 형태가 원형이 아니어선지 통칭 편종(編)이라 칭하고 있다.

 

 

<이렇게 생긴 것을 편종이라 부르지? 풍탁과는 또 다른, 청동기 시대에 사용했던 종의 원형이 살아있다... 물론 종구가 一자로 마감되어 있어 한국종의 형태를 따르고 있지만, 중국의 편종들은 Λ처럼 오목 패여있다... 조선시대/종묘제례악 때>

 

 

그 연원을 추적하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초기 鐘(종)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자연 혹은 영혼을 불러오는 종교의식의 기능이 있었고,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은 수준 있는 문화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으로 청동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만박물관에서... 이 청동기가 기원전 11세기쯤 물건일테다... 물론 이보다 훨씬 정교하고 화려한 청동기 유물이 다수 전래되고 있다... 아무튼 그 기술을 필요로하는 수요층들과 그들을 만족시킬 기술이 함께 있어야 문화는 존재하는 법이다...> 

 

 

 

 

 

 

2-3. 그렇다면 서양의 경우는 어떨까? 이미 고대 인도에는 종이 없었다고 말했는데,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해 유럽까지 쫓아가 살펴봐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그리고 조금 더 지난 그리스 로마 문화와 그를 이어받은 700년대까지의 기독교와 카톨릭, 이슬람교에도 동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나는 알고 있다(특히 건조한 기후지대에 속해 있는 중동지방과 이슬람문화에서 종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데, 크리스트교 고딕양식의 첨탑에 해당하는 이슬람 건축의 “미나렛”에는 아직까지 종이 없다! 전통적으로 그들은 예배시간을 알릴 때 첨탑에 올라 육성으로 소리를 쳤고, 요즘도 종 모양(!)의 스피커만 달려 있을 뿐이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바루에서... 이슬람 사원건축은 모스크와 미나렛으로 이루어지는데, 종탑에 해당하는 미나렛에는 종이 없다... 멀리 예배시간을 알리기 위한 기능은 똑같지만, 그들은 이 탑에 종을 달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었던 “종”은 소나 말에 장식했던 방울이 전부였고 그건 아프리카,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그쪽 제사장들도 잘해야 지팡이에 방울을 단 정도 아닐까?^^)...

 

 

<멕시코의 방울종/네이버 악기 사전에서... 다양한 형태의 방울은 다양한 지역에서 고르게 발달해왔다...>

 

 

 

그들이 청동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동양보다 훨씬 후대인 기원후 8세기쯤(성덕대왕신종이 만들어진 때)인데, 군사적 목적의 타악기(동양에서는 나무로 종을 치지만, 그들은 금속으로 종을 쳤다)가 신호목적으로 변형되면서 모양을 갖추다가 수도원이 기독교 문화에 정착하면서 발전한 거라고 나름 추측하고 있다.

11세기쯤에는 비종교적 목적으로도 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八(팔)자형 혹은 나팔꽃 모양의 종은 13세기 이후 소위 고딕양식이 발생하면서부터 고착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고대부터 영혼과 교감을 위한 매개로 종이 사용됐지만,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 등 기독교 문화에서 동종은 신의 목소리, 예배를 알리는 장소에서 사용하는 도구(식당에서 사용하면 “스퀼라”, 성단에서 사용하면 “놀라”로 불렀다고 한다)로 13세기 이후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이때 만들어진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도 종탑이다).

 

 

 <피사의 사탑... 이 시대를 대표하는 종탑으로, 꼭대기에 매달린 종들이 보이지?^^ 높고 낮게, 그리고 크고 작게... 이렇게 발전한 게 중세시대(르네상스 시대까지) 전성기를 맞은 카리용의 원형이다... 아무래도 종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거 같아 이태리에서 사온 안내 책자에서 스크랩했다...>

 

 

다시 15세기쯤 첨탑(종탑, 종루라고도 부르지?)에 걸린 종은 예배의 신호로 정착하면서 전성기를 맞는데(영화 <노틀담의 곱추>를 생각해보라), 그 정점에서 가장 큰 종을 염원했던 쪽은 그리스 정교가 정착한 러시아였던 거 같다. 변방의 설움을 권위의 상징으로 보상받고자 했는지 1733년 만들어진 모스크바의 “차르 콜로콜”은 직경이 6.6m에 180톤이 넘는다고 한다(성덕대왕신종이 20톤 규모니까 짐작이 가겠지?) 물론 이종은 만들어지자마자 화재피해로 파손 된 이후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지만, 이때부터 종은 신과 멀어지고 인간의 권력을 상징하거나 정치적 의미를 담아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국가간 도시간 교류와 친선을 도모하는 상징 뿐만 아니라 현대까지 다양한 신념과 희망의 형상을 소리로 담아 전파되고 있다.

 

 

<노틀담 대성당... 내가 갔을 땐 전면에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나는 자주 이 사진을 인용한다... 여기에도 수많은 종들이 화음을 내며 울렸겠지...>

 

 

아무튼 변화된 욕구와 미감이 더해진 서양의 종은 종탑의 변화와 함께 “카리용” 등 연주용으로도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벨기에와 네덜란드(모두 종교개혁이후 개신교-신교도쪽 사람들이지?)의 기술자들이 큰 몫을 했겠지만, 오늘날처럼 대중적이고 일상적이며 장식적으로 종을 다양화시킨 건 아무래도 미국의 영향(이쪽이 신교도잖아)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은 종을 영혼과 소통하는 도구(동아시아)로 사용하지도 않았고, 신의 목소리(기독교)로 의미부여도 하지 않은 체, “자유”(Freedom 혹은 Liberty)라는 이름(18세기 이후 붙여졌지만, 신과 신분/계급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자유의지를 상징하는 이 이름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에서도 다뤄진다)만 붙여, 군함에서도, 기차가 출발할 때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밥 먹어라 알릴 때도 종을 쳐댔을 뿐인데 말이다(그리고 그들은 증시를 개장할 때도 종을 치지?).

 

 

<청나라에서 만든, 군함에서 사용된 종... 청일전쟁 때 침몰한 배에서 인양한 것으로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사진을 올린 이유는 ; 우리가 보는 八자형 종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2-4. 생각해보면 근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의 신념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종의 형상을 빌어 표현하고자 했던 욕구는 동양보다 미국탄생 이후의 서양이 더 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례로 우리는 70년대 “번영의 상징”으로 성덕대왕신종을 재현하기 시작하면서 대전 Expo 기념(1993년), 임진각의 평화의 종(1999년), 518 광주민주 항쟁을 기념하는 “민주의 종”(2005년, 무게 31톤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가?) 등이 만들어졌고, 이웃 일본에서도 원자폭탄이 투여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평화의 공원에도 “평화의 종”(히로시마에는 일본 전통모양의 종이, 나가사키에는 八(팔)자형 종이) 등을 만든 게 오랜 전통의 계승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의 예를 보면 훨씬 대중적이고 국제적이기까지 하다.

 

 

<블로그 "우표가이드"(허진욱님)에서 스크랩...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1976년 만들어진 우표다... 저 종 모습이 서양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흔히 "자유의 종"이라 이름 붙여져 있다...>

 

 

미국은 1700년대에 “자유의 종”이 만들어진 이후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 종도 만들었고(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독립기념으로 LA에 성덕대왕신종 모양의 종을 선물했지?), 또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과 우정을 강조하기 위해 1950년에 만든 “베를린 자유의 종”은 무려 1,600만 시민들이 성금 형태로 참여했다는 것을 보면 어느쪽이 더 대중적인지 되묻게 된다.

 

<왼쪽이 1950년 미국에서 만들어 베를린으로 공수된 "자유의 종"이고, 오른쪽이 위 우표에 그려진 미국독립 200주년 기념 "자유의 종"이다... 이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종을 매달았던 장치, 즉 용뉴가 전체적인 종의 이미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명하게 확인된다... 즉 근현대 서양종에는 용뉴가 없지만, 동양의 중국, 한국, 일본의 종들은 용뉴에 많은 장식을 가지고 있고, 추가로 종소리에 일정한 기능까지 보완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참고로 신라종은 용뉴가 일체형이고 일본은 분리제작되어 합쳐진 경우다...>

 

 

그러고 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鐘(종) 하나에도 복잡한 정치적/문화적 의미와 종교적/역사적 신념, 그리고 폭넓은 관심과 목적이 혼재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장식과 호신구 용도의 핸드벨 크기에서부터, 각종 행정적 군사적 신호전달의 목적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도와 국제교류의 상징적 의미의 커다란 규모로 다양하게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유형들의 변화를 요약하면 청동기 시대 제례의 도구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악기용도가 추가되면서 유형이 확대되고, 불교(6세기 이후)와 기독교(13세기 이후)에서는 종교적 의미와 호신구 목적으로 한정된 형태에서 발달했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용도와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독일의 유리종/네이버 악기사전에서 스크랩... 현대에 들어와 종은 더이상 청동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도자기로, 유리로, 철로, 나무로... 다양한 소재돠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만 거슬러 올라가 봐도, 학교종이 보급되기 이전 조선시대에는 불교에서 사용한 범종과 금강령, 그리고 무속인들이 사용하던 요령과 방울이 함께 있었고, 왕궁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사용하던 편경과 불전에 부착된 풍탁들이 함께 존재했다.

 

 

<고려시대 금강령... 호신구와 제기의 용도가 함께... 중앙박물관에서...>

<또한 우리나라의 종이 모두 선덕대왕신종(신라종) 형태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 사용했을지 무속인이 사용했을지 모르지만, 八자형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원주박물관에서...>

<금강령...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다... 중앙박물관에서...>

 

 

또한 고려와 신라,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면 범종과 함께 탑(600년대 만들어진 미륵사탑, 분황사탑에도 달려있으니까...)에 매달렸던 풍탁들이 있고, 그로부터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기원전 433년경 편경 모습의 악기로 종은 자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종은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제례의 도구와 함께 말 장식구(말갖춤이라고 하지?)에 달린 방울의 모습으로 존재해왔던 것이다.

 

 

<풍탁... 탑에 혹은 전각의 귀퉁이에 매달려 바람에 의해 울리던 종들... 그래서 종은 바람과 함께 울리나?^^>

<말갖춤의 종과 방울들... 물론 그 이전 시대까지 올라가면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고, 형태도 다양하다...>

 

 

 

 

우리들이 현대에 들어와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아서, 자주 접하지 못해서 익숙하지 못한 종이지만(요즘 수원 화성에 가면 돈을 내고 종을 쳐볼 수도 있지?), 그 형태는 너무나 자주보고 있음을 왕왕 망각하기도 한다. 절집답사 어느 곳을 봐도 조선시대 부도밭에는 석종의 형태로 남아있고, 또한 굳이 절집은 아니더라도 시골집 어디에도 있던 장독을 엎어 놓으면 그게 바로 한국종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방울에서 발전했는지, 아니면 어느 이름모를 야생화의 형상을 차용했는지 몰라도 그런 가장 오래되고 자연의 형상을 닮은 가장 맑고 깊은 소리를 간직하였기에 수천년 동안 종은 우리와 함께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등사에서... 항아리, 장독... 그걸 이렇게 뒤집어 놓으면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모양의 종이 있다...> 

<충주 중원탑... 나는 이 사진을 찍을 때도 탑이 鐘을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면 종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은 자연에서 파생된 게 아닐까? 나팔꽃도 있지만, 내게 종은 이런 초롱형 야생화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춘천 청평사 가는 길에서...>

 

 

 

* 참고로 鐘으로 블로그를 정성스럽게 채워놓은 곳이 소개한다...

   종 컬렉션뿐만 아니라, 종의 역사를 비롯 세계 각국의 종들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 무척 도움된다...

   "하늘 빛"님이 운영하시는 "종, 그 울림의 미학-그리고 인생의 메아리"라는 블로그인데,

   찾아가는 주소는  http://blog.daum.net/ring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