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기획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2. 국보 청자는 몇 점이나 있을까?
3. 고려청자의 시대적 흐름 - 용도와 기형, 문양의 변화를 중심으로...
4. 고려청자의 다양한 色(색) - 도기와 자기, 청자와 백자, 자토와 유약...
4-1. 이런 도자기도 고려청자였나?
4-2. 도자기란 무엇일까? - 도자기란 명칭의 유래(영어 문화권)
4-3. 도자기 명칭(한자문화권)의 유래와 청자와 백자의 차이 - 소성온도
4-4. 청자와 백자의 차이 - 자토와 유약, 빙결까지...
4-5.
5. 몇가지 메모 - 쉬어가는 페이지...^^
6. 우리나라에서 고려청자가 조선백자보다 더 귀한 이유
7. 천하제일 비색청자 - 고려청자
4. 고려청자의 다양한 色(색) - 도기와 자기, 청자와 백자, 자토와 유약...
4-1. 이런 도자기도 고려청자였나?
이번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의문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청자 맞아? 이런 색깔의 도자기도 고려청자인가? 푸른 빛 혹은 옥빛을 띠어서 청자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모양과 문양의 다양함에 익숙해지는 건 어렵지 않은데, 비취빛을 띠지 않은 도자기까지 제다 청자로 분류해 놓다니, 도대체 靑磁(청자)의 기준이 뭐지?? 고려시대 때 만든 것은 모두 고려청자인가? 하는 의문들 말입니다.
<이 매병이 흑자(?)가 아니라 청자(!)란다... 허걱~ 도대체 청자의 기준이 뭘까? 내 고민의 시작이었다...^^ 이런 색깔 중에 흑유자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청자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려 한다... 철채퇴화... 단순한 도자기인 거 같은데 실은 일반 청자보다 한단계 공정이 더 들어간 거 란다... 초벌구이 한 표면에 철사 안료를 칠하고, 문양을 그릴 부분을 긁어낸 다음, 백토를 붓으로 그리고 다시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를 해서 완성하는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생각해보면 색감으로만 도자기를 분류한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학술적이지도 미술사적이지 않은 평범한 시각에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겁니다. 백자, 흑자, 홍자, 황자, 은자 등등등... 그런데 백자 빼놓고는 없지요? 까만 색깔 도자기도 청자로 불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의 종류는 청자와 백자, 그 중간에 있는 분청사기와 토기... 이렇게 네가지로만 분류되고, 또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청자와 백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요? 정말 세상에는 청자와 백자만 있는 걸까요?
<이것도 분명 청자(↓)다... 이건 위 철채퇴화 청자보다 훨씬 단순하게 만들어진다... 산화철 안료로 바탕에 곧바로 그림을 그렸으니까...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청화백자다... 단, 청화백자의 안료 코발트는 고가임에 반해, 철화청자의 안료 석간주는 싸구려였기 때문에 고급청자로까지 유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식명칭이 청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명찰 몇개를 같이 올린다... 분명 청자다...^^>
사실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더 많은 의문들이 쏟아집니다. 중국과 한국, 베트남을 빼면 일본이나 유럽에는 청자가 없었을까? 왜 고려청자의 맥은 끊어졌을까? 沙器(사기)는 뭐지? 백자가 대세로 등장한 이유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도자기란 무엇이고 그 역사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까지 나갈 수도 있지요. 사실 제가 이번 전시를 소개하는 이유도 위의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려보고 싶어 시작했던 거니 시간나는 대로 하나씩 답안을 만들어 가보도록 하고, 일단 다양한 색깔의 고려청자를 감상하면서 도자기의 역사를 통해 靑磁(청자)의 정의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걸 정리하겠습니까? 조금 지루하더라도 가보죠...^^
<연꽃 넝쿨무늬 매병... 마찬가지지? 도안과 문양의 다양성을 소개하고자 올린다...>
4-2. 도자기란 무엇일까? - 도자기란 명칭의 유래(영어 문화권)
맨 먼저 ‘도자기’란 명칭에서부터 시작할까요?
도자기의 영문이 china고, 中國(중국)의 영문표기가 China지요?!(영어사전 찾아보세요...^^) 왜 같을까요? 간단히 답하면 유럽(영어문화권)에서 도자기란 매우 중요한 용품이었는데, 그걸 생산한 나라를 결국 중국이라 부르게 됐다고 하네요?!^^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는 도자기를 100%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는데(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으니까!) 오랜 역사 동안(대략 천년은 훨씬 넘겠죠?) 그 물건을 생산한 곳이 바로, 1,700여년 동안 도자기를 만들어 수출하던 중국 장시성(양자강 중하류 남쪽)의 한 작은 마을인 ‘昌南(창남)’이었고, 이를 영어 china로 발음하면서 결국 중국의 나라이름으로 굳어졌다(대륙의 찬란한 기억/광하해운문화공사엮음/북폴리오/398P/2004년간... 어렵게 본문을 다시 찾아보니 제가 확대해석?^^)고 합니다. 그 창남지방이 송나라 때부터 ‘경덕진’이라 불리는 곳이지요. 그러니 창남이 영어 단어 china가 되었는지, china가 창남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인류의 도자기 역사에서 종주국 중국의 위상을 인정하고 시작해야겠군요.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용과 봉황이 있어 찍어 봤는데, 색감이나 문양이나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이런 걸 '분채'라 하는데, 현재 도자기 시장을 주름잡는 도장이다...>
* 참고로 덧붙인다면 ; 유럽에서 최초로 도자기를 자체 제작 년도와 생산지는, 1710년 독일의 작센지방입니다. 여기에서 만든 도자기 상품명이 ‘마이센(지역 이름,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영국의 웨지우드와 함께 현재 세계3대 도자기 명품 중 하나)’이고, 이후 고령토에 쇠뼈를 갈아 넣어 강도와 색감을 강화시킨 영국의 ‘본~차이나(이름 자체가 china입니다!!, 영국 웨지우드사 제품)’와 함께 유럽도자기의 대명사처럼 굳어지게 되지요. 생각해보세요. 나무와 금속 그릇으로 식사할 수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의 위생수준과 그 고충을... 그래서 예부터 도자기는 유럽 각국의 왕실과 귀족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최고의 생활용품 뿐만 아니라 감상용 소장품으로 얼마나 비싸고(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과 같았다고...) 인기가 높았을 것인지... 또한 육류가 주식이었던 그들에게 향료(후추), 차와 함께 도자기는 매우 중요한 거래물품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체제작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역과 약탈뿐이었습니다(침소봉대하면, 후추, 차, 도자기 때문에 제국주의가 발생했다... 그런 말이 되나요?^^).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너무 현대적인 걸 찍었나? 맘에 드는 도자기가 없었던지, 그때 내가 도자기를 몰랐던지, 가이드 따라 시간 맞춰 다니다보니 정말 제대로 못 본건지...ㅠㅠ>
4-3. 도자기 명칭(한자문화권)의 유래와 청자와 백자의 차이 - 소성온도
그럼 우리들에게 도자기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죠?
그렇다면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적으로 陶瓷(질그릇-도, 사기그릇-자)를 굽는 온도(소성온도라고 하죠)의 차이랍니다. ‘陶器(도기)’는 800~1,100℃, ‘瓷器(자기)’는 1,300~1,500℃(그 중간쯤에 있는 게 ‘沙器(사기)’입니다. 어렸을적 ‘사기그릇’ 깨뜨리고 야단맞던 거 기억하시는지...) 생각해보면 도자기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土器(토기)’고, 여기에 녹유를 칠한 ‘질그릇(=도기, 이중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게 ‘唐三彩(당삼채)’고, 예전에 우리 일상에서 흔히 봤던 '장독 항아리'는 도기 중 가장 고온인 1,100℃에서 구워 따로 '옹기'라고 부르기도 하죠)’이 있었지만, 토기의 소성온도가 600~900℃(장작불에 넣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온도)임을 감안하면, 결국 도자기의 역사적 발전 경로(토기→도기→자기)는 높은 온도를 얻고 관리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과정과 일치하게 됩니다.
<토기... 가장 기본적이라 생각해서 올린다... 재현품을 구입한 건데, 이사하다가 머리 위쪽이 똑 부러졌다...ㅠㅠ 흑백사진이나 칼라나 비슷해서 그냥 올린다... 90년대 중반에 찍었던...^^>
<당삼채... 대만고궁박물관에서... 당삼채도 결국은 도기다... 우리가 아는 당삼채는 훨씬 화려한데...>
즉 도기에서 한단계 더 발전한 것이 자기고, 여기에 청자와 백자가 있습니다. 개체의 발생은 계통의 발생을 반복한다고 했나요?! 이 개념과 부합하는 예는 아니지만, 자기는 도기의 소성온도와 같은 800℃ 정도에서 먼저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른 다음 1,300℃ 이상에서 재벌 구워 완성 됩니다. 그러면 청자와 백자의 차이가 무엇이냐고요? 백자의 소송온도가 청자보다 높습니다. 즉 청자가 1,250~1,300℃ 전후, 백자는 1,300℃이상이어야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결국 백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약이나 자토의 성분은 둘째 치고, 높은 온도를 관리하는 기술이 있어야 했으니, 당연히 기술 수준에서도 청자보다 백자가 높고, 시기적으로 후대에 개발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국화 모란무늬 정병/12~13세기... 이 당시 만들어진 청자의 색감이 모두 맑고 투명한 담록색, 혹은 비취색인 것만은 아니다... 이처럼 약간 탁하다 해야하나, 회청색이라 해야하나, 회갈색과 녹색이 섞여 있기도 하다...>
결국 도기와 자기의 구분, 청자와 백자를 분류하는 핵심은 불, 즉 온도의 문제지요. 햇빛에 자연 건조된 토기와 인위적으로 소성을 가해 물리적 변화를 유도한 도자기는 근본적 차이가 있고, 또한 800~1,100℃로 구워낸 도기가 吸濕性(흡습성) 때문에 쉽게 파손되고 위생적으로 취약하다면(김치나 된장을 저장하는 장독이 숨을 쉰다는 말 기억하시죠? 그래서 도기는 위생면에서는 떨어지지만, 친환경적 성질로 요즘 다시 각광 받게 되지요), 1,300℃ 이상 고열로 경질화된 자기는 사실 인류의 실생활 역사를 바꾸게 되지요(인간 수명의 연장 등...). 또한 1,300℃ 전후에서 완성된 청자는 자토의 성질 때문에 변형과 파손이 빈번했고(효율성과 경제성에도 문제가 있었겠지요?), 도자기의 생명인 흡습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불완전 완성태였던 것이기 때문에, 자토의 성질까지 관리하여(‘수비’한다고 하지요?!) 제작된 백자는 가장 높은 온도로 구워낸 도자기의 최후 완성태가 되는 것이죠.
<백자 참외모양 주자와 승반... 고려시대에 청자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처럼 백자도 만들어졌다... 우리가 모르거나 무시해서 그럴뿐... 청자와 백자는 분명 다른 종류의 도자기다...>
* ‘흙’을 구워내는 온도의 차이가 별거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자토와 유약의 성질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가 분명합니다. 먼저 지난번 낙산사 조선초기(1469년) 청동종(보물479호)이 녹아 우릴 안타깝게 했는데, 산불로 인한 온도가 1,000℃ 전후였음을 감안하면, 흙으로 만든 도자기가 ‘철(금속)’보다 더 고온에서도 견딘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비교할 수 있겠네요. 또한 현대에 이르러 우주선이 가능했던 것은 도자기술에서 발전된 ‘세라믹(ceramics, 중국어로는 化工陶瓷(화공도자)입니다)’ 때문(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갈 때 발생하는 고온의 마찰열(5,000℃ 이상이라죠?)에 견디는 금속은 없죠. 그래서 개발된 게 세라믹, 또 요즘 북한 미사일 때문에 관심이 제고된 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연료분사체 주위도 금속이 아닌 세라믹으로 제작됩니다)이었죠?!
<봉황머리 모양 병/중국 송/12세기... 이건 진짜 애매하지? 보이는 건 백자인데, 공식명칭은 청백자라니...ㅋㅋ 조금 더 풀이한다면, 이 병은 청자용 자토에 백자용 유약이 사용된 것이라 이해하면 맞을 거 같다... 결국 청자라는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자토와 유약, 두가지 모두 청자용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나?>
<보물240호 - 백자 투각 청화 모란 당초문 호/17~18세기... 이건 완벽한 백자지?... 백자도 워낙 고온에서 굽는 도자기다 보니 이처럼 약간의 변형이 생긴다... 본래의 색감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해 아쉽지만, 정말 색감이 좋은 백자 중 하나다... 청자때부터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도자기는 이제 세계 5대 브랜드로 들어가는 중이고, 아직 우주개발은 커녕 미사일도 기술제휴를 받아야 한다... 과거에 이랬어가 아니라,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이~~~ 그런 말을 하고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수준의 기술(과학기술이란 표현이 맞겠죠?!)도 지금은 간단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15~6C까지 불을 다루어 도자기를 만들 줄 아는 나라는 지구상에 중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밖에 없었답니다. 오늘날 명품으로 유명한 유럽도자기들이 백자(온갖 화려한 색깔과 문양, 기형으로 만들어지지만 모두 백자(!)로 분류됩니다)인 이유는, 18C까지 도자기 만들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따라잡아야 할 도자기는 최고 수준의 중국과 일본산 백자들이었을테니, 백자의 전단계인 청자는 당연히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유럽산 청자는 존재할 수가 없었겠죠. 대신 그들은 물이 새지 않는 그릇과 식기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금속과 유리공예를 발달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암스텔담에서 샀지? 이것도 도자기다... 이것도 백자일까?^^ 당삼채... 즉 도기의 변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4-4. 청자와 백자의 차이 - 자토와 유약, 빙결까지...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이 바로 토질과 유약이지요.
토기와 도기까지는 흔히 말하는 진흙이 사용되지만 고온에서 소성되는 자기는 자토(磁土=자기 제작용 흙, 胎土(태토), 사토, 白土(백토) 여러말이 있지만, 바위가 부서진(풍화) 것으로 이해하면 맞을 듯... 사기그릇이란 말도 ‘沙土(사토)’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로 만들어지고, 그 이름을 흔히 ‘고령토(이것도 질 좋은 자토가 나온 중국의 ‘고령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라 부르지요. 그러면 같은 자기에 속하면서 같은 흙을 사용하는 청자와 백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한마디로 ‘철분’의 함유 여부입니다.
<연꽃 넝쿨무늬 병/13세기... 도자기에 철이 많이 사용되면? 이렇게 붉은 빛이 나겠지. 또는 검정색... 이 도자기도 청자일까? 청자이면서 상감기법이 사용되었으니 상감청자라 불러야 공식적이겠지? 물론 아무도 그렇게 부르거나 느끼지 않겠지만...^^ >
<넝쿨무늬 편병/13세기... 철유자라고 분류된 이 자기들도 청자에 포함된다... 문양처럼 돌출된 부분은 철재안료를 사용하고, 음각된 부분은 유약을 바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약바르지 않은 부분이 거칠고 일부 표면이 탈락하기도 하고... 거친 표면과 문양의 굵은 선 등이 고려인들의 심성에 맞지 않았는지 크게 유행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자가 완성될 때까지 얼마나 다양한 문양과 기법 등이 실험됐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런 과정에서 심성-기호와 취향에도 맞고, 실용적으로도 개선되고, 예술적인 완성도가 높아진 청자가 창작 되어가는 게 아니었을까?...>
우리 피 속에도 철분이 포함되듯이 흙 속에도 철분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함유량이죠. 흙에는 대부분 철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먼저 청자부터 살펴보면 적당한 량, 즉 철분이 1~3% 정도 함유된 자토로 구워야 청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백자는? 이것도 한마디로 정리하면 철분이 없거나, 철분이 완전히 제거된 고령토로 구워야 우리가 생각하는 백자가 됩니다. 즉 철분이 함유된 자토로 구우면 청자가 되고, 철분이 없는 자토로 구우면 백자가 되는 것이죠. 실제로 철분이 없는 고령토를 경기도 광주에서 찾기 전까지 초기 백자(고려백자 포함)를 만들기 위해 도공들은 자토를 물로 씻거나 햇볕에 말려(‘수비(!)’) 철분을 제거했다고 합니다.
<연꽃 넝쿨무늬 항아리/12세기... 상감청자에 가장 많이 사용된 색깔이 흰색이고, 이걸 백토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미 상감청자가 한참 만들어지고 있을 때 아무리 구워도 백색을 유지하는 고령토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되나? 고려시대에 백자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약이란 초벌구이한 도자기(그냥 토기에 바르면 증발하거나 흘러내려 얼룩이나 반점이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초벌구이한 다음에 유약을 바릅니다. 혹시 일본의 막사발을 기억하시는지... 자세히 보시면 얼룩이 흘러내린 자국이 심한데,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지만, 초기에는 그걸 몰랐던 사기장들의 다양한 실험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에 입히는 것으로, 도자기의 유리질화를 완성 시키는 광택재입니다. 그게 뭐냐구요? 어렸을 적 양잿물 기억하시죠? 소나무, 벼, 쌀겨 등을 태운 재를 물에 타서 휘이 저으면 그게 양잿물이고, 이 잿물이 바로 도자기에 바르는 유약입니다. 이것을 灰秞(회유, 이 한자에 잿물의 재료와 성질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는 규산, 산화물질,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고, 이 유약이 자토의 철분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청록색을 띠며 청자가 완성됩니다.
(이것도 '우연히(!)' 발견됐다고 하는데, 유약이 많이 발라진 곳에 가마속의 소나무 재가 들어갔고, 그 재가 묻어 있는 곳의 색깔이 비취색이었다는 말이 있죠. 유리질화 시키는 다양한 실험에서 결국 도자기를 만들던 과정의 내부 소재가 주요한 공정으로 바뀐 예가 아닐런지...)
<꽃무늬 주자/12~13세기... 유약이 발라지면서 청자는 식기로서 완성된다... 불투수 유리질화 되면서 쉽게 물들지 않고, 음식물의 보관도 용이해지고... 무엇보다 색이 살아난다는 점이 중요하겠지... 잿물... 정말 신기하지 않나? 어찌 그 물을 한번 칠했다고 이런 색깔이 나온다니??^^ 그걸 처음으로 시도한 이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잿물의 성분과 최적량을 맞추기 위해 고심했을까?? 참 대단한...^^>
그러면 백자에 사용된 유약는 다를까요? 여기에도 철분이 들어갈까요? 이건 조금 더 복잡하고 전문적인 영역인 거 같아요. 유약에 관련된 논문들도 다수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무튼 거기까지는 제 지식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고 몇가지만은 요약할 필요가 있겠네요. 잿물은 오랫동안 사용됐는데, 이게 앞서 이야기한 불의 온도와 결부되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다양한 색깔로 나타나겠죠. 또한 불은 산소에 노출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산화염과 환원염으로 구분하는데, 붉은 빛(고기 구워먹을 때 장작불을 생각해보세요. 산소에 노출된 산화염)과 시퍼런 불빛(숯불가마에서 막 가마를 깨뜨렸을 때 보이는 푸르딩딩한 불꽃... 이게 환원염)이 그겁니다. 그래서 산화염에서 구우면 유약은 온도에 따라 황색 → 갈색 → 적색 순으로 나타나고, 환원염에서 유약은 남색 → 녹색 순서로 변하게 됩니다.
<토기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색은 결코 다양하지 않죠? 그런데 토기의 미묘한 색깔의 차이에는 불의 성질과 온도의 차이가 있다니, 다음부터는 조금 더 찬찬이 살펴봐야겠다는 생각...^^>
<장독... 엄밀히 말하면 도기고 옹기다... 똑같은 잿물(유약)이지만 색깔이 이렇게 나타나다니...^^ 자기 이전의 최고단계의 도기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도기는 계속 만들어진다... 세종대까지 도기소와 자기소로 구별하여 관리하다가, 성종대 이후부터는 만드는 이를 와장과 사기장으로 구별하여 관리했고, 근대에 들어와서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가 아닌 옹기와 자기로 구별하기 시작했다고...>
유약과 불의 성질에 따라 몇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토기의 색깔들은 대부분 갈색이죠? 장독 항아리는 대부분 적색이고, 그리고 최초의 청자들은 회갈색을 띠다가 남색, 절정기 청자는 녹청색을 띠지요? 결국 불과 흙과 유약이 과학과 예술로 만나는 게 도자기인가요? 그래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을 생각한다>에서 이렇게 표현했죠 “熱度(열도)의 고저는 물론이고, 流通(유통)의 강약과 불꽃과 연기의 과다, 시간의 경과와 예기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원인이 기물의 美醜(미추)를 결정하는 것이다”고...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향로와 주자... 같은 자토와 같은 잿물을 사용했지만 색감이 이렇게 달라진다... 단지 사람들의 기호나 도공들의 경험만이 아니라 불의 온도에 따라서도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 미묘한 차이들까지 모두 분석했기에 미추에 대한 자신있는 견해를 내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인용했는데, 감정도 어렵겠지만, 감상이란 것도 풍부하고 즐길 수 있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는만큼 보인다고? 보이는 걸 남들에게 꺼내놓는다는 건 쉬울까??...>
<그렇다면 이런 빛깔은 청자 자토에 청자 유약이 발라지고, 그 중 최고 온도의 산화염에서 구워졌다는 말이 되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결국 도자기는 자토의 철분과 유약의 철분이 얼마나 함유되었고, 어떤 온도에서 화학적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12세기 중후반 이후 청자와 백자를 만들 때 사용하던 유약은 석영과 장석 등이 섞여 가장 품질이 좋다고 하는데, 이때의 변화중 하나가 빙결의 형성입니다. 석영... 어렵지만 모래나 숫돌을 생각해보세요. 혹시 압니까? 도공들이 공구를 숫돌에 갈다가 잿물에 씻었다. 그랬더니 유약에 빙결이 생기고 또 다른 맛이 나오더라...^^
실제로 12세기 중반 無紋(무문)청자(국보112호)까지는 빙결(도자기 표면에 금이 간 것 같은 현상)이 없고 상감청자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하얀색 투명한 백자도 자세히 보면 청색빛을 띠지요? 그건 13세기 전후부터 석영 등이 포함된 유약을 썼다는 말이 되고, 은은한 청색빛을 띤 백자에는 유약이나 자토에 철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는 말이 됩니다.
<빙결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두 사진을 붙여봤다... 유약에 석영과 장석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차이에 따라 빙결이 결정된다... 그것도 신기하지? 빙결이 생겼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걸 좋아하게끔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이 바뀌게 돼 간다는 것도... 근데 사진이 정확히 비교됮 않아 조금 그렇네?? ㅉ>
4-5.
그렇다면 청자와 백자의 차이, 그 결론은 유약(무슨 색을 칠했는가에 따라 구분 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청자와 백자를 가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소성온도가 낮은가 높은가와 자토에 철분이 들어가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첨언하면 청자란 <철분이 함유된 자토로 만든 도자기>고, 백자는 <철분이 제거된 자토를 최고 높은 온도로 구운 도자기로, 청자보다 한 수 위, 즉 도자기 최고 최후의 완성태>라는 말이 되겠네요. 이 점은 고려청자의 역사적 변천과정과 백자의 등장에서 다시한번 다뤄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청자의 다양함에 대해서 정리해야겠네요.
<고려시대 백자 매병/12세기... 결국 청자가 되기 위해서는 청자용 자토와 유약이 발라지고, 백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백자용 자토와 유약이 발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에도 이미 백자가 만들어졌다는 말? 맞다... 이미 송나라(앞서 말했던 경덕진)에서는 청자가 만들어지던 요주요(耀州窯)와, 백유자기가 만들어지던 자주요(磁州窯)가 구분 되어 있었으니, 이미 백자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고, 중국에서 백자는 이미 원나라대부터 유행한다...>
<보물345호 - 백자 모란무늬 매병/12~13세기... 이건 고려시대 만들어진 백자다... 그리고 상감에 사용되던 백토는 철분이 이미 제거되어 청자용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해도 담록색을 띠지 않는다는 걸 고려 도공들은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이처럼 역상감(바탕이 청자고 문양만 하얀색이 아니라, 바탕을 백자로 만들고 문양에만 청자색이 나타나게끔 하는 방식)기법의 백자를 만들 수 있었겠지... 끊임없는 변화와 다양한 실험... 고려도공들에게는 그런 실험과 도전정신이 충만했을 거고, 이걸 가능케하는 각양 각층의 주문 즉 수요가 뒷받침 되었던 거 같다... 백자의 탄생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졌거나 수입대체의 효과만이 아닌 자생적으로 기술이 축적될 토양이 있었다는 말이 되지? 견강부횐가?^^>
고려청자하면 떠오르는 청록색, 연두색, 담록색, 비취색이 아닌 도자기들까지 청자라고 부르는가의 의문은 이제 풀렸습니다. 초기 고려청자들을 보면 색깔이 의외로 탁합니다. 단적으로 회갈색 혹은 녹갈색이죠. 그리고 12세기 전성기에도 여전히 비취색 청자와 함게 다양한 색깔의 청자들이 생산됩니다. 제 나름의 이유는 도자기를 생산하던 가마터의 철분 함유량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생각해보세요. 철화청자를 연상해보시면, 철분 안료를 사용하여 불에 구우면 붉은색이나 검은색으로 보이듯, 철분이 많을수록 도자기의 색깔은 갈색계통이 나타날 수밖에 없겠죠? 비슷한 온도(모든 가마가 일정한 온도가 아니었을테니 유약과의 화학반응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와 똑같은 제작기법을 거치지만 철분 함유량(모두가 1~3%가 아니었겠죠?)에 따라 고려청자는 다양한 색깔을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오사카시립 도양도자 미술관/12세기... 그래서 이런 항아리도 청자로 분류되는 것이고, 이 중 최고의 작품이 국보113호 버드나무 무늬 통형 병이다...>
<국보113호 - 화청자 양류문 통형 병/12세기... 또 하나의 공식명칭이 '청자 철화 양류문 통형 병'이니 이것도 분명 청자다... 이번 전시회에는 보이지 않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장에 있는데 왜 같이 있지 않는 것이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국보 갯수가 하나 더 늘었을텐데...^^ 근데 문화재 공식 사이트의 이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 좌우가 바뀐 것 처럼 보인다... 전후면 두 그루의 버드나무인데 하나가 더 있나? 다음에 확인해 봐야겠다...>
<국보113호... 2008년에 찍은 사진... 색감이 제대로 드러나진 않지만, 이 청자가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색감보다는 아무래도 문양 때문이라 생각돼, 그런대로 만족한다...^^>
<국보113호... 반대편... 버드나무의 문양도 조금 다르고, 면의 매끄러움도 다르지? 당시 고려도공들의 수준이었을까? 그보다는 당시 고려인들은 이런 문양-여백을 갖춘 간결한 문양-을 더 선호했었다는데 나는 한표...^^>
단지, 당시에 조세를 특정 공물로 납부하는 ‘所(소)’라는 특수행정구역에 편입된 강진지역(부안은 ‘소’가 아니었답니다) 가마터에서는 청자 중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비취색으로 현현될 자토가 깔려있었고, 그래서 유명해진 곳에 최고의 기술자들이 모이면서 그곳이 유독 유명해진 것이죠. 즉 고려청자의 색감은 흙과 불과 유약을, 갖은 시행착오를 거쳐 개선하고 계획적으로 개발해서 차츰차츰 완성된 게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죠. 결국 완숙한 기술자들이 축적될 수 있었던 시점에 강진과 부안에서 비색을 만들 최적의 철분이 함유된 곳이 발견되었고, 결국 강진과 부안에서 고려청자는 절정기를 꽃 피웁니다.
<용머리 장식 붓꽂이... 다른 각도의 사진을 첨부하고, 찍었던 사진을 모아 연결해봤다... 결국 강진 사당리에서는 이런 색감을 가능케한 흙이 있었고, 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기형을 만들 수 있는 도공의 솜씨가 축적되어 있었다... 다양한 기형... 그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려도공의 수준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강진과 부안의 가마터가 폐쇄되거나 자토가 고갈되면 고려청자는 쇠퇴할 수밖에 없고 단절될 수밖에 없는 것까요? 네~ 맞습니다. 고려청자의 변화과정을 추적해보면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또한 고려 멸망 이후 300여년 동안 청자는 계속 만들어지지만 더 이상 강진 사당리 수준의 색감과 완성도를 갖춘 청자는 생산되지 않습니다. 제가 유독 이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복잡(?)합니다. 시대정신이 고려청자의 색감을 원했다? 종교와 사상이 그걸 뒷받침했다? 불교왕국 고려가 멸망하고 유교왕국 조선이 발호했기 때문에 청자가 사라지고 백자가 득세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의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쇠퇴에는 시대의 혼란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걸 가능케 하는 기술의 객관적 조건이 붕괴된 데 있었습니다.
<모란무늬 항아리/오사카시립 동양도자 미술관/13세기... 기형, 문양 모든 게 완벽해진다... 흔히 도자기를 선으로까지 본다면 얼마나 완숙해졌는가도 가늠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색감이 떨어지는데는 그건 취향과 선호도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런 색이 가능한 흙이 바닥났다는 걸 인정한 이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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