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기획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2. 국보 청자는 몇 점이나 있을까?
3. 고려청자의 시대적 흐름 - 용도와 기형, 문양의 변화를 중심으로...
4. 고려청자의 다양한 色(색) - 도기와 자기, 청자와 백자, 자토와 유약...
5. 몇가지 메모 - 쉬어가는 페이지...^^
5-1. 운동회는 왜 청백전으로 치러질까?
5-2. 쓸데없는 이야기 - 일본의 3대 전투와 3대 사건, 그리고 도자기
5-3. 고려청자는 왜 천하제일 비색일까? - 비색(秘色, 翡色)의 의미...
6. 우리나라에서 고려청자가 조선백자보다 더 귀한 이유
7. 천하제일 비색청자 - 고려청자
5-3. 고려청자는 왜 천하제일 비색일까? - 비색(秘色, 翡色)의 의미...
삼천포로 빠지던 이야기를 다시 고려청자로 돌립니다. 이번 전시회 제목이 <천하제일 비색청자>입니다. 비색청자여서 천하제일이 된 건지, 비색청자 중 천하제일인지 조금 불분명하지만, 아무튼 천하제일이라는 자부심이 깔려 있습니다. 누가 그랬냐구요? 잘 몰랐는데, 전시회 중간 설명문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송나라의 태평노인이라는 사람이 그랬다는군요.
그 양반이 무엇을 하는 분인지는 몰라도 천하제일 아홉가지를 골랐는데, 그중 고려산 물품이 두 개로, 청자와 종이였다고 합니다(얼마전 자금성을 복원하면서 모든 제품을 천하제일로 꾸미기로 결정했는데, 종이만큼은 중국산 품질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바로 조선의 닥종이에 비해서 말입니다.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제조기술-특히 손으로 만드는-은 천하제일이었나 봅니다. 물론 종이의 발명국이란 자긍심 때문에 끝까지 자체 개발해서 한국산 종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완결적 사고를 가진 중국인들이 천하제일을 뽑으면서 고려의 물품을 두 개씩이나 골랐다는 게 의아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의 평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그의 눈썰미만큼은 인정하기로 하고, 우리가 강조하는 건 도자기 종주국 중국사람이, 그것도 가장 화려한 도자기를 만들었던 송나라대 사람도 칭찬할만큼 고려청자의 색깔이 좋았다는 건 분명한가 봅니다.
<포도넝쿨무늬 표주박모양 주자... 국립중앙박물관... 이렇게 예쁜 옥색도...>
일단 평가의 기준과 권위를 오래전 중국사람으로부터 빌려왔다는 게 조금 석연치 않지만, 왜 그들은 그토록 고려청자의 빛깔을 좋아했을까에서 시작해야겠죠?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고려청자가 玉(옥)과 가장 흡사한 빛깔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옥을 신성시했던 역사는 동서고금에 공통으로 나타나지만, 일단 우리의 경우 玉皇上帝(옥황상제), 金科玉條(금과옥조)... 이 두 개면 충분한 설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원은 홍산문화죠. 기원전 6천년이고, 발상이 요동지방이니 우리의 선조이기도 합니다. 결국 옥에 대한 선망과, 가치평가는 사대주의 관점을 떠나 기본적으로 중국과 한국 구분이 없는 거 같습니다(조선시대에도 왕의 몸을 ‘옥체’라고 했죠? 얼마전까지 예쁜 목소리를 옥소리라 하지 않았나요? 허걱~~~^^).
<기원전 6천년 경에 만들어진 옥 꾸미개... 홍산문화... Daum에서 스크랩...>
우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도 청동기 시절의 고조선시대부터 지속적으로 무덤 부장품으로 발굴되는 곡옥(曲玉)이 첫 번째 예가 될 거 같고, 철기와 농경문화가 정착된 이후를 생각한다면 신라의 금관에 장식된 곡옥까지, 옥은 최고의 권위를 상징했던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죠. 고려를 개창한 왕건의 무덤에서 발굴된 옥으로 만든 ‘왕건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옥과 가장 아름다운 옥색은 수천년 동안 지배층, 피지배층을 떠나 귀천의 상징이자 잣대였음을 부정할 필요가 없겠죠(문양으로도 곡옥은 동서고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아메바’ 문양이지요. 5~60년대 특히 유행했고, 아직도 소위 명품 가방과 옷감에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황남대총... 신라시대에도 금관을 화려하게 꾸민 장식은 곡옥이었다... 금이 더 귀했을까? 옥이 더 귀했을까?>
<미추왕릉 발굴 곡옥... 옥은 기원전 6천년 홍산문화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무덤 부장품을 꾸민 최고의 보물이었다...>
그런 역사문화적인 곡절이 있었기에 수천년 전부터 중국이든 한국사람이든 무덤의 부장품으로 옥을 묻었고, 살아생전에는 옥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수요가 많았을 거 같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겠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춘천옥이 유명하듯이 고운 빛깔의 옥 생산지는 한정되어 있고, 또한 단단한 돌의 대명사처럼 장식품으로 가공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옥의 빛깔은 차용하되 자연에서 가공하기 쉬운 소재를 고대에서부터 부단하게 찾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일본 국보로 법륭사에 있는 ‘玉蟲廚子(옥충주자, 저는 이 주자에서 (나전)칠기의 가장 원시적 형태를 찾습니다. 백제, 신라의 기술이기도 하고, 조선의 주요한 가공품이었죠. 물론 영어단어 japan이 칠기이듯이 오늘날은 일본이 종주국처럼 인식되어 있지만...)’가 아닐까 싶네요.
<신라시대 말안장 복원 말안장 꾸미개와 법륭사 소장 옥충주자... 금속으로 마무리된 코너 마감재 속을 비단벌레로 장식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70년대 복원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근래에 복원했다... 스크랩...>
그 옥충이 바로 ‘비단벌레’인데 이름부터 玉(옥)이 들어가 있으니 연관성은 짐작하실테고,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황남대총의 말안장 꾸미개를 복원하면서 비단벌레(한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서식하며, 벚나무의 해충이죠. 기온의 변화로 한반도에서는 많이 사라졌다고...)의 신비한 빛깔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죠. 결국 비단벌레의 오묘한 날개도 옥과 비슷한 빛깔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치를 인정 받았을테고, 옥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말이 됩니다.
<비단벌레... 문화재청에서 스크랩...>
그런데 흙으로 만든 도자기가 옥과 비슷한, 혹은 그 보다 더 신비로운 색깔을 띠게 되었다? 한마디로 돌로 깎아야 했던 것들을 흙으로 만들 수 있는데다, 채집이 한정된 비단벌레 등에 비해 대량생산과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가공 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중국뿐 아니라 고려에서 고려청자가 최고의 대접을 받으면 궁극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갖춰진 것입니다.
<말안장 꾸미개 속에 든 비단벌레 날개들이 보이지?>
문제는 원하는 색깔을 얻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 그것도 해결 됩니다. 바로 중국의 경덕진(징더전이 중국식 발음이지요?)과 한국의 강진 가마터 인근에서 발견된 흙과 그 당시에 개발된 유약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청자의 빛깔은 우연히 얻어진 것입니다. 가마속에서 도자기를 굽는데, 아직 굳지 않은 유약에 재가 날라 들어가고, 그 부분이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옥빛을 띠었다... 이를 진지하게 분석했던 도공들에 의해 청자의 유약도 개발되고, 보다 완벽하고 보다 아름다운 옥빛을 띠는 청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흙으로 만들 수 있는 온갖 기형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숙련된 자기공들도 축적돼 있는데다 그걸 원하는 재력 있는 소비층들까지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옥석을 쪼아야 하는 고충과 비단벌레를 잡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내면서도 더 다양한 형태의 옥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법륭사에서 옥충주자를 본 오랫동안 비단벌레의 소식만 들었지 실체를 보지 못했었다... 2009년 성수대교 북단 뚝섬, 지금은 서울의 숲으로 바뀐 곤충식물원에 전시된 비단벌레를 봤다... 관심이 있으면 결국 볼 수 있다...^^>
그러면 그렇게 만들어진 청자를 왜 비색청자라 했을까요? 경덕진(징더전)도 강진도 황실과 왕실에 진상품을 만들던 곳입니다. 빛깔 자체가 신비로웠겠지만, 옥이 귀했던 만큼 청자의 제조기술 역시 비밀스러워야만 했을 겁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경덕진과 강진 청자를 秘色이라 부르며 발색기법을 비밀리 보존하려 했고, 결국 태평노인에게 고려청자는 천하제일의 秘色청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같은 청자도 천하제일로 만들고, 독창적인 상감기법까지 개발할 줄 알았던 고려 도공들에게 뭔가 다른 이름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들은 전통의 옥충주자를 만들듯이 조금 더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색감을 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연속에서 모본을 찾았고, 그것은 돌(石)이 아니라 생명, 즉 새(鳥)였습니다. 그게 바로 물총새였나 봅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翡(물총색 비)色청자입니다.
<이게 물총새다...ㅋㅋ 이 쉬운 길을 나는 멀리 멀리 돌아다녔다... 카페 녹색세계에서 스크랩...>
<저 물총새를 보면 딱 청자의 비색이 보이지? 들국화님 블로그에서 스크랩... 청색+녹색... 물총새가 저런 빛깔이었고 예전부터 비색이라 불렀으니 우리 선조들에게 파란색과 녹색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얼마전까지 나도 녹색신호등을 파란색 신호등이라 불렀으니 구분은 파란색과 퍼런색만 있는 것일까??...ㅎㅎ>
사실 저는 <천하제일 비색청자>라는 전시회 제목을 보며 당연히 秘色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그 비색이 이 翡色이었죠...^^ 왜?? 청자의 빛깔, 색감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버거운데 왠 난데없이 물총새 翡(?)... 크흐~ 한방 얻어맞았다 생각했지요.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 당연한 이야기지만 몰라도 될 걸 모르는 건 부끄럽지 않지만, 관심이 있는 거나 알아야 될 걸 모르는 건 답답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물총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비처럼 따뜻한 남쪽나라(필리핀 등)에서 월동을 하다가 여름, 전국 각지에 분포하는 새랍니다. 그리고 날개와 몸통의 깃털 빛을 보면... 그게 바로 고려청자의 빛깔입니다...^^
<조금 더 녹색에 가까운 사진도 찾아봤다... 나도 언젠가는 이 물총새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겠지? 벌새를 보겠다고 마음먹은지 한참만에 봤었는데, 이 새는 얼마만에 내 앞에 나타날까?...^^ 카페 궁항초등학교 9회 동창회에 김대현님 사진...>
이 문제도 제게는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후, 고려청자의 빛깔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후 십여년을 넘게 자연에서 청자의 비색을 제 눈으로 보고 싶어 했었죠. 처음 우리의 문화는 중국, 일본, 서양과 다르게 자연과 동화를 우선시 했으니 자연의 빛깔을 최고로 쳤고, 특히 청자는 가을하늘의 맑고 투명함을 반영했다는 말에 필이 꽂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연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청자빛을 보려고 카메라를 들때마다 하늘을 향한 적이 있었다... 한강에서...>
<녹색산과 하얀구름, 그리고 파란 하늘... 그래도 청자빛 하늘은 잡지 못했지... 평창쯤에서...>
<산이 멀어지면 파란색으로 변한다... 여전히 녹색은 파란색과 같은 계통일까? 엄연히 빛의 삼원색은 빨파초인데 말이다...^^ 수종사 운길산에서...>
<한때는 하늘을 포기하고 짙은 연두색과 변화무쌍한 녹색에서 청자빛을 찾기도 하고... 치악산 가는 길...>
<그리고 이처럼 우연인지 불량 카메라 때문인지 어렴풋이 청자빛 하늘을 잡으면 즐거워했지... 대관령에서...>
그래서 틈만나면 옥빛 하늘을 찍어 간직하려 했었죠. 고속도로 가다가, 답사여행을 다니다가 문득 문득 하늘을 보면서 말입니다. 10여년이 지나도 그런 기회는 없었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혹시 산(山)의 투영이 아닐까? 산은 당연히 녹색입니다. 그렇지만 먼 산을 보면 푸르스름하죠(유화를 배울 때 아예 먼 산은 파란 물감을 쓰라는 선생님 말씀에서 한 방...^^). 가만보니 우리는 녹색 신호등을 보면서도 파란색이라 부릅니다. 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청색과 녹색은 동일한 계통으로 인식되는구나... 그래서 녹색(조금 심하게 연두빛도 있죠?)인데도 청자라고 불렀나보다... 그런 이유로 한 동안은 산에서 청자의 비색을 찾으려했고... 나중에는 그것도 안 돼서 물빛에서 찾았죠. 왜냐하면 물빛은 하늘과 산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투영하는 거잖아요.
<또 그러다가 하늘을 포기하고 물로 시선을 향했다... 물빛은 하늘의 투영이기도 하니까... 소양호에서...>
<짙은 녹음이 이처럼 녹색빛을 띠게도 만든다... 물은 모든 것의 반영이니까...>
<그리고 빛만 좋다면 물빛도 다양한 색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횡성 중금리에서...>
<결국 하늘보다는 물 빛에서 나는 청자빛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영월 선돌에서...>
<청색과 녹색이 적절하게 섞이면 이처럼 투명한 청자빛을 띠기도 한다... 호암미술관에서...>
어느 순간 그런 욕심도 잊혀졌을 때, 포기라는 말도 잊어버렸을 때 드디어(!!!) 옥빛 하늘을 보았죠.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서울 양평동에서 막걸리 마시는 선배들과 포장마차에 앉아 있다가 아무런 준비없이 본 겁니다...ㅎㅎ 사진기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지만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답니다. 벌떡 일어난 나에게 놀란 선배들에게 설명했죠. 고려청자의 비색은 비 갠 다음(습도),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먼 산 위(녹색 바탕),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청색과 흰색도 살짝) 조금 덜 늦은 오후에(주홍빛으로 변하기 전의 햇빛), 그 구름과 그 산 사이의 하늘에 투영된 빛(너무 복잡한가??)이라고...^^ 결국 하늘의 파란색과 산의 푸른색, 그리고 하얀 구름과 옅지만 습습한 운무가 남아있을 때나 보이는 천상의 색이라고 말입니다.
<답사여행 때도 청자의 오묘한 빛깔은 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역시 산이 멀어지면 파래지지?... 월출산>
<굴산사지 당간지주를 보면서도 고려청자의 빛깔은 내 무의식에 잠재돼 있었고...>
<단속사지 삼층석탑 뒤로 겹겹이 멀어지는 산의 색깔에서도 나는 고려청자 빛을 찾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고려청자의 빛깔은 내게 가장 신비스럽게 여겨지는 색깔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청량사에서...>
그런데 이번에 물총새 사진을 보면서 띠~잉했습니다...ㅎㅎㅎ 이 깃털에 담긴 단순한 비밀을 모른체 나는 그리 먼 길을 돌아다녔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 청자 감상을 즐겼을 사람들, 그 청자를 만들었을 사람들, 그리고 요즘 청자를 찬양하는 사람에게 비색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옥에 빗댈 수도 있고, 하늘에, 산에, 혹은 물에 견줄 수도 있겠죠. 다만 청자에서 하늘을 보고 싶은 사람은 높고 투명함을 강조했을 것이고, 청자에서 산을 찾는 사람은 깊고 그윽함을 노래했을 것이고, 물을 찾는 사람은 맑고 잔잔함을 즐겨 찾고, 옥과 비교하는 사람들은 고귀함을 찬양했을 겁니다. 어쩌면 고려청자에는 그 모든 것들이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그윽하면서도 깊이있게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고려청자의 빛을 무엇으로 지정하지 않게 됐다... 내 마음이 그리면 그것이 바로 빛이니까... 경회루에서>
<어쩌면 이렇게 싱싱한 봄 어느날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고려청자의 빛일 수도 있고... 용산가족공원>
<저 하늘을 수놓은 하얀 구름이 천학매병에 새겨진 바로 그 운학일 수도 있으니... 부여 어디쯤일 거 같다...>
<결국 내가 원하고 찾고자 하는 건 이렇게 밝고 평화스러운 기운과 은은하고 그윽한 자유스런 빛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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