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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방에서...> 드디어 김치를 '썰다'... 1304

 

 

 

 

 

 

 

 

오늘은 무슨 반찬에 밥을 먹지?

여우가 개구리 반찬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내 식단에 김치가 필수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김치가 다 떨어졌다는 말...

그러고보니 한참 전에 김반장이 보내준 김장김치 한 포기가 있었지~~

 

 

<혼자 밥 먹을데로 찾다보면 한계에 다다를 때가 많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이유없이 식단이 바뀌어야 할 것 같은 강박 같은 거... 집에서는 평생 바뀌지 않아도 군소리가 없지만 객지밥이라는 게 그렇다는 거다... 가끔 저렇게 '뽀로로' 음료가 패키지로 딸린 밥도 잘 사먹는다... 다 마시지 못해, 늘 손에 달랑 달랑 들고 다니다 냉장고로 들어가지만...^^> 

 

 

농촌활동 가서, 군대에서, 혹은 음식점에서 김치를 다듬어 본 적은 있지만,

내가 먹기 위해 김치를 ‘썰어’ 본 기억은 없다.

엄밀히 예전의 경험이란 김치를 (가위로) 자르거나, 뜯고 찢어 먹었던 거지, 칼로 썰어 본 건 아니잖아.

드디어 ‘도마’에 김치 반포기를 올려놓는다.

 

집에서 가져 온 강화유리 도마는 너무 작고, 얼마 전 숙소 옮기면서 산 플라스틱 도마가 적당하겠지?

근데... 허걱? 김치가 도마보다 크다...

살림이라고는 해 본 경험이 없으니 실용성에 대한 감이 없어, 적당한 크기에 깔끔한 디자인의 도마를 골랐는데, 예전 나무로 만들어진 도마가 왜 그리 크고 넉넉했는지 이해하는 순간...

 

그러고보니 칼도 과도 밖엔 없네?

허허~~~ 살림살이라는 게 이리 구색을 맞춰야만 했는지 몸소 체험(?^^)하고서야

주부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니 뭐든 몸으로 체득한 것이 깊이가 있는가 싶다.

물론 어깨너머 들은 풍월에 자취경험까지 따지자면 수십년, 시간은 넘쳐났지만,

살림살이는 내 영역 밖이라는 알 수 없는 주문에서 헤어나질 못한 시간은 더 오래됐기 때문이겠지...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김치를 써는데 칼이 작으니 손으로 누르는 압력은 증가하고, 더불어 김치국물 흐르는 양도 비례해 많아진다.

에구~ 이 피 같은 육수(?)들... 애꿎게 주인 잘못만나 위장 구경도 못해보고 그냥 퇴수구로 흘러드는구나...

김치와 김치국물이 한 몸이듯, 내 손과 칼도 혼연일체(!),

한 맘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따로 노는 느낌이 낯간지럽다.

 

그래도 쭉정이쪽은 푹 푹 잘리는 거 같아 기분 좋은데, 이파리쪽은 썰어도 썰어도 끊어지지 않는다.

아니, 색시랑 엄마들이 하는 거 보면 쉽게 씀풍 씀풍 잘도 썰리던데 나는 왜 안 되는거지???

게다가 이 넘쳐나는 국물들은 주체하지도 못하고 마냥 흘러가잖아...

야~~ 이 도마 못 쓰겠구만... 흐르는 국물들을 막아줘야 하는데 이게 뭐야?

 

칼로 써는 부분은 비워두더라도 칸막이가 있던지,

가운데가 움푹 패여 있어 국물 흐르는 걸 방지해야 되는 거 아냐?

옛날 부엌에 있던 나무 도마들은 가운데가 파여 있었잖아?!!

응? 그러고보니 칸막이 있는 도마도 없을뿐더러, 나무 도마들은 닳아서 패인거네?!!

 

결국 예쁘고 가지런하게 썰어서 줄기 따로, 이파리 따로 정돈해보려 했던 찬통이 어지러워진다.

급기야 흐르는 국물이 아까워 결국 가위를 들고 그냥 대충 대충 잘라서 김치반찬통을 채운다.

아니 이게 뭐야? 이제는 국물이 넘쳐 찬반통 위로 찰랑 찰랑거리네??

크크크~~~ 버릴 건 버릴 줄 알았어야 하는데, 버리지 못함이 과함을 만들고 말았군!

 

한번 공기를 접한 김치는 쉬이 익어버린다는 색시 말에 남은 반포기 마저 우격다짐으로 썰고 잘라

냉장고에 집어넣으면서 김치와 실갱이는 마무리 된다.

드디어 나도 내 손으로 썰어 놓은 김치를 먹게 됐나?^^

물론 그 사이 나는 몇 번에 걸쳐 색시와 통화를 해야 했다.

 

색시~ 김치통 위가 하애... 곰팡인가? 

- 어~ 그거 오래되면 그런 색이 나와... 군내 나는가 냄새 맡아 봐...

색시~ 이거 도마 위로 김치국물들이 그냥 흐른다...

- 당연하지...

아깝잖아...

- *&^%$#@

다 썰었는데, 이 쭉쩡이는 버려 말어?

- 어~ 그거 나중에 찌개 끓일 때 써먹으면 좋아...

줄기가 밑으로 가야해, 아니면 이파리가 위로 와야 해?

- 적당히 해...

 

이 도마도 못 쓰겠고, 칼도 못 쓰겠다...

글고 도마 다 씻었는데도 빨간 물이 그냥 배어 있네? 이거 불량품 아냐?

- 시간 지나면 다시 하애져...

찬통 뚜껑을 닫으면서 마무리하려는데 국물이 넘친다.

결국 키친타올로 그릇을 한번 훔쳐 냉장고에 넣으며 마지막 통화... 이거 혹시 발효되면서 터지는 거 아냐?

- 국물 적당히 버리지 그랬어...

 

주말... 집에 가서 도마를 쓰는 색시를 바라다본다.

숙련된 기능공과 어정쩡한 알바생의 차이일까?

헉?!!! 근데 색시, 도마 위쪽이 여기야?

자세히보니 도마 한쪽은 홈이 파져 잇고, 한쪽은 밋밋하다.

 

<문제의 도마... 저렇게 홈을 파놓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을텐데, 나는 휨 방지를 위한 구조적(완전 건축적 접근이었군 !^^) 기능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 때까지 저 면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당연하지, 이게 국물 넘치는 거 방지하라고 파논 거잖아.

하하하~~~ 나는 지금까지 도마도 거꾸로 사용했구만...

내 도마에 칼자국은 뒷면에만 새겨져 있다.

정작 써야 할 앞면은 흠결없이 너무나 깨끗하고...

 

 

<결국 나는 이 뒷면만 열심히 사용하면서 씨부렁거렸다... 이 도마는 표면장력도 없나 봐?^^ 앞 뒤 구별도 못하다니...ㅠㅠ> 

 

 

건물 포작이 어떻고, 공간경영 느낌이 이러니 저러니, 탑 층급받침이 이러쿵 저러쿵... ...

텅빈 폐사지, 돌 한조각에 감탄하면서, 정작 눈앞 김치 한 포기 썰면서 쩔쩔맨다.

무려 1,400년 전 탑의 선후(先後)는 가리면서, 눈 앞에 있는 도마의 전후(前後)는 가리지 못한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오만과 편견이

도마 앞에서 산산이 조각난다.

그래~ 인생 배우면서 사는 거지, 끝이 있겠어?

뜯고~ 찢고~ 자르고?? 이젠 김치도 ‘썰어~~~!!!’ 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