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동삼층석탑...
4.
언제들 올라 오셨는지 동호회로 보이는 분들이 여기저기 삼각대를 벌려놓고 사진에 열중하고 계시다.
쨍쨍거리는 개소리를 외면하고, 본척만척 X-Ray 놀이에 빠져 있는 진돗개를 지나 계단을 향했다.
역시 큰 놈이 느긋한 건가? 아니면 필요할 때만 나설 줄 아는 연륜의 차이일까?
스님에게 인사하고 올라오셨나요?
텃센가? 언젠가 어느 블로그 포스팅이 생각나 그래도 인사드리는 게 예의려니 생각해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익숙해진 귀찮음인지, 거드름일지 모를 주인행세는 썩 유쾌하지 않다.
행세할 수 있는 조건과 자리를 내세울지 모르지만, 그들이 가진 것이란곤 선점(先占)의 효(效)일뿐인데
지금의 무게가 기득권으로 철옹성으로 대접받을 조건으로 둔갑한 건 질서일까? 처세일까? 예의일까?
<북미륵암 전경... 그 돌길 사이사이를 찾아 올라온 북미륵암... 대흥사의 동쪽에 있지만, 남미륵암이 있어 북미륵암 - 북암으로 불리는 거 같다...>
그럼에도 활짝 열린 용화전 사이로 보이는 마애불은 모든 걸 씻겨준다. 용서해주고, 보듬어 주고...
햐아~~~
보물 48호가 국보 308호로 승격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5년이다.
보호각 기둥에 가려 주불만 노출됐던 2004년까지 이 마애불의 진정한 가치는 수십년간 가려져 있었다.
건물이 헐리고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좌우의 공양비천상들이 살아나고
고구려(연가7년명 금동불)에서부터 시작해 백제(예산/서산마애삼존불)를 거쳐
통일신라(군위석굴)로 이어진 불꽃 혹은 영기문양 광배가 빛을 발하니
마애불로는 태안, 서산, 경주 단석산 신선사, 봉화 북지리, 경주 남산 칠불암, 월출산과 함께
일곱 국보 중 하나로, 월출산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공양비천상으로 채워진 유일한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308호... 용화전... 금산사 미륵전의 다른 이름이 용화전이고, 김유신이 호령했던 용화낭도의 용화가 바로, 미륵보살이 성불하는 용화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때문에 이 여래좌상도 미륵불로 봐야할 듯...>
너무 좋다...하하하
그래 충분하네...
말그대로 집채만한 바위를 꽉 채운 조각들이 내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굵고 강한 주불상 주위에는 하늘하늘 거리는 표대들이 바람에 날릴 듯 자연스럽게 풀어져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겼을 바위를 약간만 다듬었지만 하나하나 선과 면은 굵고 깊은 양감을 드러내며,
넓고 평평한 주불 주위 가운데 면은 일부러 채우지 않은 듯
넉넉하고 편안하게 음각의 선으로 광배를 표현했지만,
울퉁불퉁 굴곡진 주변의 좁은 면들은 4구의 공양비천상으로 꽉 채우고 힘차고 세련되게 배치했으니,
참으로 묘한 대비면서 절묘한 구성이다 싶다.
<거대한 자연암반을 꽉 채운 구성... 보면 볼수록 생동감 넘치는 구성이고 조화다...>
<주존불인 여래상은 볼륨있는 양감을, 상하좌우의 공양비천상은 옅은 조각으로 회화적으로 구성했다...>
<주존불 주위는 넉넉한 면을 채우지 않은 여백으로 남겨두고, 광배주변으로는 화불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공양상들을 사실적으로 구성하고... 생각할수록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끊이지 않는 셔터를 눌러가며, 밖에서 들리는 비켜달라는 주문에 화답하며, 바람에 닫힌 문을 열어가며
어느새 3통, 4통의 필름이 바뀜을 알고서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필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주존불은 완벽한가?
건장하고 풍만한 체구이지만, 목이 움츠러들었고, 어깨가 경직됐으며, 팔이 비례보다 가늘어 어색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보리 빛깔의 아침 햇살에 중화되기는 했지만
눈썹과 눈매를 구획한 강한 선이 강조되니 얼굴이 그리 친근해 보이지도 않는 것 같고...
눈매는 긴데 눈썹은 짧고, 볼은 통통한데 입술은 짧고, 풍만한 자태에 가슴도 선명하고...
후후~ 사진으로 설명하는 것과 가슴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마애여래상의 주존불... 가슴에 윤곽을 새길 정도로 육감적일 거 같은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특히 이쪽에서 보이는 주존불의 오른쪽 팔과 수인이 부자연스러운데, 비천공양상들은 매우 사실적이다...>
조화로운가?
전체적인 구성과 비례는 4.3m 높이의 바위(넓이는 5m가 넘을 듯)를 꽉 채운 구성이 매우 조화로운데,
자연암반을 완전한 평면으로 다듬지 않고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비천상과 표대를 배치를 한데다
바위 상부의 결절 부분이 흠이 될 수도 있지만, 물매를 둔 것처럼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여기에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공양상이 웃음을 머금은 풍만하고 요염한 자태라면
왼쪽 공양상은 중성적인 자태에 간절한 염원을 담은 한없는 존경과 추앙의 헌신을 보는 것 같고,
오른쪽 위 공양상이 도톰한 동자얼굴로 주불을 바라보는 우리를 향해 충만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면,
왼쪽 위 공양상은 잔뜩 못마땅한 얼굴에 찌푸린 표정으로 주불을 감시하는 듯 내려보고 있으니
뚜렷한 대비와 기계적 대칭도 아니면서 다양한 변화와 표정을 함께 담고 있어 의외로 편안해진다.
<왼편 하단의 공양상... 무릎을 꿇고서 주존불을 바라보는 그 모습 자체가 너무 성스럽지 않는가?>
<오른쪽 하단의 공양상... 풍만할 거 같은 가슴에 시선이 먼저 가선지 무척 요염한 느낌이었다...>
<오른쪽 위편의 공양상의 시선은 주존불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다... 주존불과 달리 참 온화하지?>
<왼쪽 위편의 공양상은 뭔가 못마땅한 표정에 심술까지 배어있다... 그의 시선은 주존불을 향한다... 이렇게 상하좌우의 공양상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주존불의 기존 이미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하게 된다... 의도적 연출이었다면 그는 우리들의 마음까지 계산한 치밀한 구성이라 할만 하다...>
완벽한 비례와 구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뭘까?
혹시 용화전을 들어서자마자 가졌던 첫 느낌은 여기까지 올라오며 충분히 흘린 내 땀의 보상이거나,
이 높고 깊고 외진 곳 거대한 바위를 찾아 수많은 시간을 쏟았을 장인의 땀방울과 정성에 대한 댓가였을까?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천년 동안 무탈하게 온전한 모습을 지켜온 바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을까?
좋은 점과 만족하지 못한 부분들이 뒤섞이며 잠시 용화전을 벗어나 탑들을 찾았다.
<주존불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양상들을 따라 살짝만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주존볼의 어색함은 많이 중화된다...>
5.
바로 옆 삼층석탑은 눈요기만 하고 우선 용화전 건너편 작은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탑을 먼저 찾았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서둘러 먹이를 주지 않는 게 좋은 습관일까?
먼 것을 먼저 취하는 건, 가까운 것은 도망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일까?
아무튼 마애불이 바라보는 탑은 방위상 분명 남쪽임에도 불구하고 동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3층 지붕돌부터 위쪽 부재들이 결실되어선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4.65m의 작지 않은 탑이다.
<용화전에서 보이는 동삼층석탑... 울창한 수림에 묻혀 상부만 빼꼼히 내놓고 있다...>
<4.6m 높이의 탑은 결코 작지 않지만, 주변 소나무에 가려 그 위용이 반감됐다...>
전체적으로 유약하고 양식적 틀에 묶여 정연함과 세련된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는데,
단아함과 우람함, 상승감과 안정감,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못한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단부는 단층으로 마감했는데, 굵게 주름잡힌 바위를 따라 그랭이 기법으로 면석을 마감했는데,
어쩌면 이 작은 봉우리를 통째로 기단부로 삼고 싶었던, 게으르거나 원대했을 석공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후후~ 자연을 그대로 살린 것은 자연보호에 충실한 성스런 맘이었을까? 게으른 중생의 꾀였을까?
<기단부나 다름없는 자연 암반은 거대한 발가락처럼 수로처럼 주름잡혀 패여있다...>
<지대석과 하층기단부가 생략된 이 동삼층석탑의 기단부는 면석으로만 마감되었다... 안상도 아니고 운주사 탑들처럼 기하학적 문양을 새겨넣었고, 구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듯 우주에서 끊어지는 통례에 따르지 않고 나눴다...>
기단부 갑석 돌출이 조금만 덜 튀어 나왔더라면, 지붕돌들이 조금만 더 두텁게 탄탄했더라면...
마음속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바라보니 그런대로 실망만 할, 보잘 것 없는 탑이 아님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그들 각자의 완성에 들어간 정성과 존재 그 자체의 숭고한 의미까지 훼손해서는 안 됨에도,
우리는 자신의 척도에 맞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기억에서 빨리 지우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쩌면 나 자신도, 나도 모르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그런 평가와 대접을 받고 있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 긍정의 노래를 탄미하는 걸까?
<걸터 앉기 딱 좋은 높이다...^^>
잠시 이 생각 저 생각에 굵게 주름진 바위에 걸터앉으니 담배 한 대가 간절하다.
그래 이 건 아니지 싶어 주섬주섬 못내 아쉬운 마음 달래며 두륜산 공기를 힘차게 빨아보고 내뱉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치워졌다면 이 탑은 어떻게 보였을까?
조금 더 극적으로 공간을 호령하고 경영하는 그런 모습으로 당당히 자신을 드러냈다면 어떤 맛이었을까?
어쩌면 지금의 이 모습 그대로 충분히 사랑받고 대접받고 있을 터...
내가 가지고 있는 잣대만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어줍잖게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탑을 다시 이해했다.
그렇게 굿굿히, 당당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그게 이 탑의 존재이유라면 충분한 거 아닐까?
<굳이 이 탑에서까지 두륜산을 호령하는 카리스마를 기대할 건 아니라는 생각... 건너편 봉우리로 유도되는 시선에서 또 다른 산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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