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석가탑 - 손댈 수 없는 아름다움
<석가탑... 다양한 시간대 다양한 계절, 그리고 다양한 마음... 석가탑의 변화무상한 모습을 담기 위해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만족하는가 자문하면서도 늘 부족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말로 풀어 본다...>
(7) 손댈 수 없는 아름다움...
물론 740년대의 김대성과 아사달은 BC440년대의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한 조각가 페이디아스나 설계자 익티노스, 공사자 카리크라테스(이들 중 총감독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인데, 이 당시 그리스의 건축은 조각을 담는 공간이었다. 즉 조각이 주인(主人)이고, 건축은 부차적인 것이다. 이런 전통은 1500년대 르네상스시대 미켈란젤로 같은 조각가가 건축의 총감독이 될 수 있는 오랜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처럼 1200년대 피보나치에게 황금비율을 차용했을리 없다.
<로마 대성당... 파르테논 신전에는 가 보질 못해서 이 사진을 올린다...^^ 유럽에는 많은 기념비들이 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도 있고, 로마황제들의 열주도 있고, 파리, 런던, 마드리드, 독일 등에도... 그러나 건축에 적용된 황금비는 있지만, 기념비나 탑에 황금비례를 적용한 예는 없다...>
<김효율 교수의 석가탑 황금비례/미디어 붓다에서... 나와 비슷하게 2층 몸돌에서 괴임을 잘라내 비례를 연구했다는 게 즐겁다...^^>
<석가탑 부분... 부분부분의 완결성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한차원 높게 승화된...>
다만 아사달의 경험과 김대성의 지성은 지붕돌과 몸돌 등 각각의 부재가 편안하고 안정적이면서도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출 수 있는 최선의 비례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고, 그 각각의 조합을 합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조합/배열 할 뛰어난 감식안도 갖췄기 때문에 지붕돌과 몸돌, 기단부의 가로 x 세로의 비례를 먼저 결정했을 수 있다. 그리고 보수적이며 관념적인 전통과 양식을 뛰어넘을 도전정신과 파격을 주저하지 않을 용기도 있었기 때문에 일층 지붕돌과 2층 몸돌을 과감하게 교체한 것은 아닐까?(1층 지붕돌 하나가 바뀜으로 인해 석탑의 미감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의 예를 우리는 염불사지탑에서 이미 확인했다!)
<과거 불국사역 근처, 구정동에 서 있을 때의 염불사지탑... 이 탑(↑)과 현재의 모습(↓)이 지붕돌 하나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염불사지 삼층석탑... 비단 주변환경의 변화로 석탑의 미감이 달라진 것은 아닐터... 전체적인 조화와 비례에서 하나 하나의 부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들 생각보다 훨씬 큰 게 아닐런지...>
<동서 쌍탑으로 만들어진 염불사지 삼층석탑은, 뒤쪽에 부분 파손된 상태의 동탑에서 1층 지붕돌의 두께와 낙수면의 각도 등을 기준으로 복원된 것으로, 임의적 비례로 재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형에 매우 가깝다는 말이고, 각층 지붕돌과 몸돌의 비례를 보면 원원사지탑과 매우 비슷하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석가탑을 느낀지 얼마 되지 않아 상륜부가 없던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해체 보수하는 자료 사진을 보면서 적잖게 당황했던 것이 있었다. 술정리탑이나 봉기동탑 등 다른 삼층석탑들과 무엇이 다르지?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석가탑 이전에도 각각의 부재에 황금비례를 적용한 삼층석탑은 만들어지고 있었고, 전체적으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 삼층석탑들이 이후에도 만들어졌다(소수에 불과하지만)고 생각된다.
<상륜부가 없던 조선고적보도의 사진을 보신 분들이 많으실 거 같다... 그 사진을 재인용하지 않고 상륜부를 잘라봤다...^^>
<석가탑의 상륜부를 빼면, 가장 비슷한 미감의 석탑은 술정리탑과 봉기동탑이 아닐까싶다... 물론 규모에서 1~2m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든 장점이 완전하게 살아있는 석탑들이 때문이다...>
술정리탑, 미탄사탑, 봉기동탑, 용명리탑, 염불사쌍탑, 원원사쌍탑 등이 그것인데(이 중 염불사탑과 봉기동탑은 석가탑 이전에, 용명리탑과 원원사탑은 비슷한 거 같고, 미탄사탑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석가탑 같은 변형 없이도 전성기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 갖춰야 할 안정감에 상승감, 정연함에 살아나는 조화로운 비례에 당당한 자신감은 물론 우아함, 세련됨, 준수함과 군더더기 없는 완결성까지 모든 장점을 충실히 살리고 있다(이들 외에 갈항리쌍탑, 마동사탑, 월광사탑, 선본사탑, 보월동탑, 중금리쌍탑 등이 있으나 아쉬운 점이 있고, 우아함보다 남성성이 강조된 창림사탑, 간월사쌍탑은 미감이 다르고, 화엄사탑, 석굴암탑, 낙산리탑은 양식이 다르다).
<이미 앞에서 몇 번 소개했지만, 석가탑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한 번 더 700년대 전성기 통일신라 삼층석탑들을 모아 비교해본다... 팔공산 선본사 삼층석탑... 크기 때문인지 조금 여리게 보이려나?>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 가장 여성적으로 보이는 탑이 아닐런지...>
<원원사지 삼층석탑... 규모는 조금 더 크지만 염불사지와 가장 비슷한 비례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지적이고 세련된... 너무 고고한가?>
그러나 선본사탑은 차분하고 정연하지만 압도하는 힘이 부족하고, 염불사지쌍탑은 시원하면서 장중하지만 너무 날씬하고, 용명리탑은 화사하고 우아하지만 흡인력이 아쉽고, 원원사지쌍탑은 지적이고 세련됐지만 생동감이 덜하고, 봉기동탑은 정연하고 준수하지만 너무 차분하고, 미탄사탑은 당당하고 의연하지만 너무 진지하고, 완벽한 비례의 술정리탑은 통일신라 삼층석탑 최후의 완성태이지만 긴장감이 떨어지는데 비해 석가탑은 이 모든 한계를 극복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기에는 각각의 부재에 적용된 황금분할이나 비례, 전체적인 수리적 체계와 조화뿐만 아니라 꼭 짚어봐야할 몇가지 이유와 조건이 더 있다고 생각된다. 즉 황금비율은 동서고금 많은 건축과 조각에서 사용되어 왔고, 우리에게 익숙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해석하는 척도일 뿐으로, 석가탑이 석가탑일 수 있는 다른 이유와 조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미탄사지 삼층석탑... 내 개인적인 선호도의 문제겠지만, 술정리탑 다음으로 멋진 탑을 고르라면 주저없이 이 탑을 꼽고 싶다... 3단으로 정리한 층급받침이 눈에 거슬리지 않고 더욱 간결하게 보여, 의연함과 장중함을 함께 갖춘 자신만만한 기운이 느껴진다...>
<술정리 삼층석탑... 굳이 말이 필요없는... 이 탑에 노반을 살린다면 석가탑과 구분하기 힘들 거 같다...>
<노반과 상륜부의 있고 없음 보다, 석가탑이 석가탑다운 완결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 지금부터 그 차이와 조건들을 찾아보려 한다...>
741년 석가탑이 만들어진 이후 고려, 조선시대를 내려오는 1300여년간 궁극의 아름다움을 견지하며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지지 않고 사랑받을 수 있는 석가탑만이 가진 특징 혹은 이유 중 하나가, 전통을 깨뜨린 파격과, 변화가 주는 떨림까지 수용한 이상적인 조화가 아닌가 싶은데, 일층 지붕돌과 이층 몸돌의 변화로 인해 석가탑은 반듯하고 탄탄한 힘을 응축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 상승감에 안정감을 한층 고양 시킬 수 있었고, 변화무상한 구성을 담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조화를 갖춰 늘 새롭게 보이며, 당당한 자신감에 의연함과 우아한 미감을 함께 갖추고, 충분히 갈무리된 내제된 절제와 뻗치는 기운을 숨기지 않아 기운 생동한 울림으로 살아난다. 정제된 평화로움 위에 일렁이는 장엄한 기운... 석가탑은 그 이름에 걸맞게 독보적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전통을 깨뜨린 파격과, 변화가 주는 떨림까지 수용한 이상적인 조화가 아닌가 싶은데, 일층 지붕돌과 이층 몸돌의 변화로 인해 석가탑은 반듯하고 탄탄한 힘을 응축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 상승감에 안정감을 한층 고양 시킬 수 있었고, 변화무상한 구성을 담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조화를 갖춰 늘 새롭게 보이며, 당당한 자신감에 의연함과 우아한 미감을 함께 갖추고, 충분히 갈무리된 내제된 절제와 뻗치는 기운을 숨기지 않아 기운 생동한 울림으로 살아난다. 정제된 평화로움 위에 일렁이는 장엄한 기운... 석가탑은 그 이름에 걸맞게 독보적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 석가탑은 다른 석탑에서 시도한 바 없는 새로운 장치를 적용했다. 석가탑은 공간을 수직적으로 분할하는 3차원 건축이며, 다보탑과 함께 좌우의 균형을 맞추면서 하늘을 향한 상승감을 부족함 없이 실현해야만 한다. 때문에 다보탑에 비해 부피와 볼륨, 단면적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어 자칫 왜소하게 보일지 모를 석가탑은 새로운 장치를 통해 공간적 균형을 맞춰야만 했다. 부재의 부피를 키우면 높이를 맞출 수 없고, 기단부를 넓히면 상승감을 포기해야 하고... 아사달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내 생각이지만 기단부 주위에 펼쳐진 팔방금강좌를 통해 그 한계를 극복했다고 생각된다.
<수덕사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 만약 석가탑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기단부를 키웠다면,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맘에 안 든다...>
<다보탑 기단부 평면도/경주석탑보수사업단에서... 다보탑과 석가탑은 기단부와 지대석의 폭(넓이)이 4,380mm와 4,377(평균)mm로 거의 같다...>
<출처:위와 같다... 같은 지대석 넓이와 하층기단부를 갖춘 다보탑과 석가탑은 각각 다른 구성으로 완결되는데, 다보탑은 4방으로 입체적인 계단을 만들었고, 석가탑은 4면에 평면적인 팔방금강좌를 구상했다... 상상하기 힘든 안목이며, 기획력이다...>
사실 석탑 주위로 공간을 점유하지 못하는 어떤 장치도 입체적으로 인식되기 힘들고, 평면적 장치에 불과한 팔방금강좌는 의도적으로 접근하기 전에는 존재감이 강조되지 않는다. 그러나 팔방금강좌를 점유해야 하는 삼계의 부처와 대승불교의 보살들, 혹은 팔부신중 등의 설화는 새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즉 다보탑에 비해 현저하게 축소될 수밖에 없는 부피와 단면적을 팔방금강좌라는 평면적이지만 무형의 존재감을 통해 공간적으로 무한히 확장될 여지를 갖추게 되었다. 팔방금강좌로 인해 우리는 석가탑에 다가설 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고, 채워지지 않는 대지에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야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자리를 만들어, 만질 수 없는 공간을 스스로 채워넣야만 석가탑은 완성되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는가? 무량의 장치로 유형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공간 점유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
<석가탑 팔방금강좌...>
<다보탑 수리 때 가설비계에 올라, 저 팔방금강좌에 한 사람씩 여덟 사람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ㅋㅋ 만약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석가탑의 공간적 부피는 전혀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너무 당연해서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는데, 석가탑은 불국사에, 대웅전 영역에, 그리고 다보탑과 함께 있어 더욱 독보적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불국사를 떠받치는 장대한 석축 위에 있어 범접할 수 없는 위상을 갖추게 되었고, 주변을 차단한 금당의 회랑에 어울려 깨달음의 고요를 상징할 수 있었고, 또한 복잡하고 화려하며 정교한 다보탑과 함께 있어서 고전적인 기품과 절제된 미감, 그리고 너무 단순해서 무한해질 수 있는 당당하고 건강한 생동감을 더욱 강조할 수 있었다.
<또 석가탑이 석가탑으로서 완결성을 얻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점은 바로, 현재의 이 위치... 불국사 대웅전 앞에, 다보탑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석가탑-다보탑-금당-자하문-좌경루-우종루-석등-회랑으로 이루어진 불국사 대웅전 영역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즉 황복사탑에서 완성된 삼층석탑의 전형을 계승하면서, 천군리탑처럼 쌍탑을 배치하여 가람배치에서 석탑의 중심성을 강조하고, 원원리쌍탑처럼 석탑에 상징성을 배가하기 위해 간결한 석가탑에 대응하는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다보탑을 조형하면서, 석탑만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가람배치로까지 외연을 확대 정신성을 확보하여, 개체적 완결성이 아닌 유기적으로 구성된 집합적 완성을 건축공간으로 풀어낸 결정체가 대웅전 영역이 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안마당... 똑같은 석탑을 만들고, 똑같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다보탑과 함께 세운다고 석가탑의 느낌이 살아날까??>
<박물관 뜨락에서 석가탑은 제 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넓어진 공간, 차단되지 않는 시선, 그리고 주위 자연적 지형과 건축과의 조화에서 석가탑의 완결성은 해체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공간... 이 곳에 함께 있어 석가탑은 자신의 진가를 십분 발휘되도록 규모와 높이, 비례가 결정되었다... 이점이 가능한 것은 숙련된 경험과 기술 기능, 고도로 체계화된 심미안뿐만 아니라, 이상화된 공간을 추구하려는 정신세계가 주도하는 건축공간 경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체적 완성도를 위한 정밀함과 비례는 기능과 기술로 확보되지만 공간의 완성도는 총체적인 안목과 체계화된 정신세계의 영역이다. 석가탑과 불국사의 공간은 그렇게 유기적으로 통일되고 일체화된 공간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각각의 건축적 요소들에는 다양한 시선과 의도하지 않은 단절과 복합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중첩되고, 때로는 분산되고... 그럼에도 전체와 조화를 이뤄 리듬을 만들고 변화를 만든다면, 그 체계와 경영은 한차원 높은 접근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독보적인 완벽함을 갖추면서 전체의 구도를 해치지 않고, 각각의 개성이 전체와 조화를 이뤄 새로운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은, 균질한 부재의 조합과 개별적 요소의 기계적 집합이나 통합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공간미학을 완성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이라는 극단적인 요소의 비대칭의 조화를 통해 한차원 높은 공간을 창출한 통일신라인들의 정제되고 밀도 높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석가탑은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공간의 거리와 느끼는 깊이만큼 다양한 변화를 내포하고, 이 모든 것들이 유무형으로 형상화돼 우리들에게 각인되는 건축임이 분명하다...>
참으로 이상적이지 않은가? 나와 너와 우리... 서로 다른 차이를 포용하고, 그 특수성과 독자성이 보장되면서도 보편성과 통일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이상세계를 건축공간에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정점인 석가탑이 있어 불국사가 더 돋보이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공간인 불국사와 함께 있어 석가탑은 더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국사와 석가탑... 충분히 감탄해도 지나치지 않고, 아무리 자랑해도 부족하지 않은 우리의 보물이 아닐까 싶다.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석가탑을 바라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설레임을 담은 시선에서 시작된 탄성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서 경직되다가 차츰 그윽한 미소와 느긋한 시선으로 변하는 걸 보게 된다.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느껴지기도 하다가, 온누리에 펼쳐지는 깨달음의 피뢰침=통로 같은 석가탑을 향한 그들의 미소는 무얼 의미할까? 직지인심? 이심전심? 강도와 밀도와 심도에 편차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무런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이 이 앞에서 웃을 수 있는 건, 충만한 아름다움을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름다움이란 그런 거 아닐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만 범접하기 힘든 무상의 경계를 느낄 수밖에 없고, 존엄하지만 공간적 거리감은 없으며, 경외감은 있으나 주눅들지 않고 함께 고양될 수 있는 그런... 아무런 강요 없이 빨려들고, 아무런 이유 없이 생각나고, 아무런 흔적 없이 우리 영혼을 채워주는... 아름다움과 완벽함이 등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석가탑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 손댈 게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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