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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趣,美,香...

신라시대 삼층석탑 38> 불국사(11) - 다보탑 ; 통일신라 불탑의 전환점...1309

 

 

 

 

 

 

 

     (3) 통일신라 불탑의 전환점 - 다양한 이형등장과 승탑의 모티브

 

 

통일신라만의 고유한 양식의 불탑은 이미 삼층석탑으로 전형화 됐고, 중국식 전탑을 통일신라의 조건에서 정형화한 전탑들도 충분히 만들어졌다. 그리고 목탑을 번안한 정림사탑이 있고, 목탑의 양식을 차용한 미륵사탑도 이미 학습되어 있었다. 그러나 목탑을 모형화한 정혜사탑이나 백장암탑, 그리고 목탑을 회화화한 지광국사현묘탑 같은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김대성과 아사달은, 공예가 아닌 건축적 의지를 가지고 칠보로 장식된 화려하고 장엄한 다보여래의 전신탑을 석재로 구현하고 싶어 했을 거 같다. 그래서 절충하고 타협한 것이 목탑 기단부에 인도의 스투파를 올려놓는 것이었다.

 

 

<내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부분까지를 기단부로 고집하는 이유는, 목탑 구조까지를 하나의 제단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면 기둥 위의 주두로 보이는 공포구조는 정림사탑과 비슷하다...>

<정림사탑 부분... 얇은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직선으로 마무리된 다보탑과 지붕돌 하부에서부터 반전이 시작된 맛은 완전히 달라지지만...>

 

 

사방에 계단을 갖춘 기단부에 정림사탑과 똑같은 층급받침을 가진 일층구조를 기단부로 만들고, 인도의 전통 스투파와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한 당나라의 팔각원당형 사리탑 몸돌 3층으로 나누어 이를 목탑양식으로 풀어냈다.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소재의 특성을 완전히 섭렵한 새로운 유형의 창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다보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다양성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다보탑에서부터 시작한 이 실험은 전혀 새로운 소위 이형석탑들을 선보이는 계기가 되는데, 일반 불탑의 삼층탑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상하층 이단 기단부를 완전히 새롭게 변형한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이 탄생하고,

 

 

<화엄사 사사자석탑/국보35호... 나는 이 탑도 경덕왕대부터 기획되었다고 생각하는데(결국 800년대초에 완성됐지만), 변형된 기단부와 변형된 탑신은 다양한 조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보면 사사자까지가 완전히 기단부로 다보탑의 변형이 아닐까 생각된다...^^>

 

 

 

4개의 기둥에 심주하나만 세운 다보탑과 달리 면석을 이용해 단층 기단부 같은 과대한 탑신에 12개의 지붕돌로만 조형한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부분... 다보탑만큼 넓은 기단을 갖춘 정혜사탑은 탑의 층수까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40호... 망덕사지 목탑을 모형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혜사탑은 화엄사 사사자석탑과 함께 대표적인 통일신라의 이형석탑으로 꼽히는데, 다보탑처럼 하부와 상부의 체감이 완전히 이질적이다...>

 

 

 

그리고 전통양식을 계승하면서 층수를 변형한 탑평리 칠층석탑과 탑리리탑을 모방한 죽장리 오층석탑이 만들어질 수 있는 단초가 되었으며, 기단부에 팔부신중을 수용한 창림사지 삼층석탑과 일층몸돌에까지 사방불을 새겨 넣은 진전사지 삼층석탑 등 기존의 전형화된 기단부와 탑신에 새로운 장식적이고 다양한 의미의 조각들이 자유롭게 수용될 수 있는 기념비적 역할을 하면서 통일신라 석탑이 다양성을 갖출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진신사리가 봉안되지 않았더라도 묘제(墓際)의 양식을 갖추거나 불국토(佛國土)를 형상화한 모습만으로도 불탑으로서의 기능과 목적을 구현했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전사지 삼층석탑/국보122호... 그리고 창림사탑, 남산리탑 이후 진전사탑에는 몸돌과 하층기단부까지 다양한 조각이 등장하게 되는데, 대략 840년 경이면 불탑과 승탑은 완전히 양식적으로 분리되게 된다... 이탑은 84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선사탑-장항리탑의 문비와 인왕상이 진신사리가 담긴 묘탑을 형상화하거나 이를 지키는 수호신장의 모습에 머물렀다면, 창림사탑 이후 진전사탑에서 완성된 조각들은 불국토를 석탑에 수직적 위계를 갖추고 그려넣은 회화적 완성으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이런 시도와 변형을 통해 다보탑이 통일신라 석탑사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선종의 확산과 함께 수용할 수밖에 없는 고승-선승들의 사리탑(승탑) 조형이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삼층석탑과 다른 궤도로 발전할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승탑은 844년 염거화상탑 이후 정형화되어 872년 철감선사 징소탑과 고달사지 승탑(전 원감국사), 연곡사 동,북승탑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완성되었는데, 그 연원과 원형을 669년 조성된 현장법사탑과 800년 전후 조성된 중국 서안의 구마라집 사리탑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700년대 중반이면 백제의 문물에 기초해 이미 독자적인 문명을 일본이 이루었듯이, 통일신라 역시 당나라의 문물을 그대로 추종하거나 모방했던 시대가 아니다. 즉 양식과 조형에서 당나라의 문물은 원형의 가치를 가진 선택사항에 불과할 뿐, 이를 답습하거나 재해석한 것은 통일신라인들의 몫이었다는 말이다. 

 

<현장법사탑/669년/한국불상의 원류를 찾아서/최완수/대원사에서... 가장 초기 형태의 중국 고승의 사리탑으로 전탑과 똑같은 양식이다... 중국의 승탑들도 초기 불탑에서 조금씩 변형되어 간다...>

<정장선사 사리탑/746년/같은 책에서... 그리고 700년대 중반이 되면 중국의 승탑에서도 인도의 스투파와 비슷한 양식이, 중국 전통의 전탑 기단부 위에 올라간다... 다보탑도 그런 변화를 수용한 것은 아닐까?>

     

<구마라집 사리탑/800년 전후/같은 책에서... 그리고 800년 전후가 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리탑 즉 승탑의 양식이 정형화된다... 그런데 한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413년 사망한 구마라집의 사리탑이 800년 전후에 만들어졌다는 점(최완수씨는 700년대 중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선종의 영향으로 승탑들이 만들어졌지만, 이들 사리탑에는 사리가 없다는 점이다... 즉 현장법사탑이나 정장선사탑에는 시신을 화장하고 사리를 안치한 것이 아니라, 시신을 그대로 탑에 묻었다... 승탑이 바로 무덤이었다는 말(그래서 묘탑이라는 말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800년대 통일신라의 고승들도 화장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사리가 있을 수 없고, 승탑에 사리공도 없다... 해서 이들 승탑 앞에는 석관이 놓이거나, 여러곳에서 한사람의 승탑을 만들 수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당시 사리탑-승탑에는 사리가 없고, 800년대까지는 다비장이란 장례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실제 석불좌상에서 사용되던 연화대좌에 팔각원당형 탑신을 갖춘 염거화상탑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전혀 다른 느낌의 기단부와 탑신이 절충을 이룬 예가 다보탑 외에도 있는데, 800년대 초반 조형된 석탑 기단부에 팔각원당형 탑신을 갖춘 진전사지 부도가 그렇지만, 무엇보다 682년 만들어진 감은사서탑의 사리구가 그것이다. 감은사동탑의 사리내함과 달리 천개가 없어 불안전하게 보이지만, 넉넉한 건축 기단부에 소규모 복발형 스투파를 얹혀놓은 모습의 감은사서탑의 사리구는,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던 제단에 묘탑을 얹혀놓은 통일신라의 독창적인 양식으로, 다보탑 이전에 이미 시도됐다는 점이다. 

 

 

<감은사 서탑 사리구... 동탑 사리구와 달리 천개 등 상부가 없는 서탑 사리구는 다보탑을 이해하는데 좋은 모본이 된다고 생각된다...>

<당장에 모습을 보면 고구려의 적석총이 축소된 형태로 보이는데 나만 그런가??^^ 앞글에서 재인용...>

<넓은 기단부를 제단으로 보고, 그 위에 인도의 스투파가 얹혀 있다는 추정은 너무 무리일까? 목조건축 양식의 기단부 위 4인의 비천연주상을 사사자로 바꾸면 화엄사 사사자석탑의 상층기단부와 같아지는 거 아닌가? 다보탑에도 4구의 사자상이 있었다...>

<화엄사탑 부분... 다보탑에서 이런 부분까지 인용하는 것은 다보탑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올바른 이해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 자료들을 보고 나서 다시 다보탑을 본다면... 이미 석가탑과 완전히 다른 구조의 다보탑을 석탑의 체감과 비례만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 내 글의 의도다... 왜냐하면 다보탑으로 인해 통일신라의 석탑은 다양해졌고, 또 승탑이 자연스럽게 정착할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보탑의 비례를 무시한 넓고 높은 기단부와 상층, 그리고 위축된 탑신 때문에 상승감이 무시되고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보이는 다보탑을 승탑과 연결해 생각한다면 당초의 조형의지를 탓할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 통일신라 승탑의 탄생과 변화에 대한 메모...

 

 

<석굴암 삼층석탑/보물911호... 나는 이 탑 역시 70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기단부 아래 원형지대석의 마감 때문이다... 석굴암 본존불 연화좌대를 자세히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원형의 지대석이 90도 각도로 마무리 된 게 아니라, 석굴암탑처럼 하부가 넓은 둔각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즉 석굴암 본존불을 만든 석공이 같이 만들었거나 시대 차이가 별로 없다는 말... 아무튼 다보탑과 석굴암 본존불 탄생 이후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은 다양한 규격과 양식으로 변형되기 시작한다...>

<진전사지 도의선사탑/보물439호... 이제는 전 도의선사 부도가 아니라 도의선사탑이 되었는데, 대략 835년 전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승탑은 석탑 기단부에 팔각원당형 탑신을 갖췄다... 불탑과 승탑이 분화되는 최초의 형태다... 마찬가지로 기단부와 탑신은 석탑의 체감과 비례에서 완전히 탈피된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136호... 도의선사탑보다 앞선 시기인 석굴암 본존불 바로 다음인 7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석불좌상을 늦게 설명하는 이유는, 석불의 좌대 때문이다... 즉 도의선사탑에서 기단부 위 탑신을 받치는 원형 연화좌의 상징을 이어받아 아예 석탑의 기단부를 석불좌상의 좌대로 대치하게 되면, 정형화된 양식의 승탑이 완성되는데 그게 바로 염거화상탑이다...> 

<염거화상탑/국보104호/844년... 예전 경복궁에 있을 때 사진을 골라봤는데, 지광국사현묘탑과 함께 볼 수 있어서다... 아무튼 통일신라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승탑의 모본이 된 이 염거화상탑의 완성은, 중국의 구마라집탑에서만 기원을 찾을 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하지만, 감은사서탑의 사리구에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의 묘제건축에서 출발하여, 다보탑에서 시도한 불탑의 다양화에 인도의 스투파 양식을 수용하게 되었고, 여기에 70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석불좌상의 연화대좌가 조합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승탑이 완성된다... 깨달은 자의 무덤이라는 상징을 살리면서, 인도와 달리 건축구조의 지붕을 살려내고, 그 위에 인도의 스투파를 축소한 모형... 승탑 조형에서 읽을 수 있는 역사의 연원이고, 다보탑이 우리나라 불탑의 다양화에 기여한 영향력이다...> 

<태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보물273호/861년... 염거화상탑에서 전형화된 승탑은 연화대좌와 탑신, 그리고 지붕과 상륜부에 다양한 변화를 이루며 발전하게 된다...> 

<망해사지 승탑/보물173호... 내가 본 승탑 중 가장 강건하고 당당한 기풍을 지닌 망해사지 승탑을 변형된 불탑으로 이해하는 이도 있다... 신용철에 의하면 가람배치의 맨 윗자리에 자리한 승탑 2기를 쌍탑으로 배치한 불탑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800년대 중반이면 이미 불탑과 승탑이 별도의 경로로 변해가는 시점이어서 약간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승탑도 불탑처럼 가람배치의 중심에 등장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돼 같이 올린다...>

<연곡사 북 승탑/국보54호... 쌍봉사 철감선사탑, 연곡사 동 승탑, 고달사 승탑 등과 우리나라 승탑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승탑은 이렇게 완성돼 나간다...> 

<광주 서오층석탑 사리구... 승탑만이 아니라, 애초 사리구에서 시작한 불탑은 지속적으로 그 양식을 계승한다... 900년대 중반...>

<광주 서오층석탑/보물109호... 사리기와 잘 어울리나?^^ 백제지역에 신라의 지붕돌, 고려의 손길이 보태진 석탑... 절충의 한계다...> 

<세중돌박물관에서... 이처럼 제단처럼 넓은 기단부에 작은 묘탑이 조합을 이룬 사례는 승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불국사 수미범영루... 그런데 우리의 건축적 상식은 항상 지붕이 기단보다 넓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보탑의 상륜부는 지나치게 좁아져 일반적 건축상식에서는 오히려 불안정해 보이는 체감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다보탑을 건축적 완결성을 벗어나 제단에 스투파가 올려진 양식이나, 목탑 구성의 기단부에 화려하게 구성된 불국토로 읽어보면 '모형으로 완성되는 불탑' 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게 된다...   다보탑을 보면서 늘 미심쩍었던 체감과 상하부의 비례를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걸 다뤘을까? 그렇지만 나름 성과도 있었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