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석탑의 복원에 대하여...
1) 문화유산 답사여행의 활성화와 문화재 복원의 현주소
개인적 생각이지만, 개인적이든 가족단위든 국가차원이든 여행에도 순서와 단계가 있는 거 같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물건과 경험이 회자되면서 여행의 동기를 촉발시키고(그래서 여행은 쇼핑에서부터 시작하는 거 같다), → 그 다음엔 자연과 문물, 정치경제 시스템, 문화와 예술이 보이면서 역사와 사회의 비교가 시작하고(답사와 견학이 혼용된 패키지여행이 이 단계쯤일 거 같다), → 그리고 차츰 개인 혹은 소규모의 만족을 위해 차별화된 체험여행(배낭여행이나 먹거리/볼거리/놀거리를 위한 선택적 여행)으로 발전하면서, → 나중에는 생활의 연장선상에서 현지 또는 현지인과 동화가 중시되는 개인적인 시간 소비를 위한 여행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물론 현재란 시공간에서 벗어나면서 시작되는 대부분의 여행은, 각 단계가 중첩되어 있고 무게중심만 다를 뿐이겠지만).
<간월사지탑까지 꼭 편년설정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석탑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접근방법을 정리하면서, 결국 석탑의 복원까지 말하게 됐다... 이제 석탑의 복원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건축의 복원, 문화재의 보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여행에서부터 서두를 꺼내야하고...ㅋㅋ 짧게 정리해 본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올렸던 사진들로 시작한다... 내 여행(?!)의 출발은 92년 미국여행에서부터였다...>
<우리나라에 대해 외국인들에게 무언가 말하고 이야기하려면, 책속의 역사와 시사가 아닌 내 느낌이 필요하다는 생각... 아마 그래서 시작된 것은 역시 자연에서부터였던 거 같다... 양양 가는 길... 이 사진 찍으면서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소나무를 이해하게 됐지... 역시 그의 그림은 살아있었다...>
<당시 강원도 원주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2주일에 한번씩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딘갈 가야만 했다... 그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물이었고, 폭포였고, 이 두타산 쌍폭포였다... 쌍폭포 사진이 없는 달력은 인정도 안했고, 쌍폭포 소개가 없는 여행책자는 수준미달이라 폄하하고...ㅎㅎ 92년도부터 두타산에 대해 쓴 여행기가 3편이 됐다...>
<사시사철 여행은 계속됐고, 이런 눈길에서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ㅋㅋ 나는 여행을 위해 나를 걸었는데, 저 앞차를 모는 사람은 삶을 위해 이 눈길을 달릴까? 그런 생각하면서...^^ 그래~ 생각해보면 내 여행은 부모님따라 서울가는 거에서 시작해, 수학여행을 가고, 잊기 위해 떠나고, 그 다음엔 회사 프로그램으로 가고, 이때부터는 나를 위해 갔던 거 같다...>
우리나라와 나를 혼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경우도 호기심 차원을 떠나 높아진 문화정체성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답사여행이 대중화 된지 20여년이 넘어 가고, 예술적이며 역사적 감흥을 문화유산에서 찾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는 여행의 질도 달라졌다고 생각된다. 또 그만큼 성숙해진 사회분위기와 경제적 여력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의 원형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부터는 1960~70년대와 또 다른 차원에서 문화재와 관련한 지원이 체계화 일상화되면서, 이제는 기업을 비롯해 사찰 및 개인 등 자체적인 가용재원과 전문인력까지 투입돼 많은 문화재들이 다양한 이유로 복원 보수 되는 등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여의 백제역사 재현단지지?... 백제역사 문화관과 함께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백제의 문물를, 역사책의 기록과 지도와 사진 혹은 박물관의 유물이나 TV 드라마가 아닌 이런 건축적 재현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건 참 좋은 기억이었다... 평지에 건축되었던 백제건축은 역시 수평적이다... 그들의 건축이 수평적이었던 것은 기술과 시간과 경제력의 문제 보다는, 주변 산하가 그들의 감성을 그렇게 각인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백제역사 재현단지 내의 능사... 법륭사에 대해 알고, 직접 오중탑을 보면서 백제의 목탑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실현됐고... 개인적 생각이지만, 현재의 능사 오층목탑은 비록 하앙구조를 채택했음에도 내 눈에는 다분히 현재적이고 조선식 미감으로 느껴진다... 물론 백제의 석탑과 신라석탑의 차이에서도 처마의 반전이 있지만, 법륭사 오중탑을 보더라도 저 정도 곡선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물론 만약에 이 능사 오층목탑의 처마선이 직선이었다면, 또 다시 카피나 왜색시비를 벗어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건축의 복원과 재현은 현재적 미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를 완벽히 재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색 시비에 휘말렸던 구 부여박물관... 사실 나는 이 건축을 보면서 엄청난 힘을 느꼈었다... 목조건축의 원시성과 함께 노출콘크리트의 질감은 석재를 대신에 대지를 장악하는 강력한 중량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역시 김수근선생이라는 생각을 했지... 나는 지금도 이 건물을 보면서 왜색시비(신사느낌)를 거론했던 김중업씨나 중앙일보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건 선생의 말대로 일본의 건축도 백제의 건축도 아닌 김수근의 건축일 뿐인데(1965년 설계한 구 부여박물관은 결국 71년 수정안으로 준공했데, 1963년작인 자유센타와 친연성이 높다고 보이지만, 혹자는 1964년 일본의 요요기 경기장을 거론한다. 그럴까?) ... 아무튼 이렇게 작은 건물에서 이만큼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 건축물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복원도 재현도, 그리고 재해석도 다양한 평가가 있기 마련이고 문제는 이를 극복할만큼 탄탄한 준비와 넓은 안목이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재현단지의 천정전... 삼국사기에 나온 백제건축의 미학 ; 검이불루 화이불치가 느껴지려나?? ^^ 아무튼 복원과 재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문제는 원형의 충실성이 아닐까 싶다...>
또 여기에는 선택의 폭과 기회가 많아지면서 1990년대까지 홍콩, 대만, 일본, 미국 등에 국한된 여행대상에 2000년대부터 동남아시아와 유럽, 중국, 중동 등이 포함 활성화되면서 유행처럼 번진 해외여행 경험은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각 나라에서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문화재의 복원과 보존이 공동체의 정체성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 또 이를 지원하고 강제하는 시민사회의 참여가 한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높이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반성하게 하면서, 역으로 국내의 문화유산에 대한 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 생각한다.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해외여행 흐름을 정리하면 ; 1960~70년대는 홍콩과 대만이 해외라는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이고, 80년대는 일본에서의 쇼핑이, 90년대는 미국에서 생각하는 미래상이, 그리고 2000년대는 유럽에서 문화를 보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 여행의 계기에는 정부기관의 시찰, 해외근로자 파견, 유학생의 급증, 그리고 기업체의 해외지사 파견, 이민자들의 가족교류 등이 강력한 동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곳은 밀라노 대성당인데,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화유산에 대한 그들의 보수공사는 늘 계속되는 연중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걸 추진하는 정부의 노력도 인정하지만, 이게 가능한 기술력의 축적과 세비지출을 용인하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에 더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복원과 보존의 가시적 대상은 건축유물이 대부분이고, 실제 우리가 해외여행에서 각 나라의 분위기와 역사를 느끼는 감상의 대략 70% 이상이 건축유적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된다. 즉 현재의 리듬과 시공간을 벗어나면서 시작된 여행이 고대로마/진시황으로 가든, 중세 유럽이나 명나라, 에도막부로 가든, 또는 미국 등 미래의 마천루를 향해 달려가든 활자와 말로 전달된 정보들이 재구축되고 체감되는 건 달라진 건축적 공간과 배경이 있어 입체적 상상이 체득되는 것이며, 그런 이유로 현대 사회와 과거 역사를 느끼는 가장 주요한 통로가 현존하거나 복원된 건축유적들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국내의 해외여행자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도 건축유적과 유물에 대한 복원과 보존 논의는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우리가 여행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건 시차와 사람, 기후와 자연의 변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역사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것은 건축 유적과 유물들 때문이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내가 부러웠던 것은 정교함과 화려함을 추구했던 그들의 미의식과 경제력보다, 지금까지 이런 유적들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 더 컸다... 물론 그들에게는 고대종교가 중세종교로 전환한 시점에서 근대까지 연속적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거다... 그에비해 인도, 중국과 우리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고대종교체계가 해체됐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중세종교로 전환까지가 늦어서 암흑기가 길었고, 동양에서는 근대까지의 전환이 늦어서 서양문물의 침입에 무기력했고... 결국 셈셈인가?>
그러면 복원과 보존에 대한 우리들의 현주소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건축유물이라면 사찰을 비롯해 궁궐, 서원, 재묘, 성, 원림, 일반 살림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현재 문화재 보존과 등록관리, 그리고 문화관광상품의 개발 등 다양한 의도를 가진 주체들과 이유에 의해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독립적 건축물의 완성도보다 집합적 완결성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공간경영이 무시돼서는 복원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개별 건축물의 특성 및 공간경영을 고려하더라도 증축과 개축 혹은 부지 확장에 따른 변천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들이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며, 때문에 어느 시점/ 어느 범위까지를 기준으로 복원할 것인가가 매우 주요한 고민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 된다.
<부석사에서... 우리에게 하나의 건축물이나 유물이 좋다고 말하는데는, 그 주변과 어우러진 자연이 포함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석사에서... 부석사를 다녀온 분들은 맨 오른쪽에 서 계신 스님처럼 늘 이 방향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무량수전이 참 좋았다고 이야기하지, 부석사 앞마당이 참 넓더라~ 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 건축들은 통일신라가 석축을 쌓고, 고려시대에 무량수전을 짓고, 조선시대에 부속건물들이 들어서고, 현대에서는 여기저기서 석탑도 가져오고, 석불좌상도 가져오면서 확장됐다... 어느 순간에 부석사는 완성되고, 증축이 멈출까? 또 현재의 영화는 다가올 미래에도 지속될까?... 종교의 공간이니까 우리사회에서 불교가 무엇을 하고, 또 부석사가 어떻게 기여할까에 의해 달라지지 않을까?...>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공간으로 꼽히는 통도사...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확장됐으며, 현재의 주요 건축물들도 임진왜란 이후부터 1800년대까지 200여년의 시차를 두고 증개축(때문에 통도사의 주요 전각들은 조선 중후기 목조건축의 모든 변화를 다고 있다)되었다... 즉 우리의 건축유적과 유물들은 개개의 완성도에 의해 평가받는 게 아니라, 집합적이고 집단적인 생성과정과 그들이 분절되고 통합되면서 만드는 공간, 그리고 또다시 자연을 끌이들이고 차단하는 방식까지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럽의 건축을 조각에 비유한다면, 우리의 건축은 레고같은 돌탑쌓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은 끊임없이 깎아 만드는데, 완성과 미완성이 분명하다. 이에 비해 하나씩 쌓아가는 돌탑은 쌓으면 쌓는데로 완결적이다... 이런 비유가 가능할까?>
즉 시대변천까지 역사화된 이들 건축물의 원형이란 설정하고자 하는 시점에 따라 매우 복합적인 문제를 파생시킬 수밖에 없어, 일례로 현재 상당부분 복원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불국사를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으로 볼 것인지, 조선시대 건축으로 규정할 것인지 하나의 시점으로 규정하기에 모호해지는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라는 말이다. 또한 아직까지 졸속추진과 과시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복원공사 추진 주체에 대해 나는 충분한 신뢰를 보낼 수만은 없어, 자칫 관광상품개발 외에는 재원투입 조차 인색한 상황에서 목적까지 변질돼 복원이 파괴로 이어지던 일제강점기나 1970년대를 재현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점들이(신기술의 우월성 과시/일제강점기 → 민족문화 정체성 확립/경제성장기 → 문화 관광상품 개발/과도기 → 자연과 역사가 함께하는 문화예술의 체험공간/앞으로 가야할 방향?^^)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불국사를 1970년대의 대표적 복원이라고 봐야할까? 물론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석굴암과 함께 불국사 복원은 시작됐다...>
한 예로 경덕왕대인 760년 건립돼 교각 유구가 남아있는 월정교 복원은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보인다. 사실 다리 위 구조물에 대한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확정된 복원안은 중국의 누교(누각건축물이 있는 다리)형식으로 실체도 불분명한데다, 월성에 대한 어떤 건축적 복원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화려한 교각건축물만 덩그라니 들어서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만약 하더라도 교각까지만 복원하고 후대를 기약하든지, 강우방 교수 지적처럼 교각 유구(하천 바닥 유실을 막기 위해 불국사 석축과 동일한 구조를 사용했다)는 보존하고 장소를 옮겨 복원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문에 건축구조물의 복원과 원형 추정에는 현재적 필요와 목적이 분명해야하고, 기술적인 복원 외에도 당대의 시대를 추정할 수 있는 거시적 안목과 문화사상적 깊이가 필요한만큼 그만큼 신중해야 하며, 단기간의 성과주의에 집착할 게 아니라 오랜 기간을 통한 단계적인 접근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교각과 누각까지 복원이 된 걸 사진으로만 봤기에 임해전지에 있는 월정교 모형 사진으로 대신한다... 모형과 사진과 실물의 차이는 엄청 클텐데 가보게 될까? 안가게 될까?... 아무튼 애초 유구가 있는 것은 하천의 바닥이다. 그 바닥에 불국사 석단에서 사용하던 격자형(+자와 # 형태) 장석이 있고, 그 사이를 통돌로 채워 바닥의 유실을 막았는데, 현재 모형에는 그런 내용 자체가 없지?... 아무튼 문화재의 보존이나 복원보다는 다른 걸 더 중시했다는 생각... 2014년 완공된다는데 통일신라의 건축을 어떻게 복원했는지 보기는 봐야할 듯...>
<송광사 우화각... 누교를 생각하면 송광사와 태안사가 생각난다... 1774년 영조때 중수했다니 조성시점은 인조때 쯤일까? 겨울엔 나뭇잎이 다 떨어져 건축물 보기엔 좋은데, 건기여서 물이 없다...>
<태안사 능파각... 생각해보면 이런 누교가 있는 곳은 모두 전라남도 일대 뿐이 아닐까? 하긴 이렇게 하천을 건너 사찰에 진입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마곡사, 선암사, 흥국사, 금산사와 건봉사가 있고, 실상사와 월광사가 제일 넓었을 거 같은데... 하긴 산지가람을 선호한 경상도쪽에는 홍예교 등 교각이 발달할 이유가 없고, 게다가 월정교는 왕궁과 연결된 곳이니 또 다를 수는 있겠다...>
<때문에 월정교는 이 능파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라는 점이다... 그런데 월성에 진입하는 길목에 그런 누각형식의 교각을 만들었을까? 군사전문가나 궁궐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궁궐의 수비대장이었다면 당장에 저런 방식의 누각을 치웠을 것이다... 게다가 궁궐에 해자를 두는 이유는 방어를 위한 것이고, 방어를 위해서 유럽에서는 영구적으로 고정된 다리조차 만들질 않았던 거 아닌가?... 저런 누각을 다리 위에 만들려면 그건 궁궐 내부에 있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도심에 있을 때나 고려할 수 있는 건축양식이라는 점이다...>
<화성 화홍문... 화성을 관통하는 수원천의 북문에 해당하는 화홍문은 늘 이 이미지다... 그러나 이쪽은 화성의 내부다...>
<화성 화홍문의 외부...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뭐 사진기가 다르고 필름과 디카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화홍문은 방어를 위한 군사시설로서의 기능과 목적이 최우선이라는 점이다... 사실 나는 아직 통일신라의 궁궐이었던 월성에 대해 일체의 감이 없다... 때문에 월정교에 대해서도 입지와 주변만으로 뭘 판단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는 아니라는 말... 아무튼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간접 자료들을 동원했고, 그만큼 복원은 말도 많고 평가도 많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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