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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여행-趣,美,香...

신라시대 삼층석탑 50> 석탑의 복원을 위하여 (2) - 복원의 원칙과 방법...1311

 

 

 

 

 

 

 

  2) 석탑 복원과 보수를 위한 몇가지 원칙...

 

그러면 내가 현재 다루고 있는 석탑은 어떨까? 사실 석가탑이나 다보탑 등 수학여행에서나 봤던 호기심 만족 차원의 여행은 더 이상 사회유행은 아닌 거 같다. 이미 보물급 이상 석탑에 대한 개개인의 호불호와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상식화되고, 이제는 문화재의 지정 비지정 문제점을 비롯해 행정기관의 무관심과 방치가 실시간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폐사지와 폐탑에 대한 원형추정과 보존에 관심을 보이면서 세심한 관리까지 주문하고 있는 게 현재 수준인 거 같다. 이런 경험과 관심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눈에 띄게 보존과 복원에서 변화를 느끼고 있는데, 가깝게는 석불과 석탑의 세척도 그중 한 과정이고, 다보탑처럼 결손 된 부위에 대한 보수, 그리고 석가탑의 전면적인 해체 등 규모와 범위가 상당히 폭넓게 진행되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복원이란 명분에서 진행되는 모든 작업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이유로 무조건 긍정만 할 수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감은사탑에 대해 찍은 가장 오래된 사진이 이때일 거 같다... 96년... 제일 많이, 그리고 맘 잡고 돌아다니던 때이기도 하고, 그때쯤 되서야 자연과 철학과 역사와 경제, 그리고 건축에 국한됐던 내 눈에 석탑의 힘이 느껴졌었지...^^ 아무튼 그때 답사기를 보면 복원에 대해 감성적으로만 접근했던 거 같다. 그때 가설비계가 노출돼 있었다...> 

<그리고 96년도의 복원에 문제점이 제기돼 재 보수가 이루졌다... 교체한 기단부 판석이 상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갔던 거... 결국 기단부 내부의 적석층에 대한 보수와 상층기단부 갑석이 재교체 된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2013년의 모습... 그때부터 사진을 비교하면 분명 많이 달라졌다... 보수와 관리, 그리고 복원의 힘이다...> 

 

 

 

3-1.

 

 

 

그러면 석탑의 복원과 보존에서는 어떤 원칙과 기준들이 만들어져야 할까? 먼저 단독 건축물이면서 공예적 특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석탑은, 유지와 보수 과정에서 일부 변형이 있다하더라도 건축구조물과 달리 복원의 기준점은 최초 조성된 시점이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입지에 변함이 없고, 도괴 등을 이유로 일부 부재를 교체할 수는 있지만, 이를 조형된 시대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석탑의 편년을 설정하는 것은 다른 분야의 복원과 달리 더더욱 중요하게 되며, 당대의 양식과 기법 등이 변형될 때 석탑의 체감과 미감은 회복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된다면 이것은 복원이 아니라, 보존을 빙자한 파괴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은 복원과 보수과정이 전면적으로 공개된다... 발주처와 설계자, 그리고 시공자까지... 인터넷을 찾아보면 공사비도 확인할 수 있고, 이때 만들어진 자료들도 확인 가능해진 게 많다...>

<다보탑 보수과정... 예전엔 관계자 외 출입금지였고, 지금도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된 건 맞지만, 현재는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투명막 등의 설치로 보수와 복원이 더이상 밀실 속에서만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다보탑의 세부모습을 사진만이 아니라 실측을 통해 도면에 그리고 있는 모습...>

<광화문 공사 가림막... 그리고 이제는 유럽 등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공사가림막도 또다른 문화로 정착된 거... 본래 공사 차단막의 역할은 공사 중 비산먼지와 낙하물 방지를 위한 안전과 기능상의 목적이 크다. 즉 외부로부터의 통제와 작업반원의 안전 및 주변 통행인들의 안전이 중요했다는 말... 이제는 문화재 복원에 걸맞게, 안전과 환경오염 외에 공사 결과에 대한 의미를 문화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자체를 임시 가설 예술로 접근하고 있다는 말... 환영할만한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지금까지의 현실과 결과는 우리의 우려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익산 미륵사 동탑에 대해 이미 언급했지만, 확인 가능한 디테일을 무시함은 물론 백제식 결구방식을 신라식 기법으로(판석식 가공과 통돌 적층식 기법) 가공한데서 오는 미감의 차이는 너무나 확연한 것으로, 겉모습과 형태의 복원만으로는 문제점이 명약관화하게 노출된다(복원된 미륵사지 동탑이 서탑과 똑같은 디테일과 세부 부재들의 조합을 살릴 수 없었던 것은, 결구방식의 차이가 초래할 미감의 해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백제식 결구방식을 재현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눈뜬장님이거나 몰라서 혹은 대충한 결과가 아니라, 똑같이 만들 기술도 방법도 수준도 의지도 준비도 없었기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해체하기 이전의 미륵사지 서탑... 이것도 90년대 찍었던 사진인데 이거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 백제식 결구방식으로 석탑이 복원되려면 최상층이 있어야 하부의 구조가 버틸 수 있다. 즉 하부 구조를 눌러 줄 수 있는 압축력만큼의 무게가 있어야만 석탑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검토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해체와 동시에 다시는 복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 해체를 통해 사리갖춤을 얻은 대신, 조선시대까지 그나마 유지되던 원형 유지가 어려워졌다는 말... 복원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이걸 찍으려고 할 수없이 몇개월 전에 다녀왔다...^^복원된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많았지만, 원형에 충실한가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수밖에 없다...>

<미륵사지 서탑의 세부 디테일과 현재 복원된 동탑의 모습...>

<세부의 결구와 부재...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석탑 복원의 의도와 목적이 애초부터 다른데 있었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1993년 복원했으니 딱 20년이 됐다... 외형에 대한 집착, 과시행정, 졸속복원... 그 당시의 목적을 나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싶지만, 나는 아직 이 탑을 복원했던 주체들의 반성을 들어보진 못한 거 같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한다는 사명감에서 모든 일은 출발하겠지만, 문화재 복원은 열의와 의지와 욕심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문화재를 대하는 겸손과 역사를 관통하는 안목, 그리고 복원의 기술까지 불과 20년전이지만, 1980~90년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또 최근의 예를 들면 경주 남사리 북탑이나 안동 임하동 동삼층석탑의 복원된 기단부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짝이 아닌 일층몸돌을 과감히 빼고 복원을 추진하든지, 지역정서를 고려하려면 잘못된 조합이라도 현재 모습대로 유지했어야 하는데, 편년에도 양식에도 맞지 않는 기단부까지 만드는 건 예산 낭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다. 즉 보존의 목적과 복원의 의도가 불분명하다면 방치가 오히려 최선의 보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경주 남사리 북탑... 이 사진은 앞서 이미 올렸고, 안동 임하동탑 사진이 더 좋았을텐데 없어서 그냥 올린다... 기단부도 그렇고, 제 짝인지 확인도 하지않은 일층몸돌도 그렇고... 도대체 무엇을 복원하려 했는지 되묻고 싶다...>

 

 

 

 

 

때문에 간월사지탑이나 석남사대탑에서 살펴봤듯이 면석의 넓이나 폭, 두께, 그리고 층급받침 하나하나도 당대의 양식에 걸맞아야 온전한 복원이 될 거라 생각된다. 물론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나 침소봉대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목조건축이나 집합건축물과 달리 몇가지 요소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석탑에서, 하나하나 부재의 완결성과 상호간의 조화는 오히려 복잡한 구조보다 더 중요하고, 매우 세심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미감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간월사지탑처럼 초창기-전성기-과도기-해체기 각 단계에 맞는 디테일한 원형추정과 이에 걸맞는 복원만이 해당 석탑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이제는 조금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석남사 삼층석탑의 기단부... 이 사진도 앞 글에서 이미 올렸지만,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재인용한다...>

<태안사 삼층석탑의 부분... 내 생각이겠지만, 석남사 대탑과 태안사탑의 양식적 친연성은 없다... 그렇지만 태안사탑의 일층몸돌 괴임이 석남사 대탑에서도 사용됐다...>

 

 

 

 

3-2.

 

 

그리고 복원과 관련해 말하고 싶은 두 번째 원칙은 부분적인 파손이 있는 석탑은 그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복원하는 것이 맞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이 문제는 부분적인 파손의 한계가 무엇인가에서부터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탑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감은사탑처럼 지붕돌 전각의 반전부위만 깨진 거, 천군동탑이나 창림사지탑처럼 파손 부위가 눈에 띄는 거, 고선사탑처럼 일부 층급받침까지 파손 된 거, 그리고 원원사지탑이나 염불사지탑처럼 상당 부분이 파손된 거까지 부위와 형태도 다양하다. 또 여기 예를 든 경우는 지붕돌에 한정시킨 것일 뿐이고, 이를 확대하면 지붕돌만 남은 거에서부터 기단부만 남은 거까지 분류가 힘들 정도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간월사지탑은 그나마 기단부 면석 일부와 각층 지붕돌 및 일층과 삼층몸돌이 남아있어 복원된 경우지만, 석남사대탑이 다르고 장항리탑도 또 다르며 경주 남산을 비롯해 지천에 깔린 폐탑까지 고려해야 할 대상은 너무 많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까?

 

 

<원원사지탑... 조각과 실루엣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원원사지탑의 현실은 처참하게 보이기도 한다... 1809년 풍수설에 입각, 양택인 寺地를 바꿔 음택인 묘지를 만들기 위해 울산에 사는 이모씨가 파괴해, 1931년 노세 우시조가 자기집을 판 사비로 복원했다... 이것도 역사다...>  

<장항리탑... 이건 1920년대 사리갖춤을 노린 도굴꾼이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한 부재들을 수습해 1932년 복원한 것이다...>

<그나마 장항리탑은 쌍탑인데다 100여년 전에 도괴됐고, 다시 10년후 폐탑 부재들을 수습해 복원이 시도됐으니 운이 좋은 편에 해당한다... 이런 탑들이 전국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사실 큰 이야기부터하자면 페탑의 복원은 보존과 특별한 목적에 한정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도괴된 상태에서는 자연재해에 의한 유실과 도난 등 관리에 취약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어 방치보다는 최소의 복원아 관리에 보다 유리할 수 있다. 또 사지의 상징성이나 입지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 한정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의 무분별한 복원의 폐해를 줄이려면 최소 단위의 부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예를 들면 1층과 3층의 지붕돌이 있어야 하고, 몸돌도 일층몸돌은 꼭 있어야 한다고 보인다. 그리고 기단부도 상층과 하층의 면석이나 갑석이 최소 2매 정도씩은 있어야 원형 추정에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즉 이 정도 부재들이 있다면 노반을 제외하고 기단부와 탑신까지 복원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천군동탑... 동탑에는 훼손된 노반과 상륜부 부재들이 일부 있다. 또 이런 경우는 어디까지 복원이 정답일까? 나는 노반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분 파손된 지붕돌의 전각부분까지 복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에반해 내가 특별히 말하고 싶은 부분은 지붕돌의 보수다. 특히 석불의 코처럼 전각의 반전부위가 탈락되거나 인위적으로 파손된 경우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데, 예를 들면 감은사탑이나 천군동탑은 현재 상태보다 보수 복원하는 것이 석탑의 원형을 추정하고 전체적인 미감을 느끼는데 훨씬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된다. 게다가 전체적인 체감률과 실루엣을 감상하는데 가장 먼저 시선을 뺏는 것은 지붕돌의 맵시다. 즉 지붕돌이 살아있으면 몸돌이나 기단부의 부분적 파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미감을 느끼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훨씬 전체적이고 풍부한 미감이 살아난다. 때문에 나는 현재 부분적이나마 파손된 상태의 유지가 아닌 복원을, 지붕돌의 교체가 아닌 보수를 강조하는 것이다.

 

 

<복원 보수된 감은사탑의 현재 모습...>

<감은사탑 일층 부분...>

<감은사탑의 기단부...>

<똑같은 일층과 기단부지만 모든 면이 완벽하거나 온전한 것은 아니다. 또 모든 부재를 교체하거나 완전한 형태로 복원하는 것은 무리하고 생각하며, 또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복원과 보수 후 세부 디테일이 완벽해질 수 없는 게 더 정상적이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 감은탑이 위용과 기품을 잃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지붕돌의 맵시가 비교적 완전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닳고 깨지고 훼손된 부분들이 많다고 석탑의 미감이 훼손됐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도 기술의 문제고 의지의 문제겠지만 현재 수준에서 전혀 무리가 없을 걸로 보이고, 또 이런 과정에서 축적된 석탑의 도해나 양식의 분석은 충분한 자료가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세척이나 주변환경 개선에도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일단 전각부위가 파손됐던 직지사탑들처럼 보수가 시급하고, 그 다음에는 원형복원에 큰 무리가 없는 창림사지탑처럼 보수를 진행할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를 구별해야 하는 석탑을 손대고, 그 이후에 상당부분 파손된 염불사지 서탑처럼 지붕돌 교체나 보수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특히 원원사지탑의 경우처럼 이미 쌍탑으로 되어 있고 세부 디테일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는, 한쪽탑 즉 원원사지 동탑에 한정해 파손된 지붕돌을 복원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부 훼손된 사천왕상 등의 복원은 내가 바라는 게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현재 깨진 부분들의 보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감은사탑은 비교적 원형이 충실히 보존되어 있다...>

<물론 이 상태의 고선사탑에서도 국보탑으로서의 위용과 기품을 충분히 느끼지만, 손댈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은사탑보다 심한 케이스로 골라봤다...>

<복원은 됐지만 고선사지탑보다 더 훼손이 심각한 경우로 원원사지탑을 골라봤다... 염불사지탑처럼 이 원원사지탑도 한번 시도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3-3.

 

 

복원에 대한 세 번째 원칙은 복원과 함께 재현이 활성화 돼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문제는 문화재 반환과 직결된 문제로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유물이란 해당 유적지에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는 약탈과 함께 과거사 청산 및 정리 문제로 부각되기도 하고, 국제적인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되기 때문에 국제적인 규약과 협약이 마련되기도 하며, 국내적으로는 재산권 분쟁과 원 소유자에 대한 법적 다툼으로 파급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 모든 문화재는 박물관을 떠나서, 혹은 현재의 장소가 아닌 과거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건 올바른 문제의식이며 해결방법일까?

 

 

<문화재 반출과 복원, 그리고 이전에 대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탑도 없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하면서 대부분의 석조유물들이 옮겨졌지만, 이 승탑이 경복궁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층 탑신 위가 625 한국전쟁 중 12,000여 조각으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 자리가 있다고 무조건 원 위치로 이전하는 게 문화재 보존과 복원의 목표가 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파괴와 방치도 역사지만, 약탈에 의해 빼앗긴 것과 헐값으로 양도한 것도 역사다. 과거를 지키지 못했던 이들이 지금에 와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만주땅이 고구려땅이었으니 대한민국에 반환해 달라는 말과 똑같을 수 있다는 말이다(비약이 심했나?). 침략자를 변호하자는 게 아니라, 그들에 협조했던 이들의 단죄가 우선이고,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역사공동체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약탈자며 가해자의 입장에서 대승적 견지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할 일을 외면한채 거짓변명만 일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가치를 몰라 방치하고 스스로 잊어버린 과거의 반성과 현재적인 교훈도 없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하소연만 하는 것도 썩 유쾌하거나 건강한 발상만은 아니다.

 

 

<이 사진도 97년 사진이니까 뒤로 염거화상탑이나, 월랑선사탑비가 같이 보인다... 만약 일제강점기때 일본에 반출된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이 승탑이 사랑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꼭 이 승탑을 지칭할 필요는 없지만 약탈에 대한 분노보다 우선해야할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지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간송미술관의 전시관인 보화각에 대해 정부의 지원이 발표된 것은 아주 아주 최근의 일이다...>

 

 

 

 

또 국제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국내의 이관에도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원위치로 회복하는 것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되는 것도 아니고, 박물관을 비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조금 더 능동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재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원공국사탑이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현재 진본이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원공국사탑은 원주 부론면으로 이관하지 않고, 거돈사지에는 재현품을 복원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정확한 위치와 검증이 전제됐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되는데, 사진이나 설명보다 현지에 실물 크기로 하나의 공간을 차지하게 되면서 기존에 있던 삼층석탑 및 원공국사탑비와 어울려 과거 거돈사지의 공간경영과 건축적 상상에 훨씬 입체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거돈사지 원공국사탑/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25년 조형된 이 승탑도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에 있던 것을 1948년 중앙박물관에서 회수(?)한 것이다...>

<예전의 원주 부론면 거돈사지... 예전 거돈사지에는 이처럼 사진으로만 원공국사탑비의 존재가 설명됐었다...> 

<그리고 현재 거돈사지에는 상륜부까지 복원한 모습으로 제 위치에 원공국사탑이 재현되어 있다...>

<2000년대 새롭게 재현해 말끔한 모습에서 가벼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현재의 모습에 상당히 만족하는 편이다... 원공국사와 거돈사지의 관련성, 통일신라 석탑과 고려의 승탑과 탑비로만 이루어진 거돈사지의 윤곽, 그리고 원주지역의 위상과 함께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야했던 통일신라 후대의 분위기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지자체와 박물관 등에서는 진본의 실물크기 재현이나 문양의 탁본, 그리고 모형 전시 등을 통해 조금 더 입체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지만, 아마 가장 좋은 방법은 본래 있었던 자리에 진본이 재현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런 과정이 활성화 된다면 인문사학자들이 주관하는 도면과 관련 사서에 의한 검토와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 기능공들에 의한 기술적 미적 재현과 경험축적까지 가능해 현장성을 높일 수 있고 전통양식의 맥을 부활시킬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답사여행과 문화체험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균형있는 발전을 바탕으로 훨씬 풍부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5m 가까운 높이의 탑비 이수와 비석의 세부 문양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위 사진 중 이수 바로 밑, 비석 최상단의 비명과 문양 탁본이다... 원주박물관에서 원형 크기의 탁본도 판매하고, 원주시청에는 동으로 모형과 탁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우리는 비석 문양의 정교함과 화려함, 그리고 세련된 문양들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비명 좌우의 봉황상...>

<용화수 좌측의 비천상이다...>

<용화수 우측의 삼족오다...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와, 달을 상징하는 계수나무와 토끼를 확인할 수 있다... 책과 자료들을 통해 미리 알고 비석을 현장에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현장에서 이런 문양들을 안내판이나 안내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 훨씬 입체적이지 않을까?>

 

 

 

 

또 재현과정이 공개되면 파손된 부위에 대한 원형추정에서 보다 디테일한 원형과 편년에 대한 논란이 부각될테니 이건 실보다 득이 많다고 생각된다. 또한 행정기관이 각종 논의들을 주고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민간의 연구성과를 집적할 수 있고, 연구에 대한 동기도 유발할 수 있으니, 더더욱 장려해야할 일이라 생각된다. 이런 과정에서 해외 문화재들도 일부 소신과 관심있는 개개인에게 맡기거나 무조건적인 반환에만 열을 올릴 게 아니라, 자료와 정보의 공개를 통해 연구성과를 축적하고 정부차원에서 재현과 복원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최소한의 준비도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여 백제문화재현단지 내 백제역사문화관 미륵사지 목탑 모형... 그리고 그 뒤족에 금동 반가사유상과 일본 광륭사에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이 재현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명에 약간 문제가 있으나 좋았다는 생각... 목탑 모형을 보면 자꾸 동대사의 대불전 구조가 생각난다...>

<역시 같은 재현단지 내부 능사 금당 내부의 목조삼존불상과 금동대향로 재현품... 법륭사 금당의 삼존불과 국보로 지정된 백제 능사지에서 출토된 금동대향로가 있는데, 맘에 든다 안 든다를 떠나 준비했던 측의 고심을 읽어 볼 수 있다... 바라보는 우리들이 훨씬 많은 상상을 안내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재현단지와 재현물품들의 역할은 충분히 성취한게 아닐까 싶다... 원형 추정 및 문화재 반환과 이전에는 이런 준비와 다양한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