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우리나라 사찰의 시대별 가람배치
내가 답사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자리에서 이야기했던 거 같다. 자연을 좋아했던 마음에 건축이 보태지고, 역사를 더하면서 문화를 찾게 되고, 이제는 여기에 예술과 사상을 통해 나의 원형질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니 지금쯤 이래저래 한바퀴를 돌았다는 생각이 많았다. 처음엔 산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답사여행은 만족스러웠지만 2~30여년의 변화가 더 이상 산사의 정취만으로 정서적 만족감을 주는 건 한계에 온듯 싶다. 정보의 범람과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공간적 거리의 접근성이 해소되면서 현재의 비움과 채움은 공간적 단절만으로 보장되기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도의 시대에서 느리게 걷기만으로 우리들 마음이 위로받지 못하는 것은 깊이와 원형에 대한 탐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역시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거 같고. 해서 지금의 답사여행은 해체된 과거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닌 문화와 예술에 사상의 풍부함에서 부족함을 확인하는 자극과 향기가 더해질 때 이야기꺼리가 되고 만족도도 높아지는 거 같다.
사찰을 다니면서 언제부턴가 궁금해졌다. 이 절은 언제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을까? 예전엔 그냥 힐긋 지나가버리거나 무시했던 것이 이제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다가오니 그도 나이탓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왜 창건과 중창과 이를 주도했던 이들의 이름과 그때가 소개하고 아는 게 중요한지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가장 기본적인 것이 왜 중요한지를 몸소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몇 번 다니다보고 이력이 쌓이면서 공간이란 완성된 게 아니라 우리들이 나이를 먹어가듯 변하고 생동하는 생명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해가는 공간을 어떻게 이해할까? 결국 그 원형을 찾게 되는 묘한 고리를 찾은 셈이다. 그래서 그 기본적인 틀을 분류해 시대별 공통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나에 숨은 모든 것을 찾기는 어렵지만, 산개된 많은 것들에서 공통된 것을 찾기가 쉬우니까. 그래서 사찰의 가람배치에서도 그걸 찾아보려 했다.
그리고 이제는 언제 창건되었는가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이 어느 시대를 가장 주요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구별해보고 싶었다. 모두가 백제와 신라, 또는 원효와 의상과 자장이 만든 사찰이 아닌만큼, 설혹 그들의 손길과 발길이 닿았더라도 실질적인 공간경영은 어느 시대의 작품인지 확인해본다는 것은 사찰의 연혁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단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모여 2011년 11월경 내가 하고 싶은 100가지 중 15번에서 30번까지가 답사여행과 관련된 것이었으니, 한번쯤 모아볼 필요도 있었고... 다시 기회가 되어 그곳 그 절에 간다면 지금의 기준과 분류가 당연히 변하겠지만, 지금까지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정립해본다.
700년대 전후의 석탑을 정리하면서 백제의 정림사/미륵사/왕궁리, 통일신라 초기의 감은사/고선사/나원리/황복사/장항리, 그리고 불국사와 화엄사를 통해 800년 전후까지의 가람배치 변천에 대해서도 조금씩 추적해봤다. 또 현재 우리나라의 사찰 대부분은 왕조의 변천과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했으나, 특히 조선시대 중기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 정묘호란/1627년)에서 병자호란(1636년)에 이른 양대 전란으로 큰 피해를 입고 대부분 1630년대 이후 중창된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상식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유물과 유구들이 중첩되고 조선시대의 문화와 정신, 기술과 경제력, 그리고 신앙으로 각색되어 일견하기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조선시대의 가람배치나 분위기로 규정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즉 특정 시기에 집중된 중창과 재건으로 공통된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를 조선후기의 가람배치로 현재를 규정할 수도 없고, 당시 재건과 보수 과정도 사찰에 남아있는 건축적 유구와 각종 석조유물들로 인해 원형이 유지되는 곳들도 상당수 있어, 각각의 왕조나 시대별 특징을 통해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분류가 사찰 창건 당시의 분위기와 정감을 담백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원형질은 확인할 수 있다고 보여, 시대별 특징을 기준으로 현 가람배치의 편년을 설정해보고 싶다는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됐다. 해서 2011년 6. 25일 <내가 좋아하는 공간 12>에서 ‘우리나라 사찰건축의 시대별 분류’를 재정리해 본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기준임을 먼저 밝히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작성한 것이니 참고 되었으면 좋겠다.
가람배치에서 시대별 특징이 분명한 주요 사찰을 위주로 정리했고,
조선후기의 소규모 산지중정형 사찰은 제외하였으며,
기타는 석탑 등 유구나 유물이 남아있어 가람영역을 확인할 수 있는 곳만 포함시켰고,
기록이나 발굴을 통해 가람배치는 확인됐지만, 사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은 제외하였다.
창건과 주요 건축물 시대구분은 2011. 06. 25일 <내가 좋아하는 공간 12> ‘우리나라 사찰건축의 시대별 분류’를
통일신라까지 석탑 편년은 2013. 10. 12일 <우리나라 석탑 편년 1~7>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1) 고구려시대 주요사찰과 고구려 가람배치 특징
<표13>
특 징 | 372년 소수림왕, 중국 북조(전진의 부견이 승려 순도를 보냄)를 통해 전래 3탑1금당, 목탑과 토탑 혼용, 팔각 칠층탑과 구층탑 위주 |
최초사찰 | 초문사(375년, 순도화상, 초란사라고도 한다), 이불란사(375년, 아도화상, 374년 동진 승려) |
주요사찰 | 392년 광개토대왕 9개 사찰 신축, 평양 청암리, 상오리, 원오리, 정릉사지 등 |
2) 백제시대 주요사찰과 백제 가람배치의 특징
<표14>
특 징 | 384년, 침류왕, 동진의 마라난타(영광 불갑사)에 의해 전래, 1탑3금당(고구려 영향의 고식) → 1탑1금당, 사각형 방형목탑과 석탑, 7당가람제 - 중문/탑/금당/강당/회랑/경루/종루, 겸익의 인도구법활동 - 율종, 가람배치에 승원이 추가. 사찰내부에 공방을 두어 금은세공, 유리, 소조불 등 제작 (금동대향로, 금제 및 금동불, 사리장엄구 등) 도심지 평지가람, 회랑과 중문, 왕실과 귀족의 원찰 | |
①능사지 | 부여, 567년 위덕왕, 1탑1금당, 7당가람제, 오층목탑-2층금당-강당, 백제금동대향로, 직선축 평지형, 부여 백제문화단지 재현 | |
②정림사지 | 부여, 538~598년, 1탑1금당, 오층석탑(570년경), 고려시대 석불, 7당가람제, 직선축 평지형, 연지 | |
③미륵사지 | 익산 미륵산, 639년 무왕의 원찰, 미륵삼생, 3탑3금당(1목탑+2석탑), 백제 칠층 혹은 구층석탑/석등/당간지주, 평지 복합형, 연지 | |
④왕궁리 | 익산, 640년 무왕, 1탑1금당, 백제 오층석탑, 익산 천도를 고려한 행궁의 부속사찰, 직선축 평지형 | |
⑤법륭사 | 일본 나라, 586~607년 쇼토쿠태자 원찰, 궁궐과 사찰의 일체화 구조, 청동석가삼존상(623년), 670년 화재, 686~710년 중건, 1탑1금당 병렬형 배치, 오중탑, 7당가람제, 도심평지형 | |
기 타 | 400년대 | 서울 암사(현 암사동 일대), 공주 마곡사/갑사 등 10개소 기록, 대통사, 흥륜사, 수원사, 등라사, 가섭암, 율사, 중심사, 동학사, 상원사, 반룡사, 동혈사, 주미사, 정지사 등 |
500년대 | 부여 군수리, 동남리, 부소산 서복사, 용정리, 금강사, 왕흥사, 호암사, 오함사, 성주사, 칠악사, 임강사 기타지역 북부수덕사, 보광사 | |
600년대 | 익산 제석사, 익산 오금산 오금사, 익산 용화산 사자사 |
3) 신라시대 (660년 이전) 주요사찰과 신라 가람배치의 특징
<표15>
특 징 | 눌지왕(417~458년), 고구려 아도화상에 의해 전래(선산에 정착) 527년, 이차돈 순교로 법흥왕 불교공인, 흥륜사(535년), 호국불교 1탑3금당, 평지가람, 비보풍수, 왕실의 원찰 |
①분황사 | 경주, 북천 범람 비보풍수사찰 1탑1금당, 선덕여왕 모전석탑(634년), 원효 법성종, 금동약사불 |
②황룡사지 | 경주, 사찰로 전환된 궁궐지/회랑, 호국적 비보사찰, 553~569년 진흥왕, 574년 장륙전과 장륙상, 1탑1금당→1탑3금당으로 변경, 613년 원광법사, 645년 선덕여왕/자장율사 구층목탑(백제인, 고려척+당척), 1238년 전소 |
기 타 | 흥륜사(544년, 고려척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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