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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40808> 막장 드라마와 惡人(싫은 사람?)

 

 

 

1.

요즘 드라마를 본다.

아마 그 시작이 <별에서 온 그대>였지?

전지현의 매력적인 백치연기에 푹 빠져 지내다 영화가 아닌 TV 드라마에 입문한 게 아닌가 싶다.

왜냐고?

그것 외엔 할 것이 없었으니까...

 

그랬던 이유에 대해서는 차츰 이야기하기로 하고,

정통사극을 표방했던 <정도전>으로 이어지던 드라마 시청은

그 후로도 <닥터 이방인>, <장보리>, 그리고 <기분좋은 날>로 이어지고,

이제는 <밀회>까지 보고 있다.

왜냐고?

그것 외엔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까...

 

중간 중간 의도치 않게 볼 수밖에 없던 드라마도 있다.

<순금의 땅>과 또 다른 방송국의 막장 드라마까지...

그리고 오늘 잠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그 문제의 막장 드라마다.

막장인줄 알면서 왜 봤냐는 이야기도 성립할 거 같다.

본 이유?

같이 있던 동료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극의 전개를 누군가가 이야기 해줘야 했다.

왜냐면 내가 있던 그곳에서는 나 이외에는 그 공백을 채워줄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2.

그 막장 드라마에서 생각했던 게 있다.

惡人? 그 惡人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었다.

(惡人이란 흔히 악마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나쁜 사람(?) 혹은 미운, 싫은 사람 정도로 규정하기로 하자.

현실세계에서 악마와 천사, 옳고 그름은 그렇게 쉽게 구분되거나 나뉠 수 있는 건 아닐테니까...^^) 

물론 막장 드라마라 평가되는 이유는 관계의 어수선함이나 상식적이지 않은 전개,

그리고 타인에 대한 파괴가 자아의 파멸로 귀결된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관람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핑계와 어설픈 변명, 여기에 일상적이지 않은 우연들이 지나치게 남발되기 때문이겠지.

 

또 막장 드라마 惡人은 극작가의 지나친 자기중심적인 의식세계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주변사람들의 불필요한 배려와 이해할 수 없는 용서, 그리고 무책임한 회피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결국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惡人이란 선천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주변관계에 의해서 서서히 가공되고 길러지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즉 惡人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거나 악마의 유혹에 타협한 결과가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의 피조물이 아닐까 싶다는 말이다.

 

 

 

3.

엊그제 한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늦었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너무 빠른 타이밍이었을 수도 있다.

회피할 수도 있었고, 미룰 수도 있었고,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지연되는 시간들이 더 이상 나를 나태하거나 무기력하게 방치할 수 없다 싶어 응했던 미팅...

 

갑자기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와 그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이야기 하자 신다.

대뜸 반문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내가 왜???

과거가 정돈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가 되물었다.

 

앞뒷 말이 다르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망각에 익숙하며, 불리하면 타인을 방패삼아 숨기 바쁜 비겁한 사람에게 

무슨 믿음이 있고, 함께 그릴 미래가 있겠는가 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 타인의 고통과 희생을 어루만지지 못한 사람에게 무슨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고,

자신이 바라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만 찾는 사람에게 무슨 진실이 있겠는가 하고...

 

한가지 덧붙였다.

과거를 공유하지 못하면 미래는 각자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고,

현실에 대한 잘못된 진단은 불편한 처방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책임질 준비와 자세도 없으면서 타인을 이용하고 발목 잡는 것도 좌시할 수 없고,

자기밖에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을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이해해주라는 말을 끊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시선을 외면하고,

용서해주는 말에 마음을 닫았다.

그래서 내미는 손을 억지로 뜯어냈다.

그만큼 당해줬으면 됐고, 그만큼 충성했으면 됐고, 그만큼 배려했으면 됐다고 생각했으니까...

 

 

 

4.

더 이상 차분한 자세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진중한 응시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성적인 대화와 합리적인 교감은 무의미한 사치에 불과하고,

변화에 대한 기대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용서는 불필요한 미련에 불과했다.

 

어떤 관계든 어떤 대화든 가능성과 미래를 거세한다는 것은 아픔이다.

유연한 타협과 너그러운 배려, 그리고 폭넓은 관용은 마음을 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설픈 기대와 무의미한 기다림은 때때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신을 황폐화 시키고 영혼을 고갈 시킬 수도 있다.

그럴 땐 과감하게 잘라내고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맞고 틀림의 문제, 좋고 나쁨의 문제, 득실의 문제를 떠나

이제는 냉정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었던 시점...

다만 칼까지 뽑을 것인지, 방패만 들고 지켜볼 것인지만 남아있다.

그 단절이 단순한 관계의 정리가 아니라 나의 과거까지 흔들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미련을 남겨 두는 것은 서로에게 불행이다.

 

 

 

5.

지켜보던 옆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주홍글씨는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만드는 것이지만, 惡人이나 선인은 주변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것이고,

또 그 사람을 더 이상 惡人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천박한 얄팍한 뻔뻔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면

주변사람들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당신의 어설픈 보조가 진짜 惡人을 만들고 우리들 관계를 막장으로 귀결시킬지도 모른다고...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생각한다.

그나마 그 긴긴 시간 막장 드라마에서 한가지 건졌다면,

복수의 통쾌함도 사필귀정도 아니다.

절대자가 주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그런 기대는 너무 저급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밖에 바라볼 줄 모르는, 반성할줄 모르고 변명과 회피에 익숙한 불쌍한 영혼에게 내가 내밀어줘야 할 것은

너그러운 관용과 무의미한 용서가 아닌 얼음처럼 차갑고 사막같이 삭막한 단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변화시킬 수 없겠지만, 의도하지 않게 엮일 수 있는 미래의 불행은 차단될 거니까...

더 이상 관계가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 가장 현명한 길은

내가 그 사람에게 惡人으로 남는 게 서로에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새롭게 가다듬어질까?

너덜너덜 생채기 투성인 지난 시간들은 수습이 된 걸까?

이것으로 구겨질대로 구겨진 내 마음도 다름질이 되는걸까?

이제는 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기력한 눈을 떼고 손발을 활발하게 놀릴 때가 된 건가?

3주일 꼬박 이 한마디를 전달하기 위해 나는 이리도 불쌍하게 처박혀 있어야만 했을까?

무더위는 이제부터 시작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