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건축주와 설계...
어떤 집을 지어볼까? 당장 모형을 만들려니 나의 입지 혹은 역할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주인지, 설계자인지, 아니면 시공자인지 말이다. 어차피 일인 삼역이라 생각하지만, 일단 공사관계자인 건축주와 설계자, 시공자 모두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역지사지라고, 일단 각각의 역할에 대해 한번쯤은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공에 앞서 먼저 설계와 건축주의 역할부터 생각해 본다.
<대관령 가는 길에서... 어떤 집을 지어볼까 생각하면서, 드디어 단독주택에 대한 사진도 찍게 됐다...^^>
건축주에게 의뢰를 받은 설계자는 어떤 입장에서 설계를 시작할까? 좋은 집은 좋은 설계에서 출발하겠지만, 좋은 설계가 항상 좋은 건축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막상 건축행위에 들어가는 순간, 건축주와 설계자 그리고 시공자 등 건축관계자들 이해관계에 따라 부단한 타협과 절충이 진행될 수밖에 없고, 공간의 효율성이나 시공의 합리성에 앞서는 건축주의 의도 혹은 욕심에 의해 수시로 설계도면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불호를 떠나, 건축주가 담고 싶어하는 장면들이 있다... 잠재된 내면아이의 보상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결국 집을 짓는 것은 기술이나 상품을 떠나, 건축주에게는 삶의 치유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일생에 몇 번이나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건축주 입장에서 생각하면, 평생에 한번 집을 짓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집을 지으려는 순간 건축주는 인생 최고의 황금기에 접어들었을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또 아무리 갑을이 없어지는 사회라지만, 갑이 없는 을은 존재할 수 없듯이 건축행위에서 건축주는 분명히 갑 행세를 하려 할 것이다. 이때 돈으로 모든 걸 좌우하려 하거나, 부족할지 모를 자금과 경험 등에도 불구하고 건축주가 갑으로만 대우 받으려할 때, 설계와 시공의 적절한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싶은 많은 거, 꾸미고 싶은 더 많은 이야기, 거기에 담고 싶어하는 모든 걸 상상한다... 집은 몸을 담는 게 아니라 정신을 담아내는 공간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건축행위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건축의 기본요소와 건축관계자들이 어떻게 호흡을 맞추는 게 좋을까? 먼저 건축주와 설계자, 그리고 시공자 모두가 고려해야 할 기본요소인 건축목적과 기능, 땅, 그리고 공사비와 공기 등에 얽힌 건축행위자들의 관계 문제를 살펴본다.
일단, 건축의도와 목적은 건축주의 몫이다.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지 세컨드하우스인지, 주거목적인지 작업공간인지, 그리고 가족 구성과 구성원 개개인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외관과 입면, 마감재의 수준 등 건축주의 의지와 안목이 좌우하겠지만, 설계자의 조절의지와 경륜에 따라 주택의 완성도는 비례해 높아질 것이라 생각된다.
<부암동 주택... 건축주의 의도일지, 설계자의 의도일지 모르지만,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가 잠시 머무르던 공간으로, 오래전 이야기를 나눠봤던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역시??^^>
두 번째, 집은 땅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땅은 향과 풍량, 주변여건 등 지역적 요인과 함께, 면적과 고저장단(高低長短), 모양 등의 객관적 요인, 그리고 용적률과 건폐율, 건축물의 높이 등 행정적 요인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건축주와 설계자가 긴밀히 협의해야 할 내용들이지만, 특히 설계자의 이해도와 식견이 부각되어야 할 측면이기도 하다.
<도갑사 전경... 집을 짓는 게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똑같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런 공간을 경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있을까?...>
세 번째는 공사비와 공사기간(공기)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항상 손해 보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 상업적 거래의 생리일 터, 더군다나 경쟁시장의 조건 및 주변과의 비교로 인해, 건축주나 시공자 모두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무엇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귀가 얇다...^^). 그럼에도 건축주 입장에서는 모든 걸 맡기고 내 맘까지 알아주는 시공자를 만나려 할 거고, 시공자 역시 건축주나 설계자의 의도를 충분히 충족시키면서도 적정한 이윤이 보장된 현장을 꿈꾸기 마련이다.
<유독 나무와 관련된 주택사진을 많이 올린다??^^ 나무의 넉넉함? 푸근함? 정겨움? 조화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협과 절충이 조화로 중용으로 귀결되는 예는 생각보다 많다?...ㅎㅎ>
결국 좋은 건축은 건축주와 설계자, 그리고 시공자의 궁합일 잘 맞았을 때 탄생하는 것이겠지만, 공사비 등의 문제는 건축주의 의지와 시공자의 경험이 관건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건축설계를 위한 이 세가지 요소는 각각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을 집에 맞는 땅을 찾기가 쉽지도 않지만, 집을 땅에 맞춰야할 경우도 많고, 심지어 층수와 내외장재는 공사비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 또한 건축주와 설계자, 그리고 시공자의 비중도 마찬가지다(건축주의 안목과 의지를 조금 높게 치더라도 4:3:3 정도가 적정한 배분이 아닐까?). 때문에 이들 3자의 긴밀한 호흡과, 3가지 요인에 대한 조화로운 해결, 혹은 현실적으로 말하면 각 요소들 간에 합리적인 절충과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참고로 내가 그린 평면구조로 벽체까지 만든 모형을 가지고, 같이 교육받았던 건축사에게 평면구조의 합리성 등에 대해 평가를 요청했다. 땅이 없잖아요...^^
<처음 설계를 기초로 만들었던 모형... 이 걸 보여주면 물었다... 괜찮지 않냐고...^^>
아파트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33평형의 표준화된 모델을 그려본 것인데, 일반 건축사들에게 땅과 건축주가 없는 평면구조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위주 건축경험을 가진 내가 공급자 위주로 접근했다면, 일반 건축사들은 맞춤형 사고에 익숙할 수밖에 없겠지. 또 땅과 건축주가 있어야만 일이 시작되는 일반 건축사들의 수동적인 접근에 비해, 만들어진 아파트를 팔아야만 하는 나의 공격적인 관성이 배인 해프닝이었겠지만, 나의 사고 한부분에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난히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확인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앞글 아파트 단지 모형에는 이런 평면의 33평형 아파트가 들어갔다... 열심히 고민하고 기획해 최대의 공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던 평면으로 나름 자부심을 갖기도 했는데... 아무튼 아파트는 상품이다. 불투정 다수를 겨냥한...>
건축에 대한 만족도라는 게 유행과 보편타당성에 기초한 평가도 있겠지만, 최우선적으로 충족시켜야 할 대상은 건축주의 주관적 선호도에 의해 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내 의도에 맞게 혼자 설계와 시공을 마무리해야 하는 이 순간, 가능한 범위에서의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좋은 건축으로 연결될 거라 생각하면서, 110㎡(33평형)의 단독주택에 대해 설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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