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붕구조
10-1) 처마의 깊이
마지막 지붕구조를 설계했다. 먼저 한국형 단독주택 혹은 한옥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시작했기 때문에, 평면과 수직적 구성에서 요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를 지붕의 중층화와 처마의 다양한 변화로 연결시켜 보고자했는데, 시공상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15. 경회루에서 바라본 근정전... 뭐 이런 정도의 중층화는 아니지만, 수직적 변화가 주는 군집성이나 풍요로움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처마의 맛을 살리려면 최소 90cm의 깊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경량목구조에서 안정성을 확인할 수 없어, 별도의 추가구조가 필요 없다고 생각된 60cm로 축소하였다.
<16. 엄밀히 목조주택과 한옥은 직접적 친연성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목조로 한옥의 맛을 내지 못한다면, 내게 단독주택은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이질적인 분야로 멀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처마에서 그 절충점을 찾고 싶었다...>
<17. 경복궁 집옥재... 처마가 없는 단독건축 혹은 주택과 비교하기 위해 몇장의 자료를 첨부해 본다... 1900년 지어진 중국식 건축이다...>
<18. 일본 오사카에서... 나는 저런 박공이 싫다...^^>
10-2) 지붕의 형태
또 한옥을 생각해 팔작지붕을 고려했으나, 어차피 처마 60cm면 처마의 넉넉한 맛을 살릴 수 없었고, 이와 비슷한 합각지붕도 생각해보았으나 곡선미 즉 멋이 없다고 생각해 배제했다.
<19. 팔작지붕 형태가 우리나라나 동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진은 화와이에서 찍은 것으로, 서양식으로는 원합각지붕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아무리 뜯어 봐도 맛이 없다... 따라서 시도해봤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거 - 이건 불행이다. 아무튼 곡선이 없는 팔작지붕은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다. 그래서 배제했다...>
결국 남는 것은 평지붕 혹은 박공과 모임지붕인데, 평지붕은 풍수해와 미관 외에 에너지 이용 등에서 경사지붕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배제했으며, 경사지붕은 중후하지만 단조로운 박공보다 경사가 높은 모임지붕이 좋다고 생각했다.
<20. 그러면 여기에서 지붕의 종류에 대해 알아본다... 스크랩 자료...>
10-3) 지붕의 경사
그러면 지붕의 높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은 기후에는 낮은 경사가, 강수량이 많고 일조량이 적을수록 높은 경사가 유리하다. 그러나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 조건에서 지붕의 경사도는 기후적응이나 에너지효율 보다 미관이 우선 고려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되었다. 너무 완만하면 몽땅하거나 둔중해지고, 너무 급해지면 가분수가 되거나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21. 일본 교토 기온거리에서... 지붕 경사도가 너무 완만하면 무겁고 둔해진다...>
<22. 봉화 북지리에서... 매우 정성스럽게 지은 한옥인데, 지붕이 높아지면서 내부공간이 눌리는 느낌이 든다... 건축에서 지붕이 차지하는 비중이 잘 나타날 거 같아 두 사진을 비교해봤다...>
(참고로 수덕사 대웅전 등 아름다운 건축들의 지붕높이는 벽면 높이에 비해 비슷하거나 생각보다 훨씬 높게 설계되어 있다. 정면이나 조감으로 내려다보면 무겁게 보일 수 있으나, 경사진 지붕을 가까운 거리에서 올려다봐야 하는 우리들 입장에서 지붕의 높이는 체감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어, 지붕의 경사도와 낙수면의 면적이 커지는 것은 거리에 따른 왜곡을 보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건축의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관찰자와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지붕의 미감 - 수덕사 대웅전을 기준으로...
<23. 그러면 수덕사 대웅전을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에 따라 건축물의 미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볼까? 먼저 요사채가 헐리기 전, 수덕사 대웅전 앞마당은 그리 넓지 않아, 지붕을 한 눈에 볼 수 없었다... 높은 기단부까지 있어 당시의 지붕은 장중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24. 현재 대웅전 앞마당 끝자락에서 바라본 대웅전... 지붕의 낙수면이 건물의 벽체보다 낮아 느낌이 달라진다...>
<25. 대웅전 앞마당을 내려가 보다 먼거리에서 바라보면, 지붕과 건물 벽체의 비례가 대략 1:1이 된다... 박공이 주는 엄정함이 잘 살아난다...>
<26. 수덕사 요사채가 헐리고 난 다음, 90년대 중반 사진이다... 지금은 대웅전 앞마당에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있지만, 당시엔 석등이 있었고, 한때 고려시대 칠층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7. 대웅전 기단부와 지붕이 한 눈에 들어오는 거리... 수덕사 대웅전의 완벽한 비례가 나타나는 거리다... 1308년 이 대웅전을 설계하고 기획하고 건축했던 대목수도 이 거리에서 건축의 비례를 판단했을까?...>
<28. 고건축박물관에 전시된 수덕사 대웅전 축소모형... 한옥의 중목구조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애초 목조주택 모형을 만들면서 수덕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여러장의 비교 사진이라도 올려본다...^^>
10-4) 지붕의 높이
여기에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내부공간의 깊이에 따라 지붕 높이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설계한 단독주택에서 가장 깊은 곳은 거실+주방으로 7.3m 정도에 전후면 벽체두께 15cm x 2곳, 그리고 앞뒤로 처마가 60cm씩 빠지는 만큼 지붕의 투영면적은 8.8m다. 이걸 반으로 나누면 4.4m고 벽면의 높이는 2.4m다. 이를 기준으로 벽면높이만큼 지붕을 높이면 경사는 10:5.5 정도... 그러나 10:5 정도의 경사도는 너무 몽땅하고 실제 체감률은 10:3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29.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한국 고건축을 대표하는 부석사 무량수전은 건물이 깊은 만큼 지붕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그런 이유로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에서는 활짝 펴진 처마의 깊이를 느낄 뿐, 낙수면까지 고려하면 어딘지 균형이 깨져 보이게 된다...>
<30. 그래서 부석사 무량수전은 앞마당의 폭과 깊이보다 조금 더 멀고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 제 맛이 살아난다... 지붕의 높이를 비롯해 경사도와 낙수면의 면적비례감 등은 건축미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10:10의 경사도로 지붕을 높이면? 이 경우 서까래의 길이가 6.2m + 경사 가공 등으로 버려지는 칫수 20cm까지 고려하면 6.5m에 이르는데,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일반 구조재의 최대치가 6m인 점을 감안하면 별도의 구조계산이 필요하거나 트러스 구조로 바꿔야할지도 모르게 된다. 이는 공사비의 불필요한 증대요인일 뿐만 아니라, 지붕으로 인해 버려지는 체적도 많은데다, 에너지 효율도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생각됐다. 해서 서까래의 최대길이가 6m를 넘지 않는 길이에 맞추고, 모임지붕으로 할 경우에도 긴장감을 줄만한 경사도를 찾아보니 10:7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 절충했다.
<31.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단면도 비교...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두 건축물의 지붕경사도를 이해하기 위해 올려본다...>
<32. 한국 고건축, 주심포와 다포계 양식을 대표하는 수덕사 대웅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은, 희귀한 2고주 9량집이다... 내부 기둥인 고주가 2개인 점도 귀한 예이지만, 9개의 도리가 사용됐다는 말은 당대에도 일반 가옥과 격이 다른 목공들이 참여했다는 걸 의미한다...>
또 지붕선의 모임지점은 석탑의 체감률과 팔작지붕의 내림마루를 고려해 벽체 끝 연장선에 배치하고, 거실지붕이 안방이나 가족실과 겹치는 부분에서는 처마 깊이 60cm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20~30cm만 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33. 화와이에서... 규모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모임지붕은 경사도가 너무 완만해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어색해 보인다... 그들이 좋아하는 미감일 수 있지만, 내게는 미감이 다이어트 된 기능으로만 보인다...>
10-5) 지붕의 구조와 물매
지붕을 그리면서 두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구조적인 문제였고, 또 하나는 가족실-공용욕실-침실로 이어지는 곳에서 물매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문제였다. 먼저 구조적 문제는 주방에서 거실까지 대략 4.5x7.5m 정도의 내부공간에 박공이 올라서는데 기둥 없이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때문에 마루대가 아닌 마루보로 설계를 변경하고, 이에 따라 기둥을 벽체내부에 기획하려다보니 창 위치를 조절하거나, 문위쪽 헤더의 규격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루보는 경험치도 없고, 확인할 대상도 없어 2바이12 규격에 3개를 이어서 만들고, 이를 상부로 돌출시켜 용마루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34. 평면과 창호와 지붕구조 투시도... 너무 복잡한가??...>
두 번째는 4방향의 물매가 모이게 되는 공용욕실 위쪽의 지붕선 처리문제였다. 사실 설계에서 제작까지 1주일을 기간으로 설정했는데, 설계가 4일, 그 중 지붕에 대한 고민이 3일 동안 이어졌고, 결국 벽체조립을 끝낸 다음에도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던 내용이다.
<35. 생각해보면 단열과 풍수해에 대처하기 위한 경사지붕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관까지 고려하다보니 지붕구조는 더더욱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는데, 실제 한옥의 경우 약 40%가 지붕공사비일만큼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36. 하긴 지붕공사가 끝나면 다 끝난 거 같은 게 한옥이기도 하다...>
<37. 한옥의 지붕구조... 실내와 외부에서 바라본 경사가 전혀 다른 이유는, 강회나 황토, 그리고 깨진 기와들이 적층된 기와 하부의 구조 때문이다... 물매를 잡고 기와를 이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단열과 습도조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대규모 불전이나 궁궐지붕은 그 층이 너무 두꺼워 황토대신 가공하고 남은 목재까기 넣는 경우도 있는데, 남대문(숭례문)이 불에 탄 이유가 바로, 그곳에 숨어있던 불씨를 끄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옥과 목조주택, 한옥과 개량한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지붕공사일지도 모르겠다...>
침실을 1.8m 높이면서 계단이 발생하니 천장이 그만큼 높아지고 지붕물매도 이를 고려해야했다. 또한 가족실을 정자(亭子)처럼 입면상으로도 독립된 공간처럼 인식시키기 위해 별도의 모임지붕으로 만들려 했는데, 거실쪽과 건물 서면쪽의 지붕모양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했고, 설혹 물매를 억지로 잡는다고 하더라도 이건 100% 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또 침실앞 계단을 만들면서 불필요한 공간이 발생하니 결국 내부면적의 증가로 이어졌다. 사실 이 문제는 침실의 채광과 하부창고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했던 것인데, 지붕물매라는 난관을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38. 이런 이유 때문에 벽체까지 만든 상태에서 목조주택 강의는 끝나고, 1주일만에 모형주택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그래서 박공보다 평지붕이나 외쪽지붕이 공사비도 줄이고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부분에 대한 대대적인 설계변경에 들어갔다.
<39. 이제 대대적인 설계변경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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