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장의 사진을 갖고 싶을 때가 있었다.
단 한 장으로 내 모든 것을 말 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역사와 인간과, 그리고 관계의 모든 것을 담은 사진...
그런 사진을 보면 전율을 느낀다.
전율의 충격은 이성을 감전시키고,
정지된 감성은 또 다시 이지를 무장해제 시킨다.
해체된 논리는 끝없는 상념과 비애와 체념을 강요하고,
그 속에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현재는 무엇이고, 인간은 무엇일까?
원아 이 영화 찾아봐라~~~
사진이 너무 ‘죽여서’ 원이가 보면 좋아하겠다 싶다는 열이형 카톡을 보고
열심히 찾았다. <제네시스 : 세상의 소금>
(형들이 추천한다면 그 어떤 것도 나는...^^)
그 속에서 한 장의 사진,
나의 <소금>을 찾았다.
2.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은,
브라질 사진 작가 <크리스치앙 살가두>에 대한
<빔 밴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빔 밴더스와 크리스치앙 살가두... 이 곳에 올린 사진은 모두 Daum과 NAVER 이미지에서 스크랩하였다...>
현대차 브랜드와 동의어일 <제네시스>는 발생, 기원, 창세기란 뜻이고,
영화의 부제 - <세상의 소금>은,
크리스치앙 살가두가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겨냥하여,
지구라는 시공간에 소금으로 남길 바라는 <인간>에 대한
경의이면서 경고, 비판이면서 자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자연과 사회, 인간의 공간에서 출발한 그의 사진작업이(1기/다른 아메리카들/1977~1984년)
인간의 노동으로 이어지고(3기/노동자/1986~1991년),
인간에 의한 인간성의 파괴를 고발한 사회비판이(2기/사헬, 그 길의 끝/1984~1986년, 4기/엑소더스(대탈출)/1993~1999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5기/제네시스(천지창조)/2004~2013년) 그의 연작시리즈를 보면서,
현대 세계사와 궤적을 같이 해 온 크리스티앙의 개인 역정도 흥미로웠지만,
그를 지탱해 온 휴머니즘과 인간의 본성을 향한,
처절하리만치 집요한 그의 근성과 간단없는 애정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 다큐멘터리...
그 중, 나의 시선에 강렬하게 꽂혔던,
크리스치앙 살가두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너무 깊숙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고 있는 사진은
의외로 다큐멘터리의 맨 첫 부분에 자리 잡은 광산 사진으로,
3기 <노동자> 연작 중 하나인 브라질 세라 펠라다 금광의 사진이었다.
<Gold, Serra Pelada, Brail, 1986>
3.
나도 모르게 담배를 꼬나물고,
다시, 다시, 다시, 몇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 정지 버튼을 눌렀던 사진...
모든 게 멈췄다.
설명을 듣기 전, 19세기 아메리카의 노예광산인 줄 알았다.
르네상스를 촉발시킨 유럽으로의 은유입시기와 기록사진은 (제작연대가) 맞지 않고,
나폴레옹의 몰락부터 1차대전까지와 살가두의 다큐멘터리도 (제작연대가) 맞지 않고,
저 사진이 도대체 뭐지? 뭐지? 한참을 물어봐도 알 수 없었던 사진의 실체...
1986년 브라질 금 광산이란다...
온 몸을 마비시켰던 전율...
그리고 1986년 !!!
아아~~~ 저게 인간史/事이고, 인간의 歷史/役事일까?
이게 진정 현대, 우리들 - 인간의 모습일까?
웃통 벗은 그들의 환한 가슴과,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내 가슴은 똑같은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다른 심정으로 묵도하고 있다.
금 러시 광풍이 불었던 미국 서부개척시대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저 거대한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누가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무색케 하는 거 가파른 경사를 오르도록 채찍질하며,
어떤 힘이 저 거대한 구덩이를 선택된 인간, 차별한 인간들이 아닌 자발적 의지의 인간들로 파게 만들었을까?
수만명이, 오로지 삽과 곡괭이, 흙포대 한 자루에 인생을 의지하고 삶을 영위하며, 꿈을 노래한다고 우리는 바라본다.
인간 최초의 자각 - 죽음의 공간, 파라미드와 타지마할도 저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도시와 사회를 지켜주길 바라는 신의 공간 - 파르테논 신전과 종묘도,
현세와 내세, 현실과 피안을 구분한 불국사와 성소피아성당도,
야만과 문명의 공간을 구획한 만리장성도 저렇게 만들어졌을 것이고,
신과 왕이 사회의 권력으로 성역화 되면서 견고해진 성당, 성들과,
전세계 자본과 기술이 집대성됐다는 부르즈 할리파(버즈두바이)나,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도
꼭 저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시간이 멈춰버린 순간이었다.
4.
자욱해지는 담배연기 속에 또 다른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 건축물, 그 공간, 그 상징을 만든 이들은 채찍에 길들여진 노예였을까?
자유의지는 없었을까?
그들에게 충만함이란 어떤 형태와 내용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의지와 목적으로 만들어진 광산이 내게는 구렁텅이로 보였다.
깊게, 깊게... 몇 사람들의 의지로 파여지는 깊은 동굴만 연상되던 광산이란 이미지는
수만 인간들의 탐욕만큼 자꾸 자꾸 넓어지는 구덩이로 보였다.
저들은 노예가 아니다.
누가 시켜서 저 거대한 구렁텅이에 스스로를 던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겐 꿈이 있고, 행복이 있으며, 미래를 갈망하고 있다.
저들은 자유인이다.
계급과 정복, 그리고 돈과 권위를 통해서 동원된 것은 아니다.
그들 사이 - 인간관계에도 연대감은 넘치며, 서로 배려하고 사랑한다.
피라미드와 바벨탑으로부터 5천년,
성 베드로 성당과 자금성으로부터 4백여년...
그 것들에 투여된 노동을 노예의 시각에서 바라보든,
주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든 과연 무엇이 변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무언가 내면 깊숙이 나를 받치던 실체를 알 수 없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노동이란 이름으로
인간이란 이름으로
역사와 철학이란 이름으로
경제와 삶을 넘어설 그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삶이 노동이고 역사고 경제고, 철학이어서 인간일텐데,
부처와 예수, 마호메트, 공자와 마르크스가 꿈꾸던 인간과 인간사회가
바로 저 모습이었을까?
인간이란 개념을 아우르는 정신의 실체는 과연 욕망이란 본능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저렇게 인간을 동원할 수 있는 거지?
권력? 권위? 돈? 신앙? 신념? 기술? 꿈?
한마디로 욕심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과연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인격체일까?
스스로 노예가 될 수 있는 지성,
욕망의 노예를 인정하고 긍정하며 자부하는 각성체...
그 모습이 바로 우리들 자신, 인간이 아닐까?
정신이란 결국 그 자신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아니었을까?
5.
크리스치앙 살가두의 금 광산 사진을 보면서
나도 나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휴머니즘 작가에 의해 비판되는 휴머니즘을 바라본다.
역시 메타스토리를 관통하는 건 비판이란 무기뿐인가?
무겁다.
모처럼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도 버겁고...
그래도 오랫동안 맴돌던 욕심 하나가 다시 꿈틀거린다.
한 장의 사진...
한 장으로 담고 싶었던 세계.
그 한 장으로 말하고 싶었던 내 생각.
그렇게 찍고 싶었던 <한 장의 사진>을 본다.
한 장의 사진에서,
그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찍은 현재를 보고,
그리고 그 사진을 통해 나 자신을 본다.
나도 저런 사진을 찍고 싶다.
한 장에 모든 걸 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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