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해철이형이 세상을 떠난지 27년,
연세민주동문회, 낙골교회, 연대 신학과, 빈민운동단체들이
유가족과 힘을 모아
한산의 선산을 파묘하고,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으로 유골을 이장했다.
저마다 기억하는 흥겸이형의 모습...
저마다 간직하는 해철이형의 미소...
저마다 추억하는 해파리형의 노래...
맞고 틀림이 없고,
좋고 나쁨이 없고,
많고 적음이 없이,
각자가 기억하는 만큼의 무게로 향기를 더듬는다.
누군가는 예수의 모습으로,
누군가는 거지의 모습으로,
누군가는 활동가 모습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형이었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따스한 기억으로 남았다.
서른여섯 짧은 인생,
만남의 시간보다 다시 보지 못했던 시간이 훨씬 긴 인연들이지만,
저마다 추억하는 만큼의 시간과 무게와 온기가 더해져
모두가 잠시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나마 잘 견뎌낸 사람들이 모인 자리 때문일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 이렇게 긴 공백을 넘어서도
모두의 다양한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우리들의 기억은 흐트러지지 않고 박제되었다.
안타까운 아쉬움이,
불편함마저 소중한 연민이,
형이 멈춰놓은 시간이 27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소환된다.
어쩌면 나는 숫자로 헤아리기 반갑지 않은 30여년 전을 더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의 기억들을 아름답게 각색한다. 멋지게 채색한다.
그게 없는 이에 대한 예의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존중임을 아니까...
시간은 공평하지만 밀도는 다르겠지.
시간은 평등하지만 속도는 다르겠지,
시간은 흐르겠지만 방향은 다르겠지.
그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진중한 벗으로 기억되는 것일 거고...
그렇게 우리는 멈춘 시간 속에 잠시 초대됐다.
흥겸이란 이름에, 해철이란 이름에, 해파리란 이름에...
이름을 들어본, 알고 지내던,
한때는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한때는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가까이 머리를 맞댔고, 때로는 등돌리며 외면했던
비석에 새겨진 그들의 함성과 기억과 향기를
이제는 적막해진 봉분들을 어루만지며 돌아본다.
이 시간에 초대된
멈춰진 공간을 거닐며
또 생각해 본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
앞으로 만나갈 사람들,
앞으로 걸어갈 방향에 대해...
형이 초대해 준 공간에서 즐기는 추억팔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적막하기도 하고...
잘 살아왔는지, 잘 하고있는지, 잘 살아갈건지,
그렇게 덤덤하게 묘역을 걸어본다.
그냥 그렇게 멈춰진 시간을 바라보며 추억을 팔아보며
그냥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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