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처럼 신선한 탑이다.
장중하다 할 수는 없지만, 주변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기저기 깨지고 어수선해 보이는데도 묘한 조화와 균형미를 잃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수습한 부재들을 모아 다시 세웠다는 하동 탑리 삼층석탑이다.
<하동 탑리 삼층석탑...>
하동에 봉상사란 절이 있었고, 탑리라는 이름이 붙은 걸보면 오랜 연원을 지닌 탑일터...
아쉬운 건 그곳에 있던 탑인지, 어디서 어떻게 수습했는지 모든 게 추정일 뿐이다.
게다가 지붕돌과 몸돌, 부재들은 차가운 회색과 따사로운 흙갈색이 뒤죽박죽 섞여있고,
전혀 다른 기법으로 치석한 두가지 지붕돌과 노반석이 두 개나 있는 걸로 보면
현재의 모습이 한 개가 아닌 두 탑의 부재를 섞어놓은 게 아니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기단부 앞에 놓인 또 하나의 노반석... 현재의 탑은 두 탑의 부재를 섞어 하나로 복원했거나, 애초부터 2단의 노반으로 조형된 탑이었을 수 있다... 물론 전혀 다른 탑의 노반석을 이 탑 앞에 같이 보존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301호/4m... 이렇게 2단의 노반으로 구성된 탑으로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을 비롯, 북미륵암의 동삼층석탑 등이 있다...>
먼저 1, 3층 몸돌과 달리 차가운 회색의 2층 몸돌 폭은 체감율에서 살짝 어긋난다.
2~3cm만 좁아졌으면 훨씬 세련된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2층 몸돌은 제 짝일까? 2층 몸돌이 조금만 더 좁았다면??...>
또 1, 3층 지붕돌과 달리 친근한 흙갈색의 2층 지붕돌은 소재도 다르고 낙수면도 다르다.
모든 지붕돌 낙수면이 일정한 각도의 경사도로 가공됐다면 훨씬 정연하지 않았을까?
<지붕돌 낙수면의 경사도가 각기 다른 대표적인 탑이 석가탑이다... 다만, 석가탑은 2층 지붕돌이 두껍고 급한데 반해, 하동 탑리탑 2층 지붕돌은 다른 지붕돌에 비해 가장 얇고 완만한 경사를 가졌다...>
800년대 중반 통일신라석탑과 900년대 초반 고려초기 석탑이 섞였을 개연성도 없지 않고,
만약 1층 보다 급격한 낙수면을 가진 삼층 지붕돌처럼 2층 지붕돌도 지금보다 두꺼워졌다면,
이 탑은 완전히 고려시대의 탑이거나 시대불명이라 단정 지어졌을지도 모른다.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보물 379호/4.6m... 비슷한 크기로 그리 멀지 않은 진주의 묘엄사지탑으로, 라말려초 석탑은 모든 층의 지붕돌이 두꺼워진다... 또 하동 탑리탑의 지붕돌들은 신라와 고려의 미감이 섞여 있지만, 신라쪽에 훨씬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 한가지 의문스러운 건, 라말려초라는 석탑양식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낙수면과 층급받침을 구획하는 합각면은 해당시기 양식을 벗어나 지나치게 얇고,
지붕돌 낙수면 합각 부분에 반전이 완전히 사라진 채 직선으로 가공됐다는 점은,
목탑을 비롯, 백제 석탑에서부터 지켜오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무시한 방식이다.
혹 망실된 자재를 보충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착오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언제나처럼 습관처럼, 탑 혹은 복원된 것들을 뜯어보며 나는 시대를 먼저 생각한다.
어느 시대, 어느 정신, 어떤 맘으로 만들었을지, 그것에 담겨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실상 주변 기물과 어울리고, 주변 환경과 조응하는 존재자체에 깃든 무엇이 있을진데,
나는 그보다 정신을 먼저 살피며, 그러고나서 만든 이의 손길을 느끼고 공간을 읽는다.
특히 복원된 것들을 통해 엿보는 제 짝과 제 위치를 혼자 추정하며 아쉬워한다.
스스로 가장 빛났던 그 때와 그 순간에 이루어졌을 완성의 향기를 그리워한다.
아직은 완성이란 깊이도, 현재 존재 자체가 가진 무궁함을 모르기 때문일게다...
<주변이 답답하다...>
2.
이제 찬찬히 뜯어볼까?
이런저런 의문과 탄식에도 불구하고 하동 탑리탑은 묘하게 나름의 기품을 완성했다.
각층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깔끔하면서 또한 정연하고,
낙수면의 반전은 사라졌지만 전체적인 미감은 훼손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급해 두꺼워진 3층 지붕돌로 생뚱해질 수 있던 석탑의 미감은
완만하기에 역으로 날렵해진 2층 지붕돌로 인해 긴장감 살아나 차분해졌고,
적절한 경사의 1층 지붕돌로 인해 살아난 부피감 덕분에,
높아진 일층몸돌로 유약해질 수 있었던 석탑의 미감을 당당하게 상쇄했다.
< 내가 좋아하지 않는 각도지만, 하동 탑리탑은 어느쪽에서 봐도 자신의 장점과 미감을 잃지 않았다...>
또 각층 지붕돌 낙수면 위쪽 - 2, 3층 몸돌과 노반 하부의 층급받침은 1단으로 간소화돼
자꾸 정형화에서 벗어난 말기의 퇴화된 양식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처럼 유약하지 않아 단정하며,
무엇보다 규모에 맞게 축소되어가는 층급받침으로 석탑은 리듬감을 잃지 않았다.
모전석탑류 지붕돌에서나 볼 수 있는 규칙적인 층급받침은 당당함으로 살아나고,
2단으로 조출된 노반은 4단 층급받침의 리듬감에 멋지게 조응, 상승의 리듬까지 살렸다.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보물 51호/4.3m... 역시 비슷한 크기, 비슷한 시대, 그리고 같은 단층기단 구조의 석탑 중 내화리탑과 하동 탑리탑을 비교해보면 미감차이를 크게 노낄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지붕돌 낙수면의 치석과 정제된 층급받침의 정연한 힘을 꼽을 수 있을 거 같다...>
단층 기단부지만, 두툼한 별석으로 가공된 일층몸돌 괴임과,
역시 충분히 두꺼워진 기대석이 있어 석탑의 안정성을 해치지도 않았고,
<기단부... 단층 기단부지만 규모는 물론, 일층 몸돌이나 지붕돌에 잘 조응해, 넓지도 좁지도 않은 탁월한 비례감이 돋보인다...>
넉넉한 넓이로 탑신을 떠받치고 있는 다소 얇아 보이는 기단부 갑석의 유약한 두께는,
충분한 두께의 지대석(지면에 매립된 넓은 판석을 지대석이라 한다면 기대석이 맞겠다)과
역시 두터운 일층몸돌의 괴임돌 사이에 끼어있어 미묘한 변화와 리듬을 느끼게 만들고,
<기단부... 지대석이 당초부터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석 아래쪽이 균일하게 잘 다음어진 걸 보면 후대의 임의적인 보강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튼 두꺼운 일층몸돌 괴임에 얇은 기단부 판석, 다시 두꺼운 기대석에 면만 드러나 얇게 느껴지는 지대석까지, 하동 탑리탑은 리드미컬하게 구성되어 있다...>
모전석탑류 기단부처럼 (얇은 판석이 아닌) ㄱ자로 가공된 4매의 통돌이 주는 묵직함을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높이에 안쏠림을 적용해, 부드럽게 상쇄한 기단부를 바라보면,
이 석탑을 만든 석공은 눈썰미와 리듬감에서 탁월한 균형감을 가졌다고 자부할 만 하다.
<경주 남산동 동삼층석탑/보물 124호/7m... 하동 탑리탑의 깨진 기단부 갑석을 보면, 이 석탑의 기단부는 4매의 통돌을 가공해 맞춘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내부를 자갈돌과 흙으로 채우고 겉만 판석으로 조립한 전통적인 구축방식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주와 탱주의 모각은 없지만, 통돌로 기단부를 조성한 방식은 남산동 동탑 등 모전석탑류에서 유행하다가, 고려초기 석탑들에서 다시 차용되기도 한다...>
<기단부와 일층탑신... 아무튼, 그런 통돌에 안쏠림 기법을 의도해 조형했다면, 대단한 정성이고 공력이 아닐 수 없다...>
뭔가 어설프고,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던 각각의 부재들이
하나하나 쌓이고 모여서는 전체적인 통일성과 비례를 완성해 나가니,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고치기가 오히려 애매해지는 느낌...
<찬찬히 바라보면 삐뚤빼뚤 거리고, 여기저기 깨지고... 그런데 막상 돈댈 곳을 찾으라면???...>
오히려 안정적이면서도 상승감을 놓치지 않은 조화와 비례로
하동 탑리 삼층석탑은 경쾌하면서 탄탄하고,
당당하면서 경직되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하지 않고, 그래서 시원하다.
<답답한 주변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동 탑리탑은 자신의 미감을 잃지 않고 시원시원하다...>
이젠 얇지만 직선으로 처리된 지붕돌의 합각면 마저 차분하게 느껴지고,
지나치다 싶게 두꺼워진 3층 지붕돌로 인해 오히려 안정감과 상승감이 함께 완성되며,
탑신과 기단부를 구획한 별석의 괴임으로 각종 상반된 요소들이 은연중에 구획되니
쉽지 않은 미감이지만 전혀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고 좋아만 보인다.
내가 나이를 먹어설까? 변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처음 만들었던 이의 세세한 감각을 되살리며, 다시 복원한 이의 안목을 더듬는다.
사람의 손때로 만들어진 것 중 완전한 게 어디 있겠나만,
그 어떤 완결된 형상도 부족함은 있어도, 의미 없고 허튼 것들은 없다는 게 내 생각...
단점을 상쇄하는 감각이 있고, 고저장단의 리듬만 있다면 의미와 장점은 묻히지 않는다.
시대와 정신을 탐하던 호기심은 이제야 현재의 형상을 분해하며 좋은 것들을 찾는다.
오래 남은 것들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은, 좋은 기운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따뜻함이었다... 날이 좋았거나 바람이 좋았거나, 좋은 기운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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