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런 느낌의 석탑은 어디서 봤을까?
높은 일층몸돌에 비해 급격하게 낮아진 2,3층 몸돌은 김천 서부리탑이 연상되지만,
정연함이 강조돼 지극히 단조로워진 서부리탑과는 지붕돌에서 확실히 달라진다.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은 얇은 지붕돌에도 불구하고 육중한 규모에 진중하고 진지한 기운을 담고 있다... 일층몸돌 괴임과 기단부 갑석이 전성기 양식을 살려 복원됐더라면 훨씬 큰 울림이 살아났을 탑...>
또 단층기단에 높은 일층괴임을 가진 경주 남산 천룡사지탑과 비교하면
얇아진 기단부 갑석과 판석의 괴체감에서 명확한 차이가 나타나고,
<경주 남산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1188호/7m... 700년대 말, 전성기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운 비례의 탑... 낮지 않은 일층몸돌 괴임, 두꺼운 기단부 갑석 등이 전성기 미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아쉽다면 기대석(여기서는 지대판석이 없거나 노출되지 않아 지대석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도...)이 좁고, 충분히 높지 않다는 점... >
층급받침과 낙수면이 별석으로 적층된 1층 지붕돌을 보면 순창 순화리탑이 생각나지만,
전체적인 체감과 비례감이 완전히 달라 동질감을 찾기는 어렵다.
<순창 순화리 삼층석탑/5.8m... 지붕돌의 층급받침과 낙수면이 별석으로 적층된 시원은 나원리 오층석탑일 게다(적층식 구성으로 조형된 백제 및 백제식 석탑과 괴체감을 살린 신라 및 신라식 석탑의 미감은 완전히 다르다). 1,2층 지붕돌이 각각 2매로 구성되었는데, 나원리탑은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지붕돌의 낙수면과 층급받침이 각각 3m씩이 넘는다. 그럼에도 절단면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가공되었다)이었고, 이를 제외하면 하동 탑리탑처럼 부분적으로나마 지붕돌의 층급받침과 낙수면 혹은 수평방향으로 적층해 조형한 석탑은 순화리탑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백제와 고려의 미감을 이어받은 순화리탑과 신라탑의 전통을 잘 살린 하동 탑리탑의 미감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괴임돌과 몸돌, 층급받침과 낙수면이 별석으로 가공된 일층 탑신만 생각한다면,
광주 춘군동 오층석탑이 살짝 연상되지만, 하동 탑리탑이 작음에도 훨씬 당당하며,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12호/7.5m... 4매로 구성된 지붕돌과 3개의 통돌로 구성된 일층몸돌 등, 신라식 석탑과 다른 백제식 석탑의 적층방식이 주는 묘한 미감이 살아난 탑인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동사지탑은 장중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당당함보다는 부드럽다는 느낌이 크다...>
역시 비슷한 구성의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과 비교해볼만도 하지만,
금곡사탑의 장중함과 달리 전통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미감이 살아있어 훨씬 정연하다.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보물 829호/5.4m... 별석의 일층몸돌 괴임과 단층기단부 등, 하동 탑리탑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금곡사탑은 하동 탑리탑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연상되는 탑이다... 물론 장중한 기운과 당당함에서는 하동 탑리탑이 금곡사탑을 따를 수 없지만, 보면 볼수록 정림사탑이 연상되는 금곡사탑에 비해, 하동 탑리탑은 철저히 신라의 미감으로 꼭꼭 채워져 있다...^^>
어쩌면 순수한 비례와 체감만 비교한다면 대구 비슬산 대견사 삼층석탑이나
서산 동문동 오층석탑을 생각할 수 있지만, 당당함과 생동감에서 비교될 수 없고,
금산사 심원암 북강삼층석탑의 애매한 조합과는 절대미감에서 차이가 난다.
<적층방식에서 느껴지는 비슷한 느낌의 탑들을 살펴봤고, 이젠 비슷한 체감률을 가진 탑들을 찾아본다... 신라 삼층석탑의 양대미감인 안정감과 상승감 중 급격한 비율의 체감률에 상승감만을 유독 강도한 석탑들인데, 그중 먼저 3.7m 높이의 대구 비슬산 대견사 삼층석탑... 석탑이 점지된 극적인 위치와 시원한 조망에 비해 뭔가 아쉬움이 많이 드는 탑... 위치에 맞지 않게 유약하다 해야할까? 카리스마가 없다고 해야할까?...^^>
<서산 동문동 오층석탑이라 불리는 삼층석탑...^^ 물론 대사동탑이라는 기록 등에서 4,5층이 결실된 상태가 분명한 거 같지만, 오층석탑이 되기에는 삼층 지붕돌 위쪽이 급격하게 좁아져, 진짜 오층이었을지는 모르겠다...ㅉ 높이도 4.9m로 하동 탑리탑보다 오히려 더 큰데(노출된 지대석과 기대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유약하다는 느낌... 원형대로 복원된 상층기단부 갑석과 힘이 없어 보이는 일층몸돌이 그런 느낌을 강제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금산사 심원암 북강 삼층석탑/보물 29호/4.7m... 좁고 급하게 높아진 미감을 기준으로 보면 심원암 북강탑도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굴곡이 심해진 낙수면과, 완전히 곡선으로 변한 지붕돌의 합각면 때문인지 비슷한 체감률에도 불구하고 미감은 전혀다르다... 또, 심원암 북강탑은 신라보다 고려의 미감이 훨씬 크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223호/4.1m... 고려석탑 외에 급하고 높은 체감률을 가진 대표적인 통일신라탑을 고르라면 도피안사탑이 빠지지 않겠지... 그러나 이들 탑과 달리 안정된 기단부와 시원하게 뽑아 올린 강직한 일층몸돌, 그리고 정연하면서도 강력한 리듬을 가진 층급받침 등은 하동 탑리탑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탑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미감을 찾으라면 안동 하리동의 삼층석탑과 유사함을 느낀다.
육중한 크기로 어딘지 어설프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은 안동 하리동 삼층탑...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5.8m... 하동 탑리탑이나 안동 하리동탑은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결코 빠지지 않는 규모와 미감을 가진 우수한 탑리아 생각한다... 육중함이 살아있는 규모와 당당한 짜임새에 생동감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렇지만 기단부의 짜임새나 담백한 기단부 판석, 그리고 정갈한 지붕돌을 생각하면
이런 체감의 석탑에서 하동 탑리탑은 상당한 완성도를 갖췄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 1층뿐 아니라 2층 몸돌까지 2매로 구성한 삼층탑도 드물지만, 2층과 3층 몸돌에 층급받침을 모각한 것은 내 기억에 사례가 없는 거 같다... 둥글게 마무리한 층급받침, 일반적 2단이 아닌 괴임과 경사를 둔 기단부 갑석, 완전히 수평직선으로 마무리한 지붕돌 합각면 하부 등 아무튼 뜯어볼수록 재밌고, 즐거운 탑이다...>
특히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일층몸돌을 더 높게 만든 하동 탑리탑의 별석 괴임돌은,
정림사탑에서 시작해 많은 충정, 전라지방의 백제계 석탑에서 차용한 구성방식이 분명하지만,
장항리 오층석탑의 괴임처럼 높게 가공했거나 별석으로 조형한 신라탑들이 없지 않다.
<왕궁리 오층석탑의 백제식 적층방식과 장항리 오층석탑의 높은 일층괴임...>
남산 천룡사지탑과 마석산탑이 그렇고, 별석으로 구성된 산청 내원사탑과 청도 박곡리탑,
그리고 다른 유형이지만 남산 지암곡 3사지탑이나 보령 성주사탑들도 있지만,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1113호/4.8m... 일층몸돌 괴임이 별석으로 조형된 석탑들을 살펴본다... 내원사탑은 이층 기단부를 갖춘 800년대 초반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지만, 일층몸돌 괴임이 별석이며, 일층몸돌 괴임과 기단부 갑석의 두께가 비슷하다...>
<경주 남산 지암곡 제3사지 삼층석탑... 지암곡탑은 자연석을 최소한으로 가공해 곧바로 탑신을 올린 경우로, 일층몸돌 괴임이 별석이다...>
<청도 박곡리 삼층석탑... 단층 기단부 석탑으로 일층몸돌 괴임이 별석이다...>
<보령 성주사지 삼층석탑들... 아마 일층몸돌 별석괴임 중 가장 정교하고 화려한 사례를 찾으라면(물론 지광국사 현묘탑은 제외한다...^^) 단연코 수위를 차지할 석탑은 성주사지석탑들일 거다...>
<장성 내계리 오층석탑/4.6m... 일층몸돌 괴임은 고려초기로 내려갈수록 사례들이 빈번하고 다양해진다... 내계리탑은 고려초기 석탑의 다양한 특징들을 담고 있는데, 괴임돌이 별석이다... 참고로 나는 이탑의 기단부 갑석이 뒤집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뀌었다면 내계리탑의 미감은 지금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까?...>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도 별석으로 가공된 괴임돌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추정한다)
하동 탑리탑처럼 전체적인 구성과 미감을 완성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한 괴임돌은 못봤다.
<일층몸돌 괴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은 일부분일텐데도, 이 하나의 장치로 인해 석탑의 미감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87호/4.55m... 일층몸돌 괴임이 보다 적극적으로 석탑의 미감에 영향을 끼친 것은 고려시대의 탑들이 아닐까 싶다(물론 백제계탑은 애초부터 적층방식이었으므로 별도로 분류하고...)... 이를 대표하는 탑이 신복사지탑이다...>
<춘천 칠층석탑/보물 77호/6.4m... 이런 별석괴임의 전통이 있어, 후대의 연화문 괴임도 쉽게 적용되지 않았을까?...^^ 탑신에 대한 훨씬 현학적이고 교조적 해석의 결과일 수 있지만, 기단부 갑석에 복련이 시도된 함안 승안사지나 구례 논곡리 삼층석탑 등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석탑의 미감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참고로 이 탑의 연화괴임 역시 뒤집힌 게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잘못된 맞춤이든 어정쩡한 보수든 간에,
일층몸돌 위아래의 별석으로 만들어진 괴임과 층급받침은
신라식 석탑의 단조로움과 괴체감을 깨뜨린 미묘한 변화와 구성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것이 하동 탑리탑에서 느끼는 즐거운 리듬감과 생동감의 정체가 아닐까?
그런데 왜 나는 이 탑을 지금까지 외면하고 지나쳤을까?
그래 그렇게 나와 인연 있었던 모든 것들을 쏟아봐야, 느낌이 인상으로 각인된다.
가장 단순한 비교라도 좋고, 비슷한 것들을 모은 유형화라도 좋고, 네트워크의 단초라도 좋다.
단초들이 쌓이면 개념이 되고, 의미는 정신이 되며, 존재는 가치가 되는 거니까...
고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중이 특별할 순 없지만, 분류는 나를 편하게 한다.
보다 풍부할 수 있고, 보다 넓고 길고 깊게 기억할 수 있으니까.
<간만에 쓰는 답사기가 자꾸 길어진다...ㅠㅠ>
4.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하동 탑리 삼층석탑...
미심쩍은 면도 있고, 자칫 불완전하거나 혹은 어수선한 조합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
두 개의 탑에서 그나마 온전한 부재들만 골랐든지,
수차례 보수, 보강하는 과정에서 세월을 거스리지 못한 변형이 있었을 것이고...
제자리를 잃어버린 석탑의 운명, 여기저기 흩어졌던 부재들이 모인 태생적 한계다.
그래서 그런지 하동 탑리탑은 한사람의 올곧은 신념보다 많은 사람들의 터치가 생각난다.
물론 1968년 최종적으로 이탑을 다시 세운 이의 눈썰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그의 안목이 아닌 세월에 축적된 훨씬 많은 이들의 시선으로 이 탑을 해체하고 재조합하고 있다.
우체국에서 카페로 변화된 답답한 주변 환경과, 불분명한 부재들이 불완전하게 조합됐다고
우리들은 이 탑은 지나치게 홀대하고 있어 무관심했겠지만,
결국 이탑은 자기만의 색깔로 완성됐고, 또 그 의연함을 잃지 않아 시원하다.
물론 지금까지 나는, 量(양)에 굶주렸을 때는 등급이 낮다고 무시했을 것이고,
質(질)을 갈망했을 때는 시간이 없다고 지나쳤을 것이고,
체계를 세울 때는 정형화되지 못했다고 평가절하 했을 것이니,
예전이라면 봤어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느꼈더라도 할 말이 없었을지 모른다.
이것들이 채워지고 비워지니,
수많은 이들의 손때가 묻어난 다양한 변주가 어떻게 내게 다가오는지 느껴진다.
이제야 인연이 된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미묘한 변화들이 상충된 속에 또 다른 완성을 느끼고,
잘잘한 요소들을 뜯어내 세월의 공백을 채워보고,
그냥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을 꾀하니 이런 게 묘미고 이런 게 대화겠다 싶다.
내가 작아졌거나, 세월이 무거워짐을 이제야 認定(인정)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탑은 존재하면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탑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나누고 교감했을까?
하동사람들에게 이 탑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이 탑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고, 또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했을까?
애초에 있었던 그 곳과 그 모습을 잊어버리고, 현재 이 탑이 바라보는 산하를 다시본다.
그렇게 무심하게 바라보며, 또 그렇게 무덤덤하게 지금의 답답함을 이겨내는 힘을 생각한다.
두껍고 얇고,
가볍고 무겁고,
높고 낮고,
가늘고 굵고,
여기저기 갈라지고 쪼개지고 나눠지고,
여기에 늘씬하게 솟은 일층몸돌과 정연하게 갈무리된 지붕돌의 상반된 배치까지,
어느 하나 일정하지 못하고, 완결적이지 못한 듯 같은데도,
하동 탑리탑은 탄탄한 비례와 구성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완성됐다.
이 탑과 인연을 맺은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 완성을 느꼈을까?
하동 탑리 삼층석탑을 보면서 뭔가 아쉬웠던 나를 돌아다본다.
애써 마련한 시간에 놓치지 않았던 정성을 기특하다고 다독여본다.
지리산과 섬진강, 쌍계사와 최치원, 벚꽃과 화개장터, 그리고 잭살차와 토지의 무대...
모처럼 탑을 곱씹으며, 맘을 열고, 탑이 바라보는 하늘과 산하를 조용히 음미한다.
즐겁고 시원한 눈 맛...
간만에 생동감 넘치는 구성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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