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 序 한국적인 8) 궁궐과 성, 관아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 序   1. 한국적인

    ∐. 1. 8) 궁궐과 성, 관아 :

        권력이 끌어온 기술과 자본과 사상이 집대성된 그 시대의 완성

 

        (1) 창덕궁 + 후원 + 연경당

        (2) 경복궁

        (3) 화성

        (4) 남한산성

        (5) 제주목관아

        (6) 고창읍성

        (7) 해미읍성

        (8) 궁궐과 성, 관아의 대표적인 건축물들...

 

 

 

<북한산-북악산-경복궁... 그리고 창덕궁, 창경궁 등...>

 

* 10여년 전까지 궁궐과 성, 관아에 관심이 없었다. 수없이 가보았지만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들,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은 있었지만 공간에 대한 감흥도 없었던 거 같다. 있었다면 창덕궁의 낙선재, 부용지 일대, 연경당, 경복궁의 광화문과 경회루 주변, 그리고 수원 화성 정도였을 거 같다.

 

* 내가 권력의 공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터부시했던 것은 국가와 권력의 불합리성과 함께 민중들을 보호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제 역할을 했었는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구중궁궐, 최고의 힘이 집약된 공간이지만 내게 권력의 공간은 음모와 암투의 공간이고, 패배의 상징이고, 수탈의 본거지며,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역사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권력의 공간은 조선의 공간이며 폐기된 잊혀진 건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살다보니 조선과 역사에서 감정이 희석되고, 이질적 공간의 정치적 철학적 개념이 재정립되었으며, 권력의 빛과 그림자 양면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궁궐과 성, 관아는 그 시대의 권력과 자본과 사상이 최고의 기술과 기능을 집약하여 완성한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힘의 결집과 건강한 권력의 긍정적 힘은 무엇보다 강력한 추진력을 갖출 수 있다.

   물론 결정체가 유일한 것이거나 집중이 선(善)도 아니며, 홀로 온전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 시대를 선도하고 주도하고 관리했던 총화는 변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권력의 중심, 북악산 자락의 경복궁과 청와대... 지금은 용산인가?>

 

 

* 권력은 중요하다. 특히 잘하는 것은 티가 나지 않지만, 잘못했을 때의 결과는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영역을 보호하고, 갈등을 조율하며, 미래의 방향과 속도, 수위를 결정해야하는 정치의 속성에 충실하다면, 사회경제문화종교학계의 재원을 재분배하고 방향을 설정하는데 정치권력만큼 효율적인 방안은 없다.

   또 특정집단(군부, 돈, 법조인, 사상, 종교 등)에 귀속된 (전제적) 정치의 폐해를 경험한 우리들로서는, 정치권력의 문턱이 낮을수록, 오픈될수록 다양할수록 사회는 원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안목에서 선택하는 현대 권력의 공간은 어떻게 건축되어야 할까?

 

* 이런 문제의식에서 관련된 몇 곳과 몇몇의 건축물을 골라봤다.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과 성, 산성과 읍성, 그리고 관아다. 국보와 보물은 모두 포함하였고, 빠뜨리기 아쉬운 건축과 이해를 돕기 위한 건물들을 같이 열거했다.

 

 

(1) 창덕궁 + 후원 + 연경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울 종로구 와룡동), 1405년 창건, 1636년 재건

 

* 조선의 유학, 조선의 군주, 조선의 기술이 만든 궁전

* 유네스코 : 주변 자연환경과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

* 권위와 과시는 축소되고 실무중심으로 재배치한 한국적 스케일의 기준이 되는 공간

* 조선의 전후기의 변화(1400년대~1700년대 전후)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의 축적

* 후원을 비롯해 낙선재와 연경당, 부용지 등 조선 군주의 지향점과 세계관까지 한눈에.

 

 

인정전(국보225호/1804년/1405년 창건), 돈화문(보물383호/1412년), 선원전(보물817호),

선정전(보물814호/1647년), 인정문(보물813호/1745년), 대조전(보물816호/1834년),

희정당(보물815호), 낙선재(보물1764호/1847년), 연경당(보물1770호/1406년/1636년 중수),

부용정(보물1763호/1707년/1792년 중수),

 

 

(2) 경복궁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5년 창건, 임진왜란 전소, 1867년 중건

 

* 최초의 조선인(정도전)이 건축한, 정치공간에 대한 고려 성리학(주희, 주례)의 관념적 집대성.

* 경복(景福, 시경) ;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 조선의 법궁(法宮)

* 백악산을 주산으로 좌우에 낙산과 인왕산, 조선 태조와 정도전, 종묘(+경복궁+)사직 건설

 

* 주례 고공기에 입각, 3문 3조 (광화문-홍례문-근정문, 외조/내조/연조→외조/치조/내조)

* 궁궐의 상징성과 풍수적인 형국, 외국사신과 조정관원 연회.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시전

* 육조거리(좌; 예조/중추부/사헌부/병조/형조/공조/사역원, 우; 의정부/이조/한성부/호조)

 

* 경회루에서 바라보는 인왕산과 북악산, 그리고 근정전을 중심으로 한 눈에 보이는 지붕들의 결이 좋다.

 

 

근정전(국보223호/1868년), 경회루(국보224호/1867년 중건), 자경전(보물809호/1888년 중건),

근정문 및 행각(보물812호/1867년 중건), 향원정(보물1759호/1885년 중건/1456년 창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01호/1085년), 경천사지십층석탑(국보86호/1348년), 광화문

 

 

(3) 화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팔달산), 1794년 축성, 1796년 완성

 

*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정조와 정약용, 조선의 마지막 성리학 군주와 실사구시 실학자의 만남

* 유네스코 :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

 

<화성 화서문...>

 

* 군주와 기사들이 만든 유럽의 성, 쇼군과 가신, 사무라이들이 만든 일본의 성, 그들은 전쟁에 특화된 용병들이었고, 성은 그들이 만든 권력공간이고, 그들의 전쟁터며, 그들을 위한 삶의 공간이었다. 이에 반해 조선의 성은 외침을 대비하여 백성(百姓)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었고.

   물론 중인/상인은 성내에 농민/어민/천민은 성밖(그래서 성내 거주하는 인(人)과 성밖에 거주하는 민(民)을 묶어 인민(人民)이라 부른다)에 거주하는 차이와 차별이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전쟁은 항상 관과 군과 인민이 함께 응전했다(장수가 죽거나 바뀌면 부하들은 항복하고, 바뀐 장수에 종속되는 일본의 전통과 달랐다. 물론 민족국가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유럽도 달라졌지만).

   그래서 화성은 당대를 반영한 군사시설을 갖추고, 조선 성리학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都市)의 형태를 띠고 만든, 조선 중세시대 최후로 계획된 성읍(城邑)이다.

 

* 백제와 통일신라에서도 가능했던 벽돌생산(무령왕릉, 전탑) 기술은 1천년이 지난 화성축조과정에서 복원된다. 그것도 또다시 중국 기술자를 통해... 거중기 등 많은 기구들이 개량됐지만, 여전히 사회간접자본과 기술혁신에 대한 조선의 인식은 저급했다.

 

* 말이 달리고 활과 창과 칼춤을 추던 시대에서, 총과 대포의 전쟁으로 바뀐 시점... 화성에서 주요하게 고려했던 전쟁의 양상이다. 그러나 장안문, 화서문 등에서 보듯 그 규모는 크지 않았다. 세계최초로 군선에 대포를 배치한 최무선, 밀도 높은 장영실의 화약, 일본이 따라오지 못한 사정거리를 가진 이순신의 거북선과 대포, 그러나 조선은 역사를 잊었고, 기술을 버렸다.

 

 

* 일본 전국시대의 마감과 임진왜란, 그리고 에도(도쿠가와)막부의 탄생, 병자호란과 청나라의 건국, 1600년대 이후 동북아시아에서는 더 이상 국제적인 전쟁이 없었다. 그에 반해 동로마제국 멸망시점부터 나폴레옹까지 유럽은 400년 가까이 전쟁 중이었다. 그 전쟁의 끝에 제국주의 시대가 열리고...

   대량학살 무기의 개발과 국가간의 외교 및 동맹이 복합적으로 진행된 전쟁을 경험한 유럽과 평화의 시대에 젖어있던 동북아시아... 어쩌면 18세기 전후 전쟁경험의 유무가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등의 비극적인 근대역사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화성 서장대... 작지만 탄탄한... 생동감 있다...>

 

* 정조와 정약용이 기획했던 화성은 과연 미래를 지향한 것이었을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시야의 결과물이었을까? 리더나 참모의 문제인가, 조선 성리학의 문제인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기질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부정적일까?

* 동북각루에서 보이는 용연과 화홍문, 동북포루 등의 풍경은 어느 곳보다 서정적이다...

 

장안문(보물402호) 화서문(보물403호) 서북공심돈(보물1710호) 동북각루(방화수류정/보물1709호)

 

 

(4)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광주 남한산, 청계산)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현재의 서울...>

 

* 개성(북), 수원(남), 강화(서)와 함께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가 광주의 남한산성

* 유네스코 : 성곽과 방어 시설 등 군사시설의 발달과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시대별 축성술 발달단계를 잘 보여주며, 군사.행정도시로서 건축적 가치와 무형적 가치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오랜 세월동안 손상된 건축물의 복원 과정에서 역사적 기록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전통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도 인정받았다.

 

* 백제산성 → 통일신라 주장성(일장성, 672년) → 고려 광주성(1231년 몽골항쟁) →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킨 조선시대 산성 → 조선산성(1595년) → 병자호란(1624년) → 병인박해(1866년) → 의병점거(1896년 을미사변) → 만세운동과 남한산노동공조회(1919~1936년)

 

* 626년 고구려와 11세기초 고려의 천리장성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산성은 우리나라의 고대부터 중세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군사시설이다. 그리고 왜구들의 침략이 본격화된 조선시대에 읍성이 등장하고, 산성의 방위개념과 읍성, 유사시 행궁의 기능까지 통합하여 만든 대표적인 유산이 남한산성이다. 군과 민이 함께라는 전통에도 불구하고, 산성이 내게 주는 이미지는 籠城(농성)이란 방어적 개념일 뿐이다.

 

* 행궁 옆에 복원된 좌전(左殿, 정전과 영녕전으로 종묘의 신주를 봉안)이 좋았다. 5칸 맛배지붕의 정전과 평삼문만으로 이루어진 사당으로, 근엄함과 정연함으론 최고일 듯...

 

동문(좌익문), 서문(우익문), 남문(지화문), 북문(전승문), 외성(봉암성, 한봉성)

수어장대(보물2153호/1751년 중수), 연무관(보물2154호/1624년), 행궁, 좌전, 창괘정,

숭렬전(백제 온조왕/1779년/1795년 사액), 청량당(이회장군, 벽암대사), 현절사(삼학사)

 

 

(5) 제주목관아

 

* 관아란 관리나 벼슬아치가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는 지방행정기구의 청사가 위치한 마을이다.

* 관아의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국왕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으로, 사신을 접대하고 국왕에 충성을 다짐하며 수령의 이취임식이 열리던 객사, 수령의 정청인 동헌(감영에는 선화당), 수령의 살림채인 내아, 고을 양반들의 자치기관인 향청(좌수와 별감을 두었다), 아전들의 근무처인 작청-질청, 회계사무를 관장하던 공수청, 군사를 관장하는 군기청-장청, 죄를 다스리던 형방청과 형옥, 기생과 노비들이 사용하는 관노청 등이 있다.

 

* 제주목관아는 16세기 이후 건물터와 담장터에 복원하였는데, 조선초기 건물이면서 제주의 건축적 특징(크기에 비해 낮은 높이, 넓고 깊은 처마)을 간직한 관덕정을 기준으로 연희각, 영주협당 등을 복원하였고, 귤림당과 과원 등 농업생산물과 관련된 지역의 특성이 관아 내부에 함께 설치된 고려한 점을 평가해 선정했다.

* 제주목관원 ; 제주의 동,서,남,북,중과 별(別) 등 6개의 관원 중 북과원이 동헌 옆에 있었다고 하며, 당금귤, 동정귤, 유감, 청귤, 산귤, 당유자, 탱자 등 감귤나무와 감자, 치자, 등자 등이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제주 관덕정 : 낮고 깊은 처마 - 제주도 건축의 특징에 장중한 기운까지 살린 멋진 건축...>

 

관덕정(보물322호, 1448년), 기간지주, 돌하르방, 외대문(진해루), 회랑(군뢰청, 호적방), 내삼문,

우련당(1526년 연못, 1694년 중건), 연희각(상아/정아, 동헌), 영주협당(관청), 귤림당, 석정,

망경루(1556년 창건, 1861년 중수), 비석군, 제주목과원.

 

 

(6) 고창읍성

*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 읍성이다.

* 고창읍성은 야트막한 야산에 읍성보다 산성의 기능에 충실하게 축성한 곳으로, 성내에는 관아만 만들고 주민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가 유사시에 성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만든 특징이 있다.

* 왜구침략에 대비용으로, 영광 법성포쪽 길목의 입암산성과 연계, 호남내륙의 전초기지 역할.

 

* 1453년 제주를 포함한 전라 좌,우도민들이 모두 참여하여 축성한 기록이 성벽에 남아있다.

(고부, 장성, 정읍, 김제, 함평, 제주, 담양, 태인, 고창, 옥구, 순창, 임실, 흥덕, 영광 등 익숙한 지명과 함께 용담, 무장, 능성, 진원 등 낯선 지명도 있다)

 

* 산성도 아니고 읍성도 아니고... 산성이면서 읍성이었을까? 방어용으로 적합했을까 의문스럽지만, 관아의 기관들이 대부분 복원된 곳이다. 집중성과 일목요원한 체계는 없지만...

 

공북루(1646년)/동양루(동)/진서루(서), 모양지관(고창객사), 평근당(고창동헌),

고창내아(내동헌), 관청(관주, 주방에 관한 사무), 작청(이방과 아전), 장청(군무),

 향청(관사, 유향소, 수령자문보좌), 옥, 풍화루(빈풍루)

 

 

(7) 해미읍성

 

* 고려말 왜구의 빈번한 침략에 대비해 조선초기 충청도와 전라도의 해안에는 서산의 해미읍성을 비롯, 낙안읍성, 고창읍성 등이 건립되었다. 그 중 평지에 세워진 조선시대 대표적인 읍성으로 1417년 축성이 시작 1491년 완공되어 호서지방의 군사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다.

 

* 만주쪽 침략에 대비한 산성과 장성,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산성, 그리고 삼국시대의 산성과 비교해 보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평야지대의 읍성은 관군민이 일상생활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구조다.

 

* 관아와 마을 대부분 훼철된, 절로 따진다면 폐사지의 느낌으로 돌아볼만 하다.

 

 

 

(8) 궁궐과 성, 관아의 대표적인 건축물들...

 

<여수 진남관...>

 

종묘 정전, 영녕전 국보 227
보물 821
1394년 창건 1608년 중건 세계유산
경복궁 자경전,
수정전
보물 809
보물1760
1395년 창건 1888년 중건
1867년 중건
 
전주 풍패지관 보물 583 1400년 창건 1473년 중수  
창덕궁 인정전 국보 225 1405년 창건 1803년 중건 세계유산
제주 관덕정 보물 322 1448년 창건 2006년 보수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보물 385 1484년 창건 1610년 경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연경당,
낙선재
보물 815
보물 816
보물1770
보물1745
1496년 창건
1609년 창건
1827년 창건
1847년 창건
1920년 중건
1920년 중수

세계유산
여수 진남관 국보 304 1599년 창건 1716년 중수  
나주 금성관 보물2037 1603년 창건    
통영 세병관 국보 305 1605년 창건    
거제 기성관 보물2158 1665년 창건 1892년 중건  
종친구 경근당 및 옥첩당 보물2151 1866년 창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