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17) 세련되고 맵시있는

 

.

   3. 건축공간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미감들...

 

(17) 맵시있는... 멋과 품격을 갖춘 세련미 

세련된 느낌의 역사문화유산들을 모아봤다... 세련된... 무슨 느낌일까?

 

먼저 반대말을 찾으면 '촌스럽다'이다. 유의어는 '능숙', '품위', '고급', '고상'하다 등이 있고...

여기에 사전적 의미인 서투름없이 미끈하게 가다듬어진을 더하고,

한번 더, 현대적 또는 도시적 이미지를 첨가해 사용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추가한다면 세련이란 형용사는 아름다운, 우아한, 균형잡힌, 어울림 등과 어울려 사용되는 만큼

능숙함과 고급스러움, 촌스럽지 않음을 벗어나 훨씬 중의적이며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중의성에 나는 시대의 주류는 아니지만,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적극적인 실험과 변화 - 즉 선도성을 넣었고,

그럼에도 전형성을 벗어나지 않은 완결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완성적 개념인 아름다움, 우아함에 비해서는 스케일과 시대의 지배적 위치에서 차이가 있고, 

멋과 격조와 품위 등의 개념과는 격과 영향력에서 차별성을 두었다...

그리고 단아-담백-깔끔함, 정갈함과 차분함과도 구별하고자 한다...

 

비교적 여성성이 강하지만 전체적으로 중성적이고,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숨기지 않지만, 독보적이거나 카리스마를 내세우지 않고,

균형과 비례를 갖춘 정연함과 격을 갖추고 있지만, 비교적 자유롭고,

한마디로 전형성은 유지하되, 조금 더 격을 높여 치장을 하고,

그 변화마저 격과 품위를 지켜 현대적이며 시대를 앞서가는 신선함까지 살린 미감들...

그런 세련미를 생각하며 골라본다...

 

- 이래서 다 정리되기 전에는 부연을 달지 않기로 했는데... 

맵시, 솜씨, 마음씨, 말씨... 

그래~~~ 이 유산들을 고를 때 '태'에 집중을 먼저했다...

뽐나는...^^

(17) 세련되고 맵시있는- ① 석조예술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700년대 후반에서 800년대 후반까지 100여년에 걸쳐 제작, 조성된 유물들이다... 강건한 이미지들이 배제되고, 국가의 부는 늘어나는데 지배와 피지배의 갈등은 서서히 내제화되고, 부와 기술을 점유한 이들은 새로운 변화를 찾고... 그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이란 절대미감을 놓치지 않은 석탑, 불상, 승탑, 조각 등을 골라봤다...
상주 석조 천인상 보물 661 780년경   통일신라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 보물 320 840년경 구림리 두륜산 통일신라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1636 865년경   통일신라
양양 선림원지 승탑 보물 447 886년경 황이리 미천골
홍각선사승탑
통일신라

 

상주 석조 천인상

비파를 타는 주악상과 연꽃을 받쳐든 공양상 2구다... 한발을 내민 주악상은 경쾌하고, 두발을 모은 공양상은 경건하다... 사실적이며 섬세한 조각의 수준은, 키타의 초크 같은 물건을 쥐고 있는 주악상이나, 다섯 손가락을 펼친 공양상 모두에서 확인된다... 특히 바람에 휘날리는 듯, 연주소리와 공양을 위해 나아가는 의지 때문인지 나풀거리며 휘날리는 옷자락(천인상이니 천의라 불러도 좋을 듯...)은 생동감을 자아낸다... 온화하며 유연한 두 작품에서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품위같은 걸 느낄 수 있어 좋다... 상주박물관으로 옮기기 전에는 연화대석과 석탑재가 같이 있었는데, 석등의 하대석으로 보이는 연화대석을 통해 제작-조성 시점 등을 같이 비교해 볼 수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만들어진 1세대 전후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

규모가 축소되어 가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나아갈 방향과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석탑이다... 하단기단부의 2개 탱주와 상층기단부의 탱주 한개가 일단 시대적 배경이 800년대 초반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경사진 하층기단부와 평면으로 가공된 상층기단부 갑석에 돌출된 사각방향의 우동, 약화된 상층기단부 갑석의 부연, 그리고 아예 4단씩으로 조정한 각층 지붕돌 층급받침에(노반 층급이 한단) 지붕돌 낙수면의 경사가 치켜올려진 귀솟음만큼 골곡으로 변형되고, 일층몸돌의 괴임도 호각형에서 경사진 각형으로 바뀌었다... 그런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짜임새 있고, 산틋하고 세련된 미감은 그대로 살아있다... 일층몸돌을 기준으로 하부는 부드럽고 정연한 새색씨 같은 차분함이 느껴진다면, 일층 지붕돌부터 위쪽은 다부진 체격에 가슴을 쫙편 활기찬 청년의 기운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한편으론 화려하고, 한편으론 강인하고, 한편으로 차분하고... 재밌는 탑이다...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

이 석불좌상은 좌대가 일품이다... 원형에서 전형화된 팔각 중대석... 그 돌을 오목으로 파내어 가공을 했으니 앙련과의 이음부위, 하부 복련과 복련석 사이의 괴임돌 모두 오목으로 가공처리하였다... 중대석만 보면 이해할 여지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에 자꾸 눈이 가는 좌대다... 독특하다고 하기엔 남들이 쉬이 따라하기 어려워 거의 유일하고, 그런만큼 정교함에 화려한 느낌까지 잘 살아있는 수작이다...젊은 얼굴의 석불은 좁은 어깨와 짧은 상체에 비해 풍만하고 안정감 있는 하체가 여성적 느낌이 들게 만든다... 다만 왠지 좌측으로 치켜올려진 것 같은 입술이, 윙크한 것 같이 보이다가, 찡그린듯 보이다가 하는게 편안하지만은 않다...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 그 석공은 스스로 만족했을까? 한편으론 그 석공의 고뇌처럼 느껴져 살짝 안쓰럽기도 하고...ㅎㅎ 아무튼 세련된 느낌의 석불좌상이다... 

 

 

양양 선림원지 승탑

석불좌상을 이어 시대를 주름잡은 분야가 승탑이다... 비슷한 양식의 좌대에 석불 대신 사리가 있을 법한 몸체에 지붕돌과 상륜부를 둔, 승탑...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고복형 석등도 비슷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승탑의 완전히 정착했다는 말은 선종이 시대와 불교계를 주도했고, 지배층도 이를 선호했다는 말이며, 또 그런만큼 사찰은 조금 더 영험하고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깊은 산속까지 밀려나 이제서야 다시 속세로 나오기 위한 몸부림인지, 스스로 깊은 산속으로 물러난 결과인지 800년대 말은 모호하지만, 분명 900년대는 속세와 도시, 산속이 아닌 들판으로 사찰은 걸어나왔고, 승탑은 그 중심에 배치되기 시작한다... 그 즈음... 승탑들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염거화상탑, 철감선사탑, 지증대사탑 등등이 팔각간주석보다 탑신 및 전체에 장식을 두었다면, 선림원지 승탑은 당대로서는 유일하게 운룡문이 조각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간주석에 변화를 준 갑사의 승탑을 비롯해 굴산사지 범일국사승탑에서 큰 변화를 잠깐 보이지만, 여주 고달사지 승탑이 등장하기 전까지 운룡문이 새겨진 간주석은 최초이기도 하지만 극히 드문 양식이기도 하다... 게다가 운룡문으로는 원추형 양식을 두어 단아한 느낌에 정갈한 맛까지 있어 같은 운룡문 양식의 승탑과도 큰 차별성을 갖는다... 상부가 좁아진 간주석으로 인해 복련보다 좁아진 앙련 위에는 어떤 탑신과 상륜부가 있었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멋지고 세련된 느낌의 승탑이다...     

 

 

 

(17) 세련되고 맵시있는 - ② 건축

세련된 느낌의 건축을 찾다보니, 아무래도 방형의 일반적인 직사각형 구조를 벗어난 배치가 눈에 띤다... 좌우 익랑을 둔 김제향교 명륜당을 비롯해, T자형의 선암사 원통전과 쌍봉사 호성전, 그리고 사면에 합각을 두어 십자형 지붕을 가진 대원사 원통보전과  ㄱ자에 월대와 돌출부를 두어 중국식 느낌이 드는 복잡한 구조의 방화수류정, 그리고 이들을 총합한 것 같은 창덕궁 희정당 일원을 골라봤다... 그리고 역시 창덕궁에서는 주변 지형에 그대로 순응하듯 수직의 고차를 고려해 사랑방 같은 기능을 익랑으로 배치한 성정각과 함께, 삼문은 아니지만 행랑채를 연결한 부위에 문을 둔 장락문을 골라봤다... 장락문에 대해 별도 소개를 한다면, 좌우의 행랑 사이를 한칸 문으로 만든 장락문은 행랑채의 용마루와 맛배지붕 장락문의 용마루에 고저차를 둔 것이 너무나 상큼하고 세련되 보여 함께 골랐다... 생각보다 높은 문위라 먼거리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그런 센스를 부릴 여유와 멋이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할 정도로 세련되 보인다... 즐거운 포인트다... 
김제향교 명륜당   1635년 중건 김제관아 조선
순천 선암사 원통전   1660년 창건
1824년 중건
원통각-대복전
승주읍 조계산
조선
창덕궁 성정각   1697년기록
1705
보춘정, 희우루 조선
수원 방화수류정 보물1709 1794 화성 동북각루
용두-용연-화서문
조선
창덕궁 연경당 장락문 보물1770 1827년 창건   조선
창덕궁 희정당 일원 보물 815 1496년 창건, 1920년 중건  
산청 대원사 원통보전     자라선 삼장면  
화순 쌍봉사 호성전     조주/철감선사  

 

김제향교 명륜당

솟을지붕 양식은 대부분의 객사건축과 서울 문묘의 명륜당 및 이를 차용한 향교나 서원의 강당에서 즐겨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객사건축은 지붕의 배열(맛배+맛배, 혹은 팔작+맛배 등)의 변화와, 좌우로 시원하게 뻗어 나간 익랑의 개방감이 중시된다면, 김제향교 명륜당은 익랑은 철저히 보조적이면서 전체적인  배치에 최적으로 어울린 구조를 가지고 있어 정갈한 느낌마저 든다...내부도 가운데 3칸이 높고 내부 고주가 있으나 종도리를 비운 측면 3칸 구조로 안정감이 높다...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좌우 익랑이 팔작지붕처럼 합각으로 처리해 세련된 느낌이고, 측면에 붙은 동서재에 잘 어울려 강학공간은 물론, 전체적으로도 중심 위치에서 조화를 잘 이끌어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순천 선암사 원통전

팔작지붕 건물에 주출입구를 익랑처럼 빼어낸 T자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 공간 뒤쪽, 일자로 배열된 조사전과 불조전, 팔상전 바로 뒤, 불조전과 팔상전 사이길에 한단 높게 배치되어 건물의 전면 개방감이 떨어지는데, 이동통로의 처마 역할을 하는게 전면 익랑이다... 오른쪽의 첨성각에 접해있고, 후면 담장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암매가 자라고 있어 건축물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전면 익랑을 제외하면 전측면 3칸이며, 내부에는 한칸은 3면을 벽체로 내진과 외진을 구분하였고 대복전 편액을 걸고 관음보살좌상과 백의관음탱화가 안치되었다... 선암사에는 원통전과 비슷하게 응진전 뒤편의 산신각에도 지붕을 T자로 연결한 구조가 있는데, 산신각은 통로의 역할을 하는 회랑구조라면, 원통전은 본건물에 붙은 익랑구조로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삐뚤빼뚤 하게 노출된 서까래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고 맵시있게 처마를 뽑아낸 시원한 건물이다...

 

 

창덕궁 성정각

희정당과 대조전 영역 동측에 자리한 성정각은 조선의 세자가 공부하던 공부방이었다... 동측 뒤편으로 후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성정각과 승화루, 삼삼와 등의 중심건물인 중희당이 있었고 이 영역을 묶으면 동궁(세자만의 세상...)이 될거고... 이 동궁터를 지나면 낙선재와 창경궁이 나오고... 뒤쪽에는 집희라는 현판을 붙인 관물헌이, 앞쪽 - 출입구와 행랑채 옆에는 보호성궁, 조화어약이란 현판을 붙인 건물이 있는데, 관물헌은 이름대로 사물을 열심히 궁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앞쪽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 이 일대를 내의원으로 사용할 때 붙인 부속건물들이다... 또 성정각은 성의와 정심에서 앞 글짜를 따 - 성심성의껏 바른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한다는 뜻 처럼 1600년대 후반까지는 분명 세자의 공부방으로 사용되었으나, 영조 이후에는 경서를 읽으며 공부하거나 신하들도 만나는 왕들이 주로 사용했던 곳이라 한다... 아무튼 그런 이유는 그냥 참고사항이고 내가 이 건물을 꼽은 이유는 지형과의 조응에 건축물의 구조를 유기적으로 변화시키면서 보춘 - 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정각 뒤 관물헌은 갑신정변 때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던 곳이고, 후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인만큼 낮은 둔덕이지만 뒤쪽과 동쪽으로 둔덕이 형성된 곳이다... 그래서 마당을 전체 삼단으로 나누어 맨 아래는 ㅁ자, 다음부터는 ㄱ자형태으 마당이 연속으로 배열했고, 그 중간에 성정각을 배치했는데, 동쪽으로 높아지는 지형을 고려하여 누각이라 할 수 있는 보춘정은 반층을 높게 조성해 사용했다... 그래서 성정각 외부, 담장 밖에서도 지형에 조응한 건축물이 리드미컬하게 지붕을 내밀고 있다. 딱 불편하지 않을 만큼... 나는 이 부분을 기가 막힌 지점이라 평가하는데, 그렇게 노출된 지붕 중 유난히 보춘정/우희루의 지붕만은 최대한 경쾌하고 장식적으로 뽑아내, 주변 궁궐건물들의 엄정하고 차분한 처마선과 차이를 두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또 보춘정은 담장 밖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만큼 높이가 보장돼, 세자의 공부방으로 사용했든, 왕들이 책을 읽든, 신하들과 담소를 나눴든 정해진 일과와 격식을 벗어난 부담없는 자리임을 대외적으로도 드러낸 건축적 장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안목 - 그런 의도를 충족시킨 솜씨 - 그래서 맵시있고 세련됐다고 평가한다...  

 

 

수원 방화수류정

화성은 요즘말로 신도시이지만, 궁이란 행정적 기능과 성이란 군사적 목적이 분명한 복합목적의 궁궐이다. 여기에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로 현판을 붙인 것만 봐도 정조나 정약용의 인문적 취향이 배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실제 아래쪽으로는 북수문인 화홍문이, 그리고 이 방화수류정의 공식기능은 동북쪽에 지휘와 방어의 요충이 되는 각루의 목적이 있으며, 급한 경사면 아래엔 용지라는 연못에 버드나무가 식재된 원형의 섬이 조성돼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서쪽과 북쪽을 향한 역ㄱ자 형태로 외부 시야를 확보한 평면에, 용지방향 북쪽 마루는 단을 주어 들이고, 다시 북쪽과 동쪽으로는 돌출한 누대를 +자 형으로만들고, 평면의 변화에 그대로 조응한 지붕구조를 두어 매우 독특하면서도  번잡하고 화려한 느낌의 누각건축이 되었다... 기능과 목적만큼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건축물이 된것이다... 한편으로는 집합건축에 익숙한 중국풍이 곧바로 떠오르는데, 아무리 실사구시와 격물치지를 정조나 정약용이 강조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사상적 뿌리가 유학이고,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할 목적이었던 '북학'이었던만큼, 청나라풍의 차용도 마다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본다... 여전히 멋지다...   

 

 

창덕궁 희정당 일원

동쪽 - 동궁의 부속건물인 성정각과 서쪽 - 인정전에 이은 선정전을 좌우 날개처럼 거느리고, 뒤편 북쪽으로 대조전을 둔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건물이 희정당과 그 일원이다... 희정... 정치를 빛낸다는 뜻을 가진 건물이지만, 당이란 격을 생각하면 대조전보다 낮아 왕이 일상생활도 영위했던 편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 같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꼽은 포인트는 희정당 본건물 보다 그 앞쪽 - 어쩌면 예전의 행랑채가 격식을 가지고 변화된 현관을 중심으로 한 전면부 건축이다... 경복궁의 영녕전을 뜯어와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은 희정당과 이미 자동차가 사용되던 시절을 감안한 주출입구 캐노피처럼 돌출시킨 필로티 구조의 현관 등은 당대 최고의 격식을 뽐낸 행랑채가 이 희정당 일원이 아닐까 싶다... 주 - 부의 출입구를 구별하였으나 동측엔 부출입구를 두지 않아 균형이 깨졌지만, 희정당까지 ㅁ자 - 사합원 같은 구조를 다채롭게 구성한 방식은 분명 뛰어난 눈썰미를 가진 대목장의 안목이 아닐까 싶다... 전면 11칸의 장대한 규모임에도 지극히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희정당에 대비되는 변화무쌍한 현관건축, 그리고 정면 가운데 건물과 서측에 돌출된 필로티 현관과 뒤편의 희정당을 고려하여 높이에 차별을 두지 않은 주출입 정면 건축으로 인해 조금은 완결성이 떨어지지만(만약 서양식 건축을 생각했다면 희정당은 2층 전각으로, 대조전은 3층 탑상형 전각으로 만들었어야 균형이 맞을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과 디테일이 뛰어난 세련된 건축임은 분명하다... 

 

 

화순 쌍봉사 호성전

호성전은 성인들의 영정이 안치된 조사전 같은 건물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가장 뛰어난 승탑 중 하나인 철감선사탑의 철감선사 도윤과 그의 당나라  유학시설 사형인 조주선사다... 전면 3칸, 측면 1칸의 단아한 사이즈에 전면 어칸을 돌출시켜 정자각 형태로 만들었다... 각각의 부재가 적절하여 부족함이나 넘침이 없고, 외2출목으로 장식성도 최대한 살려 정성스럽게 치장했으며, 전면 돌출부는 팔작지붕 형태의 합각을, 본건물의 좌우는 맛배지붕으로 마감하여 변화도 있지만 깔끔한 느낌까지 살려, 두마리 토끼를 정말 조화롭게 잘 살려냈다... 특히 내가 이 건물에서 포인트로 꼽는 점은 전면에 돌출된 기둥의 절반 정도를 돌기둥으로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이 돌기둥 높이를 살려 좌우에 난간을 두어 누마루 같은 느낌을 살렸다는 점이다... 온돌이 있든 없든 바닥에 마루를 깔면 지면에서 한자 정도는 뜰 수 밖에 없고, 사실 그 높이가 목조건축의 바닥높이가 되는데, 이 작은 포인트를 월대나 누마루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낸 솜씨와 안목이 탁월하다... 쌍봉사의 설명과 무관하게 T자, 혹은 丁자 건축물은 많다(특히 왕릉 앞에는 아예 정자각이란 이름을 가진 침전들이 의궤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처럼 작지만 강렬한 포인트로 인해 내외의 구별은 세련되고 맵시있게 처리되었고, 어쩌면 점이공간을 조화롭게 구성한 대표적 사례로 칭찬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꼽아봤다...  

 

 

 

 

 

(17) 세련되고 맵시있는 - ③ 도자기

세련된 도자기를 찾다보니 아무래도 청자가 주류를 이룬다... 사치와 향락이 일상화 됐을지도 모를 귀족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일까? 그 중에서도 특히 주전자 위주로 고르게 됐다. 뛰어난 솜씨에 세련된 맵시를 가지고, 가장 장식적으로 만들 수 있는 용도로는 주전자가 단연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도자기, 밥그릇, 국그릇, 탕그릇, 그리고 항아리 등을 생각해보라... 주전자 만큼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도 어울릴 수 있는 용기는 없을테니...^^) 내가 본 것 중 뛰어난 것 위주로 골라봤다. 각각의 문양을 대표하는 것들로... 그외 청자 중에서는 연화당초용문 병을 골랐다 - 복잡하고 다양한 수많은 요소들을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어찌저리도 산뜻하게 마감하였을까 싶어서... 그리고 분청사기와 상감 백자는 청자 주전자와 완전히 괘를 달리해, 현대적이란 측면에서 골랐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거침없는 문양이 무척이나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보이는 철화 당초문 장군, 백번 천번을 생각해봐도 세련 그 자체로 느낄 수밖에 없는 철화 어문 항아리(분청사기의 모든 기법이 다 사용돼, 뜯어볼수록 이야기꺼리도 많고, 6조각 파편이 온전한 도자기가 되어 리움에 안착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리고 패랭이꽃을 흑상감하고 박지나 음각처럼 초문을 새겨 분청사기에서 막 백자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화당초문 백자 병은 역시 거침없고 담백한 배치가 너무 세련되 보여서... 여기에 조선 후기로 내려와 19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연적과 필통 백자를 한점씩 골랐는데(연적과 필통 중에 색감과 문양이 뛰어난 것들이 아주 많다...) 매화문 연적은 그 문양의 현대적 감각과 세련됨에, 그리고 투각 연화문 필통은 너무나 익숙한 문양임도 고려했지만, 연환 고리와 고리 사이 - 십자형 연결부위에 발생한 작은 구멍들이 유약으로 인해 완전히 뚫리지 않고 투명하게 새나오는 빛이 너무 고급스러워 골라봤다... 오발탄의 명중일지, 의도치 않게 얻은 게으른 도공의 회심의 작품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멋있다...       
청자 죽순모양 주전자 보물1931 12세기초 중앙박물관 고려
청자 과형 주전자와 승반   12세기 영국피츠윌리엄
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연화당초문 주전자   12세기 중앙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연화국화문 과형 주전자   12세기말 호림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화문 주전자   12~13세기 중앙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운학문 주전자   13세기 호림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모란문 과형 주전자   13세기 호림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모란문 주전자 보물1029 13세기 삼성미술관리움 고려
청자 상감 퇴화 화문 석류형 주전자   13세기 호림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동채 연화당초용문 병 보물1022 14세기초 호림박물관 고려
분청사기 철화 당초문 장군   15세기 호림박물관 조선
분청사기 철화 어문 항아리 보물 787 15세기 중반 삼성미술관리움 조선
백자 상감 화당초문 병   15세기 호림박물관 조선
백자 양각 매화문 연적   18~19세기 중앙박물관 조선
백자 투각 연환문 필통   19세기 개인 조선

 

청자 상감 동채 연당초 용문 병

상감기법으로 전체에 문양을 넣고, 용 앞발 여의주를 동채로 처리한 이 병은, 형태와 크기, 색감에 이어 문양까지 정갈하기도 하고, 깔끔하기도 하고, 고급스럽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특히 용문은 일반적인 병들과 달리 3면에 배치했고, 그 사이의 꽃 문양은 조금씩 다르다... 활짝 개화해 연꽃씨앗주머니(연밥이라 불러야 하나?)가 노출된 연쏙 두송이와, 연꽃으로는 드물게 아래로 처진 한 송이가 상감으로 새겨져 있다... 또 용이지만 사신도의 백호처럼 새겨진 용들은 매우 친근하게 보일 정도로 익살스럽고 장난꾸러기 같아 무척 해학적이다... 몸둥아리의 이런 문양 외에도 구연부에서부터 목을 꽉 채우는 국화와 연잎, 여의두문과 운학문 등은 청자에 사용된 모든 문양들을 포괄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종합선물 세트처럼 배열되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산만하거나 질릴 정도로 지루한 것이 아닌 산뜻한 맛이다... 그만큼 색감이 곱고 문양이 잔잔해 무척 차분한 맛도 준다... 그 전체를 세련미로 묶어 봤다... 

 

 

 

 

(17) 세련되고 맵시있는 - ④ 공예

공예품으로는 사리장엄구의 금속공예와 나전칠기에서 하나씩 골라봤다... 사리장엄구는 세종대왕의 사촌남매인 정혜옹주 사리탑 장엄구인데, 조성시기와 다르게 내용물은 고려시대 물건으로 확인됐다... 청동탑과 금은 사리기와 유리병, 그리고 청자다... 금은 사리기도 세련됐지만, 음각 뚜껑과 잘 어울린지는 모르겠지만 죽절문을 두른 청자가 좋아 보인다... 계속 눈에 밟혀서...^^ 나전칠기 의상자는 꽃망울을 떠트린 연꽃과 봉우리가 적절히 안배되어 현대적이라 할만큼 세련되어 보인다... 그리고 코너와 마구리 면에도 윗면과 측면에 차이를 두어 문양을 새겼고, 받침을 돌출시켜 구조적 안정성까지 고려한 솜씨가 무척 세련됐다 생각해 골랐다...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사리장엄구 보물 259   불교중앙박물관 고려
사리탑(보물 1808,1439, 수종사) 조선
나전 연화당초문 의상자   16~17세기 중앙박물관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