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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15) 정연함 - 절제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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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건축공간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미감들...

 

(15) 정연함에 담은 절제된 힘... ① 석조예술

정연함... 질서정연하고 논리정연하고... 정연함하면 떠오르는 개념들이다... 물론 나도 그런 의미가 강하지만, 나에게 정연함은 체계와 짜임새는 물론, 정교함과 최적의 균형을 갖춘... 그런 의미가 더 강할 거 같다... 지나치게 안정적이어서 생기발랄함이 없을 수도 있고, 지나치게 틀에 박혀 자칫 꼰대처럼 고리타분하여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럼으로 인해 더 진중하게 절제된 맛을 느끼게 하는 맛... 흐트러지지 않음이 내가 생각하는 정연함이다... 앞에 소개한 역사문화유산들 중에서도 술정리탑, 종묘, 화엄사 대웅전, 법주사 대웅보전, 청자 음각 연화당초문 정병 등이 정연함을 대표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정연함을 뛰어넘는 더큰 미감들이 있어 제외하고, 조금 더 직관적인 범위에서 정연함을 생각하며 골라봤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갈항사지탑이 아닐까 생각되며, 여기에 당간지주와 석조대좌, 그리고 탑비 중 하나씩을 소개한다... 

 

경주 불국사 당간지주
741 토함산 불국사 통일신라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국보 99 758 중앙박물관 통일신라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보물 1904) 대구박물관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보물 28 765 모악산 금산사 통일신라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국보 122 830년경 강현면둔전리 통일신라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186 830년경 (750년경 조성설) 통일신라
석조여래좌상(보물187), 마애여래좌상(보물913)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국보 58 930년경 장곡리 칠갑산
목조광배(조선)
통일신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보물 78 1025 원주시 부론면 고려
 
 
 

경주 불국사 당간지주

경주 불국사 당간지주, 741년경, 통일신라...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당간지주를 불국사형, 미륵사지형, 망덕사지형, 법천사지형, 굴산사지형 등으로 크게 구분하는데, 이중 불국사형은 소백산맥 이내 - 옛 신라지역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가장 세련되고 늘씬한 유형을 대표하며, 또한 그 시원이라 생각하고 있다... 전면의 윤곽선과 허리부분의 골곡, 그리고 상단의 공글림은 세련된 눈썰미와 차분하게 정제된 탄탄한 내굥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보물 28호, 765년경, 통일신라... 미륵사지와 함께 옛 백제지역 당간지주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다른 지역의 당간지주와 가장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측면에 돌출된 윤곽선이다... 자칫 둔중하고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또한 당과, 당이 걸리는 당간을 위한 부속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완성된 예술품으로서 그 격과 품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간결하고 파워풀한 요소를 기단부와 지주에 풀어낸 솜씨는 존중될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담백해야만 하는 구조재 마저 선조들은 완성태로 승화시킬 내공이 있었다... 당간지주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국보 122호, 830년경, 통일신라... 정연함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유산이다... 높아진 기단부와 약화된 부연과 괴임에도 불구하고 다부진 비례에 석질마저 탄탄한 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석탑이다... 나풀거리는 요대를 두른 공양상에 양각된 하층기단부, 굳건한 이미지로 제각기 무장한 팔부신중이 양각된 상층기단부, 여기에 사방불이 양각된 일층몸돌까지, 면면의 조각들도 예사롭지 않다... 변화되는 통일신라하대... 이전 시대의 완성일지, 선종이 득세하는 출발점일지 모를 그 시점, 그 지점에 당당히 서 있는 석탑이다...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국보 58호, 930년경, 통일신라... 천안-아산-예산-홍성으로 이어지는 평야와, 증평-청주-대전을 잇는 낮은 구릉지와 논산에서 익산으로 이어지는 평야지대 중간, 충청남도에서는 약하지만 산악지역의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청양이다. 그 아래쪽 금강을 따라 공주와 부여가 있어 충남지역의 북서와 남동을 연결하는 요충지이기도 하고... 그래서 인지 공부와 부여를 벗어나 이곳 청양 장곡사는 국보와 보물이 집중적으로 보존되어 있다. 통일신라에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격도 높다...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것이 석조대좌다(철불보다 석조대좌에 더 눈길을 두는 나의 주관이다)... 나말려초, 팔각의 중대석을 갖고 있던 연화대좌들이 사각으로 바뀐다. 석조대좌를 비롯해, 승탑, 석등에 이르기까지 가공하기 까다롭고 구조적으로 난이도가 높았던 전통을 포기(?)하고 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넘어가던 시점, 어쩌면 그 마지막 여운이 남은 게 이 석조대좌가 아닐까 싶다... 특히 복련 귀의 마감처리가 절정인데, 돌돌 말린 끝부분은 깜찍하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끼가 만들어낸 사족 같기도 하면서, 좌우로 펼쳐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것 같아 감탄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풍만한 복련의 단부는 한편 요염하게도 보여 재밌기도 하고... 아무튼 저만한 크기의 석재를 이렇게 깔끔하게 다듬었다는 기본적인 감탄에서부터 만들어낸 석공의 오묘한 솜씨까지 추적하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요소가 많다... 단순함 속에 엄청난 내공이, 작은 디테일에 수많은 감상이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유산이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곡탑... 정연함, 의연함, 담백함, 정갈함... 어느쪽으로 분류해도 어울릴 수 있는 탑이다... 웅장한 카리스마와 호쾌한 느낌으로 용장사지 협곡과 먼 경주의 서편 산악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다부지고 깔끔하면서도 의젓한 느낌은 숨기지 않았다... 이만한 높이까지 올라와 충분히 당당할 수 있는 조망에 서있지만, 어설픈 거들먹거림도 없고, 주변 위세에 묻힘도 없다... 그 힘을 정연함으로 접근했다... 바로 아래쪽, 750년 전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과 석불좌상이 있어 조성시기에 이견이 없지 않지만, 층급받침과 기단부와 일층 몸돌의 비례, 기단부갑석의 괴임 등을 고려하면 800년대 전반이 맞지 않나 싶다... 특히 규모와 각층 몸돌의 비례가 상승감보다는 안정감쪽으로 치우친 점도 그렇고... 멋지고 좋은 탑이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보물 78호, 1025년, 고려... 가분수처럼 보이는 과중한 이수를 짊어진 가냘픈 석비... 그래서 상당수 탑비는 이수와 귀부만 남거나, 도괴의 충격속에서 상처받은 귀부만 남는 경우가 많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과 최적의 비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거돈사지의 탑비다... 여기에 하나 더 나가,  건조하거나 둔중하게 느껴지는 직육면체의 이수에 조응하듯, 귀부의 최대 약점인 귀부의 목이 몸과 일체화 되고, 비신받침도 형식적일 만큼 낮아져 지극히 단조로워진 양식 - 즉 구조적 안정을 위해 미감을 포기한 각종 요소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 자칫 이탑은 멋과 맛이 없는 기념비로만 남았을 수 있다... 앞뒤 발에 재미있는 장난을 치지도 않고, 귀갑과 꼬리의 문양과 생김새를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차분하고 정제되어 있어, 짧은 목임에도 뒤쪽보다 목쪽을 두툼하게 높여서,  뿔달린 용두가 아닌 귀에 칼퀴를 단 어인 같이 만들어서, 목도리처럼 두른 귀갑의 단부를 하나로 연결해서, 비석받침을 귀갑 한가운데가 아닌 조금 더 전면쪽으로 이동해서 이 탑비는 차분하지만, 탄탄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귀갑의 뒤쪽은 급격한 경사로 공글리고, 석비의 위치는 조금 더 앞으로 당기고, 그리고 비석받침은 낮게 만들어 귀갑과 일체화 시킨 그 요소들이 모여 긴장감 속에 매우 차분한, 절제된, 안정감을 준다... 그게 힘이다...

 

 

 

 

(15) 정연함에 담은 절제된 힘... ② 건축

아무래도 정연함과 절제된 힘을 생각하니 사찰의 조사전이나 향교나 서원의 대성전, 그리고 궁궐이나 관아 등의 출입문이 먼저 떠 오르는 걸까?... 그런 건축들이 골라졌다... 전면 4칸 - 짝수로 마감돼 현판 위치가 자연스럽지 못한 송광사 국사전..., 관덕정처럼 깊은 처마에 넓고 낮은 지붕을 가진 제주향교 대성전, 역시 전면 4칸, 측면 2칸의 익숙하지 않은 구조에 민도리 - 홑처마 지붕, 여기에 서쪽에만 둔 온돌방 등 검박함의 극치라 부를만한 도산서원 전교당 등은 각각의 목적에 충실하듯 차분함과 정연함 속에 꾹꾹 누른 절제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다... 그리고 골라본 건축물들은 공교롭게 전부 문(門)이다... 건축물의 외관을 대변하는... 건축의 목적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입출하는 이들의 마음과 몸매를 가다듬는... 사람도, 바람도, 안팍을 연결하는 담장 - 벽 - 경계에 유일하게 뚫린 공간... 그게 문이다... 자연스레 정제될 수밖에 없고, 강조될 수밖에 없고, 또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했을까... 지금 남은 대부분의 조선시대 문은 강릉 임영관 삼문 등과 다르게 절제된 맘가짐을 강조했을까? - 정연함을 생각하며 고르다보니 문들이 먼저 다가왔나 보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 56 1369년창건
1400년중건
조계산 송광면 고려
제주향교 대성전 보물1902 1394년 창건, 1827년 이건 조선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보물 210 1574 토계리 /이황 조선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보물 385 1484년 창건 1610년 경  
전주 경기전 내삼문,외삼문,삼문   1614 완산구 풍남동 조선
수원 화성 북수문(화홍문)   1795 정조 / 정약용 조선
창덕궁 진선문   1405년 창건, 1999년 복원  
경희궁 숭정문   1620년 창건, 1991년 복원  
경복궁 유화문   1867년 창건, 2001년 복원  

 

 

 

 

(15) 정연함에 담은 절제된 힘... ③ 공예, 회화

정연함이란 테마를 가지고 공예와 회화에서 생각나는 유산들을 골라봤다... 가장 많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도자기 종류겠지만, 금속공예도 이에 못지 않다... 다만 정연함이 정교함이나 차분함에 그치지 않고 내제된 힘, 절제된 힘을 응축시키려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 등잔형 토기는 정교한 배열에 기술이 포함될 거 같다... 동종, 범종은 아무래도 형이 우선하고, 도자기 역시... 도자기 중에는 필통 종류가 정연함에 가장 많이 떠오르는데, 그중 투각과 글씨, 동채가 섞인 필통을 골랐고, 괘불도에서는 등장인물이 가장 많이 - 정연하게 배치된 봉정사 괘불도를 선택했다... 
등잔형 토기   5세기 중앙박물관 삼국
양평 상원사 동종 국보 367
해제
백제말 통일신라초기(7세기) 제작설
고려 전반기(11~12세기) 제작설
일제강점기 제야의 종소리
백제의 유일한 종으로 추정
청자 상감 국화모란문 정병   12세기후반 중앙박물관 고려
고성 옥천사 청동북 보물 495 1252 지리산 안양사 고려
백자 청화 투각 시명용문 필통   18세기전반 개인 조선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 보물1642 18세기 천등산 봉정사 조선

 

 

등잔형 토기

토기, 도기 중 가장 정연한 품목은 등잔형 토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의외로 함안 말이산 도기 일괄에 포함된 1점을 빼면 보물로 지정된 토기가 없다... 너무 많아서일까??? 모르겠다... 내가 본 등잔형 토기가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분포된 곳은 창녕, 김해, 함안, 구미, 부산 등 옛 가야지역이고, 그중 가장 발전된 형태를 띤 곳은 경주다... 특히 경주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영락장식까지 달아 고급스럽게 품격도 높였다... 고구려와 백제지역 출토 토기는 왜 드물지??? 물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등잔이 널리 사용되고, 여기에 제례의식과 도교의 영향으로 최고의 기술과 격식이 보태진데다, 청동향로의 한계를 넘어선 토제등잔은 인류문명에 큰 기여를 했음이 분명하다. 여기에 무극, 일원, 음양/태극, 삼재, 사방/사상, 오행, 육합, 칠성/칠정, 팔정/팔괘, 구궁/구성, 십간... 토기의 등잔 갯수를 세다가, 주역에서 파생된 법수/상수철학은 등잔의 갯수에도 이런저런 영향을 미쳤겠구나 생각을 하다가... 일상-경제와 과학-기술이 종교-철학을 만나 문화-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생각하다가... 이런 정연함 속에 내제된 절제된 힘들이 있어 6~7세기 한반도가 그렇게 요동쳤을까도 생각해 보고...  

 

 

양평 상원사 동종

양평 상원사 동종, 일제강점기 시절, 제야의 종소리 주인공인 종이다... 해방후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일본산 짝퉁이란 지적을 받고 국보에서 해제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한반도 동종은 물론 일본종의 시원으로, 백제가 만든 종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조성시점은 대략 600년대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고... ① 용뉴가 쌍룡이고 용통이 없으며, 유두가 돌출되지 않았고, 일본종과 비슷한 윤곽선을 가졌다는 이유가 일본산 짝퉁이란 주장의 근거다... ② 비천상을 자세히보면 종의 주조가 밀랍법이 아닌 사형주조법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11~12세기 일본인 기술자가 고려에 들어와 만들었을 거라는 것이 고려시대 제작설이다... ③ 내 주장을 요약하면 ; 중국종의 답습으로 용뉴는 아직 쌍룡의 형태를 띠고 있고, 725년 상원사 동종이 만들어지기전, 용통은 개발되지 못했지만(아직 문무왕의 만파식적 전설이 만들어지기 전이니...), 상대와 하대가 분명히 존재하고(중국, 일본종과 차이, 상하대 모두 반원권 문양을 사용...), 유곽을 두르고 있으며(중국, 일본과 차이), 유두가 9개씩 36개이고(중국종은 없고, 일본종은 엄청 많고...), 유두가 돌출되지 않은 것은 성덕대왕신종과 비슷하고, 2개의 원형 연화문 당좌를 가지고 있고, 당좌의 높이도 대략 아래쪽에서 1/3 지점(중국종은 없거나 하단, 일본종은 1/2이거나 1/3 등 일정하지 않음...)이고, 윤곽선은 중국, 일본종에 비교하면 매우 단순하고, 거칠지만 비천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중국종과 일본종은 사형주조법이고, 일본종은 등장 자체가 백제멸망이후 이기 때문에, 주조법이 일본산을 의미할 수 없다, 또 중국종은 철제종이 많고, 양평 상원사종은 일본종에 비해 두께가 차이나게 얇다...)  등으로, 한마디로 짝퉁이 아니라 시원적 형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종의 구리와 주석과 납의 배합비율... 단적으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종과 완전히 다르고 신라시대 종(상원사종, 성덕대왕신종, 선림원종, 청주박물관종)과 거의 유사하다... 이점은 조작도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소리와 주물의 핵심적 기술이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어떤 이유든, 이 동종은 비운의 종도 아니고, 폄하될 종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던 아름다운 종소리를 가진 종이며, 초기 일본종(746년 간제온지-관세음사) 등과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특히 당대의 중국종, 신라종, 일본종을 같이 비교 검토해 보고, 위 요소들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7세기 중후반에 만든 백제종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 종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