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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 序 3. 건축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22) 친근하고 소박한 - 장난스런 익살의 시작

(22) 친근하고 소박한 - 장난스런 익살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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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건축공간과 공예

      3) 내가 좋아하는 미감들...

 

(22) 친근하고 소박한 - 장난스런 익살의 시작 - ① 불상

친근하고 소박한이란 테제에서 불교미술, 석조예술 등을 생각했지만 불상이란 범주를 벗어나진 않았다... 사실 불상의 얼굴과 느낌은 개인적 취향이고, 선택의 타이밍이고, 시대적 흐름을 벗어날 순 없다... 그리고 이 세가지가 동시에 하나의 미감을 지향하지도 불가능하고... 그래서 대략 불교가 유입되어 토착화되고 종교적 시스템과 시대적 흐름을 가졌던 6세기부터, 시대적 흐름이 주도하던 8~9세기를 뛰어넘어 개인적 취향이 득세한 10~11세기, 그리고 불교의 불상이 민속의 대상으로 습합 또는 변환되는 조선초를 대표하는 이들을 골라봤다... 기복의 대상으로 소지가 가능한 작은 불상으로는 여기서 소개하는 보원사지 금동불과 평양 원오리 토불이 먼저 떠오른다... 진지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소유할 수 있는 여력에서는 이미 선택받은 이들에 불과하겠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골랐다... 경주 불곡 마애불좌상은 선덕여왕설과 무관하게 편안한 아줌마 느낌이다... 고식의 상현좌에서 시대의 상하한을 규정할 수 있고, 경주 남산에서는 최초로, 그리고 월성 - 궁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조성된만큼 집권층의 욕구를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당대에 굳은 의지를 가지고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편안한 상이다... 공주 금동보살입상은 너무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추가한다... 측면과 후면에서 보면 분명 반듯한데도 구미선산의 보살입상처럼 무릎을 약간 꺾은 느낌이 드는데, 이게 조그만 강조됐어도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보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아무튼 미소가 너무나 편안해 추가했다... 충주 원평리 입상은 당산나무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느낌이다... 상호는 비교적 무심하고 미륵불이 또다시 유행하던 통일신라말 고려초 - 후삼국시대, 경기와 충청, 전북 등에서 유행했던 관모를 쓴 불상과 괘를 같이 한다...  두툼하지만 인간적 비례를 갖춰 비교적 정형화된 틀을 지키고 있지만, 마을어귀에 비교적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박함이 남아있다... 이천동 마애불과 파주 용미리는 절에서 완전히 벗어난 길목의 파수꾼 같은 느낌으로 서있는 불상들이다... 격식이나 시스템, 그리고 특정인의 의도와 소유에서 완전히 벗어나 일반 백성들의 일상생활, 생활현장속으로 하강한 친근한 불상들의 대명사일 거 같다...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어 조선시대에 가까워지면, 이제는 불상인지, 장승인지, 벅수인지... 한마디로 종교와 민속의 경계에 서 있는 불상이 아양동 보살상이다...  그런 기준으로 골랐다... 

 

서산 보원사지출토 금동불입상   6세기 중앙박물관 백제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보물 198 550년경 부처골 신라
선덕여왕설(630년대)
공주 의당 금동 보살입상 국보 247 7세기초 공주 송정리
공주박물관
백제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980년경 신니면 원평리 고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보물 115 1000년경 안동 태화산
산록 제비원
고려
안동 이천동 삼층석탑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보물 93 1080년경 광탄면 용암사
장지산
고려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   1400년이전 아롱개마을 고려
안성 아양동 석불입상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

 

 

 

 

 

 

(22) 친근하고 소박한 - 장난스런 익살의 시작 - ② 건축

사실 친근하고 소박함에 장난스런 익살, 혹은 익살스런 장난이 본격화되는 장르는 도자기다... 그렇지만 석조물에서도 건축물에서도 그런 흔적들은 남아있다... 그중 건축에서는 전체적인 볼륨과 구조보다는 디테일과 장식에 그런 흔적들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 - 건물은 내부에 사람들이 생활할 전용공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된 비례와 튼실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중 개심사 심검당은 건축의 디테일에서 소박하거나 친근하게 보이는 부재를 적극적으로 노출시켰다... 이런 걸 우리는 매우 적극적이며 긍정적으로 자연스러움, 한국적 소박함이라 부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게으름 혹은 대충대충이 된다(한때 일본인들은 그렇게 우리 미술을 폄하했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전분야, 전시대에 걸쳐 나타나게되면, 그것도 장르가 되고 특징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문화고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건축에서마저 그런 특질을 오래전부터 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골라본 것이 개심사 심검당을 포함한 네개 건축물이다... 개심사 심검당은  격식과 정교함이 공포구조와 살아있는 본건물에 후대에 덧댄 것으로 보이는 측면 출입구의 장혀 혹은 보와 하인방의 부정형 부재의 대비가 재밌어서... 실상사 보광전은 마곡사 대광보전처럼 사찰의 주불전임에도 불구하고 정제된 부재가 아닌 최소의 가공에 반듯반듯하지 못하게 마감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병산서원 만대루는 여느 사찰의 주출입 누각건축처럼, 주불전 등에서 사용하고 남은 부재를 짜집기한듯 삐뚤빼뚤한 부재들을 그대로 사용한 건축물로서 대표적이라 생각해서... 마지막 개심사 범종각은, 요즘 시골이나 아파트 등의 정자의 모본처럼 보여서 골랐다... 그래도 개심사 범종각은 사방 1칸, 네개의 뒤틀린 기둥을 사용했음에도 생각보다 깊고 넓게 처마를 뺐다는 점 - 결국 구조적 승리를 이뤘다는 점에서 특별히 골라봤다...   

 

서산 개심사 심검당   1484년재건 상왕산 조선
안동 도산서원 장판각   1574, 1969년 복원 조선
남원 실상사 보광전   1700년재건 입석리 지리산 조선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보물2104 1717 풍천면, 병산, 낙동강, 화산 조선
서산 개심사 범종각     가야산 상왕산  

 

 

 

안동 도산서원 장판각

 

 

남원 실상사 보광전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22) 친근하고 소박한 - 장난스런 익살의 시작 - ③ 도자기

친근하고 소박함이 주는 느낌은 아무래도 편안함일 거 같다... 자유로움과, 거침없음과, 막을 수없음과 분명한 차이를 가진 편안함은 약간의 경계만 넘어서면 장난이 되고, 익살이 되고, 해학이 된다... 이를 대표하는 장르는 도자기일테다... 이미 충분히 느끼겠지만, 도기와 청자와 분청사기와 백자는 일반 서민들이 맘놓고 골라서 쓸 수 있는 생필품이 아니다. 지배층, 귀족층, 왕실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 비교적 이른 시기에 도자기가 일상화된 중국이나 한반도지만, 당대에는 이들보다 한급 낮은 물품들 - 예를 들면 지배층이 도기를 썼다면, 피지배층은 토기를, 지배층이 청자를 썼다면 피지배층은 도기를, 지배층이 백자를 썼다면 피지배층은 사기나 도기를 사용했던 것 처럼 -을 사용한 것으로 차별은 엄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도자기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최종 사용자의 의도? 중간 공급자의 의도?? 아니면 제작자의 의도??? 그 절묘한 줄타기가 이들 도자기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도자기에 문양이 본격적으로 입히기 시작한 상감청자에서부터 백자까지는 아무래도 문양 - 그림이 미감을 규정하게 되고, 그 이전 시대에는 형상과 장식이 그런 주제를 부각시켰다... 이런 점을 전제로 토기와 상형청자를 골랐고, 이후에는 문양을 중심으로 골랐다... 함안 말이산 상형도기에서는 사슴모양 각배가 눈에 띠고, 토우장식은 장경호가 단연 돋보인다... 이들은 모두 부장품이다... 사후세계와 연결된, 그래서 특별히 만들 것들겠지... 그래서 여기에는 생활풍습과 사후관, 세계관, 신화들이 또한 섞일 수밖에 없을 거 같다... 해남 만의총 서수형 토기는 그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골랐다... 아무래도 귀족층의 전유물인 청자 - 화려하거나 진지할 수밖에 청자는 형상에서 재미있는 요소가 들어가거나 그림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가장 적극적으로 또한 가장 완성된 양식으로 고착된 때는 분청사기의 반란이 아닐까 싶다... 삼국시대부터 1000년의 불교와 400년의 귀족 및 중국의 지배에 치를 떤 정서가 만들어낸 것이 분청사기... 게다가 왜구들에 의해 해안지방 가마에서 쫓겨나고, 질좋은 대토가 소진된 상황에서 도자기 공급의 관조직마저 붕괴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분청사기는 그런 반발심리와 자유분방함이 꽃피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 중 하나로 어문 편병을 골랐다... 조선초기 왕실의 순백자와 청화백자에 대항하듯 만들어진 게 철화백자고, 조선후기에는 이자리에 동화, 동채가 끼어든다... 철화백자 국화문 작은 항아리는 그 지점의 도자기고... 그리고 두점의 운룡문 백자항아리는 형태가 매우 완벽한데다 색감도 최상급임에도, 그려지 용들이 너무 익살스러워 선택됐다... 송하호작문과 기린문 청화백자 항아리는 민속적으로 유쾌한 주제여서 골랐고, 인물문 청화백자병은 그네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정겨워서 골랐다... 소박하다고 흐트러진 것은 아니며, 친근하다고 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닐게다... 장난스런다고 대충대충도 아니고, 익살스러움이 경박함과 동치되는 것도 아닐 거고... 그런 속에 숨은 익살과 그 해학이 주는 편안함을 기준으로 골랐다... 
함안 말이산 45호분 출토
상형도기 일괄(6점)
보물2180 5세기전반 함안박물관 가야
가형/주형/등잔형토기,녹형각배,금동관
토우장식 그릇받침   5세기 호림박물관 삼국
토우장식 장경호 (2점) 국보 195 5세기 경주/중앙박물관 신라
경주 미추왕릉 30, 노동동 11호분
서수형 토기   5~6세기 해남 만의총
나주박물관
삼국
청자 압형 주전자   13세기 중앙박물관 고려
청자 상감 동자 국화문 탁잔   13세기 호림박물관 고려
분청사기 음각 어문 편병 국보 178 15세기 중앙박물관 조선
백자 음각 초화문 병   16세기 개인 조선
백자 철화 국화문 호   17세기 호림박물관 조선
백자 철화 운룡문 항아리   17세기 중앙박물관 조선
백자 청화 운룡문 항아리   17세기 말 중앙박물관 조선
백자 청화 송하호작문 항아리   18세기 말 경주박물관 조선
백자 청화 기린문 항아리   19세기전반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조선
백자 청화 인물문 병   19세기 개인 조선

 

 

함안 말이산 상형도기

 

 

토우장식 장경호

 

 

 

 

 

(22) 친근하고 소박한 - 장난스런 익살의 시작 - ④ 민속

도자기에서 시작한 익살은 일반 민중들의 삶에서는 민속으로 남았을 터... 아무래도 그중 공동체와 공유되고 상징으로 고착된 것은 장승, 벅수, 당산 등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여기에 솟대까지 묶는다면 아무래도 이들은 전라도, 경기도가 주류를 이룬다 - 맞다면 재밌는 현상이다... 경기전 하마비는 민속이 가장 보수적이고 최고 권위를 다투는 조선왕실 - 태조의 제실에까지 습합된 결과물이기에 특별히 골랐고, 김득신의 풍속도는 정선과 함께 삼재로 불렸으면서도 기존의 산수화, 사군자, 인문화에 치우치던 조선 미술계에 김홍도와 함께 민간의 풍속을, 민초들의 삶을 밀도있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함께 골랐다... 
전주 경기전 하마비   1614 완산구 풍남동 조선
부안 동문안 당산 민속문화재19 1689 돌솟대, 돌장승 조선
나주 불회사 석장승 민속문화재11 1719 다도면 덕룡산 조선
하원당장군, (상원)주장군
남원 실상사 석장승 민속문화재15 1725 지리산 조선
옹호금사축귀장군, 상원주장군, 대장군
김득신필 풍속도 화첩 보물 1987 1800년경 간송미술관 조선
통영 문화동 벅수 민속문화재 7 1906 토지대장군  
함양 벽송사 목장승 1900년경, 마천면 지리산 칠선계곡
금호장군, 호법대신
근대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함양 벽송사 목장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