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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Ⅲ. 부록 ▣ 배례석... 12. 인도 사원의 탄생 1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몇가지 메모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12. 인도 사원의 탄생 1

 

 

인도 사원의 탄생 - 주거 공간 → 죽음의 공간 → 신의 공간 → 종교의 공간 

 

   ○ 이를 위해 인류문명의 공통 상징이며, 불교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탑(塔)/스투파의 구조와 양식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인도의 스투파 중 초기형태를 유지하면서 시간대별 변화가 누적된 과정이 추적된 유일한 형태인 산치대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치대탑에 대한 조금더 넓은 이해를 위해 스투파가 어떻게 사원에 안착했는지, 또 인도의 사원들은 어떻게 변화했는지부터 출발한다.

 

<190, 종교의 공간 - 산치사원 복원도>

<산치대탑 및 사원 복원도... 산치대탑이 만들어지고 - 승원이 추가되면서 3~400년이 흘러 산치대탑의 관문인 토라나와 난간까지 만들어진다. 이때의 사원은 죽음의 공간일까, 종교의 공간일까?>

 

 

 

   - 스투파는 언제부터 사원에 있게 된 것일까? 그리고 절의 기원은 무엇일까? 명칭의 유래는? 절 ←사찰(寺刹) ←사원(寺院) ←가람 ←승가람마(僧伽藍摩) ←승원(僧園) ←정사(精舍)... 이렇게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불교에 대한 믿음과 무관하게 역사문화유산이면서 관광지와 휴식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현대의 절은, 관계자와 불교를 믿는 신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성과 속을 구별하여 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곳이며,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191-1, 신의 공간/종교의 공간 - 경주 불국사 안내도>

<경주 불국사 안내도... 현대 우리나라의 절들은 신의 공간일까, 종교의 공간일까? >

 

 

 

   역으로 아직 대승불교가 정립되지 않고, 불교의 우주관/세계관이 경전으로 정립되기 이전, 부파/종파/교단이 시스템화(율종) 되기 전, 출가/재가/수행자의 구분이 모호한 인도라는 조건을 붙이면 절의 원시적 형태는 수행자들이 모인 공간 정도의 의미 – 정사(精舍, 머물 수 있는 집)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191-2, 신의 공간/종교의 공간 - 힌두교 사원들 : ⓐ 인도 남부 마두라이 메니쉬크 사원, ⓑ 인도네시아 자바섬 피람바난 사원, ⓒ 인도 뉴델리 악사르담 사원>

<힌두교 사원들을 생각하면, 신들의 공간이면서 종교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죽음의 공간은 사라졌다...>

 

<191-3, 신의 공간과 종교의 공간 - ⓐ 앙코르와트 사원, ⓑ양산 통도사>

<앙코르와트와 통도사를 비교해보면... 불교가 무신론이기는 하지만 석가모니를 숭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절은 신의 공간이라기보다 종교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다만, 통도사는 금강계단과 부도전이 사찰의 전후면 혹은 좌우에 있어 죽음의 공간도 포괄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불교는 절에서의 신앙생활과 일상에서의 신앙생활이 분리된 면이 없지 않기에, 나는 우리나라의 절은 종교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즉 인도의 정사가 사원의 원형이고, 이 말은 불교의 정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인도에서는 종교관련 건축공간이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역으로 인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현재 80% 이상이 믿는 힌두교(당시 브라만교)나, 불교와 동시대부터 시작해 보다 긴 시간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자이나교의 사원(현재는 불교보다 더 크게 몰락했지만) 등은 불교사원을 모본으로 변화/발전할 수 있었고, 6~8세기 인도사원 건축의 전성기를 열며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기 때문에 불교에 큰 빚을 진 것이라 생각된다.

 

<192-101, 자이나교 석굴 : 엘로라32굴 / 석주 / 마하비라상 / 약시상>

<불교석굴 이후 조성되기 시작한 힌두교 석굴과 자이나교 석굴... 공간의 배치와 기물, 그리고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상과 약시상은 불교의 석가모니상이나 보살상과 양식적으로 차이가 없다...>

 

 

 

   - 이뿐만 아니라 종교의 교리적 완성과 포교의 체계화를 포함해 종교건축의 완성까지 불교가 인도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사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교리적 완성과 포교의 체계화는 세계 4대 종교(①기독교, ②이슬람교, ③힌두교, ④불교)의 성서와 성경에 대한 생각으로 대신하고(부록),

 

   세계 4대 종교의 건축을 생각하면, 불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① 직사각형 회랑에 둘러싸인 안마당과 설교가 가능한 넓은 예배실을 갖춘 이슬람교 사원 - 예배당인 모스크는 불교와 힌두교 사원이 전형화된 이후이니 논외로 치고,

 

<192-102, ⓐ 이슬람사원 : 비잔틴 건축 / 아야 소피아, ⓑ 메카 / 카바사원, ⓒ 무굴건축 / 파키스탄 바드샤히 모스크, ⓓ 페르시아 건축 / 이란 이스파한 샤 모스크>

<신상이 없는 이슬람교 사원, 사원이 없음에도 지켜야하는 5번의 예배... 신전이지만 신전이 아니고, 사원이지만 사원이 아니고... 무엇보다 이슬람교의 종교건축은 죽음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배제됐다고 생각된다...>

 

 

 

   ② 인더스문명(BC 3300~BC 1900년)과 가장 오래된 종교인 브라만교(아리안의 이동과 베다시대부터 고려하면 BC 1500년경)는 제사의 격식과 행위만 있었을 뿐, 신전건축이 없었다.

 

<192-103, 인더스강 모헨조다로 유적 ; 인류문명사에서 최초의 도시유적이며, 상하수도 관개시설과 공공건축이 있다. 스투파는 아소카왕대 조성된 것이다>

<모헨조다로 유적...>

 

 

 

   - 그리고 ③ 유대교부터(모세의 출애굽 시기를 람세스 2(BC1223년 이전)를 기준으로 보는 시각과 성서의 족보와 십계명을 받은 BC1406년 또는 BC1446년으로 보는 시각으로 크게 나뉜다) 예수의 부활, 그리고 로마로부터 공인받은 300년대 초반까지 기독교 성당/교회는 없었다.

 

   출발은 로마시대 지하묘소인 카타콤베, 2세기 화장에서 토장으로 매장방식이 바뀌고, 박해시대와 연동되면서 카타콤베는 피난소이자 예배당으로 사용되었고(2~7세기) 이것이 기독교 건축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또 250년 전후 교회건축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건축물이 시리아의 두라-에우로푸스 가정교회로, 안마당과 예배실, 세례실, 학업실, 부엌이 있었는데 한마디로 주거건축의 개량이라 보는 게 맞다.

 

<192-104, 기독교 교회건축1,  ⓐ카타콤베-로마/파리, ⓑ시리아 두라-에우로푸스 가정교회>

<기독교 종교건축은 죽음의 공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오랜 박해시대의 역사 때문인지 지금도 신도들은 서로 가정방문을 하면서 예배를 본다... 2000년의 역사다...>

 

 

 

   -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급작스럽게 324년 바실리카(장방형 회당)양식 교회를 처음 만들었으니, 기독교의 성당/교회는 주거건축과 묘지건축에 왕족의 공회당이 복합된 성격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192-105, 기독교 교회건축2, ⓐ 바실리카식, ⓑ 비잔틴식 그리스십자식 교회, ⓒ 아야 소피아 / 537년>

<유대교의 우상숭배 금지는 예수의 부활 이후에도 수백년을 이어진다... 그래서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 신전이 지어진 것이지 신상이 있어 신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예수의 부활 이후 공인되기까지 300년이 넘는 박해에서 벗어난 첫 교회는, 자유롭게 예배를 볼 수 있는, 신도들끼리 외부의 눈치를 볼 필요없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넓고 큰 예배공간을 필요로 했을지 모르겠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과 로마황제의 궁궐을 차용한 건축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민회를 열수 있는 공간이던 공회당 구조/바실리카 구조의 건축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고 생각된다... 이 완결판이 소피아 대성당이 아닐까 생각된다...>

 

 

   - 다시 6세기까지 전파기에 이어 8세기까지 침체기에 수도원(수도원과 고대불교사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기숙사와 고시원, 자급자족시설과 탁발시설, 학습과 수행, 단절과 안거, 예배당과 탑원, 계시와 계약을 전제한 기독교와 스스로의 깨달음을 전제한 불교의 차이만큼 큰 차이가 있었을 거 같다)이 탄생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종교건축은 예배당과 수행처로 이원화되어 발전하며,

 

   바실리카 양식에 이어 이집트-그리스-로마의 신전건축(열주구조)에 인도의 차이티야/예배당 양식(아치형 볼트구조)을 융합한 로마네스크 양식(십자군 전쟁 이후, 비잔틴양식과 이슬람건축 수렴)에서부터 정형화를 이룬다고(이후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로코코 과도기(신고전/낭만/절충주의) 근대) 생각된다.

 

<192-106, 기독교 교회건축3, 로마네스크 양식 / 피사 대성당 / 1173년>

<기독교의 침체와 암흑기라 불리는 1000년대 이전을 건너 뛰어 등장한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한마디로 그리스로마 양식을 최대한 살린 건축... 그리고 기독교건축이 선택한 것은, 하느님께 봉헌하는만큼 하늘에서 십자가가 보이는 평면으로 성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십자가를 몸에 지니기 시작한지 6~700여년이 지나 십자가 형상의 성당이 전형화된다...>

 

<192-107, 기독교 교회건축4, 고딕양식 - ⓐ파리 노트르담 / 1345년, ⓑ밀라노 / 1386년, ⓒ퀼른 / 1248~1880년>

<고딕양식을 대표하는 성당들이다... 각각 밀라노, 파리, 퀼른을 대표하는... 밀라노와 노트르담 성당의 정면은 십자가 형상을 생각하면 맨 밑부분이다. 해당 건축물의 가장 짧은 구간... 동양 건축물의 정면이 가로형이라면, 서양의 십자가형 성당은 세로형 건축물이다...>

 

<192-108, 기독교 교회건축5, 르네상스 양식 -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 1506~1626년>

<기독교 교회건축은 양식과 무관하게 십자가형이다... 즉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완성되는 건축물... 그래서 신에게 봉헌된 것... 하늘을 향한 경외감을 담은 건축물이다... 그래서 신의 공간이라기보다 종교의 공간이라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192-109, 기독교 교회건축6, 바로크 양식(1623~1667년)과 로코코 양식(1730~1750년, 프랑스식) - ⓐ이탈리아 제수성당 / 1623년, ⓒ이탈리아 카타니아 성당, ⓔⓕ포츠담 프로이센 상수시궁전 / 1747년>

<르네상스 이후 서양건축은 더이상 종교건축이 주도하지 않는다... 주거 공간에서 시작해 죽음의 공간 &rarr; 신의 공간을 거쳐 권력의 공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종교건축은 권력의 한 부분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다만 르네상스건축을 기준으로 크고 / 작고, 화려 / 담백의 미감들이 섞이면서 과도기 건축을 만든다. 그리고 이 틀은 모더니즘까지 이어지고...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은 그런 과도기의 한 장르들이다...>

 

<192-110, 기독교 교회건축7, 근대건축 - ⓐ 드레스덴 성모교회 / 18c / 2005년 복원 / 개신교 건축, ⓑ 바로셀로나 사그리다 파밀리아성당 / 1882년부터 / 네오 고딕식, ⓒ 몽마르트 사크레쾨르 성당 / 1910년 / 비잔틴 로마네스크양식>

 

 

 

   아무튼 4세기 시점이면, 불교의 종교건축은 이미 완성태를 이룬 상태이기 때문에 인류사의 종교건축에서 불교의 역할은 당대까지의 종결점이면서, 고대를 넘어 중근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참고로 이집트와 그리스로마의 신전건축에 대해서도 잠깐 메모한다면, 이 건축들은 한마디로 종교건축이라기보다 제사용 건축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14~13세기 기원전, 아몬),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기원전 479년, 도리스식, 아테네), 로마의 판테온(118~128년, 모든 신), 그리고 근대 신고전주의 양식의 링컨기념관(1922년)을 생각할 수 있다.

 

<192-111, 고대 신전건축 - ⓐ 이집트 룩소르 신전, ⓑ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 로마 판테온>

<고대 신전들은 종교의 공간이라기보다 신의 공간이면서 제사 공간이다... 그리고 장엄의 요소로 열주와 감실을 남겼고, 이 두 요소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 스케일의 모든 건축에 적용되고 있다...>

 

 

 

   - 링컨 기념관에서 연상되듯 이들 건축은 열주와 내부공간, 그리고 신상이 있다. 공간구획에 신도들의 예배와 그들을 위한 설교/설법, 그리고 교단의 행정업무를 위해 구획된 공간은 물론, 사도들이 장기간 기거하며 수행할 공간이 없다. 이런 이유로 종교건축이 아닌 제사공간으로 본다.

 

   이집트 신전은 죽음의 공간이 승화되면서 왕/인간의 신격화가 병행되며, 그리스 신전은 신탁의 개념이 곁들여지면서 특정 신 주위로 다른 신전들이 추가되기도 한다. 로마의 판테온은 이의 결정체로 모든 신들을 모은 공간이지만 후대 인간들의 묘가 추가 된다. 결국 주거의 공간에서 차별화된 신의 공간을 만들어 냈지만, 그 축은 죽음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종교건축으로 한단계 더 승화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192-112, 신전건축 - ⓐ 링컨기념관 / 1922년, ⓓ 판테온 / 118~128년>

<판테온은 18세기 그림이지만, 감실과 신상들, 그리고 하늘이 보이는 구멍이 잘 보여 택했다...>

 

 

 

   - 이렇듯 인도의 사원이 어떻게 발전/변화하는가를 추적하는 것은 다른 종교와의 비교뿐만 아니라, 종교건축의 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야기를 다시 돌려, 정사가 있기 전까지 인도에서는 수행자=스님들이 같이 모여 있을 공간(이하 “승원 → 사원”, “승려/스님/중/불자 → 수행자”라 통칭한다) 자체가 없었고, 이렇게 보면 인도의 불교 건축은 외부(다른 문명 또는 다른 종교)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건축사에서 주거 공간 → 죽음의 공간 → 신/종교의 공간까지 (자생적으로) 변화/발전/승화돼 가는 궤도를 추적할 수 있는 매우 유력한 기준이 된다.

 

<192, 산치1탑에서 보는 마우리아제국 시대 인도의 주거, ⓐ 농촌과  ⓑ 도시 주거>

<산치 1탑, 토라나의 부조 중 ⓐ위쪽은 농촌의 ⓑ아래쪽은 도시의 주거와 건축들을 표현하고 있다...>

 

<193, 주거공간 /죽음의 공간 /신의 공간 - 산치1탑 기원정사 / 사원과 보리수, 바자석굴 / 나식석굴 18굴, 첸나이 마하발리푸람 사원(7세기/5개 사원)의 드라우파디 라타(두르가 사당)와 비라 라타(비슈누 사당)>

<마찬가지로 산치1탑 토라나가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인도 주거건축의 특징은 후대 불교사원 뿐만 아니라, 석굴을 비롯해 힌두교와 자이나교 사원에서도 동일하게 유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