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4. 베다시대와 카스트제도
인도 사원과 불전의 탄생 2 – 베다시대와 카스트제도
○ 그러면 왜 베다시대가 시작(기원전 1500년경)된 이후 1000년이 지나도록 브라만교(후 힌두교)의 사원은 없었을까? 한마디로 “계속 이동/정복전쟁 중인 유목민의 문화적 특성과 신전이 없는 토착민들의 전통”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 유목민이던 아리아인(‘고귀한’, ‘훌륭한’이란 뜻으로 인도유럽계통의 인도이란인, 아리아인의 정통성을 주장한 이가 둘이 있다, 히틀러와 이란-아리아가가 어원-이다)들이 한쪽은 이란으로(기원전 2000년경), 또 한쪽은 인도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1500년경) 인더스문명을 이루고 살던 토착원주민을 지배하기 시작한 때를 <(전기) 베다시대>라 한다.
<194-2, 베다시대 전기 후기>
<194-1, 청동기 암나야문명의 진출과 유목민의 이동...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암나야문명은 유럽의 뿌리 같은 곳이다. 4대문명 수준의 유적/흔적이 있었다면 유럽인들에게 인류사는 5대문명으로 개조됐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글의 관심사인 인도뿐만 아니라, 제련된 청동기문화로 인도문명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그리고 그리스-에게해 해양문명의 청동기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이 종족이 인도-유럽어족의 모태다. 즉 이 지역에서 이동한 부족들이 유럽 대부분의 지배종족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동양쪽 유목민들에 의해 서양이 열위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이들에 의해 돌궐/선비/유연/몽골족 등의 후손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유럽식인 훈족/튀르키족 등으로 고유 이름을 붙였다는 말도 있다...
또 이런 이유 때문인지 원래의 주둔지도 카스피해와 아랄해 중간이 아닌,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또는 흑해 위쪽 우크라이나를 지정하기도 한다. 조금 더 유럽에 가까운 쪽이다. 보편적으로는 코카서스산맥 북쪽, 볼가강 서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드네프르강 동쪽으로 추정한다...
이집트는 물론 메소포타미아, 인더스문명의 청동기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기본조건으로, 이 일대의 천연가스를 거론하는 이가 많다. 꺼지지 않는 보다 높은 화력이 보다 강한 청동기와 철기를 제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이란에서 태동한 조로아스터교/배화교(1800~640년 기원전)의 불꽃이 이 천연가스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성립되는 것이고.
아리아인은 이 암나야지역에서 기원전 2000년경에 코카서스산맥(조지아쪽)을 넘지 못하고, 카스피해와 아랄해를 돌아 스탄지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 방향에서 이란으로 들어와 정착한다. 인더스강 유역에는 기원전 1500년경 히말라야산맥과 힌두쿠시산맥 사이, 지금의 스탄지역(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을 관통해 진입했고...>
- 유목민인 아리아인들이 청동기로 무장하고 <바퀴(전차)>를 밀고 파죽지세로 정복해 가는 이야기, <전기 베다시대>, <리그베다>가 탄생한다. 인더스강 상류를 장악한 이들이 인더스강을 건너 지금의 델리를 지나 갠지스강 - 동(東)으로 이동한다(기원전 1200년경). 철기로 무장한 아리아인들이 또!!! <바퀴>를 밀고 내려와 토착원주민들을 노예와 노동자로 만들면서 쿠루왕국(지금의 델리 쯤) 등을 세우고 완전한 농경민으로 전환한다. <후기 베다시대>, <카스트 제도>가 등장하고 <우파니샤드>가 완성되며, <브라만교>가 정립된다.
<194, 인도의 상징이면서 각 종교의 상징으로 차크라/바퀴는 영원하다... 신석기문명을 무너뜨린, 저급한 청동기문명을 무너뜨린 아리아인들이 토착 인도인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물론 이 마차/전차/바퀴의 이미지는 인도뿐만 아니라 암나야문명이 휩쓴 이집트/메소포타미아에서도 발견되지만...). 아소카기둥에서부터 스투파의 토라나, 장식용, 스투파부조, 소형 기둥뿐만 아니라 불교를 너머 힌두교 신전에서도 바퀴의 상징성은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
- 유목민이 정착문화를 갖기 전까지 그들의 역사는 구전되었고, 필요에 따라 각색/수정되었으나 이를 집대성할 교단과 사도/신도의 구분도 없는 원시종교 상태였다. 청동기/철기/바퀴로 무장한 도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피지배 토착원주민을 무마할 통치이념과 지배의 정당성이었다.
지배자들의 승리를 찬양하고 그들의 통치시스템을 주입받으면서 지배와 피지배의 차별성을 격식으로 구분한 제식과 의례로 피지배자들을 통치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전기/후기 리그베다>시대의 <리그베다(인도신화의 근원, 기원전 1500년경)> / <야주르베다(성화/聖火 앞에서 행하는 의식, 기원전 1400~기원전 1000년경)>, <사마베다(예배의식, 기원전 1000년경)>, <아타르바베다(의례와 제식을 위한 술과 주문, 기원전 1000~기원전 800년경)>다. 그래서 수백년간 전통생활과 사회구조를 완성해 나간 브라만교는 특정 종교가 아닌, 인도의 전통 철학이 되고 삶을 지배하는 의식과 의례가 되었다.
소수의 유목민들이 다수의 토착농경민을 지배하기 위해 스스로 신의 혈통을 자처하며, 제례를 위한 주술을 만들고 관장하니 이들이 카스트제도의 최상위 계급 브라만이 되고, 그들은 <제사 만능주의자>로 불리게 된다.
<195, 베다 - ① 리그베다, ② 아주르베다, ③ 사마베다, ④ 아타르바베다>
- 시간이 흘러(기원전 950년경) 쿠루왕국이 왕위계승(쿠르쿠셰트라 전쟁)으로 분열하면서 몰락해 가는 과정을 줄거리 삼아 인도전통의 신화를 엮고, 브라만교(후대 힌두교)의 신자들이 추구할 4가지 가치(푸루샤르타)인 다르마(법, 도덕과 의무), 아르타(업/의미/목적/본질, 부와 권력), 카마(사랑), 모크샤(해탈과 자유)를 섞어 영웅 서사시로 그린 것이 ‘위대한 바라타 왕조=위대한 인도 역사’란 뜻의 <마하바라타>다.
<196, 아르주나가 크리슈나에게 가르침을 받는 부분을 <바가바드 기타>라고 하는데, 힌두교의 신약성경이라 불린다고...> ① 마하바라타, ②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비슈누의 8번째 다샤바타라(화신), ③ 아르주나/주인공/‘빛나는’, ‘은빛의’라는 뜻/크리슈나의 사촌동생이자 매부이면서 동료/판다바 5형제 중 셋째/지략형 영웅/활의 신/아버지가 인드라(삼주신을 제외한 신들의 왕/뇌신/전쟁의 신/제석천/제우스/토르/바알/아문/환인과 동격), ④ 쿠르쿠셰트라 전쟁 참전국...>
<196-1, 지도를 보면 마하바라타의 배경이 된 쿠르쿠셰트라 전쟁 참전국이 인도전역처럼 서술된다... 하지만 기원전 950년경 현재의 델리 인근으로 추정되는 쿠루왕국은 인더스강 상류에 근거를 둔 소국이었고, 당시 인도아대륙에서 국사시스템을 갖춘 곳은 인더스강과 갠지스강 유역의 십육대국 정도인만큼 과대포장된 것으로 보인다. 200년대초, 조조-유비-손권의 삼국시대 동원 규모가 후대에 각색되어 3~5배 이상 확대 되듯이... 중요한 것은 신화나 설화는 소중한 진실이 세월을 구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살아남는다는 점이고, 이를 확대할만한 가치와 서사, 교훈이 있기 때문이 아닐지...>
- 또다시 시간이 흘러(기원전 500년 이전) 갠지스강 하류쪽(동쪽)으로 진출한 아리아인들이 코살라왕국(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 부근)을 무대로 또 하나의 대서사시를 그려내니 그것이 <라마야나>다.
신들의 혈통인 브라만계급이 베다라는 제사를 위한 주술을 써갔다면,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는 브라만을 보좌하는 크샤트리아가 주인공으로 부각된 서사시다. 전사계급이면서 정치를 관장하는 지배계급이며 공무원으로서, 성직자 및 학자계급인 브라만을 보좌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 그래서 베다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이며 역동적인 서사시에서 주인공으로 부각 된다. 또 하나의 변하지 않는 지배계층이 되어 바이샤와 수드라에게서 존재의 정당성을 공고히 했다.
<197, 인도에서 찬드라는 달과 천상의 감로(술)인 소마를 관장하는 힌두교 신이며, 석가모니의 아버지로 설정될 정도로 성스러운 존재다... 동인도/벵골지방에는 찬드라 왕조가 300년대부터 700년간 존속하기도 했고, 마우리아왕조를 세운 찬드라굽다(BC 322년), 굽타왕조 전성기를 여는 찬드라굽타(319년)왕 등 경배할 이의 이름에 찬드라가 들어간 경우가 많다. 라마찬드라는 비슈누의 7번째 다샤바타라/아바타/화신이면서 코살라왕국의 왕이며, 코살라왕국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가 중심지다.>
- 불교를 비롯해 힌두교, 자이나교 사원에서 표현하고 수많은 조각과 신상 조성을 통해 끊임없이/열광적으로/인도인이라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 이야기들은, 지배자/관찰자에게는 신화/역사/경전이지만, 피지배층/대중들에게는 모험/사랑을 담은 영웅의 대서사시로 포장되었다. 겉으로는 피지배계급에게 선한 의지와 착한 도덕을 가진 영웅이야기를 하면서, 정착농경생활이 시작됐음에도 유목민의 속성상 지속될 수밖에 없는 정복전쟁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희석했던 것이다.
<198, 카스트 제도... 아리아인이 들어오고, 지배자가 되고, 리그베다가 퍼지고, 브라만교가 고착되고... 그 결과가 카스트 제도가 되고,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대중들에게 유행하면서 카스트제도는 더욱 공고해지고...>
- 게다가 아리아인은 영리했다. 자신들은 청동기와 철기로 무장한 무력과 말과 수레바퀴가 상징하는 기동력이 뛰어나지만, 기원전 5300년부터 수천년에 걸쳐 이뤄진 인더스문명(다인종 구성, 드라비다인이 주력으로 추정)이 가진 기술(벽돌제작 등)과 풍부한 문화(상하수시설과 목욕탕 등)가 없었다.
그래서 인더스문명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의 정령 및 동물(소, 코끼리, 말, 코뿔소, 악어 등)과 우주목/세계수를 대신한 보리수를 숭배하는 토템과 신화, 그리고 신들과 소통하기 위한 <요가>라는 자세와 물에 몸을 담그는 <세정의례>를 수용했다.
<199,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문명 봉헌용 상 비교 – ① 메소포타미아 발굴 봉헌용 상(3000~2500년 BC), ② 모헨조다로 발굴 봉헌용 상(BC 2500년경)/카라치 박물관... 인간형상의 봉헌용 상이 양 문명에서 발굴된다. 인더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늦지만, 한편 독립적이고 차별적 특성을 갖는다... 봉헌용상이 있었다는 것은 ; 제사의식 즉 사회의 관리시스템과 공유하는 가치가 있었다는 점, 놀이 즉 잉여시간과 잉여시간을 누릴 계급/계층이 있었다는 점, 미의식과 기호, 선호도 즉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200,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의 인장 비교 - ① 메소포타미아 인장 - 신전 앞 의례(BC3500년)와 에쉬타르에 알현(BC18세기), 에쉬타르신상에 기도(BC9세기), ② 메소포타미아 타이마 함라사원 주춧돌/bc5~4/이집트 아피스황소와 유사, ③ 인더스문명 인장/모헨조다로 발굴/BC5세기/파키스탄 카라치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인장이 원기둥형인데 반해, 인더스는 사각평면형이 많았던 거 같다. 메소포타미아는 신전과 신상에 대해 경배하는 인간들의 의식이 주제인데 반해, 인더스는 동물형이다. 그리고 현대/인도/힌두교에서 상징처럼 인식되는 소는 인더스문명 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이아와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문양을 남길 정도로 숭배되는 동물이었다... 또 인장이 있었다는 것은 ; 계약을 전제한 상업적 교류가 있었고, 관련된 신뢰를 추구하는 조직/가문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권위와 의무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 인간에게...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 사이에는 두 다리로만 이동하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산맥과 사막과 바다로 동떨어졌음에도 교류가 가능했을까? 아니면 인간사회의 발전에는 내재된/결정론적인 법칙이 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인간의 호기심과 본성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황소와 함께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동물상이 또 있다 – 사자상이다. 소/말/사자 등은 교류든 / 법칙이든 간에 인간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기호로 존재한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2세기쯤되면 인도에서는 사자의 형상을 버리지 않는 상상속 동물이 등장한다. 사자에 날개가 달리고, 뱀의 몸, 물고기 꼬리가 달리기도 한다. 여기에 몸의 뒷부분은 악어형상의 마카라가 붙여지기도 하고... 생식과 배설 등 본성과 물성을 넘나드는 관념과 개념과 상상과 호기심이 상식을 넘는 생명을 만들어낸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스토리텔링이 왕성할 때 해당 문명은 전성기 혹은 황금기를 맞이한다. 인도는 그만한 저력을 매우 오래전부터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 이런 형상들은 불교의 관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정착하기도 한다...>
<202, 불교와 전통신앙... 이런 전통적인 문화들이 불교에서도 드대로 드러난다. 불교가 습합을 했든, 전통문화와 신앙이 불교를 포용했든 불교는 그렇게 형상화되고 개념화 되었다. 석가모니를 숭배하는, 그리고 그와 그 신념을 수호하는 상징들은 전통민속과 신앙에 존재했던 이들이 맞게 된다... 인도 스투파에 부조된 상징들... ① 무불상시대 석가모니 대좌를 지키는 나가신과 보리수, ② 석가모니를 대시한 보리수, ③ 스투파 난간의 연꽃문양, ④ 스투파의 관문인 토라나 기둥을 떠받들고 있는 약샤, ⑤ 토라나의 약시. 약샤와 약시는 부부고, 인도의 신들은 대부분 부부다. 그리고 후대 불교 외에 자이나교와 힌두교사원의 미투라상의 모태가 스투파의 토라나다.>
- 또 전기베다시대에서는 토착원주민들이 믿는 모두를(인드라/뇌신/제석천, 아그니/불, 소마/찬드라/불사/술/감로수/달/식물 등 33신 또는 3,333신) 신으로 받아들이고, 후기베다시대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신격(神格)을 만들어 인간의 지배층(크샤트리아)을 영웅화한 것이다(물론 신의 혈통으로 신과 동격인 브라만은 제외, 힌두교를 통해 3주신(브라마/시바/비슈누)을 일체화/트리무티/Trimurti하고 신들의 서열을 정리한 푸라나/Purana시대는 베다시대→(BC6세기 전후)→도시화시대를 거친 굽타시대(3~5세기)로, 불교라는 필터링이 필요했다).
즉 유목문화 아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정신체계에, 농경문화 토착원주민들의 신화와 전통을 융합-버무려서 새롭게 연 것이 <베다>고, 그래서 <베다시대>라 부른다.
<203, 브라만교 주요신들, ① 바루나/창공과 물의 신, ② 인드라와 수리아(태양)/바자석굴 제12굴/기원전 2세기 불교석굴이지만 브라만교의 신이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③ 인드라/전쟁과 천둥번개의 신, ④ 아그니/불의 신>
<204, 힌두교 3주신 - ① 브라흐마, ② 시바/엘로라석굴 제16굴/765년경, ③ 비슈누/팔라왕조1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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