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5-1. 인도와 한반도 역사 비교 -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분열과 통합에 관한...
○ 지정학적 위치와 흐름을 생각한다면, 한반도 역시 인도의 역사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에서 홍산(紅山)문화와 유목문화의 교합, 그 전통을 이어받은 고조선은 한반도 역사의 기반이자 출발점이다. 끊임없는 신진(新進)문물의 자극이 황하문명과 유목민을 통해 유입됐고, 그 통로는 인도처럼 한반도의 북쪽/중국이었으며, 중국정세가 요동칠 때마다 한반도 왕조는 바뀐다(한 침략/고조선 멸망, 한 멸망/삼국시대, 수당 통일기/고구려백제 멸망, 당송/신라고려 교체기, 원명/고려조선 교체기, 명청 교체기/임진왜란, 청 통일기/병자호란 등 한반도의 호흡이 한템포씩 느리다). 그리고 조선의 실학과 천주교도 북학(北學)/서학(西學)이란 이름으로 청나라 즉 한반도의 북쪽을 통해 유입됐다.
<220, 고대 한반도 문화의 형성... 한반도의 외래문물은 항상 발해만 방향 요동반도와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유입됐다. 세 번의 예외가 있다면 ❶ 상해방향의 해상(쌀농사전래/백제의 불교 유입/천주교의 유입 등), ❷ 두만강쪽의 여진족, 그리고 ❸ 일본쪽에서의 진출이었다. 내부의 흐름도 항상 북에서 남쪽 방향이었지만, 보조적으로는 ❹ 서에서 동으로, ❺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시절 간도와 만주로의 유출이 있있다... 지정학적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북에서 남으로가 순리(順理)라면, 내부에서 외부로, 남에서 북으로와 동에서 서쪽으로의 흐름은 역리(逆理)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리에 해당하는 흐름에서 한반도는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된다... ① 한반도 문화, ② 한반도 신석기 문화, ③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④고구려/백제의 성장과 이동>
- 또 고조선→부여→고구려(주몽)→백제(온조/비류), 고조선→진한/마한/변한, 삼국의 등장은 고조선과 부여의 도래인이 토착농경민을 지배하면서부터 시작했다(인도처럼). 유목문화에서 시작해 농경문화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부족연합의 틀을 깨지 못한 고구려가 멸망(거란족 이탈)했고, 유목문화의 특성을 담은 상업/무역의 강자 백제 역시 절대왕정을 만들지 못해 몰락한다(비슷한 특징을 가진 곳이 인도의 뭄바이뿐만 아니라, 스파르타/아테네/카르타고 등 고대 도시국가와 베네치아/제노바/밀라노 등 중세 도시국가 등, 절대왕정을 이루지 못한 도시국가들은 150년 전성기를 넘기지 못하고 몰락했다.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절대왕정을 이룬 영국이,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 등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벌인 일은, 교역과 상업의 선점이나 시장확대와 노예공급이 가능한 끝없는 식민지 침탈뿐만 아니라 무력으로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는 시스템을 먼저 구축했기 때문이다).
다만 신라는 1차 고조선, 2차 북방/스키타이쪽 철기/유목문화를 유입한 세력이 비교적 빠른 시기에 지배층으로 자리잡고 계급사회와 정복국가의 특성을 유지하지만, 불교와 중국문화를 중심으로 토착농경정착문화에 가장 빠르게 동화된 특징을 가진다.
<221, 한반도 ① 청동기, ② 철기, ③ 불교, ④ 천주교 유입과 전래>
- 인도와 한반도의 역사는 굽타제국과 삼국시대가 끝날 때쯤, 그러니까 6~7세기에 갈라진다. 고구려/백제/신라란 국가체계를 통해 내부를 다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유입된 불교를 통해 중앙집권에 성공하여 정체성을 단일화한(문무왕/원효/의상의 역할이 컸다) 한반도와, 불교/힌두교/자이나교의 공존을 선택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에 실패한 인도대륙... 각기 원류라 할 수 있는 인더스문명과 홍산문화의 영역을 잃고, 후방지원 보루인 남부와 일본열도의 이른 독립으로 영향력이 축소/고립됐지만, 잠재력의 보존과 공감하는 역사, 그리고 외세나 새로운 문명과의 갈등/대립에서 사회구성체의 정체성을 집결시킨 중심세력이 있고 없음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222-1, 한반도와 외부문명의 충돌... 중근세까지 한반도의 격변은 유라시아스텝 지역 유목민의 서쪽진출시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유목문화가 역류하듯 동쪽으로 흐르던 기원전 2세기와 19세기에 더 큰 격변을 겪게 된다...
① 기원전 4~3세기 알렉산드로스제국과 스키타이 문화의 전파, ② 3~4세기 유라시아스텝 지역 유목민의 이동, ③ 19세기 대항해시대 후 서양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 침략>
<222-2, 인도나 한반도 모두 내부에서 발흥하여 통일제국을 만든 이들이 있었다. 인도의 마우리아와 굽타제국, 한반도의 신라다.
이들은 외부세력에 대항하면서 전체는 아니지만 해당 영역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면서, 이후 각 문화권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인도나 한반도나 이들이 세웠던 최초의 통일제국이란 정체성을 민족 혹은 공동체의 뿌리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했던 인도는 끊임없는 분열과 외부의 지배에 노출되었고, 한반도는 이후 1000년이 넘는 시간을 고려와 조선이란 통일된 국가의 모습을 유지하게 된다. 가장 큰 차이다... ① 마우리아 왕조, ② 굽타 왕조, ③ 통일신라>
<222-3, 그리고 또 하나, 인도나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선 세력이 외부로 진출하여 확장된 때가 한번씩 있었다. 인도는 마우리아제국시절, 한반도는 고구려와 백제 때다.
사진 ①은 위키백과 마우리아제국 편에 나오는, 아소카의 기둥과 바위에 새겨진 “담마칙령 제13호”를 기준으로 아소카왕이 “담마”로써 정복-영향력을 행사한 지역의 영역 표시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마우리아제국이 합쳐진 영역이다...
한반도에서 외부로 진출한 세력은 고구려 및 (고구려에서 분파한) 백제 뿐이다. 이들은 각각 한반도 역사에서 유목과 농경, 해양과 농경세력이 융합된 국가를 대변할 수 있다.
먼저 고구려, 고구려가 수당전쟁에서 패배한 근본 원인으로 거란족의 이탈이 지적되듯 고구려는 거란족과 연합세력이면서 지배세력이었다. 때문에 고구려는 홍산문화권/고조선을 기반으로 부여 – 고구려 - 발해 – 거란(요) - 여진(금) - 여진(청)으로 이어지는 만주지역 유목/반유목 계보의 뿌리에 해당한다. 그러면 그 영역의 최대치는 어디까지일까? 청을 별개로 치면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의 지배영역일 거 같다. 몽골지역까지 쫓겼던 거란족이 발해를 정복한 10세기말, 요나라는 스텝지역/유목문화로는 최초의 강대한 제국을 성립한다.
또 백제는 상업국가이면서 해양국가의 성격이 강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사서들과 일본서기 등을 중심으로 많은 파편들이 연구됨에도 백제의 강역은 고구려의 영역만큼 정설로 부각되지 못하지만, 고구려 전성기(5~6세기) 이전인 4~5세기까지 내려가면 활동영역은 동남아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물길이며, 잠시 장보고의 활동 이후 그 주도권은 일본으로 넘어가고, 이들의 침탈성은 명청기의 왜구와 20세기 일본 제국주의로 구체화 된다.
농경정착문화에 대비한 유목과 해양문명을 폭력성과 침략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고구려/백제의 몰락과 신라의 통일전쟁은 인물/정치/외교/군사적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유목과 해양문명의 특성이 배제된 결과로 귀결된 것이 더 크지 않을까 싶어 첨언한다... 문화인류학의 왜곡 혹은 문명결정론인가?>
- 전통적인 선진문물 유입방향이 아닌 남쪽(인도는 영국/한반도는 일본)에서의 침략에 대한 대응에서도 마찬가지. 오히려 늦게 발화하여 급속하게 무장하고, 오랜 내부 전쟁속에서 개선을 거듭한 남쪽 해양방향에서 유입된 신무기(총과 군함)의 무력과 신문물의 충격을 내적으로 소화하고 성장의 토대로 전환할 속도에서도 인도와 한반도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에게 또 다른 계기가 있고/없고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교류와 충돌의 장을 다양하게/중층적으로/목적의식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구심점을 가진 세력이 있는가? 또 사회공동체에 대한 자주성을 가진 주체의 의식이 열었는가/닫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223, 현대 세계의 흐름에는 기존 교통로에 항공과 통신을 추가해야 한다. 그것이 지식과 돈과 인력, 그리고 에너지의 이합집산을 주도한다... 세계의 육상, 해상, 항공 교통량과 통신량>
- 인도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 등을 생각하면서, 문명의 태동과 변화, 유목 및 해양과 정착문화의 충돌, 그리고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역사로서의 불교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인도의 긴 역사와 그 변화의 배경을 한반도에 접목해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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