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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Ⅲ. 부록 – 메모 ▣ 배례석 - 15. 인도의 역사와 지역별 분류...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몇가지 메모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5. 인도의 역사와 지역별 분류...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분열과 통합

     

 

 

 

 

인도 사원과 불전의 탄생 3 – 인더스 문명과 인도 역사

 

   ○ 그러면 드라비다계가 주축이라 추정되는 인더스문명의 토착원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했고, 변해갔을까? 면적만으로는 오늘날의 영국/프랑스/스페인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에 존재했던 인더스문명 중 상류 하라파와 중하류 모헨조다로에서 발굴된 기원전 2600~기원전 1900년대 유적(문자가 있어 선사(先史)시대가 아니고, 해석할 수 없어 역사(歷史)시대도 아닌, 그래서 원사(原史)시대라는 모호한 영역에 포함)은 그들이 가진 도시 하드웨어의 높은 수준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205, 인더스 문명- 모헨조다로, 하라파>

 

 

 

   -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된 도시는 벽돌로 지은 다실구조의 집마다 연결된 중앙집중화된 효율적인 상하수시설을 갖추었고, 방수처리가 된 대형 목욕탕과 대형 집회장 건축물, 그리고 화덕을 갖춘 제단이 있으며, 도시의 일정구역에는 토기/구슬/금속/염색 제작 및 가공을 위한 공방들도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에는 공공건축은 있지만 무덤/신전-사원/궁궐이 없었다는 점이다. 궁궐이 없다는 말은 분화된 지배계층과 중앙집권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만한 하드웨어 수준을 갖춘 문명에서, 공양의 전통과 봉헌물들까지 발굴된 곳임에도 무덤과 신전/사원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삶과 죽음, 신과 인간에 대한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한 문명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06, 인더스 문명 모헨조다로, 하라파문명 유적과 출토품>

 

 

 

   - 아무튼 인더스문명을 일군 이들은 인도의 역사와 문명을 주도하지 못했다. 농경과 무역으로 생활은 풍요로웠으나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만들지 못했고, 인더스강 중상류인 <사라스바티>강이 소멸하면서 삼림은 파괴되고 농경으로 토지가 건조화(타르사막)되면서 (선후에 관한 논쟁이 있다), 아리아인들의 무력침공 이전에 이미! 자연적 조건 때문에!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락한 지배층 위주 그룹은 남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남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인도역사와 문화의 판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207, 인더스문명과 타르사막... 히말라야산맥을 수원으로 한 인더스강은 서쪽 이란고원을 의지해 흐르며, 동쪽으로 타르사막이 형성되어 있다. 히말라야산맥 바로 아래쪽 인더스강 평원은 갠지스강 상류에서부터 평원으로 이어지고...

많은 학자들은 인더스강의 동쪽 지류 중 하나인 사라스바티강이 소멸했다고 여기며, 강이 사라지기 전까지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주에 인더스문명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현재 타르사막은 훨씬 넓어지게 되었고...

우기에 수량에 따라 강의 지도가 바뀌는 기후적 특성에서 거대한 지류가 사라지고 사막화 되었다는 것은 정착했던 토착농경민들의 생활기반이 사라졌음을 의미할 수 있다.>

 

<①  아리안계 ,  ②  드라비다계 분포>

<208, 아리아계와 드라비다계... 그렇게 강이 사라지고 사막화되면서 드라비다인들은 남쪽으로 동쪽으로 이주했고, 그 분포는 현재 인도의 언어분포와 유전자분포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

 

 

 

   - 실제 인도의 문명은 자체적인 성장한 인더스문명을 제외하면, 모두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화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됐고, 각각 고유한 문화전통을 가진 5개의 세력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인더스강 일대의 북인도1(파키스탄, 간다라, 델리),

②델리 동쪽편 갠지스강 중상류 북인도2(불교/네팔과 마투라),

③뭄바이 일대와 데칸고원 서북쪽의 서인도(아라비아해 무역),

④갠지스강과 메그나강이 만든 벵골만에서 고츠산맥에 이르는 동인도(켈커타, 방글라데시, 쌀농사),

⑤데칸고원 남부와 스리랑카를 포함한 남인도(드라비다계, 첸나이, 금강좌불교)로.

(다만 아대륙이라 불릴만한 규모의 인도에서 어느 한곳을 원류나 본류로 칭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인도 문화권의 분류>

<209-1, 인도문화권 분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도아대륙은 5개의 문화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키백과에도 그런 분류 지도가 있다... 북인도1, 북인도2, 서인도, 동인도, 남인도>

 

<209-2, 그리고 이 분류가 현재적/특징의 분류가 아닌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거 해당 문화권마다 별도의 지역별 왕조가 존재했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인도1 쿠샨왕조(30~375), 북인도2 숭가왕조(BC 185~ BC 73), 서인도 - 사타바하나 왕조(BC 230~ AD 225), 동인도 벵골술탄국(1352 ~ 1576), 남인도 비자야나가라 왕조(1336 ~ 1649년)>

 

 

 

   - 이렇게보면 인도는

   ① 인도의 주요한 세력과 역사는 항상 페르시아/중앙아시아/중국 등 문명과 접경지이며 교역로(타지키스탄/아프가니스탄을 지나 히말라야산맥/힌두쿠시산맥 사이)인 북부를 통해 유입/생성됐으나(아리아인/베다시대→알렉산드로스/헬레니즘→스키타이→페르시아→이슬람),

 

   ②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답게 인더스문명과 갠지스강 중류에서 자체 발원한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고,

 

<210, 북서방향(아프가니스탄 북동부쪽) 유입... 아리아인은 인도의 지배계급이 되었고, 헬레니즘은 인도를 단결시켰고, 스키타이와 페르시아 계통은 인도를 분열시켰고, 이슬람은 인도를 정복했다...

인더스문명과 아리아인의 진출(1,500 ~ 500년 기원전), 이슬람왕조의 도래(1,000 ~ 1,400), 무굴제국의 탄생과 확장>

 

<211, 인도 북부... 인더스문명과 불교의 발흥지...

인더스강과 갠지스강만큼 인도북부의 문화와 역사와 종교적 성향은 다르다.

또 고도의 문명시스템을 갖추었음에도 아직까지 문자를 해석하지 못한 인더스문명은, 인류의 4대문명 중 하나로 어떤 역할과 영향력을 남겼는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동양(東洋)과 서양(西洋) 외에 남양(南洋)을 따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인도가 가진 잠재력은 크다...

그리고 불교는 석가모니 태생지보다 간다라와 마투라, 그리고 안드라지역에서 훨씬 성행했고, 인도를 벗어난 동남아시아/상좌부불교와 동북아시아/대승불교, 티베트/금강좌불교에서 꽃을 피웠다...

인더스문명, 쿠샨왕조와 굽타왕조의 영역과 간다라, 마투라, 사르나트 위치, 불교의 전파 경로>

 

 

 

   ③ 아덴만과 호르무즈해역 등 아라비아해 중심의 대양무역이 가능한 뭄바이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현대까지 지속하지만 정치/군사 중심지로 부상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으며,

   ⑤ 인더스문명의 영향을 가장 크게 간직한 이들은 남인도이며, 이들은 문명의 충돌지점에서 멀리 떨어진만큼 주요한 전란에서 항상 비켜날 수 있는 지리적조건이 있었고,

 

   ④ 쌀농사 곡창지대이며 연안무역만 가능했던 벵골만 중심의 동인도는 자체적인 문화에 만족하며 확장성이 부족했다. 결국 전쟁과 상업/무역을 주도한 세력이, 풍부하고 안정된 농경정착문명이 가진 부와 노동력을, 종교와 지식을 앞세워 지배한 시대가 고대와 중세의 인간역사가 아닐까?

 

   ⑥ 아무튼 인도가 행정적/정치적 통일을 이룬 것은 영국의 식민지 이후 현대에 이르러 가능했다.

 

<212, 인도의 식민지화와 통일... 아시아의 대부분이 서양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가 될 때, 파키스탄에서부터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 연안까지 지배한 것은 영국이었다...

경제적 통합이 행정적을, 행정적 통합은 정치적을, 정치적 통합은 문화적 통합을 지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최초의 통일은 영국의 지배속에서 이루어진다...>

 

 

 

   - 역사적으로도

   ① 남인도는 상감시대(BC6~AD3세기), 촐라제국(9~13세기), 바자야나가라 제국(14~17세기),

 

   ④ 동인도는 마하메가바하나(BC1~AD4세기), 비슈누쿤디나/동강가/동찰루키아(5~12세기),

   ④-1 동인도 북동부의 벵골만은 카마루파 왕국(4~12세기) 등 남인도와 동인도는 독립된 소국의 형태를 유지했고, 특히 남인도는 무굴제국 시대에도 독립된 형태를 이루는 등 인도의 주요제국에 통합된 적이 없다.

 

   ③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서인도는 인도 아대륙의 중부로도 불릴 수 있는데 북인도와 남인도/동인도와의 점이지대/절충지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사타바하나(BC3~AD3세기), 바카타카(3~6세기), 찰루키아(6~8세기), 라슈트라쿠타(8~10세기), 바흐마니 술탄국(14~16세기)까지 세력을 유지하다가 비자푸르 술탄국(15~17세기)에 이르러 남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서인도/중인도 세력이 남인도까지 통합한 유일한 예다.

 

<213, //서인도의 여러 나라들...

이들 세력이 인도를 통일한 적은 없고, 특히 내가 분류한 기준으로 동인도와 남인도는 마우리아/굽타/델리술탄/무굴제국 당시에도 별도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인도는 통일된 적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시대순서로 정리하지 않았고, 위쪽이 서인도와 동인도, 아래쪽이 남인도다...

사타바하나(BC 3 ~ AD 3세기), 카마루파(4 ~ 12세기), 벵골술탄(14 ~ 16세기), 상감시대(BC 6 ~ AD 3세기), 촐라(9 ~ 13세기), 비자야나가르(14 ~ 17세기/힌두교 왕국)>

 

 

 

   - 그리고

   ② 북인도2 중 동북부에서는 십육대국 시대(BC7~AD4세기), 숭가제국(BC2~BC1세기), 팔라제국(8~12세기) 등이 있으나 연합체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① 이에 반해 외부로부터 유입된 문명(철학과 종교, 무기 등)으로 무장한 도래(渡來)인이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뤄 끝없는 확장을 갈구한 정복제국의 성격을 가져 인도 통일을 지향했던 대제국들은 모두 북인도 서쪽에서 발흥했는데,

 

   아리안이 이끈 리그베다시대(전후기 BC16~7세기), 마우리아 제국(BC4~BC2세기), 인도-그리스/인도-파르티아/인도-스키타이 왕국(BC2~AD4세기), 쿠샨제국(1~4세기), 굽타제국(3~6세기), 구르자라-프라티하라(7~11세기), 델리 술탄국(13~16세기), 무굴제국(16~19세기)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제국들은 모두 이곳에서 발흥했다

(인도 내부에서 발흥하여 대제국을 형성한 나라는 마우리아제국과 굽타제국뿐이고, 무굴제국만큼 인도대륙 대부분을 통일한 나라 역시 마우리아제국 뿐이다. 외세에 저항한 세력을 규합하여 인도대륙 최초의 통일제국을 형성한 마우리아제국의 위상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214-1,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인도의 통일제국 1...

정복제국이 발흥하고 부흥하는 시기, 이에 대항하는 이들도 분열되었던 국가들을 통일한 대제국을 만들게 된다...

인도의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는 십육대국 시대의 혼란기에 맞이한 알렉산드로스의 침입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알렉산드로스제국과 마우리아제국(BC 320 ~ BC 187)>

 

<215-1, 작용과 반작용 2...

알렉산드로스제국이 짧은 기간 존재한 이후 중동은 분열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마우리아제국 역시 수많은 왕조들이 명멸한다. 중동은 그리스-박트리아, 인도는 인도-그리스 왕국, 인도-스키타이, 인도-파르티아로 이름을 붙여야 할 정도로 복잡다단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이후 중동은 다시 사산페르시아제국으로 통일되고 인도 역시 이에 대응하는 쿠샨제국과 굽타제국이 들어섰다. 그렇지만 이들은 인도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아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쿠샨 및 굽타왕조>

 

<215-2. 마우리아제국의 멸망 뒤 인도는 숭가제국 등으로 분열되었고,

또 간다라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쿠샨왕조가 인도왕조 중 주요제국에 꼽지만, 쿠샨왕조의 영역은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교역로인 초원의 길과 사막의 길이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제국으로, 인도왕조 중 현재의 파키스탄 북쪽이 주요활동 지역이었다.

그리고 중부에는 안드라왕조가 들어선다.

그래서 인도의 불상은 간다라와 마투라양식 뿐만 아니라 안드라양식까지 3가지가 순차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숭가왕조, 사산페르시아, 쿠샨/안드라/촐라/체라/찬드라 왕조, 굽타제국>

 

 

 

   그러나 이 제국들이 당대 인도대륙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그들의 역사가 곧 인도 역사일만큼 굵고 중대한 역할을 했지만, 현대의 인도의 정체성이 곧바로 그들과 일관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말하기에는 괴리감이 크다.

 

<216-1, 작용 및 반작용과 통일 및 분열 3...

누군가의 말처럼 흩어지면 모이고, 하나가 되면 나뉘는 것이 세상의 이치듯이, 어느 문화권이든 통일 뒤에는 분열이, 분열 뒤에는 통일이 반복된다...

굽타제국 이후 인도는 약 600년간 소왕조시대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때 인도는 불교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 사원들은 화려한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등장한 이슬람세력이 서쪽으로 확장하여 스페인에 이르고, 11세기에 들어서면 다시 동쪽 인도로 진출하면서, 지금까지 인도역사에 없었던 이슬람왕조 시대가 도래한다.

그리고 13세기 등장한 몽골제국이 메소포타미아-중동지역을 장악할 때 이에 대항하는 인도는 델리술탄제국 시대를 연다... 이때도 아소카왕에게 가장 처절하고 치열했던 전쟁터였던 과거의 칼링가 지역/현 오리사 주는 통합되지 않았다(지금은 힌두교와 기독교 세력간 충돌이 심한 곳이다)...

소왕조 시대(6~12세기)와 칼리파 이슬람제국 인도 이슬람왕조의 도래와 몽골제국 최대판도, 델리술탄국(1206 ~ 1526)>

 

<216-2, 작용 및 반작용과 통일 및 분열 4...

몽골제국의 위세 속에서 델리술탄왕조가 다시 쇠퇴하면서 옛 불교중심지 위주의 북부2 지역으로 축소될 때 인도의 남쪽은 여전히 통합을 거부한채 독립된 비자야나가라왕국을 유지했다...

그리고 몽골제국의 분열과 몰락 속에서 칭기스칸의 후예를 자처하며 옛 쿠샨제국 중심지에서 발흥한 무굴제국은 1700년대 남인도 타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을 통일한 대제국을 연다.

그러나 실제 무굴제국의 아크바르/악바르는 몽골인의 후예가 아니라 터키/튀르크의 후예다...

비자야나가라왕국(1336~1649), 무굴제국(1526 ~ 1857)>

 

   - 당장 11세기부터 1858년까지 중근세 대부분 기간동안 인도대륙을 지배했던 이슬람교 신자는 15%에 불과하고,

 

   세계의 문명/지성/종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면서 인도대륙을 1000년 넘게 주도했던 불교(자이나교 포함) 신도는 1%를 넘지 않고,

 

   오히려 외부에서 유입되었지만 내부에 있던 인더스문명을 흡수하면서 정복자로 군림했다가, 오오오랜 세월(BC6~AD19세기) 보조적 역할에 머물던 힌두교는 현대 대부분(80%) 인도인들의 삶과 정신을 관장하고 있다.

 

   또 같은 인종으로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했음에도 종교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채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과 적대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고... 내 생각이지만, 현대의 인도는 균형과 조화가 깨졌다.

 

<217, 현대 인도의 지역별 및 인도문화권 국가들의 종교인구 분포...

인도의 역사와 현재의 갈등구조를 이해하는데, 지역별 종교인구 분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뿌리 혹은 근원과 역사와 변화에 대해 생각할 게 많은 지표가 아닐지...

①②③ 인도의 종교인구 분포/2011년 기준, 인도와 주변국 종교분포, 1-인도, 2-부탄, 3-네팔, 4-파키스탄, 5-스리랑카, 6-말디브, 7-방글라데시>

 

 

 

   지금까지 수많은 제국들의 명멸에도 불구하고 중심은 잃지 않고 느슨하지만 공존하려는 공감이 사라졌다. 문제는 조금 더 고도화될 수 있는 새로운 동력도 없다. 현재 인도의 한계가 아닐까?

 

<218, 인도의 현재 갈등지역과 과거 지역별 왕조의 영역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다. 지금까지 살펴왔던 인도의 간략한 역사에는 현대 인도의 갈등이 내재 혹은 재현/반복되는 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되어 모아봤다...

 

현대 파키스탄은 과거 쿠샨왕조와 비슷하다. 세계사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며, 불교문화에서 간다라불상이란 지대한 족적을 남긴 지역이지만, 지금의 힌두교/이슬람 종교갈등은 핵전쟁을 우려해야 할 단계다. 또 카슈미르지역은 분리독립 분쟁까지 있고...

 

공통의 정체성과 문화를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브라마푸트라강/패드마강/매그마강을 중심으로 한 벵골만의 삼각지 방글라데시는 과거에도 오랜세월 동안 독립된 영역이었다... 또 분리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앗삼지역의 분리독립 투쟁은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

 

④⑤ 인도의 통일에서 항상 비켜서 있던 남부 타밀지역과 현재 동인도지역은 종교적 분포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독립성이 강했던 지역이다. 현대 인도에서는 기독교인들의 분포가 가장 많고, 또 역으로 공산반군의 주 활동문대가 되기도 한다...

 

칼링가지역이 현 오리샤 주에 해당한다. 칼링가지역에서의 기원전 261년 마우리아와 칼링가 왕조의 전쟁은 아소카왕이 불교에 귀의를 결심한 계기가 되었던, 가장 치열하고 처절했던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힌두교/기독교의 갈등으로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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