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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 - 한국적인 건축 공간과 공예

Ⅲ. 부록 – 몇가지 메모 ▣ 배례석 - 18-4. 인도 불교석굴사원 3 요약B

 

 

한국적인 건축공간(建築空間)과 공예(工藝)

   Ⅲ. 부록  몇가지 메모

 

 작고 낮은 배례석을 위한 메모 - 18-4. 인도 불교석굴사원 3 요약B

 

 

 

 

- 비하라>

 

   ① 처음 주거의 공간도 임시적인 곳에서 장기적인 곳으로, 개별적인 곳에서 집단적인 곳으로, 그리고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비하라 구조다.

 

<251, 비하라 구조... 다시 올린다...>

 

 

 

   ② 비하라굴은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의 완락재, 이황이 묵었던 공간과 비슷한 한평 또는 가로세로 2m 내외의 독실들이 산재해 있다가, 점차 만타라 구조의 중정 또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정면 출입방향을 제외한 ⊓ 삼면에 독실들이 붙어 있는 구조다.

 

 

 

 

   ③ 차츰 출입방향에서 보이는 면에 스투파 부조 또는 불상들이 들어서고, 그 감실에 전실이 생기는 등 장엄하게 격식을 갖춰가며, 가운데 중정에는 열주가 추가되는 등 후대 불교사원에 불전이 도입될 때 기본 구조가 되었다.

 

<293, 비하라의 변화와 발전...

하나씩 단독으로 만들어지던 석굴이 모이고, 독방 앞에는 테라스 개념의 전실이 생기고, 기둥도 생기고...

몇 개의 독방들이 모이는 구조에서 내부 중정-만다파를 중심으로 규모가 커지고, 다시 내부에도 기둥이 생길 정도로 비하라의 규모도 커지고...

처음 전실의 열주는 점차 주초와 주두를 중심으로 장식적으로 변해가고, 나중에는 3층을 이룰 정도로 대규모화되고...

비하라 벽면에도 수투파와 불상 등의 부조가 생기다가, 점차 비하라 중심지점에 스투파 또는 불상이 안치되고, 나중에는 비하라 전체에 벽화가 그려지거나 장식적으로 장엄되기도 한다...>

 

 

 

 

- 차이티야>

 

   ① 아소카왕의 사리전파와 함께 비하라구조에 머물던 석굴에는 차이티야라는 예배당이 생기고, 여기에 스투파가 안치된다. 인도고유의 풍속인 탑돌이가 가능한 곳으로, 원형에서 전방후원의 말발굽형, 방형 등으로 모양을 달리하지만 말발굽형을 기본으로 한다.

 

<252, 차이타야...>

 

 

 

 

   ② 차이티야 내부에는 탑돌이를 위한 장치였는지 초기부터 열주와 함께 발전했고(차이티야의 폭을 넓히기 위한 구조적인 필요성이 함께 있었을 것으로 생각), 내부 천장은 아치형 볼트구조로 만들어졌다. 또 볼트구조를 보강하기 위한 목재가 덧대지는 등 목조건축과의 교류도 엿보이며, 이는 차이티야 출입구의 아치형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③ 차이티야가 깊고 높아지면서 채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창이 도입되며(이 때문에 석굴암에도 광창의 존재유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실은 2층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출입구 전면에는 차이티야의 직각방향으로 전랑이 일(一)자 또는 ⊓자 형태로 추가되며(전체적으로 T자형), 열주가 만들어진다.

 

<294, 차이티야의 변화...

초기 차이티야는 스투파 봉안 목적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이며,

차이티야의 깊이도 잛았으나, 차츰 격식을 갖춰가며 장엄이 늘어나고, 내부 고가 높아지면서 채광을 위해 2단의 광창을 두게 되었고,

조금 더 후에는 차이티야 앞쪽에 테라스형 전실이 들어서고 열주의 장엄이 추가되면서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된 걸로 보인다.

내부도 초기에는 단순한 아치구조에서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아치의 구조적 보강을 위해 경선방향으로 리브(Rib, 트러스/역 보우빔/서까래/늑골^^ 등 어느 명칭도 상관없지만, 리브 볼트가 적당할 듯...)가 덧대지다가 나중에는 일체화된 구조로 완성된다...>

 

 

 

 

- 스투파>

 

   ① 처음에는 비하라에 스투파 부조가 먼저 봉안되고, 아소카왕 사후 100여년이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스투파가 석굴사원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독실에 스투파를 봉안했다가 독립적 목적의 차이티야/예배당이 격식을 갖추면서 규모가 커진 것으로 생각된다. 예배굴인 차이티야에는 스투파가, 주거굴인 비하라에는 불상 봉안(후기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분화되는 거 같다.

 

<295, 석굴에는 많은 스투파 부조들이 남아있고, 대부분 거주굴인 비하라 또는 비하라와 차이티야 전실 등에 남아있다.

물론 양식적 변화를 겪으며, 현무암 등에 조각된 것이기에 석굴이 아닌 외부에서 사암에 조각된 스투파에 비해 투박하다...

카를라 석굴, 엘로라 제12, 바자석굴, 나식 제3, 칸헤리 석굴, 아잔타 제19, 나가왕의 보호를 받는 석가모니/3세기 말/안드라프라데시 나가르주나콘다 출토>

 

 

 

 

   ② 처음 돔에 드럼형 기단부란 원시적 구조의 소형 스투파에서 출발하여, 점차 드럼형 기단부에 난간모양 문양이 새겨지고 2단-3단까지 복합적 구조로 변한다.

 

 

 

 

   ③ 돔 상부는 하르미카가 생기고 그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밖으로 내밀어지는 층급받침(역 피라미드형)이 추가된다. 그 후 층급받침은 차이티야의 원형천장과 원형 기둥을 통해 일체화/연결되고, 후대에는 차트라라 부를 수 있는 산개가 만들어지면서 연결 또는 단절된다. 산개도 1단에서 3단까지 개수도 늘어나고 장식도 추가된다.

 

   전체적으로 차이티야가 아치형이고 스투파의 하르미카와 연결되는 것은, 인도의 전통적인 ’가득찬 항아리(purna-ghata)’의 만발한 꽃의 향기를 형상화한 것이거나, 스투파의 기운이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땅을 채우는 형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상당수 스투파 부조는 이런 형상을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296, 스투파에서 조금 더 살펴볼 예정이지만 소형 스투파의 양식도 많이 변해간다. 크게 드럼 / 안다-/ 난간형태의 하르미카와 산개로 3등분 한다면 전체적으로 모두 변한다...

칸헤리 석굴, 바자석굴, 렌야드리 석굴, 칸헤리 석굴, 바자석굴 봉헌용 스투파>

 

 

 

 

   ④ 그리고 그다음에 스투파 앞 또는 기단부-드럼에 불상이 입상형 또는 의자에 앉아 설법하는 형상으로 추가된다. 석굴사원 전기와 후기에는 2~4세기까지 2백년의 공백이 있고, 굽타시대부터 다시 석굴사원 조성이 활기를 띠는데, 이때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불상조성이 스투파에 적극적으로 결합한다고 생각된다.

 

 

 

 

   ⑤ 석굴사원에서의 스투파의 변화/발전은 이후 불교사원의 대형 스투파와 구조와 양식에서 차별성을 갖지만, 스투파 전체를 보면 변화와 발전의 계기이면서 실험장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297, 아무래도 석굴사원 스투파의 완성형은 차이티야에 봉안된 것일 게다. 스투파의 3부위가 모두 변하고, 석굴사원 후기에 들어서면 불상까지 부가되면서 더욱 화려하게 장엄된다...

건투팔리 석굴, 아잔타 제9, 카를라 석굴, 아잔타 제19, 엘로라 제10>

 

 

 

 

- 장식과 장엄>

 

   ① 초기에 장식은 스투파에 한정됐다.

 

 

 

   ② 다음 차이티야를 중심으로 장식이 추가된다. 처음에는 열주의 주두와 주초에, 그다음은 주두와 아치형 천장을 연결하는 엔타블러처(그리스로마 석건축의 페디먼트와 기둥의 연결부위 중 프리즈 구간) 형식을 갖추면서 더욱 화려해진다. 출입구도 돌출 아치형 포치가 생기고, 주변으로 생성된 전랑의 벽면 조각상으로 채워진다.

 

<298, 석굴사원 기둥들의 변화...

장식성의 가미가 시대의 흐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한데서 복잡하고 화려하게 변하는 흐름은 분명하다...

또 구조와 양식도 주초와 주두가 먼저 변하고, 차츰 기둥과 천장을 연결하는 부위에 다양한 요소들이 가미되며, 나중에는 채색 벽화가 부가되면서 장엄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칸헤리 석굴, 아잔타 제2, 나식 제6, 베드사 석굴, 나식 제10, 아잔타 제1>

 

<299, 석굴사원의 차이티야 기둥과 조식장엄의 변화...

기둥의 조식과 장엄화는 바하라와 차이티야의 전랑과 만다파 내부만 바꾼 것이 아니라, 차이티야에 가장 극적 효과를 부가하는 열주와 아치형 볼트천장과 기둥 사이의 아키트레이브(Architrave, 편의상 이렇게 부르련다)까지 더 많은 조각들을 새겨 넣게 된다...

다만, 후기 석굴의 부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인도에서는 스투파가 주()가 되고, 불상(佛相)은 보조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바자 석굴, 아잔타 제9, 나식 제18, 카를라 석굴, 아잔타 제2>

 

 

 

 

   ③ 그 에너지가 넘쳐 비하라의 중정, 기둥/벽면/천장/불전 출입구 등에 부조상과 프레스코화가 그려지면서 장식과 장엄은 절정에 이른다.

 

<300, 석굴사원 파사드/전랑의 조식과 장엄...

천장과 벽체는 불상의 탄생 이후 대승불교가 확산되면서 본격적으로 석굴사원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조각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나식 제23, 베드사 제11호굴, 바자 제12, 아우랑가바드 제7, 아잔타 제24, 엘로라 제10>

 

 

 

 

참고 1>

인도 불탑/송봉주 지음/담앤북스/2022년

인도미술/비드야 데헤자 지음/이숙희 옮김/한길아트/2001년

인도의 건축/윤장섭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004년 2쇄

인도-고대문명의 역사와 보물/마리아 안젤릴로 지음/이영민 옮김/생각의 나무/2007년

간다라 미술/이주형 지음/사계절/2003년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이야기/국립중앙박물관/2023년

하룻밤에 읽는 불교/소운 스님 지음/랜덤하우스 중앙/2004년

하룻밤에 읽는 중동사/미야자키 미사카츠 지음/이규원 옮김/랜덤하우스/2010년 7쇄

중국의 불교미술/구노미키 지음/최성은 옮김/시공사/2005년 3쇄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허균 지음/돌베개/2000년 3쇄

사찰의 상징세계 上, 下/자현 스님 지음/불광출판사/2012년 2쇄

고등학교 지리부도/교학사/2001년

고등학교 역사부도/금성출판사/2001년

 

참고 2>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다음, 구글, 핀터레스트 스크랩

불교신문/세계의 석굴이야기/문명대 문무왕/2023년

현대불교신문/탑의 진화/우인보/2014년

법보신문/남수연 기자의 인도 불교 성지순례/2013년

법보신문/건축학자 이희봉 교수의 인도 불교유적 답사기/2012년

NAVER 블로그 : 계림역사기행/송풍수월/잠보의 여행사진/눈초님/인도 불교유적 답사기(바닷바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