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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제 금동보살입상 – 미소를 머금은 불상들...
답사여행에서 담은 사진들을 다시 찾아봤다.
미소 띤 불상들... 얼굴들...
명성과 직관, 그리고 나의 눈높이와 심리적 환경,
또 주변관계와 시점이 강제하는 소소한 감상의 편린에,
어쩔 수 없이 작동하는 방어기제와 현실적 괴리감도,
결국 내가 열린 상태라면 투영되고 조율되고 기억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속에서 다시한번 미소를 찾아본다.
<3-0-1.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신라/670년경/보물 62호>
진짜, 찾아봐야 보이는 미소가 있다.
만들어 보는 미소도 있고...
그래서 잊지 못할 미소는 얼마나 될까?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 관성은 그런 것들을 다시 모으고 분해하기 시작한다.
같이 웃을 수 있는 미소를 찾기 위해...
<3-0-2, 내가 좋아하는 각도...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백제/550년경/중앙박물관>
해체된 작위?
실체와 기획, 만든 이와 보는 이, 당대와 현재의 많은 괴리를 뛰어넘으면
우리에겐 대중적이란 감상과 탁월함이란 추대와 보편성이란 개념을 남긴다.
그렇게 세월의 소용돌이와 많은 이들의 애증이 덧대지면
비로써 익숙하고 친근한 표준이 되고, 완성태로 남는 거 아닐까?
<3-0-3, 통영 문화동 벅수/1906호/민속문화재 7호, 남원 실상사 석장승/옹호금사축귀장군/1725년경/민속문화재 15호, 함양 벽송사 목장승/호법대신>
결과가 씨앗이 되는,
부분이 대표가 되는,
그렇게 품격을 갖추면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되고, 철학이 된다.
내 기준이지만 역사가 된 미소 띤 얼굴들을 찾아봤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국보 78호 | 550년경 | 중앙박물관 | 백제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국보 84호 | 599년경 | 운산면 가야산 용현계곡 |
백제 |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 보물2010호 | 경주박물관 | 신라 |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 7세기초 | 개인 | 백제 | |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 국보 247호 | 7세기초 | 공주박물관 | 백제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 국보 183호 | 7세기초 | 대구박물관 | 삼국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국보 83호 | 640년경 | 중앙박물관 | 삼국 |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 보물2071호 | 644년 | 경주박물관 | 신라 |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 국보 293호 | 7세기초반 | 부여박물관 | 백제 |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입상 | 국보 79호 국보 80호 |
706호 692년 |
중앙박물관 황복사지석탑 |
통일신라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보물 136호 | 750년경 | 배반동 보리사지 | 통일신라 |
예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보물 667년 | 800년경 | 감천면 주마산 | 통일신라 |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 국보 121호 | 1100년경 | 안동민속박물관 | 고려 |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 | 보물1842호 | 1605년 | 동본원사 | 조선 |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 | 보물1824호 | 1650년경 | 장안읍 불광산 | 조선 |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어렵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올라가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경지라 여길 뿐...
그래선지 내게는 미묘한 각도에서만 만들어지는 발견에 가까운 미소다...
<3-1.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점의 금동반가사유상... 6세기와 7세기, 국보 78호와 83호, 보관 양식에 따라 일월관과 삼산관으로 부르는 등 구별하기 위한 수단들이 많다...
큰 차이는 보의를 입었는가 상의를 벗었는가인데, 이는 현장이 인도에 다녀온 시점일 수도 있고, 단순화의 문제일 수도 있다...
출가 전의 태자상보다 미륵보살이란 이름이 앞선만큼 반가사유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7세기 이후 반사사유상은 자취를 감춘다. 사유와 명상은 미륵과 결별한다. 또 미륵은 깨달음과 궤를 달리하게 된다... 결국 불교의 교리와 대중들의 심상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그게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미소라기보다 순진무구한 웃음이다.
반가사유상의 초연한 표정과 터질듯한 웃음을 꾹꾹 눌러 담은 보살입상 덕분에,
여래입상의 시원한 웃음은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올 듯 생동감 넘친다.
3-2
백제의 미소라는 애칭에 갇히기엔 모든 게 풍성하고 여유롭고 평화롭다.
베풀어 준 세상일까? 보고 싶은 마음일까?
말이 말을 만든다. 교감하는 세상, 나누는 세상의 찰나일 수도 있겠다...
<3-2.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틀에서 막 꺼낸 진흙 반죽 수막새에 연화문을 찍었어야 했던 도공이,
나무로 깎아 만든 연화문 인장을 내팽개치고 갑자기 보고싶은 얼굴을 주물럭거린다.
짝짝이 눈에 그리다만 눈썹과 뒤틀린 입술, 그리고 두툼하게 솟은 코까지 어설프다.
시간에 쫓기듯 거친 손놀림에, 무심하게 꾹꾹 눌러 마음만 담았기 때문일까?
3-3
놀라운 것은 이 수막새가 결국 사용됐다는 점이다.
도공이 만들고, 초벌구이를 하고, 지붕에 얹혀지고...
서로 다른 전문성과 분야에 있던 그 누구도 이방인, 돌연변이, 규격 외 존재,
하나뿐일지 모를 이 특별한 얼굴무늬 수막새를 폐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웃으면서 용인했다. 저마다 그리워하는 누군가를 떠올렸을까?
그렇게 세월에 묻혔던 와당은 일본인 손을 거쳐 국내로 반환돼, 신라의 미소로 소개된다.
너무나 평범하고 편안한 미소였기에, 아무도 외면할 수 없는 가치가 되었다.
3-4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의 새침데기 소녀 같다.
오똑한 콧날에 시원한 아미 등 균형잡힌 이목구비...
세련되지 못하게 두꺼워진 목이 미감을 깨뜨리지만,
곧게 뻗은 탄탄함만큼 짧게 끊은 미소도 도도하다.
3-5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백제의 미소가 삶 속의 이야기라면, 장창곡 삼존상 미소는 잃어버린 향수다.
서산 마애불이 친근한 아저씨-아줌마라면, 장창곡 삼존상은 귀엽고 순박한 애들이다.
그래서 그냥 순수하다.
때묻지 않은, 때묻을 시간도 없었을 그들의 미소는 지켜주고 싶은 표정이다.
3-6
살짝씩 미소를 머금은 협시불들과, 무심한 듯 내려다보는 본존불의 아빠미소...
무심하듯 장난치듯 세상을 굽어보는 아래를 향한 그 표정에는
현세의 기복도, 미래의 기원도 어울리지 않는다.
추억과 아련함? 조심스럽게 떠올리는 가장 좋았던 어느때가 그 공간- 그 표정에 머문다.
<3-7.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중 좌협시보살...>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만큼 어렵다.
각이 맞아야 한다.
흐트러짐은 없는데 뻣뻣하고, 허틈이 없는데도 정교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화려하지 않고, 우아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다.
^^ 혹평에 악평인가?
<3-8. 오른손쪽, 손가락 두 개로 잡은 표대... 봉보주도 두손가락으로, 표대도 두손가락으로... 그런 조각은 없다... 맵시와 솜씨는 살아있다...>
내가 찾던 표정과 미소를 위해 얼굴만 클로즈업한 사진 수십장을 찍은 적이 있다.
맘에 드는 사진을 만들지 못했지만(지금도 카메라 모드를 잘못 지정했다고 생각중...ㅠㅠ)
그럼에도 미묘한 각도에서 보이는 오묘한 미소는 영원하다는 생각이다.
<3-9. 내가 찍은 사진 중 내 맘에 든 사진이 없다...bb 세 번째 빨간바탕 사진은 20년전일 거 같고... 아무튼 그래서 중앙박물관 사진과 위키백과 등의 사진을 사용한다...>
넘치지도 과하지 않는 지긋함, 엄격하지 않는 자애, 굳지 않는 단정함에
부족함이 없는 여유와 평화까지...
오랜 시간 머무르고 지켜봐야만 보이는 품격에서 여전히 좋다는 느낌이 뒤따른다.
첫눈에 반할 수 없지만, 볼수록 깊어지는 미소다.
부분부분에 숨겨진 세련된 맵시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유연하지 않은 자세가 아쉬운 건,
아마 금동불 중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미소의 마지막 작품이기 때문이라 위로해 본다.
3-10
이 백제 관음보살과 비슷한 느낌이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일 거 같다.
물론 이 석불좌상도 잘 생겼다.
경주 남산에서 유일하게 파손없이 보존된 불상인데다, 코도 깨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규모도 있지만, 그래서 더 멋있게 보인다.
사실 이 석불좌상도 부여 관음보살처럼 뜯어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왜소해진 몸매와 충분치 않은 하체, 후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팔과 작은 손...
3-11
그렇지만 다시 전체로 돌아가면, 모든 시선을 끄는 얼굴로 돌아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살포시 머금은 미소가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기 때문이다. 선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잘생겼고, 멋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소보다는 원만함으로 기억된다...
3-12
많은 조각상과 그림의 미소를 봤지만,
사실 내가 꼽은 보고싶은 미소는 이게 전부일 수 있다.
모으고 보니 경주 남산 미륵곡의 석불좌상을 제외하면
600년 전후 3세대, 약 100년의 작품들이다.
그 이후로 이런 미소를, 이런 표정을 가진 불상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찾아본다면 불국사와 석굴암 조성 전후시점에 만들어진 금동불과 철불,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 목불을 더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3-13. 한반도에서 682년 감은사지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면, 통일신라에서는 740년대부터 770년대까지 조성된 불국사와 석굴암의 완성은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주 석굴암의 범천, 제석천, 십일면관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600년대 중반에서 800년대로 넘어가기 전, 불국사와 석굴암 조성 앞뒤로
기념비적인 불상이 만들어지는데, 경주 구황동 금불과 예천 한천사 철불이다.
황복사지 삼층탑에서 출토된 2점의 금제불상은 얼굴표정과 좌대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3-14.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에 692년과 706년에 봉안된 금제불상이다. 석탑과 입상, 좌상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미소가 없지 않지만 눈을 부릅뜨고 권위를 지켜려는 듯 보이는 입상보다,
여유롭게 먼하늘을 응시하면서 자연스런 미소를 머금은 좌상에 눈길이 가는데,
남산 장창곡의 본존불도 생각나고, 문무왕과 신문왕의 유지를 이어받은 성덕왕도 생각난다.
모든것을 이룬 듯 보이는 충만함이 편해 보이면서도 아쉬운 건 무슨 마음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미소는 공감, 자애, 득의보다는 만족과 여유 쪽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3-15. 이렇게 보면, 700년대 초반 경주 금불, 750년대 경주 미륵곡 석불, 800년대 예천 한천사 철불까지 60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던 미소 띤 불상이 맥을 이어가는 거 같다...>
통일신라의 마지막 미소라 생각되는 예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안정된 비례에 단정한 자세로 건강함과 당당함을 뽐내는 보물이다.
작게 다문 입술이 여성스럽고, 작은 얼굴이 다소곳하게 보이는데다
눈꼬리가 살짝만 내려갔다면 더욱 완벽한 눈웃음일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단아한 모습이기에 부드럽고 우아한 불상...
3-16
달덩이 같은 얼굴은 시골스러운데,
탄탄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태는 그럴 수 없이 완벽하다.
가끔 꿈꿔본다. 이 불상이 일어선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깔끔 담백한 아미와 콧날과 오무러진 입술...
뜯어볼수록 멋지고, 아름다운 불상이다...
<3-17. 예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저 크기와 비례에서 일어섰다고 생각해보라...>
고려시대에 들면서부터 이전시대의 미소를 찾기가 어렵다. 내 시선으로는...
그렇지만 빠지지 않는 건 한국인의 얼굴이라 부를 수 있는 안동 하회탈이 있다.
<3-18. 한국인의 미소인줄 알았더니, 한국인의 얼굴이다...>
(국보 121호로 묶인 안동 하회탈과 병산탈은 하회탈 11점 + 병산탈 2점이다)
그 중 많이 알려진 것이 ‘양반탈’과 ‘중탈’이지만 전체적으로 파안대소하는 표정이고
어쩌면 미소라 부를만한 것은 ‘부네’와 하관을 버린 ‘이매’일지도 모르겠다.
<3-19. 안동 하회탈 중 중과 부네...>
깊게 패인 눈누덩이에 확실히 처진 반달형 눈매들,
남자들은 짧지만 굵은 왕방울 코에 함박웃음을 담았지만,
일그러진 할매를 빼면 각시와 부네는 경직되어 보인다.
한마디로 여성들의 표정은 가면속에 갇혀있고, 남성들은 가면 밖으로 뛰쳐나오는 거 같다.
그래서 하회탈은 웃고 난 이후의 긴 여운이 표정으로 고착된 느낌이다.
<3-20. 안동 하회탈 중 양반과 이매...>
정면상이지만 고개를 젖힌 그 모습들은 해학의 편린에서 허무함도 보이고...
아무튼 소탈하게 보이지만, 짧게 보고 깊게 남는...
그렇지만 길게 볼수록 어그러지고 괴기스러운...
성과 계층 계급, 현실에 직면한 한국인의 해학이 가진 양면성을 담은 웃음이 아닌가 싶다.
종교와 권력의 권위가 풍자라는 필터로 각색되고, 굿이 끝난 마지막 가면들이 불타 사그러질 때,
가면의 틈새 밖으로 불꽃과 연기를 볼 수 있다면 그때 완성을 느낄 수도 있겠다...
<3-21.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중 제6과장 양반과 선비 마당, 제1과장 무동마당이다... 류씨 집성촌으로 류씨가 60%를 점유하는 하회마을에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유씨 배반’이란 말이 엄연하다는 것은, 현재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조선시대 류씨-양반을 중심으로 고려시대와 전승과 무동들의 의식이 타협한 것임을 의미한다고 생각...>
탈이 만들어진 1100년 전후면 무신정권이 일어나기 70여년 전이니
거란과 전쟁이 종결된 이후, 유불교가 균형을 이루고 순청자가 절정에 다다르기 시작한
고려의 황금기다.
물론 고려시대의 문화보다 조선을 배경으로 많은 각색이 있어 확언할 수 없고,
무동, 주지, 백정, 할미, 파계승, 양반선비, 혼례, 신방의 8과장으로 분절된데다,
주지걸음, 능청맞은 중, 사뿐사뿐 각시, 황새걸음 양반, 방정맞은 초라니, 비틀비틀 이매,
맵시있는 부네, 심술궂은 백정, 엉덩이춤 할미 등 친근하게 각인된 해학적 요소만으로 기억,
세속적 오락성이 강하지만, 마을안녕과 무사귀신無祀鬼神을 위한 제의의 별신굿이다.
시대가 주는 진지함일까? 아니면 위축일까?
조선시대 불상에서 미소를 찾는 것은 만만치 않다.
게다가 내가 찾은 미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점의 두 불상이다.
하나는 익산 관음사 목조보살입상, 또 하나는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다.
먼저 익산 보살입상은 단정하다.
웃지 않는 웃음, 억눌린? 자제하는 느낌보다는 여유롭지 않다는 느낌이 더 크다.
그래도 오래 머무르면 말없이 지켜보는 아직은 채워지지 않은 미소다.
잔잔하지만 단호함도 느껴지는 은근한 미소다...
3-22
이에 반해 기장의 삼불좌상은 훨씬 느긋하고 평화롭다.
작지만 시원한 이목구비에 여성성과 모성을 포기한 삼촌같은 얼굴이
오밀조밀한 구성에도 답답함이 없고, 꽉차게 탄탄하다.
조용히 바라다보면, 이 삼불좌상은 지켜주지 않는다. 포용하지 않는다,
애초 숭배와 의지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 관조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입술에 머금은 작은 파문은 두툼해진 아랫입술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그로인해 선해지고, 긍정적 단단함이 된다.
흔들리지 않는 강고함... 금강태가 가질만한 초월적 미소일지도 모르겠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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