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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제 금동보살입상 사족 1 – 찾아보는 미소들...
물론 조금 더 찾아본다면, 미소 띤 불상이 위에 한정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개개인의 기호만큼, 개념만큼, 상황과 마음,
심지어 (전시를 위한 인위적) 조명마저도 미소의 의미와 깊이를 달리할 수 있다.
찾아내는, 만들어 보는 미소를 볼 수 있는 상들을 모아보면
조금 더 넓게 고를 수 있다.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2점) | 보물 598호 | 5세기 | 중앙박물관 동아대박물관 |
신라 |
토우장식 장경호 | 국보 195호 | 5세기 | 경주박물관 중앙박물관 |
신라 |
평남 원오리 소조불보살상 | 6세기 | 중앙박물관 | 고구려 | |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 | 국보 119호 | 539년 | 중앙박물관 | 고구려 |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 | 보물 62호 | 670년경 | 경주 선도산 | 신라 |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 국보 42호 | 700년전후 | 조계산 신평리 보조국사 지눌 |
|
금동여래입상 | 8세기초 | 삼성미술관리움 | 통일신라 | |
금동관음보살입상 | 보물 927호 | 720년경 | 삼성미술관리움 | 통일신라 |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 국보 196호 | 745~ 755년 |
삼성미술관리움 | 통일신라 |
경주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입상 | 국보 24호 | 771년 | 경주 토함산 | 통일신라 |
밀양 천황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보물1213호 | 780년 | 사천시 백천사 | 통일신라 |
석조 불두 | 8~9세기 | 중앙박물관 | 통일신라 | |
금동불입상 | 9세기 | 중앙박물관 | 통일신라 | |
경주 남산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 800년경 | 경주 남산 삼릉계곡 3사지 |
통일신라 | |
의성 만장사 석조여래좌상 | 830년경 | 비안면 화장산 | 통일신라 | |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국보 63호 | 865년 | 동송읍 화개산 | 통일신라 |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2점) 및 복장유물 |
국보 | 883년경 | 가야산 치인리 | 통일신라 |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 940년경 | 중앙박물관 | 라말려초 | |
철조 불두 | 10세기 | 중앙박물관 | 라말려초 | |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 보물 981호 | 977년 | 객산 선법사 | 고려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 국보 48호 | 1100년경 | 평창 오대산 | 고려 |
금동 천수관음보살좌상 | 1253년전 | 메트로폴리탄 | 대리국 | |
수월관음도 | 보물1426호 | 14세기 | 아모레퍼시픽 | 고려 |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 | 보물1872호 | 1392년경 | 춘천박물관 | 려말선초 |
목조 불좌상 | 17~18세기, 중앙박물관 | 조선 |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은 불상도 인간도 아니지만,
도공과 사용하는 이의 즐거움이 의인화되어 바라보는 이까지 함께 미소 지을 수 있기에,
성기를 드러내며 파안대소하는 토우장식 장경호는 통속적 열락의 솔직함 때문에,
<4-1.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과 토우장식 장경호/토우로 만든 형들이 장식으로 붙어 있는 목이 긴 항아리라는 뜻이다... 스토리텔링의 강자 신라... 그래서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원오리 소조불보살상과 연가7년명 여래입상은 드물고 귀한 고구려 불상에 남은
소박담백한 (의외지만) 단아함 때문에 골라봤다.
<4-2. 평남 원오리 소조불보살상과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이다...>
또 궁극의 미소를 생각하며 차별을 둔 불상들도 있다.
리움의 금동여래입상은 선하고 순박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웃는 상...
위엄을 버리니 가볍고, 상반된 미감이 없으니 옅은가?
우리가 만들어낸 표정으로 그냥 웃기 때문에 이쪽으로...
<4-3>
그리고 호암미술관과는 달리 중앙박물관에는 미묘한, 정말 미묘한 표정의 금동불이 있다.
내눈에는 8세기 금동불로 보이는데, 안내문에는 명확히 9세기로 명기된...
당당한 체구에 좌대까지 온전한 이 불상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두 갖췄으나 근엄함과 여유가 섞이지 않는 건 입술만 웃기 때문이 아닐까해서...
<4-4>
철원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역시 아저씨나 시골삼촌의 순박한 미소이지만,
선함을 넘어서는 어떤 강렬한 임팩트가 없다는 아쉬움 때문에 이쪽으로,
<4-5. 꽤 오랜 시간 지적이 있었지만 철조연화좌를 가린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왜 가리지? 연화대좌가 이미 수미단일텐데 왜 그걸 감추어야 할까??? 금박을 벗기고, 조명도 바꾸고, 빨리 연화대좌까지 완전하게 노출되기를 기대한다...>
같은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중 중앙박물관 전시품도 고민스럽다.
미소는 미손데, 눈꼬리가 처지면서 불쌍하다는 표현은 그렇고, 안쓰럽다는 느낌이...
가사-보의의 맵씨나 자세와 균형에 모자람이 없는데도, 밝지가 않다. 그래서 이쪽으로...
<4-6. 처음 이 불상은 고려불로 안내됐으나 현재는 라말려초로 시대하한이 통일신라쪽으로 기운 듯 하다. 당시 우리나라 철불은 몇기 되지 않는다.
원주가 4점, 충주가 3점, 광주 2점, 그러고나면 청양, 남원, 하남, 평택, 하남, 영천, 임실, 포천 하나씩... 표정과 비례는 완전히 다르지만, 옷주름의 부드럽고 세련됨은 포천 철불을 생각나게 한다...
비로자나불 좌우는 원주박물관 철불과 춘천박물관의 원주 학성동 출토 약사여래좌상이다.>
같은 철불이지만 머리만 남은 표정도 중앙박물관에 있다.
장난기어린 표정이지만 웃음이 꾹꾹 눌러서 담겨 있다.
면이 부식 때문인지 거칠지만, 오똑한 콧날과 깊은 눈매에 담긴 웃는 표정은 순박하다.
그리고 그 옆 석조 불두는 눈도 코도 입도 닳고 닳아 뭉개졌지만,
뭔가 터뜨리기 전의 웃음을 담고 있는 듯 즐겁다. 두 불두의 표정은 밝다는 느낌...
<4-7>
부잣집 막내아들 같은 복스런 인상의 의성 만장사의 석불좌상은
그냥 철이 덜 든 거 같아서,
평창 월정사 구층석탑 앞 석조보살좌상은 혼자만의 경건함이 더 앞서 보이고,
<4-8. 의성 만장사 석조여래좌상과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의 석조보살좌상... 진품은 풍화 등 훼손문제로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모본으로 대체하면서 연화좌대를 복원했다... 이런 조치는 좋다고 생각...>
춘천박물관의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웃는 상이지만 너무 절제됐다.
<4-9.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 왼쪽은 이보다 100여년 앞선 것으로 보이는 대리국의 금동 천수관음보살좌상이다... 려말선초에 만든 금동천수관음보살이 서울 흥천사와 중앙박물관에 각 1점씩 있다. 웃는 표정은 아니다...>
범위를 조금 넓히면 부여박물관의 금정산 천황사지 석조여래입상의 투박한 미소가 있다.
얼굴을 꽉채운 눈매와 두툼한 입술에 비해 작고 낮은 코가 오히려 친근하게 보이는 이 불상은
민속적이며 토속적인 분위기가 반영될수록 편안하고 자유스런 느낌을 확인시켜 준다.
격식과 권위와 전통을 비껴내면, 아픔을 극복하고 미래를 갈망하는데
웃음만큼 직접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없기 때문 아닐까?
<4-10. 시대를 내려갈수록, 또 격식과는 거리를 둔 민불을 찾으면 많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웃음 새긴 조각들은 더욱 귀해진다... 부여 금정산 천황사지 석조여래입상, 세중돌박물관의 벅수와 석조여래입상...>
그래서 죽음의 공간을 지키는 동자석이나
마을 어귀에서 공동체를 수호하는 장승이나 벅수들을 보면,
잡귀와 액난들이 무서워해야 할 만큼 험상궂고 무서워야하지만,
오히려 친근하고 묘하게 어그러진 표정들을 많이 보게 된다. 심지어 웃는 상까지...
동자석이나 장승의 역할보다, 그걸 만드는 이와 공동체의 애원이 앞서기 때문이겠지...
<4-11. 세중돌박물관 벅수 중 웃는 상이 몇 점있지만,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어느 한사람이 만든 게 아닌가 생각...>
이런 순박함과 해맑은 표정과 달리 미소라고 애써 해석하는 작품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림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변상도-표지화로 최고(最古)의 작품이다)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부서진 그림조각 중 보살상...
자색닥종이에 금은니로 풍만하지만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을 남겼다.
<4-12.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변상도 중... 세월에 부식되고 닳아버린 저 종이를 한겹한겹 뜯어내서 복원한 그 정성에 박수를...>
같은 그림이지만 바위에 새긴 경주 남산 삼릉계곡의 선각육존불도 있다.
백지묵서와 달리 엄청 확대한다고 확인되거나 탁본만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관세음과 대세지보살로 보이는 양 협시 보살 사이에 서있는 아미타불에게서
나는 미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처연하고 불쌍해 보이는 미손가??
<4-13. 어떻게 하면 저 선각 그림을 눈에 담고 사진으로 찍을까, 햇빛 쨍한 날은 안 되고, 흐린 날 갔다가 또 안 되고, 마지막 어두워지는 시간에 맞춰 후레쉬를 들고 찍었던 기억... 그 정성 때문에 미소는 있어야 한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의 희미한 흔적에서도 나는 미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모레퍼시픽 박물관이 보관하는 수월관음도에 나는 미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워지거나 확인할 수 없거나, 흐뭇한 표정이지만 나는 그걸 미소로 본다.
<4-14.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과 수월관음도... 솔직히 미소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맨 왼쪽에 인용한 사진처럼 선명하게 찍히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다부진 입술에 굳건한 표정을 미소로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입술로 꼽을 수 있는 경주 감산사지 작은 바위 위에 앉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지만
이걸 미소를 띠었다고 말하지 않을 거 같다.
<4-15. 답사객들이 경주 감산사지를 찾는 건 국보 81호와 82호 석불입상의 흔적과, 아직까지 감산사지를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보기 위함이다. 여기에 더해 솜씨 좋고 내공이 깊은 이가 만졌을 이 석불좌상도 꼭 찾아보길 권한다...>
제작 연대도 연원도 불분명하지만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도 마찬가지...
남산의 선각육존불과 하남의 마애불, 그리고 수월관음도가 미소를 느끼기에 그렇게 본다면
감산사지 석불좌상과 송광사 목조불감은 그렇게 보고싶어 보는 거 같다.
<4-16. 보조국사 지눌이 가지고 있었다는 목조불감은 중국에서 가져왔는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는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시대도 들쑥날쑥이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당나라 황금기인 600년대 중반에서 750년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용문석굴 봉선사동과 비슷한 양식도 그렇고 좌대도 그렇고, 느낌도 그렇고...>
꼭 비교 때문은 아니지만, 송광사 불감과 같은 목조 불상을 한구 더 소개한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으로, 작지만 당당한 체구에 ‘굽어 보는’ 표정의 미소다.
익산 관음사나 기장 장안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은 입술이 살짝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소보다는 뭔가 한 말씀 하실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그래서 이쪽에 담았다.
<4-17. 목불좌상과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883년/국보, 그리고 서산 개심사 목조여래좌상/1280년경/보물 1619호...
같은 목조불상이지만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불상은 격식은 물론 표정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통일신라 목불상이 3점에 불과해 비교하기 뭐하지만 결가부좌의 비례가 완전히 다르고, 고려 목불상은 표정이 일정치 않다. 특히 코가 다르다...^^
아무튼 해인사 목불상 옆얼굴은 경주 남산 미륵곡 석불상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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