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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피아니스트>

 

 

 

 


 

싼 맛에 CD를 구입했다...

실컷 고르고 보니 전부 전쟁영화다...

10월 혁명, 1차대전, 2차대전, 그리고 멀리 트로이전쟁까지...^^

사막의 라이언, 전함 포템킨, 적과 백, 닥터 지바고,

율리시즈, 맥버드, 일렉트라, 그리고 모던 타임즈까지...

왜 이런걸 고르지???

 


아마 <닥터 지바고>를 고를 때 전후해 골랐는데 이제야 <피아니스트>를 본 듯싶다...

극한 상황? 인간성? 이념? 신화? 역사? 예술? 생존...

어쩌면 혁명과 전쟁은 이 모든 걸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개인과 역사와 사회가 가장 첨예하게 마찰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자극에 목말라하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게 <생 혹은 삶>이어서일까?

 

 

 

 

 


 

 

 

 


2차 대전

폴란드 바르샤바

그리고 피아니스트 스필만...

 

 


독일의 폴란드 점령... 게토에 50만명이 격리수용 되었다.

홀로코스트... 575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레지스탕스...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4만명이 봉기하여 20명만 살아남았다.

 

 


가족

젊음

마음속의 연민

친구들

 

 


이별

고독

굶주림과 추위

멸시와 차별

동정

우정 혹은 우애

예술...

그리고 폐허...

 

 

 

 


 

 

 


지난번 <닥터 지바고>에서는 생을 대하는 5사람을 나와 비교해보았다.

<모던 타임즈>에서는 채플린을 보았고

<언더 그라운드>에서는 동굴의 진실을 보았다.

이 영화에서는 무엇을 보았지?

이 전쟁영화에는 스펙터클도 속도감도 영웅도 없다.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는 영웅을 만든다.

절제와 인간성을 겸비한 근육질,

혹은 정치경제적 영향과 차가운 양심을 겸비한 지성,

그리고 여기에 얄팍한 교훈과 한풀이가 섞이면 영웅이 탄생한다...

짧고 빈약한 역사적 열등감이 끊임없는 영웅 만들기를 부추기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중적 정서를 문화로 포장하는 상업술로 애국심을 채워간다.

다행히 이 영화는 미국의 영웅과 애국심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음악영화?

내 결론 ; 이 영화에는 음악이 없다!!!

 

 

베토벤의 <열정>처럼 음악을 담기 위한 영화가 아니어서도 아니고

모차르트의 <아마데우스>처럼 한 사람의 생애를 쫓아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은 아니다.

그나마 <잉글리쉬 페이션트>처럼 어설픈 예술 감상을 강조하는 영화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악을 듣지 못했다.

쇼팽과 피아노 건반이 흐르지만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냥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란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얼까?

 

 

 

 

 

 

 

 

 

<브래스드 오프>같이 역경을 이겨내는 반전이나 공동체의 확인도 없다.

차라리 경쾌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듣고 싶다...

<샤인>처럼 삶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일체감도 없다.

그 현란하면서도 깊이 있는 매혹적인 라흐마니로프의 음악이 듣고 싶다...

<언더그라운드>처럼 세상을 비아냥거리며 허탈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한 춤과 해방과 죽음의 웃음을 듣고 싶다...

 

 


어쩌면 나는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나

아니면 더 큰 음폭을 가진 곡이나

내 영혼을 자극할 그런 소리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피아노의 건반으로 그 시대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쇼팽의 자유스럽고 감상적인 선율은

애초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레지스탕스를 담기에는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왜 <쇼팽>을 택했을까?

바르샤바의 음악가 이기에?

쇼팽의 시대에 벌어진 러시아와 폴란드의 전쟁이 있었지만

2차 대전에는 러시아의 도움으로 폴란드가 해방되었다는 역사적 반전을 꾀하기 위해서?

이념과 전쟁과 광기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쇼팽을 왜?

 

 

어쩌면 긍정적인 스필만과 철저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쇼팽이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와 레지스탕스를 피아니스트는 견뎠는지도 모른다.

스필만의 손이 피아노를 잊지 않듯이

쇼팽의 음악에는 악보와 피아노만 남는다...

쇼팽의 음악에는 연주만이 남는다...

듣는 그 순간의 몰입을 쇼팽은 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는 쇼팽에 집착했을까?

 

 

 

 

 

 

 

 

 

영웅도, 음악도, 예술도 아닌 <피아니스트>...

무엇이 보이나?

무엇을 보아야 할까?

애처롭게도 폐허란 단어만이 떠돈다.

푸코의 광기가 생각나고

이념의 극단을 보며

인간의 삶을 볼 뿐이다.

 


음악적 재능 외에는 가진 게 없는 스필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무능한 스필만

그가 살아온 시대...

불과 60년 전, 우리의 부모 세대가 살아온 세상...

그 당시 과학과 철학과 경제에 절정을 구가하던 유럽...

그들이 무엇을 했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필만을 통해 본다...

 


우리의 50년 전쟁도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빈곤이 다른 점이었을까?

광기와 이념과 그 속의 삶은 똑같지 않았을까?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마르크스 이후 50년

헤겔 이후 100년

조금 더 르네상스 이후 400년

조금 더 멀리 소크라테스 이후 2500년 동안 만들어 온 인간의 가치...

그들이 만들어 온 인간성, 인종, 국가,

철학, 종교, 과학, 역사, 경제가 그런 모습이었을까?

 


여전히 <아도르노>의 씁쓸한 비웃음을 되내일 뿐인가?

<이성의 도구>를 나는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거 아닌가?

 

 


 


나는 어쩌면 스필만의 마지막 연주에서 더 깊은 소리를 찾았는지 모른다.

그가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엇을 찾았을까?

펜을 든 자에게서는 철학을?

그럼 빵을 만든 자에게서는 무엇을 바랬을까?

망치를 든 자에게서는 무엇을 바래고

낫을 든 자에게서는 무엇을 바랬을까?

더 맛있는 빵과 정교한 손놀림을???

 


그들은 단지 그들의 삶을 이어갔을 뿐인데...

그들은 단지 죽지 않기 위해 본능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들은 그냥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인데...

 

 

 

 

 

 

 

 


물론 한가지는 인정하고 가자...

독일군을 물리친 모스크바의 첫 번째 행사가 연주회였듯이

스필만의 연주는 이념의 광기를 잠재울 예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그게 그들의 습성이고 지성이며 양식이었다면 받아주겠다...

그리고 후회와 반성과 사죄가 끊이지 않았다는 선언도...

이것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꼭 그만큼의 수준임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만든 사회...

그 시대를 직접 살지 않은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

그 시대를 빨리 잊어 먹은 사람들이 이끌고 가는 사회...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있는 나...

그리고 그들과 같이 살고 있는 나...

 

 

 

 

 

 

 

 


 

자서전에 기초했다는 영화...

2000년까지 살았다는 스필만...

삶이란 그런 것인데...

그것이 한사람의 평생인데...

한평생이 지우지 않은 족적인데...

 


참으로 공허하게 끝난다...

영화도,

삶도,

인생도,

이 시간도...

 

 

폐허와 인생만 남았다...

쇼팽의 <혼자만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힘없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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