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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답사여행...

여행> 경주여행0301 - 2. 석굴암

 

2. 2일, 석굴암

 

석굴암에 가면 남산 오르는데 상당한 차질이 생길텐데!?

어째든 나의 경주여행은 역시 석굴암에서부터 시작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석굴암... 2,3시간은 절대 못 떠날 줄 뻔히 알면서도 차는 토함산으로 향한다.

 

<일출 ; 사진이 없다... 이제는 모든 사진을 찍어 두어야할지...>


해가 구름에서 막 떨어지면서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진다.

기도하던 사람, 눈을 감은 사람, 환희의 표정으로 즐기는 사람...

수많은 표정의 사람들이 해가 동그라미를 그리는 순간 어디론가 떠난다.

 

수평선, 지평선, 산등선, 구름... 모든 경계에서 해가 떨어지는 순간 ;

일출도 끝나고, 탄성도 끝나고, 기도도 끝난다.

이상하지?

역시 우리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중천에 떠있는 해를 보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따라 유난히 본존불이 흰색으로 보인다.

본존불... 본존불...

미와 평화의 시현...

 

오직 침묵 속에서 보내는 최대의 찬미만이 가능하다고 야나기는 말했지?

유홍준씨는 빙켈만에게서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를,

니체에게서는 명랑성과 생동성이 넘치는 아폴로적인 것,

그리고 감성과 지성이 양식적인 것에 조화되어 있다는 헤겔의 말을 차용했다.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하나됨을 이루는 지고의 최미

게다가 동양무비의 유적이라고도 한마디 더한다.

도대체 석굴암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은 무엇일까?

 

 


얼마나 더 봐야 나는 나의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답사기란 형식을 빌어서

뭔가를 말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수많은 논문과 자료, 그리고 서적 방송 등을 통해 나는 석굴암을 접했다.

또 경주를 접했다.

나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한데 모은다고 나의 답사기가 완성되는 걸까?


경주답사기도 석굴암만큼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쫓자니 그 수와 다양함만큼 나열식이 될 것이고

유형별로 정리하자니 차라리 논문을 쓰는 게 편하고

인위적으로 재구성하자니 목적의식에 짓눌릴 것 같고...

 

<오래전 사진 ; 전실의 진위여부는 논외로 치자... 그러나 답답한 것은 사실이다...>


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자니 그만한 깊이가 아쉽고

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자니 너무 방대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나의 애초의도가 아니고...


석굴암 본존불 앞에 서있을 때마다 느껴지는 나의 허전함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10분, 30분, 1시간, 2시간...

늘 그렇듯이 석굴암 앞에서 내가 하는 일이란

한참을 바라보다, 잠깐 밖에 나갔다 다시 들어오고...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앉아서 보고 또 서서보고... 그렇게 바라보고...

지겨워하는 보살님이 자리를 비우면 사진도 몇 장 찍고...

 

<빌려온 사진 ; 내 맘에는 들지않지만 공륭부를 보여주는 흔한 사진...>

<만일 내가 들어가서 보았다면 압도하는 무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3. 석굴암...

 

서있는 위치, 높이, 그리고 시선의 흐름까지도 계산된 석굴암...

내 눈높이는 연화대좌와 거의 수평이다.

그럼 김대성의 눈높이와 거의 같다는 말인데...

내키는 김대성보다 최소 8~12cm는 작다.

아마도 내가 서있는 곳이 약간 높게 만들어진 것 같다.

만약 내가 김대성이 애초 의도했던 자리에서 본존불을 본다면

또 어떤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아까 일출 때부터 목조전실의 문을 열고 본존불을 바라보았다면 또 어떤 느낌이었을까?

부처의 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석굴암 본존불 계통(?) 또 하나는 서산마애불 계통(?)

혹자는 말한다. 서산마애불은 야외 즉, 직사광선이 주요한 광원이 되고

석굴암 본존불 같이 아래로 늘어뜨린 눈에는

바닥을 통한 간접조명이 주요한 광원이어야 한다고...

-그럼 그리스 로마의 조각은 전부 하향식 직사광선을 애초부터 의도 한 건가?

아래에서부터 반사된 광원을 받은 본존불은 또 어떻게 보일까?

하긴 옛날의 주요한 인공광원은 호롱불이 대부분이었을 거고...

 

<서산마애불 ; 그래도 광원이 위쪽에 있을때의 미소가 가장 밝다...>

<본존불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이미지... 사라진 문화와 남아있는 문화... 모두가 소중한...>


신라역사과학관에서 모형으로 만들어본 광창을 통해본 석굴암 본존불이 있다.

비록 우리들 눈으로 그 부재를 확인을 하지만,

역시 쇠창살에 갇힌 듯한 모습...

혹은 철가면을 쓴듯 한 그 모습은 썩 환영받지 못할터...

햇빛을 받는 그런 본존불을 보고 싶다.

 

<예전에는 이런 부재들이 군데군데 모여있었다... 광창과 광창의 살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누군가 그랬다. 석굴암 조각의 발을 자세히 보았느냐고...

팔부신중은 도입부 ; 돌에서 조각을 끌어내듯 가장 천연덕스럽게 구분만 두고 있다.

사천왕상은 진입부 ; 금강역사상부터는 최대한의 인공이 가미되어

가장 정교하게 발가락, 신발끈 하나까지 정성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십대제자상의 발은 최대한의 생략과 절제로 형태만 남겼다.

 

<빌려온 사진 ; 석굴암 각 부재에 대한 사진자료들은 너무나 풍부하고 많다...>

<그 하나 하나를 뜯어보는 즐거움...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충분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팔부신중은 그들의 성격과 무관하게 너무 정적이고 둔중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곧바로 금강역사상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역동적인 용맹이 분출된다.

다시 사천왕상에서는 남성적인 힘과 안정된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면...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문수 보현보살은 풍만하고 유연한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사천왕이 갑옷에 중무장을 하였다면 범천 등은 얇은 천의를 걸치고 있다.

 

<실물 크기의 탁본 ; 역사과학관에서 구입한 것이고, 생각보다 크다... 전신이 2.2m 전후이니...>

<탁본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럽고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 너무나 완숙한...> 


십대제자상은 두툼한 가사에 장식적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근엄한 구도의 모습이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고,

마지막 십일면 관음보살은 화려하면서도 정성스럽게

그러나 제석천, 보현보살 등과는 완전히 다른 비례로 여성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또 십대제자상과는 현격한 차이가 날정도의 고부조로 정면을 응시하게 조각되어 있다.

 

<무지개 아치를 후대에, 혹은 일제에 의해 덧붙여졌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답답해졌나?>


잦은 수리와 보수과정... 그리고 자연적 혹은 인위적 훼손으로

현재의 모습을 완전한 원형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런 이유로 팔부신중 등의 조각이 후대에 조성되었다든지

또는 훼손 등의 이유로 조악하고 치졸하게 보수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 원형도 앞에서 지적한 바의

대비와 발전과 변화의 큰틀(혹은 정반합)을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유리창에 반사된 빛만 없었어도 멋있는 사진이 됐을텐데... 사진 한장 찍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 하나하나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석굴암...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아서 할 말이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할 말이 없다...

오늘 또 나는 석굴암을 보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오면서 석굴암에서 3년이 됐다는 보살님과 잠깐 이야기...

역시 내관심사는 어떻게 석굴암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가...

모형에 대한 이야기, 내부에서 받았던 감동과 신비로운 체험...

역시 부러울 뿐이다.

 

<토함산에서 내려다 본 경주... 물론 사진은 신록에 중점을 두었지만 조망이 좋은 곳이다...>


예닐곱 대의 세단들이 몰려나가고 대선에서 실패하고 이곳에 온 사람을 본다.

무엇을 생각할까?

따따따닥 소리... 무슨 소리지?

오색딱따구리인가?

어? 두 마리네?

지금이 산란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구애의 노래는 아닌 것 같고...

살아있음의 확인인가?